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42)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42화(42/280)
────────────────────────────────────
────────────────────────────────────
겨울 놀이 중 최고는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더듬거리며 말을 뱉는 마커슨.
“지. 진짜야?”
“어. 그때 니가 내 등 쳤잖아. 늦었는데 교실 안 들어가고 뭐하냐고. 그때 쟤랑 부딪혔었어. 분명 바구니에서 떨어진 건 그 쿠키랑 드링크였고. 나를 바로 알아보더라고. 보면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실 난 누군지도 몰랐거든. 너 못 봤어?”
“아. 그때는 나도 늦어서 주변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 네가 바닥에 앉아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만 했고. 그리고 잊어버렸지. 근데…그럴 리가 없어. 쟤 엄마아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다 아는데…할머니가 알면 진짜 죽이려고 할 거야.”
“아까 나랑 눈 마주쳤는데 피하더라고. 내가 오늘 너한테 자기 얘기 할 거라는 거 알거고. 마커슨. 너 이제부터 뭐든 쟤가 주는 건 먹지 마. 물 한 컵이라도.”
– 히끅.
알렉스가 놀랄 때 나오는 딸꾹질을 시작했고,
오디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무시했다.
“혹시라도 협박하면 엄마한테 일러. 쟤 주변으로 누가 있는지도 잘 관찰하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둘만 있는 시간 만들지 말고. 그리고 또…음. 어쩔 수 없이 둘만 있어야하면 방문 잠그고 나가지 마. 화장실 가고 싶어도 참아.”
“…”
“제이든. 그건 좀 심하지 않아?”
“그래. 아무리 그래도 사촌인데.”
아직은 중학생이라 어른만큼 머리를 쓰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학교에서 쿠키를 판매할 정도면 조력자가 있다는 것이고, 어른일 가능성이 크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 그리고 원래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고. 쟤도 지금 엄청 쫄았을 껄? 니가 할머니한테 이를까봐? 이제까지는 내가 자기를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편했겠지만 이제부터는 달라.”
“…근데 도미니크는 약 안해.”
“그러니까 더 위험한 거지. 본인은 안하지만 남에게 판매는 하잖아. 그게 본의든 타의든. 쟤 주변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조심해.”
“…무서워.”
“나도.”
“어떡하냐. 우리 마커슨.”
나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이게 내 일이면 무섭긴 할 거 같다.
얘를 도대체 어떻게 구제해야할른지 감도 안잡힌다.
그나마 이제까지 가만 놔둔 건 어려서일 수도 있고, 마커슨의 엄마가 무서워서 일 수도 있다.
“왜 안먹고들 그러고 있니?”
하이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마커슨의 엄마다.
들었을까?
못 들었을 거다.
시끄러운 힙합 음악이 끊이지 않고 있고, 분명 방금 전까지 저쪽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는 걸 봤다.
분위기를 바꿔야 된다.
“케이크 언제 먹나 기다리고 있어요. 되게 맛있어 보이는데. 언제 먹어요?”
“아하하하하하. 그렇지. 니들은 아직 고기보다 케이크지? 깜빡했다야. 으하하하.”
어떤 포인트에서 웃겼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이 아줌마 손버릇이 영 나쁘다.
– 퍽퍽.
웃으면서 한없이 가녀린 우리의 등짝을 마구 쳐댄다.
딱히 아프지는 않지만 몸이 들썩거리는 것까진 어쩔 수가 없다.
“엄마. 그만 때려. 애들 아파.”
“아. 미안 미안. 버릇이라. 큼큼. 그래. 그럼 이제 노래 부르고, 케이크 자를까?”
“네.”
–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
.
.
귀를 울릴 정도로 시끄럽던 힙합 음악이 꺼지고, 참석자 전원이 힘차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본인 엄마의 강압에 머리에 고깔모자까지 눌러쓴 마커슨이 엄청 부끄러워했지만 또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는 씰룩거린다.
케이크 촛불이 꺼지고, 선물 개봉식이 있고.
추워죽겠는데도 놀이터로 가 농구를 했다.
쉘터에 앉아 이빨만 까고 있기엔…
우린 서로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섬처럼 테이블 한쪽 끝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못할 짓이고.
농구도 재미없고,
그네는 더더군다나 재미없고.
눈싸움을 하다가 손가락이 다 얼 지경이 되었을 때 마커슨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 파티 언제 끝나?”
“아마 해 떨어질 때까지?”
“…집에 가자.”
“그래.”
“얼른 삼촌에게 전화해.”
“왜에. 더 놀다 가지.”
“너무 많이 놀았어. 암튼 너는 내 말 잊지 말고 꼭 생각해라. 나. 마약하는 친구는 안 키운다.”
“걱정하지 마. 절대 그쪽으론 눈도 안돌려.”
마리화나가 합법이고, 많은 마약성 진통제들이 합법인 미국.
당장 동네에도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집도 있고.
처음엔 별 생각 없던 녀석들도 약물 중독에 따른 인생의 피폐해짐에 대해 내가 꾸준히 세뇌를 시켰기에 이제는 약이라는 말만 나와도 기겁을 한다.
교육의 효과가 탁월한 종목 중 하나였지.
삼촌은 내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 바로 받았고, 5분도 안돼 공원에 도착했다.
마커슨이 서운한 듯 계속 칭얼거렸지만 가볍게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
일요일이자 방학의 마지막 날.
우리는 저마다 완전무장을 한 채 교회를 향했다.
이번 방학엔 마커슨의 생일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다.
누구는 이 기간에 따뜻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 등으로 여행을 다닌다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에겐 해당사항 없는 말.
그 말인 즉슨, 우리끼리 알아서 놀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고, 우린 거기 익숙하다.
때는 겨울이고, 어제까지 온 눈이 온 사방에 쌓여있다.
길거리는 깨끗하게 치워져있고, 오로지 산과 언덕에만 쌓여있는 눈.
놀기 딱 좋다.
“이야. 넌 도대체 바지를 몇 개를 껴 입은 거냐?”
“얼어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안 죽어. 안 죽어. 거기 언덕 올라가려면 나중엔 더워서 땀난다고.”
“그건 식은땀이지. 그거 바람한번 불면 그대로 얼음된다고.”
“모자는 안 쓰냐? 머리 터진다.”
“이거 왜 이래. 준비하면 마크님이시다. 차에 있지. 아무리 그래도 예배 때 모자 쓰고 있을 수는 없잖아.”
“아. 그건 그렇지.”
.
.
.
웬일로 시비를 걸던 크리스틴이 이쯤에서 멈춘다.
게다가 무려 스키복을 준비한 크리스틴.
우리가 두꺼운 추리닝 바지를 2개씩 껴입은 것에 비하면 뭔가 좀 있어 보인다.
그러고보니 오늘따라 화장도 하셨고.
“애들아 안녕!”
“하이!”
헤일리와 클로이 그리고 고등학생들.
이놈들도 중무장이다.
기타 줄은 잡을 수 있으려나 몰라.
주변을 돌아보니 오늘 고등학생들도 단체로 눈 놀이를 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하나같이 꼴이 대단하다.
이 동네가 그렇지 뭐.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크리스틴의 고개가 자꾸 고등학생들 쪽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뭔가 있긴 한 거 같은데.
모르는 척 하자.
나중에 알아서 실토할 것이다.
마음속에 품은 걸 오래 가져가지 못하는 성격이다.
– 띠리띠리링.
얄쌍한 전자기타 줄이 튕겨지면서 오늘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 스윽.
익숙한 실루엣이 어리숙한 표정으로 중고등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커슨이다.
“어? 마커슨?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잖아? 너네 교회는?”
“엄마가 중간에 나와서 라이드하기 귀찮대. 그냥 오늘은 처음부터 이 교회 가래.”
“으하하. 잘 됐다. 어서와 어서. 엄마는? 가셨어?”
“어. 앞에 내려주고 갔어.”
그냥 들어오면 될 텐데.
굳이 자기 교회로 되돌아가는 마커슨의 엄마.
사실 인종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지 않는 이상 99.5%가 백인인 교회에 흑인이 함께 예배드리기는 쉽지 않다.
동네 교회일수록 심하다.
그 묘한 이질감이 아무리 깡이 센 사람이라도 주눅 들게 만드는 그런 것이 있다.
처음 한두번은 그냥 지나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더 받게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는 없는 거니까.
나야 부모가 백인인데다 아직 아이라는 특이점이 있고, 오디는 그냥 친구들 만나러 나온다는 걸 우리 모두 다 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또 다르다.
일례로 오디의 엄마가 단 한 번도 이 교회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디만 내려주고 가버린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우리가 돌아가면서 데려다주고.
오늘 오디는…오지 못했다.
겨울방학동안 오디가 집 밖을 나온 건 마커슨의 생일잔치 딱 하루다.
연락도 없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지만 내일이면 개학이니 사정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연주가 끝나고, 목사님이 나와 설교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들뜬 우리가 설교에 집중할 수 있을 리는 만무.
“모일 장소는 도서관 뒤라는 거 알지? 뒤풀이는 없다.”
“아아. 왜 없어? 놀고 나면 당연히 피자 한판 땡겨야지.”
“다 젖은 발로 어딜 들어오려고.”
“나 바지 3개 입었어. 2개 벗으면 되잖아.”
“양말은? 신발은?”
“그것도 다 벗으면 되지. 피자 먹자아.”
“야. 알렉스. 애냐? 오늘은 끝나고 각자 집으로.”
“하. 지는. 좀 전까지 피자 타령한 게 누구더라?”
.
.
.
속닥속닥.
끽해야 40명 정도 앉아있는 곳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낮춰도 이 정도면 꽤 큰 소음이다.
– 큼큼.
아까부터 대머리 유스부 목사님이 계속 큼큼- 거린다.
우리의 수다가 예배를 방해하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하란 사인.
그냥 ‘거기. 조용히 해!’라고 빽- 한번 소리 지르면 되는 걸 저리 참을성이 높다.
“애들아. 집중하자. 목사님 우시겠다.”
“오케오케.”
그날의 예배는 그렇게 어수선하게 끝이 났다.
이런 날은 하느님도 봐주시겠지.
30분 후.
우리는 모두 동네도서관 뒤편으로 모였다.
공원을 끼고 있는 도서관은 언덕의 위쪽에 지어진데다 시립이다보니 어찌나 관리를 잘 하는지 평소 잔디가 반질반질하다.
거의 산 한쪽면을 통째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평소에도 옆에 버젓한 놀이터 놔두고 여기서 미끄럼틀 타는 놈들조차 있을 정도다.
아주 교회 사람들 다 모인 것 같다.
아니.
이 동네 사람들 10%는 모인 것 같다.
한쪽에는 아예 도서관측에서 준비한 박스 쪼가리들이 잔뜩 이다.
썰매 따위.
이 동네선 안 키운다.
예전에 한국에선 할아버지들이 쌀 포대 자루를 타고 놀았다고 하셨는데.
여기는 종이박스를 타고 논다.
간혹 포대자루 같은 비닐 자루들도 중간중간 섞여 있고, 진짜 썰매를 가져오는 놈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빈손으로 와서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종이박스를 집어 든다.
종이 박스 재질이 보통 두껍나.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도서관측에서는 아예 1년치 박스들을 한쪽에 쌓아두고, 또 그 옆으로 커다란 덤프 하나도 가져다 두었다.
박스 타다가 종이가 헤져서 더 이상 못쓸 거 같으면 덤프에 던져 넣는 거다.
“아싸. 나 완전 두꺼운 거 골랐고.”
“하. 이거 봐라. 이것이 진정한 박스썰매라는 거다. 완전 두껍지 않냐?”
“꼬맹이들은 그 입 다물라. 못해도 이 정도는 돼야지.”
“어허. 어디서 명함을 내미는가.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박스지.”
.
.
.
서로서로 자기가 주운 박스가 최고란다.
그러던가 말던가 입씨름 하느니 한번 더 타는 놈이 이기는 거지.
언덕이 워낙 넓고 크기에 줄을 설 필요는 없다.
이쪽저쪽에서 쭉쭉 미끄러져 내려가는 사람들.
코스가 길어서 내려가는 건 완전 신나는데 다시 걸어오려면 힘들다.
나중엔 땀이 삐질삐질 나는데, 그게 또 급속도로 식어버리기에 옷을 몇 개씩 겹쳐 입어야만 한다.
피곤해지기 전에 빨리빨리 타자.
– 쌔엥~
“야! 캡틴! 같이 가아!”
“나도오!”
– 키야호옷!
– 야호오~
.
.
.
녀석들의 쌩난리도 눈에 파묻힌다.
재밌긴 재밌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탔지만 올해가 더 재밌는 거 같다.
그래도 좀 자랐다고 그런건가?
우리 옆으로는 4-5살 되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가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그러게.
이런 맛은 일찍 보여주면 안 된다니까.
최대한 늦출 것이지.
해마다 이제 어쩔 것이야.
“한번 더!”
“예~한번 더!”
“고고!”
.
.
.
어린이와 자기 몸만 간수하면 되는 젊은 것들은 아주 날아다닌다.
나도 그 중 한명이다.
스위스의 쉬토우(Shtou) 눈썰매장?
저리가라 그래라.
이것이 인생이지.
오늘 하루만 산다는 심정으로 아주 정신을 놓고 썰매를 탔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