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41)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41화(4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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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의 생일파티
삼촌은 엄마에게 작은 목걸이를, 나에겐 책을 선물했다.
미국은 의외로 책값이 비싸서 갖고 싶었지만 그냥 빌려 읽었던 책.
언젠가 슬쩍 말했던 걸 기억한 거다.
“고마워요. 삼촌. 잘 읽을게요.”
“그거 사실 고등학생용이야. 그래도 너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산 거다.”
“네.”
“고맙다. 리암. 너무 예뻐.”
“당연하지. 누구 안목인데.”
“여자친구가 고른 거 아니고?”
“내가 여자친구가 어딨어. 난 두 사람이랑 끝까지 살거라니까.”
“오우. 노.”
“저도요. 장가가세요.”
“이 사람들이!”
.
.
.
엄마는 삼촌에게 공구함을, 내겐 운동화를 주었고,
나는 엄마와 삼촌에게 맛있는 쿠키를 구워주었다.
돈 없는 집은 원래 그런 거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딱히 특별한 게 있나.
평소 갖고 싶었지만 내 돈 주고 사긴 아까운 것들 주는 거지.
그러면서 실용성도 챙기고.
“제이든. 진짜 맛있다.”
“자자. 영화 볼 때 먹게 쿠키는 좀 아끼라고. 그럼 일단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모두 텔레비전 앞으로!”
“오케이!”
“네!”
크리스마스엔 문 여는 가게가 하나도 없다.
미국인들 모두 집에서 뒹굴거리는 날이다.
가족들도 보고, 친척들도 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놀기도 하고.
우리도 그렇게 그날 하루를 보냈다.
누구보다도 편안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
12월 27일이 왔다.
마커슨의 생일.
아침부터 오디와 알렉스가 눈길을 헤치고 우리 집으로 왔다.
각자 가면 될 것을 꼭 같이 가야한단다.
부담스러운 거지.
이해는 한다.
특히 오디는 마커슨의 집이 가까워서 자주 왕래를 하긴 하지만 오디 부모님이 마커슨을 기꺼워하지는 않는다고.
아무래도 마커슨의 가정환경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누구라도 기꺼워할 환경은 아니긴 하다.
오디가 반드시 우리가 같이 가는 조건으로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출발할까?”
“그래.”
“후우. 가자!”
친구 생일파티에 가면서 이렇게 비장할 일이냐고.
오늘까지 휴가인 여친없는 우리 잘생긴 리암 삼촌이 운전대를 잡았다.
“너네들 진짜 괜찮냐?”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맞아요. 할 수 있어요!”
“음…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생일 파티 가는 거 맞아? 꼭 어디 전투하러 가는 것 같다고.”
“걱정 마세요. 우리 할 수 있다니까요!”
“…그래. 가자.”
우리 세 사람은 나란히 삼촌 차의 뒷좌석에 앉아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흑인들도 상냥하고 좋은 사람들 많다는 거 안다.
다만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봐 온 마커슨의 가족은 우리와는 좀 궤가 다를 뿐이다.
이건 뭐랄까.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 같달까.
– 끼이익.
굴러가는 게 용한 삼촌의 차가 녹슨 배기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나 그럼 근처 카페에 가 있을 테니까 끝나면 전화해. 데리러 올 테니까.”
“네.”
“조심해요. 삼촌.”
“너네나 조심해. 와. 근데 진짜 여기서 생일파티를 하네. 나도 이런 건 처음 본다. 암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니들이 너무 긴장을 하니까 나도 긴장되잖아.”
“걱정 마세요. 삼촌. 전화 드릴게요.”
“그래. 그래도 셋이니 안심은 되네.”
차에서 내렸다.
– 휘이잉.
“아. 내 귀!”
차가운 겨울바람이 한번 휘익 지나가고.
흑인들 특유의 큼지막한 힙합 음악이 공원을 강타하고 있다.
차 안에선 몰랐는데.
맞다.
12월 말의 이 한겨울.
눈이 와서 온 세상이 하얀 이 마당에 생일파티 장소가 야외공원이다.
공원 입구에는 초딩 저학년 생일잔치에서나 볼 법한 알록달록한 은빛 풍선들이 나무마다 대롱거리고 있고.
나무마다 눈이 쌓여있는데 어떻게 걸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자그마치 헬륨 먹은 풍선들이다.
저거 하나당 4불은 하는데…
한동안 우리 셋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던 거다.
“마커슨 생일잔치 맞는 거지?”
“마커슨. 좀 창피하겠다.”
“그러게. 이제 12살 되는 걸 텐데. 좀 너무했네.”
그릴이 몇 개나 준비되었는지 모르겠다.
쉘터 안에는 사람이…
한 30명은 되는 것 같다.
지금 오후 1시다.
이거 적어도 오전 11시부터는 시작한 파티다.
테이블마다 다 구워진 고기들이 올려져 있다.
이 추운 날 불판에서 내려놓자마자 식을 텐데.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생일파티를 가 봤지만 눈 내리는 한 겨울의 야외 공원 생일파티는 또 처음이다.
초등 저학년 때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생일인 아이들을 위해 반년 생일을 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다.
8월생이면 2월에 생일파티를 열어주는 거다.
8월이면 새 학년으로 올라가야 하니 기존의 애들을 초대하기 힘드니까.
겨울엔 춥고.
그래서 진짜 생일과 반년 생일을 따로 챙긴다.
보통은 학교에 컵케이크를 가져와 나눠먹고, 연필 한자루씩 나눠주고 땡하고, 좀 사는 집은 초대해 피자와 음료를 먹고 논다.
여름 방학 시작 직전엔 수영장 파티도 하고, 실내놀이터를 하루 빌려 파티를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야기다.
고학년만 되어도 반년 생일은 잘 안한다.
하지만 이렇게 겨울에, 그것도 크리스마스 연휴에 밖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제이든. 나 발 시려.”
“제이든. 나도.”
“…마커슨 보여?”
“아니. 안보여.”
“마커슨은 휴대폰도 없잖아. 어떻게 찾지?”
“어? 저깄다. 마커슨!”
눈이 밝은 오디가 먼저 찾았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속에서도 마커슨이 곧바로 우릴 보고는 뛰어온다.
제법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아. 왔어?”
“어. 이거.”
“나도.”
“생일 축하해.”
우리는 각자 준비한 선물을 먼저 내밀었다.
전부 20불씩 들은 기프트카드다.
우린 보통 이런 선물 안한다.
한국의 마이소처럼 이곳도 5불 아래의 제품들로만 구성된 가게가 있다.
아이들이 쓰기에 제법 쓸 만한 것들이 많다.
우리가 애용하는 곳이다.
그러니 이번 선물은 우리로서도 제법 큰 맘을 먹은 거다.
마커슨이 알란가 모르겠다만.
“고마워. 와줘서.”
“아냐. 근데 안 추워? 옷 좀 두텁게 입지. 그게 뭐야.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저기 쉘터 안은 따뜻해. 사람도 많고, 전기 히터도 많아. 그릴도 있고. 얼른 가자.”
“어으. 나 진짜 발 다 얼은 거 같아.”
“빨리 가자.”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아…엄마가. 교회 사람들 다 초대해서.”
“교회 사람들?”
“어. 연말이기도 하고. 그동안 아빠 때문에 도움 준 사람들도 많고 하니까. 겸사겸사 하는 거지.”
“너…생일 파티가 아니구나?”
“아냐. 맞아. 나 오늘 선물 엄청 받았어.”
“그러면 다행이고. 아직 케이크는 안 잘랐지?”
“어. 정식 파티는 1시니까. 이제 시작할거야. 얼른 와.”
춥다.
우리는 발을 동동거리며 빠르게 쉘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봤자 지붕 하나 더 있다는 것 뿐이지만.
마커슨이 곧바로 제 엄마에게 우리를 데리고 갔다.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모두 흑인인데 우리만 색이 다르다.
오디는 좀 비슷하긴 하지만 어쨌든 거긴 인도인이고, 나는 한국인, 알렉스는 백인이다.
안 그런 척하면서 흘끗거리는 사람들.
다 보인다.
흑인과 백인들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속마음을 잘 숨기는데 능하냐 아니냐다.
백인들은 잘 숨기고, 흑인들은 잘 숨기지 못한다.
누군가는 백인은 일본인들과 성향이 비슷하고, 흑인은 한국, 이탈리아인들과 성향이 비슷하다고도 한다.
물론 케바케지만 경험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시선이 집중되니 오디와 알렉스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친구 생일파티에 와서 이러고 갈 수는 없지.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마커슨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하이. 미세스 힐. 오랜만입니다.”
“그래. 애들아. 마커슨 생일파티에 와줘서 고맙구나. 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 아. 여기는 마커슨의 외할머니고, 저기는 외사촌들. 그리고 여기는 교회 목사님이고, 저기는 교회 식구들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 하이.
– 하이.
몇몇이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해준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흑인들 중에서도 젊은 층이나 중년층 보다는 장년대 이상의 사람들이 훨씬 아시안들에 대해 우호적이다.
이곳에서도 반갑게 웃어주는 사람들 역시 인상 좋아 보이는 어른들이다.
‘어?!’
어디서 많이 본 놈 하나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고개를 돌린다.
‘누구더라?’
잠깐 기억의 회로를 돌리고 있는데 내 손에 1회용 접시가 턱 놓여진다.
“배고플 텐데 얼른 고기들 먹어라.”
“네.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마커슨의 엄마다.
본인 역시 쏟아지는 시선들을 의식해 부산스럽고 과장된 몸짓으로 고기와 소시지, 당근과 같은 샐러드, 음료 등등을 챙겨준다.
추워서 어깨가 굳은 것인지 긴장을 풀지 못한 것인지 오디와 알렉스가 뻣뻣하게 음식들을 받아든다.
‘아. 기억났다.’
학교 복도에서 부딪힌 놈.
분명 마약쿠키를 팔던 판매상이었는데.
방금 전 마커슨 엄마는 저놈이 마커슨의 외사촌이라고 했다.
마커슨의 환경이 생각보다 열악하다.
마커슨의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날더러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했으니 나와 마커슨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소리.
내가 생각에 잠겨 멍하니 서 있으니 마커슨이 슬쩍 잡아당긴다.
“제이든. 여기 앉아.”
“어? 아. 어.”
“으으. 추워.”
“나도…추워.”
“아. 잠깐만. 여기 히터 가져올게.”
마커슨이 본인 음식 접시를 한쪽에 두고는 히터를 가지러 뛰어갔다.
몇몇이 싫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강탈에는 성공한 듯 싶다.
– 드르륵. 드르륵.
오디가 후다닥 일어나 전기 히터를 함께 밀고 온다.
야외 쉘터지만 전기 코드가 있는 곳이다.
한쪽의 줄을 가져와 전기를 꽂자 조금씩 따뜻해졌다.
덩그러니 테이블의 한쪽 끝을 차지한 우리 네 사람.
우리끼리 있으니까 그래도 좀 분위기가 되살아난다.
“마커슨. 생일 축하해.”
“나도나도.”
“나도. 이런 날 밖에서 파티할 줄은 몰랐어. 나름 운치있고 좋네.”
“헤헤. 고마워. 너네들 와 줘서 너무 좋아. 원래는 해마다 집에서 했는데, 올해는 우리 집이 없잖아. 엄마가 고민하다가 여기로 온 거야. 추우니까 사람들도 없고. 우리끼리 있으니까 더 좋대. 하하.”
그건 그렇네.
날 추우니 길거리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연말이니 다들 가족들끼리 보내느라 야외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쉘터 안쪽으로 들어오니 나름 운치도 있고.
반사적으로 소시지를 하나 베어 물었다.
맛있다.
“맛있네?”
“그치? 저쪽에서 고기 굽는 아저씨 있지? 옛날 우리 동네서 정육점 하거든. 직접 만든 소시지야.”
“오오. 많이 먹어야지.”
“나도나도. 맛있어.”
적당히 배도 부르고, 사람들도 우리에게 흥미를 잃을 때쯤 마커슨에게 물었다.
“근데 저쪽에 저 사람 누구야? 아까 사촌이라고 하던데.”
“누구?”
“저기. 저 곱슬머리. 우리 학교 학생 같던데? 8학년.”
“아. 도미니크? 외사촌이긴 한데 좀 멀어. 작년에 부모님이 둘 다 마약하다가 오버도즈로 죽었어. 그래서 지금은 할머니가 키우고 있지.”
“…”
“…툭.”
결국 알렉스가 먹던 고기를 떨어뜨렸다.
어떻게 하나같이 평범한 놈이 없냐.
그래도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학교 팝업스토어의 판매상.
아직까진 마커슨이 연루되어 있지 않은 듯 한데, 급해지면 모를 일이다.
가장 만만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손을 뻗게 마련이니까.
여러모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마커슨을 지켜내기가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스스로 조심하도록 귀띔이라도 해 줘야겠다.
“쟤랑 친해?”
“아니. 전혀. 밖에서 서로 아는 척 안해. 아는 척 하면 죽여 버린다고 했거든.”
“다행이네. 친하게 지내지 마.”
“…어?”
“너 그때 안 봤어? 복도에서.”
“복도? 무슨 복도?”
“2층 음악실 앞 사물함 3번째 칸.”
– 헉.
– 흐합.
– …
말귀를 바로 알아들은 오디와 알렉스가 입을 쩍 벌렸고, 마커슨의 눈은 화등잔만해졌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