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41
뭐라고 답을 해야 하려나.
말을 꺼낸 마커슨이 민망하지 않게 해 주고 싶지만 적당한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말이 자꾸 헛 나온다.
그냥 입을 다물까?
다행히 요즘 눈치라는 게 생긴 마커슨.
할머니 집에 얹혀산다더니 역시 남의 집 더부살이만큼 애들 눈치가 빨라지는 게 없긴 하다.
고맙게도 먼저 입을 열어 준다.
“그. 연말이기도 하고. 이제까지 내가 흑인 이외의 친구를 사귄 적이 없기도 하고. 그리고…. 음. 무엇보다… 내 생일이거든. 이번엔 아빠도 없으니까….”
“뭐? 언제?”
“12월 27일.”
“그. 그럼 가야지.”
“캡틴이 간다면 나도.”
“나는… 아빠한테 허락을 구해 볼게. 보내 줄지는 모르겠어.”
“그럼 이참에 공부방 애들 다 끌고…”
또 선을 넘으려는 알렉스를 살짝 진정시켰다.
“아니지. 일단은 우리가 같은 반 친구들이니까 우리부터.”
“진짜? 진짜 와 줄 거야?”
“그래. 그래도 니 생일이라는데 가야지.”
“와. 고마워. 정말 기대 안 했는데.”
기대 안 했기는.
안 그래도 부리부리해 부담스런 눈이 아주 초롱초롱해졌는데.
안 간다고 그랬으면 울었을 거 같다.
“이메일로 연락 줘. 며칠 안 남았네.”
“어.”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니들만 오면 돼. 진짜야. 와. 엄마한테 말해야지. 그럼, 그날 봐.”
“그래.”
혹시나 말이라도 바꿀까 그대로 가방 메고 교실을 나가버리는 마커슨.
“그… 꼭 가야겠지?”
“안 가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저 표정을 보고 그 말이 나와?”
“착하다. 알렉스.”
“지롤. 머리 만지지 마. 내가 강아진 줄 알아?”
“복실복실하긴 하지.”
“캡틴이고 나발이고. 죽자. 죽어.”
“…가고 싶다. 그 시간만이라도 아빠한테서 탈출하고 시포….”
얼굴이 썩어 들어가는 오디가 중얼거리며 가방을 메고 사라진다.
나한테 엉겨들려던 알렉스마저 엄숙해지게 만드는 광경.
조심스럽게 팔을 내리곤 우리도 스쿨버스로 향했다.
* * *
다음 날.
널싱홈에 도착했더니 직원들이나 환자나 모두 빨간 모자를 하나씩 둘러쓰고 있다.
몇몇 분은 이미 휠체어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지만.
우리도 1불짜리 산타 모자를 사서 둘러쓰고 갔는데.
통일감 있어 보이고 좋다.
이곳 80대 백인층은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해피 할리데이’라는 말보다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다.
‘루돌프 사슴코’나 ‘징글벨’ 같은 종교 색채가 조금 덜 묻어나는 곡 2개와 기독교 곡 중에서도 대중적인 곡 2개를 골라 연주했다.
물론 삑사리는 여전히 난다.
중학생들이다.
어쩔 수 없다.
매번 보던 그 간호사는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휴가를 냈나 보다.
아님.
더 이상 못 해 먹겠다 싶어 때려치웠을 수도.
살포시 후자이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딱히 신경 쓰이는 건 아니지만 첫 만남이 그래서 그런지 정이 안 가는 건 사실이다.
아무튼 그날의 연주도 무사히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오는데 어떤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손에 작은 초콜릿 바 하나를 꼭 쥐어 주고 간다.
눈에 초점이 정확하지 않은 할아버지는 괜히 와서 제이콥의 등을 툭 치고 가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는 빨고 있던 막대 사탕을 그대로 빼서 알렉스에게 준다.
“으아아. 싫어요.”
알렉스가 기겁을 하자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나는 할머니.
내가 알렉스 팔을 잡아 사탕을 받게 했다.
질겁을 하면서도 슬쩍 받아드는 알렉스.
할머니가 해맑게 웃으며 돌아간다.
곧바로 바닥에 사탕을 패대기쳐 버리는 알렉스.
내가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이렇게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상태가 좋아지는 경우는 만의 하나이고, 대부분은 계속 나빠질 일만 남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만 모여 있다 보니 멀쩡히 제정신으로 들어왔던 사람들도 금방 상태가 나빠진다.
미스터 커나스가 몇 달이라도 자식 곁으로 가 있는 건 잘한 선택인 것 같다.
그날 밤.
나는 전생에서부터 감상에 젖을 때마다 불던 ‘모차르트의 바순 콘처토(Concerto for Bassoon in B―flat major)’를 연주했다.
웬만한 바수너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불어 보는 곡.
시나 주립, 내셔널 등 큰 대회에서는 언제나 등장하는 곡이기도 하다.
누구나 연주할 수 있지만 그만큼 삑사리 나기도 쉬운 참 어려운 곡.
곡도 좀 긴 편에 속하면서 템포도 빠르고, 호흡도 길어야 제대로 소리가 나온다.
아쉽게도 고등학생 수준 이상의 곡이라 미스터 커나스가 준 악보 중에는 없었다.
늦은 밤 조용한 지하 공부방에서 스탠드 하나 켜놓고 연주를 해서 그런지 제법 소리가 잘 빠졌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커나스 선생님.
이게 제가 선생님께 드리는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따뜻한 곳에서 몸 건강히 지내다가 꼭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미스터 커나스에게 영상 편지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냈다.
좋아해 주면 좋겠네.
괜히 마음이 가는 선생님이다.
* * *
펄펄 눈이 온다.
올해는 눈이 너무 늦다며 투덜거리던 동네 어른들이 눈 치우기에 여념이 없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좋았다.
트리 앞에는 선물도 몇 개 놓였다.
어릴 때는 온갖 부피 큰 장난감들, 주로 레고나 자동차 같은 것들이 자리를 차지했다면 중학생이 된 지금은 주로 비싸면서 작은 것들이다.
좀 폼은 안 난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나와 엄마, 삼촌이 트리 앞에 경건하게 앉았다.
“그럼…개봉해 볼까?”
“네!”
“응!”
각자의 이름이 적힌 선물 봉지를 뜯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생일 파티
삼촌은 엄마에게 작은 목걸이를, 나에겐 책을 선물했다.
미국은 의외로 책값이 비싸서 갖고 싶었지만 그냥 빌려 읽었던 책.
언젠가 슬쩍 말했던 걸 기억한 거다.
“고마워요. 삼촌. 잘 읽을게요.”
“그거 사실 고등학생용이야. 그래도 너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산 거다.”
“네.”
“고맙다. 리암. 너무 예뻐.”
“당연하지. 누구 안목인데.”
“여자 친구가 고른 거 아니고?”
“내가 여자 친구가 어디 있어. 난 두 사람이랑 끝까지 살 거라니까.”
“오우. 노.”
“저도요. 장가가세요.”
“이 사람들이!”
.
.
.
엄마는 삼촌에게 공구함을, 내겐 운동화를 주었고,
나는 엄마와 삼촌에게 맛있는 쿠키를 구워 주었다.
돈 없는 집은 원래 그런 거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딱히 특별한 게 있나.
평소 갖고 싶었지만, 내 돈 주고 사긴 아까운 것들 주는 거지.
그러면서 실용성도 챙기고.
“제이든. 진짜 맛있다.”
“자자. 영화 볼 때 먹게 쿠키는 좀 아끼라고. 그럼 일단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모두 텔레비전 앞으로!”
“오케이!”
“네!”
크리스마스엔 문 여는 가게가 하나도 없다.
미국인들 모두 집에서 뒹굴거리는 날이다.
가족들도 보고, 친척들도 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놀기도 하고.
우리도 그렇게 그날 하루를 보냈다.
누구보다도 편안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 * *
12월 27일이 왔다.
마커슨의 생일.
아침부터 오디와 알렉스가 눈길을 헤치고 우리 집으로 왔다.
각자 가면 될 것을 꼭 같이 가야한단다.
부담스러운 거지.
이해는 한다.
특히 오디는 마커슨의 집이 가까워서 자주 왕래를 하긴 하지만 오디 부모님이 마커슨을 기꺼워하지는 않는다고.
아무래도 마커슨의 가정 환경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누구라도 기꺼워할 환경은 아니긴 하다.
오디가 반드시 우리가 같이 가는 조건으로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출발할까?”
“그래.”
“후우. 가자!”
친구 생일 파티에 가면서 이렇게 비장할 일이냐고.
오늘까지 휴가인 여친 없는 우리 잘생긴 리암 삼촌이 운전대를 잡았다.
“너네들 진짜 괜찮냐?”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맞아요. 할 수 있어요!”
“음…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생일 파티 가는 거 맞아? 꼭 어디 전투하러 가는 것 같다고.”
“걱정 마세요. 우리 할 수 있다니까요!”
“…그래. 가자.”
우리 세 사람은 나란히 삼촌 차의 뒷좌석에 앉아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흑인들도 상냥하고 좋은 사람들 많다는 거 안다.
다만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봐 온 마커슨의 가족은 우리와는 좀 궤가 다를 뿐이다.
이건 뭐랄까.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 같달까.
― 끼이익.
굴러가는 게 용한 삼촌의 차가 녹슨 배기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나 그럼 근처 카페에 가 있을 테니까 끝나면 전화해. 데리러 올 테니까.”
“네.”
“조심해요. 삼촌.”
“너네나 조심해. 와. 근데 진짜 여기서 생일 파티를 하네. 나도 이런 건 처음 본다. 암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니들이 너무 긴장을 하니까 나도 긴장되잖아.”
“걱정 마세요. 삼촌. 전화드릴게요.”
“그래. 그래도 셋이니 안심은 되네.”
차에서 내렸다.
― 휘이잉.
“아. 내 귀!”
차가운 겨울바람이 한번 휘익 지나가고.
흑인들 특유의 큼지막한 힙합 음악이 공원을 강타하고 있다.
차 안에선 몰랐는데.
맞다.
12월 말의 이 한겨울.
눈이 와서 온 세상이 하얀 이 마당에 생일파티 장소가 야외 공원이다.
공원 입구에는 초딩 저학년 생일 잔치에서나 볼 법한 알록달록한 은빛 풍선들이 나무마다 대롱거리고 있고.
나무마다 눈이 쌓여있는데 어떻게 걸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자그마치 헬륨 먹은 풍선들이다.
저거 하나당 4불은 하는데…
한동안 우리 셋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던 거다.
“마커슨 생일 잔치 맞는 거지?”
“마커슨. 좀 창피하겠다.”
“그러게. 이제 12살 되는 걸 텐데. 좀 너무했네.”
그릴이 몇 개나 준비되었는지 모르겠다.
쉘터 안에는 사람이…
한 30명은 되는 것 같다.
지금 오후 1시다.
이거 적어도 오전 11시부터는 시작한 파티다.
테이블마다 다 구워진 고기들이 올려져 있다.
이 추운 날 불판에서 내려놓자마자 식을 텐데.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생일 파티를 가 봤지만 눈 내리는 한 겨울의 야외 공원 생일파티는 또 처음이다.
초등 저학년 때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생일인 아이들을 위해 반년 생일을 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다.
8월생이면 2월에 생일 파티를 열어 주는 거다.
8월이면 새 학년으로 올라가야 하니 기존의 애들을 초대하기 힘드니까.
겨울엔 춥고.
그래서 진짜 생일과 반년 생일을 따로 챙긴다.
보통은 학교에 컵케이크를 가져와 나눠 먹고, 연필 한 자루씩 나눠 주고 땡하고, 좀 사는 집은 초대해 피자와 음료를 먹고 논다.
여름방학 시작 직전엔 수영장 파티도 하고, 실내 놀이터를 하루 빌려 파티를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야기다.
고학년만 되어도 반년 생일은 잘 안 한다.
하지만 이렇게 겨울에, 그것도 크리스마스 연휴에 밖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제이든. 나 발 시려.”
“제이든. 나도.”
“…마커슨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