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68)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68화(6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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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
우리는 모두 다닥다닥 붙어 정비공 아저씨가 작업하는 걸 지켜보았다.
전생의 나에게 차는 사치품일 뿐이었다.
고가의 브랜드에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내부가 안락하면 구입했었다.
주변에서 성능이 어쩌고, 자율주행기능이 어쩌고 그러면서 자기 차 자랑을 해대면 그게 또 꼴 보기 싫어 과시하듯 다음날 똑같은 걸 사버리기도 했다.
나를 잘 따르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차를 그냥 뽑아준 적도 있다.
큰 돈을 쓰고 난 후 한 한달 정도 절약하며 잠잠히 지내면 된다.
그렇게 내게 차는 똥폼 잡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었다.
당연히 본넷을 열어 뭔가를 살펴보고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가 뚝딱거리며 뭔가를 자르고, 뭔가를 주입하고…
그 와중에 엔진오일도 체크해 주고, 윈드 쉴드(Wind Shield) 워셔액 분사노즐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모습은 자못 신선했다.
우리가 차 옆으로 다 붙어서 ‘와우’를 연발하니 아저씨는 더 신이 난 것 같다.
이런 저런 설명들을 해 준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래도 알아들은 척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마침내 모든 작업을 끝낸 아저씨.
본넷 뚜껑을 연 채로 비스듬히 우리쪽을 향해 서서 말을 이었다.
배는 남산만큼 불러있고, 머리가 반은 벗겨졌고, 낡은 청바지를 입은 다리는 좀 짧은 듯 하지만…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멋.있.다.
“끌끌. 차가 오래되긴 했는데 엔진은 아직 괜찮으니까 잘 고쳐서 쓰면 1년은 쓰겠다. 마일리지는 어떻게 돼?”
“25만 마일이요.”
“…”
“이건 그냥 팔고, 새 차 사. 그 어디냐? ‘We buy any car’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가 그나마 좀 쳐줘. 글루 가. 괜히 젊은 목숨 날아갈라.”
“금방 1년은 쓰겠다고…”
“그거야 나 같은 전문가가 쓰면 그렇겠다는 거야. 이거 1년 정도 굴러가게 고치려면 6-7천불은 그냥 나올 거야. 재료비만도 2천불은 나오겠네.”
“히익. 저 돈 없어요. 그리고 차는 꼭 있어야 하고요.”
“…”
주섬주섬.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바지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주는 아저씨.
기름때가 묻은 오래된 명함이다.
“중고차 필요하면 와. 싸게 해 줄 테니까.”
“아. 뉍!”
“기억해. 지금 고친 건 임시방편이야. 최대 1시간이라고. 이거 계속 타고 다니면 진짜 큰일 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매튜는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해 우리와 함께 아저씨가 차를 고치는 걸 구경했다.
아저씨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모두 양손 엄지를 치켜들었다.
– 으하하하하.
인상도 좋은 아저씨가 목청도 크다.
아저씨가 크게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잠시 후.
매튜의 눈이 세모가 되었다.
“히익. 살모사다. 살모사.”
“제이콥! 제이든!”
“나. 나도?”
“그래. 너도. 너희 둘. 내 데이트를 파토 냈으니 책임을 져야겠지?”
“뭐. 뭘 하면 될까?”
“하긴 뭘 해. 제이든 가만있어 봐. 매튜. 그거 안 되는 거라니까. 걔 진짜 이상하다니까. 조금만 마음에 들면 바로 고백이야. 소문 다 나서 아무도 걔랑 안 사귀는데, 너만 몰라요.”
“즈. 증거 있어?”
“진짜 증거를 원해? 상처받을 텐데?”
“…”
“일단 걔가 사귀자고 고백한 놈들이 아담, 오웬, 크리스, 닉, 탈리스, 재커리, 숀, 타일러, 제이콥, 신디. 이건 그냥 내가 아는 놈들만 이 정도라는 거야. 더 있을지 누가 알아?”
“자. 잠깐. 거기서 제이콥은 설마 너?”
“…”
“시바. 근데 마지막에 신디는 또 뭐야?”
“여자도 사귈 수 있다고 했대. 와. 나 걔가 신디한테 고백할 때 딱 그 자리에 있었잖아. 일부러 몰래 들은 것도 아냐. 다음 수업 들어가는 데 교실 앞에서 신디를 이렇게. 어? 이렇게 딱 잡아채더니 그러더라니까. 신디가 얼마나 식겁을 했겠냐?”
“…근데 왜 말 안해줬어!”
“뭘 말을 안 해. 내가 몇 번이나 걔는 안 된다고 했잖아.”
“아니.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 줬어야지. 씨바. 나 좀 전에 걔랑…뽀뽀했다고!!”
“허얼. 미친.”
우린 아직 매튜의 차에 타지 않았다.
저러다 폭주하면 어쩌냐고.
타이밍 한번 기가막힌 제이콥.
매튜 머리에서 뚜껑이 딱 열리는 게 보일 정도다.
끼어들긴 좀 그렇지만 우리의 안전을 위해 매튜를 식힐 필요가 있다.
“그. 인연은 원래 따로 있는 거니 상관없지 않을까? 난 잘 모르지만 걔가 고백은 많이 했어도 다 까였다고 했으니까 실제 사귄 사람은 없는 거잖아. 그럼 걔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고.”
– 끄덕끄덕.
오디와 마커슨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우리가 살 방법은 매튜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걸 아는 거다.
“…”
“제이든. 이건 말야. 남자의 자존심 문제야. 내가 사귀는 여자가 오만 놈들한테 다 까인 여자면 아무리 예뻐도 용서가 안 된다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서 노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좀…헤프다는 느낌이 있잖아.”
“응. 아냐. 여러 남자 만날 수 있어. 매력 있는 여자는 모든 남자들이 원하니까. 그렇지만 오만 놈한테 까인 여자는 안돼.”
이상한 논리네.
내가 아직 미국화가 덜 된 건가?
아님 요즘 고딩들 생각이 이런 건가?
적응을 못하겠다.
“가자. 집에.”
제이콥이 매튜의 등을 한번 두드려준 후 자기 차로 들어갔다.
시동을 건다.
아까와는 확실히 소리가 다르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란.
제이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난리났다.
진짜 도로에 우리 셋만 남게 생겼다.
오디와 마커슨이 슬금슬금 매튜의 차로 다가가 문짝 옆에 붙었다.
매튜가 차 잠금을 해제하는 순간 곧바로 후다닥 타겠다는 계산이다.
“매튜. 그. 우리도 가야되지 않을까?”
“…씨바. 타.”
후우.
그래도 버리고 가진 않네.
다행이다.
.
.
.
와.
가시방석도 이것보단 덜 따끔거릴 것 같다.
차에 적막이 감돈다.
남자에게 여자 문제는 민감한 사항이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오디와 마커슨이 서로의 옷자락 끝을 꼭 쥐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와중에도 차마 손은 못 잡겠는 모양이다.
하긴, 나도 긴장되는데 저 어린 것들이 얼마나 긴장이 되면 저러고 있겠냐고.
그 순간, 갑자기 매튜가 생뚱맞은 말을 한다.
“근데 정비공 아저씨 진짜 멋지지 않냐?”
“어? 어. 진짜 멋졌어. 매튜.”
“나도 차 정비나 할까 봐. 그럼 대학 갈 필요도 없고. 비싼 등록금 대신 직업학교나 등록해서 몇 달 배우고 바로 일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이제 괜찮아진 거야?”
“뭐가? 아. 우리 애슐리? 괜찮아. 사실 다 알고 있었어. 제이콥 놀리려고 그런거지.”
“뭐?”
“하하. 난 말야. 숨은 진주를 찾는 게 더 스릴 있거든. 모든 남자가 좋다고 달라붙는 여자들은 콧대만 높아서…암튼 꼬맹이들은 몰라도 되는 그런 게 있어. 어차피 가십은 금방 사라져.”
“오오. 매튜. 멋있다!”
“진짜. 멋있어.”
“맞아. 아까 그 아저씨도 멋있고, 매튜도 멋있다.”
“그래서 말야. 제이든. 차 정비 어떤 거 같냐?”
“차 정비공. 멋지지. 몇 년 배워서 자기 샵 차리면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뜻 맞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좋긴 하지.”
“그치? 난 실용적인 게 좋더라고. 괜히 몇 만불씩 하는 대학등록금 날리느니 바로 기술 배워서 내 샵 차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자동차 공학과라는 게 있긴 한데. 내 손으로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고 싶으면 대학을 가고, 있는 자동차들 고치고 싶으면 샵을 차리면 되겠지.”
“우와. 우리 캡틴이 이런 조언도 하네? 매번 대학은 꼭 가야한다고. 배워서 남 안주니까 무조건 배울 수 있을 때 배우라고 할 때는 언제고?”
“무조건이 어딨어? 그냥 내가 아직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대학을 가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거지. 그리고 이왕 갈 거면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좋고. 오디처럼 의사를 하고 싶거나 알렉스처럼 기자가 하고 싶으면 대학을 꼭 가야하겠지.”
“…오디랑 알렉스는 좋겠다. 난 아직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
“나. 아무래도 정비공이 맞을 거 같아. 좀더 고민은 해 보겠지만 아까 그 아저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간혹 갑작스럽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다른 이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살아갈 원동력을 주기도 한다.
제이콥의 차가 고장난 일로 인해 매튜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 아저씨도, 매튜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차에 다시금 적막이 내려앉았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적막.
각자의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난 이번 생에서 뭘 하고 싶은 걸까?
처음엔 그저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후도 생각을 해야 한다.
대학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할 때다.
전생처럼 재벌가 서자로 자라 평생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이나 쓰면서 사는 한량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까?
***
시간은 금방 흘러 오디의 가짜 생일 파티가 열리는 날이다.
아침부터 마커슨은 우리 집에 와서 배를 까고 누워있다.
알렉스는 엄마에게 부탁해 다리를 깁스한 상태로 우리 집으로 왔다.
파티는 오후 4시부터 시작인데 왜 이놈들은 아침부터 와 있는 건지.
“넌 나중에 어떻게 가려고 그래? 우린 자전거 타고 갈 건데.”
“괜찮아. 엄마가 다시 데리러 온대. 요즘 우리 엄마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잖아.”
“…”
“근데 생일 선물 사가야 해?”
“글쎄. 파티 주제가 생일 파티니까 작은 거라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3월에 선물 줬는데?”
“맞아. 그리고 생일은 핑계라며.”
“그럼 맨손으로 갈래?”
“그럼 안돼?”
“…”
전생에선 ‘남의 집에 갈 때는 절대 빈손으로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랐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더라.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대부분은 그냥 빈손으로 온다.
처음엔 뭔가 들고 오던 놈들도 나중엔 그냥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집주인이 뭔가 내 주면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바라지도 않는다.
남이 주는 음식은 함부로 먹지 않는다는 특별 가정교육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놀기 위해 모였으니 딱 놀기만 하고 가는 느낌이랄까?
목적에 충실하다 할 수 있겠다.
공부방 놈들이야 매일같이 오는 거니 손님이랄 수도 없다.
집에 먹을 게 있으면 들고 오고, 없으면 빈손으로 온다.
나도 집에 먹을 게 있으면 주고, 없으면 안준다.
가끔 학교 프로젝트 때문에 공부방 놈들이 아닌 다른 친구의 집을 가야할 때가 있다.
물 한 모금 안 줄 때도 많다.
목이 말라 물 좀 달라고 하면 그냥 수돗물 받아서 주거나 사다놓은 병물을 준다.
인심 좋은 사람들 중에는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을 한 후 준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피자 같은 걸 시켜준다.
어떻게 보면 참 정 없고,
어떻게 보면 실용적이고.
어떤 것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문화가 그러려니 받아들일 밖에.
“오디가 우리한테 뭔가를 바랄 거 같지는 않지만…물어보지 뭐.”
“아. 그래. 물어보자.”
– 선물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음. 4시에 맞춰서나 와. 옷은 단정히 입고. 어른들 많음.
우리를 너무 잘 아는 거지.
오디에게서 문자가 왔다.
“힉. 뭐 입고 가?”
“난 이대로 갈래. 더워.”
“마커슨. 오디가 일부러 옷 단정히 입고 오라는 문자를 보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괜히 책잡히지 말고 카라 셔츠 입고 가.”
“카라 셔츠까지? 나 그거 킨더 때 이후로 입어본 적 없는데. 집에 티셔츠만 있어.”
“나도…”
“하긴…나도 없네. 그냥 대충 너무 튀지 않는 색으로 단정하게 입자. 각자 집으로 가서 샤워하고 옷 제일 좋은 걸로 입고 만나.”
“오케이.”
“응.”
입으로 대답은 하는데, 일어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늘어져 있다가 대충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우리가 몸을 일으킨 건 3시.
4시까지 가려면 이제 움직여야 한다.
“아! 빨리 가라고! 늦지 말고!”
“오케이. 오케이. 엄마가 이제 왔다고! 나중에 봐.”
어린 몸뚱이들 일으키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냐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