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72
가든 한쪽은 아예 음식 자리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 온갖 음식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안쪽에서 계속 음식들이 나오고 있었다.
출장 요리사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대고, 서버들이 나르고 있었다.
온갖 꽃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건 옵션이다.
우리 셋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오디. 인도인들은 파티 한번 하면 이렇게 해?”
“아니. 이렇게 하는 건 나도 몇 번 못 봤어. 이번엔 친척들이 좀 많이 와서 그래.”
“그냥 놀러온 게 아니고 뭐가 있는 거지?”
“…….”
“뭔데?”
“아빠가 인도에서 하는 사업이 좀 잘 풀렸나 봐. 그래서 좀 크게 하는 거야.”
.
.
.
“오디. 우선 어머니께 인사드리자.”
“어. 그래. 이쪽으로 와.”
오디의 엄마는 평소 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인도 전통 여성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마에 점도 찍었고, 엄청 화려한 수가 놓인 하늘거리는 옷감을 몇 개 겹쳐 입고 있었다.
목걸이와 귀걸이도 무슨 신라시대 왕족이 하던 것 같은 걸 착용하고 있다.
“오. 너희들 왔구나.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여기 애들이 우리 오디 친구들이에요.”
“헤. 헬로우.”
“하이.”
“하이.”
“…….”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못마땅한 눈으로 우리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한다.
한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테이블을 친다.
자신의 맞은편에 앉으라는 소리.
오디가 엉거주춤하게 우리를 끌고 그 할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았다.
마커슨은 알렉스를 부축하는 핑계를 대며 아주 천천히 걸어왔다.
덕분에 나만 친구를 버린 나쁜 놈이 된 거 같다.
“이름.”
“제이든입니다. 제이든 패터슨. 한국 입양아입니다.”
― 끄덕.
“마커슨 워녹입니다.”
“알렉스 레빈입니다.”
― 끄덕.
.
.
.
“성적은?”
“네?”
“GPA.”
“하이스트 아너입니다.”
“전 하이 아너요.”
“저. 저도 하이 아너요.”
― 끄덕.
우리는 묻는 말에 착실하게 대답했다.
그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나.
이곳에선 이 할아버지가 대장이다.
눈짐작으로 80정도 되어 보이는 이 할아버지 주변으론 좀 덜 늙은 할아재들 6명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압박 면접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다.
정신 연령 30세인 나도 쫄 지경이다.
마커슨과 알렉스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것 같다.
오디는 자기 친척이라면서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히 우리 옆에 앉아 있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진다.
1분이 1시간 같다.
― 끄덕끄덕.
그렇게 우리 한명 한명을 눈에 담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오디가 손을 합장하며 허리를 꾸벅 굽히는 인사를 한 후 우리를 잡아끈다.
마커슨과 알렉스도 눈치껏 따라한다.
나도 했다.
안 하면 찍힐 거 같다.
그리고 저 할아버지들한테 찍히면 오디가 제법 괴로워질 것 같다.
오디는 최대한 구석진 자리로 우리를 몰고 갔다.
― 후아. 후우. 와아. 휴우.
앉으면서 동시에 한숨을 내뱉는 우리 넷.
기가 다 빨린 느낌이다.
“집에 가고 싶다.”
“나도.”
“미안….”
“이왕 온 거 밥은 먹고 가자.”
“오. 밥.”
“지금 먹어도 돼?”
“아직. 조금만 기다려 봐. 곧 먹을 수 있어.”
잠시 후, 대왕 할아버지가 있는 자리가 어수선해지면서 분주하다.
40대 아재들이 줄줄이 나와 음식을 뜬다.
곧 그 음식들은 대왕 할아버지와 할아재들이 있는 자리로 모두 배달되었다.
그중에는 오디의 아빠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40대 아재들이 자신들의 음식을 뜨기 시작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줄을 서서 음식을 뜨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자.”
“어. 알렉스. 너는 여기 있어. 가져다줄게.”
“으으응. 그건 아니될 말. 내 눈으로 직접 음식을 봐야지. 마커슨이 내 접시까지 같이 들고, 제이든이 우리 셋 거 같이 푸면 되겠네.”
“…그래.”
알렉스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아픈 놈은 도와야지 별수 있나.
음식들을 유심히 보던 알렉스.
“오디.”
“응?”
“고기가… 없어.”
“허억. 고기가 없어?”
눈이 동그래지는 마커슨.
오디의 커다란 눈이 갈 곳을 잃는다.
우리의 반응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느낌이다.
“아. 그게. 우리가 다 베지테리언이라… 근데 저 음식들도 진짜 맛있어. 먹어 봐.”
“베… 지테리언? 너 피자 먹을 때 안에 들어간 치킨이랑 베이컨 같은 거 먹잖아?”
“너 몰랐구나? 오디는 치즈피자만 먹어.”
“…치즈도 소한테서 나오는 거잖아. 엄밀히 말하면 육류 아냐?”
“우리도 치즈는 먹어.”
“인도인들은 다 베지테리언이야?”
“아니. 우리 집안이 특별히 좀 까다로운 편이야.”
나도 몰랐다.
오디가 음식을 많이 가린다는 건 알았지만 베지테리언 일 줄은 몰랐다.
어쩐지 오디 엄마가 피자를 시켜 줄 땐 꼭 치즈피자 한 판은 시키더라니.
“일단 먹어 보자. 오리지널 인도 음식. 궁금하잖아.”
“…….”
“저기 라삼(Rasam) 스튜는 밥이랑 같이 먹으면 되고, 타히리(Tahiri)랑 팔락만디(Phalak Mandi)는 난(Naan)에 싸 먹으면 돼. 다 맛있어. 그리고 마지막엔 꼭 차이티(Chai Tea)도 마셔 봐. 진짜 차이티가 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래. 고맙다.”
나부터도 실망을 감출 길이 없다.
이 많은 음식들이 전부 채소라니.
오디가 신이 나서 어떻게 먹는 건지 알려 줬지만 우리는 모두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 이거 맛있는데?”
“그러게. 이게 왜 맛있지?”
“헤헤. 내가 말했잖아. 맛 괜찮다니까. 많이 먹어.”
처음엔 외우려고 했던 음식 이름들이었지만 그냥 포기했다.
음식 이름들이 어렵다.
한번 먹어 보고 맛있는 건 음식이 놓인 자리를 기억했다가 다시 와서 퍼 갔다.
어떤 건 입에 넣었다가 그대로 뱉어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역한 채소 향이었다.
대왕 할아버지가 있는 곳에선 다들 손으로 밥을 먹고 있다.
솔직히 손을 이용해서 밥을 먹는 건 굉장히 미개할 거라 생각했는데, 익숙하게 먹는 걸 보니 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신기하게 하나도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서 그런 모양이다.
우리는 식기를 사용했다.
초대된 인도인들 중에도 식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눈치 보지 않고 사용했다.
그렇게 4―5번을 왕복하며 우리는 배를 채웠다.
알렉스의 요구에도 응해야 했기에 좀 많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봤지만 원래 성장하는 청소년은 많이 먹는 법이다.
지금 우리는 폭풍 성장 중이었다.
엄마 말로는 ‘자고 일어나면 크는 것 같다’고 했다.
마커슨은 이미 180센티를 넘었고, 나머지 우리 셋 역시 180센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마신 차이 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별다방 같은 데서 차이 티라고 파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진한 맛이 났다.
오디 말로는 9가지 허브가 들어간다는데.
맛있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디저트들을 집어 먹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대왕 할아버지보다는 어리지만, 아저씨라고 부르기는 좀 어색한 연령대의 할아재.
우리 테이블이 목표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늦었다.
내 옆자리에 바로 앉는다.
자동적으로 공기가 숙연해진다.
“아. 먹어먹어. 음식들은 어때?”
“맛있어요.”
“그래. 우리 음식들이 맛이 괜찮지. 나는 오디 할아버지의 막냇동생. 오디 친할아버지이자 내 형님은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활발한 할아재다.
슬픈 이야기를 아주 쉽게 한다.
아무튼 우리로선 다행이다.
또 다른 압박 면접은 아닌 것 같으니.
우리는 다시 입에 음식들을 구겨 넣었다.
우리 밥 먹고 있으니 할 말 있으면 빨리 하고 가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할아재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인도인들의 파티란 2
아주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너희들, 카스트 제도라고 아나?”
“아. 네.”
“그래. 우리 티루말라 가문은 말이야. 카스트 중에서 제일 윗줄인 브라만 계급이야. 아까 처음에 너희들 보고 고개 끄덕인 늙은이가 우리 집안 최고 어른이자 현재 대제사장. 저 양반의 아버지가 엄청나게 똑똑한 양반이었어. 나한테는 삼촌 되시는데, 1928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하버드에서 공부를 했지.”
“1928년이면 영국 식민지일 때 아닌가요?”
“오호. 그걸 아는구나? 이름이?”
“제이든입니다.”
“그래그래. 똑똑하군. 암튼 그 삼촌이 간디하고 친구였거든. 간디라고 아나?”
“모하메드 간디요? 인도 독립운동 주도한 사람 말씀하시는 거죠?”
“으하하하. 이 친구 이거. 오디. 내가 늘 말했지? 사람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잘 새겨들은 것 같구나. 이 정도면 훌륭해. 큼. 그래. 그 간디 말이다. 그 사람이랑 우리 삼촌이 친구였거든. 궁금한 게 있으면 늘 우리 삼촌에게 물어보곤 했었지.”
“와. 집안 어른이 역사적인 인물과 친구시라니 멋지네요.”
“그렇지? 우리 집안이 좀 그래. 우리 삼촌이 못 하는 게 없었어. 미국 정부 인사들과도 제법 친하게 지냈었지. 보자. 누구랑 친하더라?”
할아재들의 허세는 알아서 걸러 들어야 한다.
“큼. 나는 방계인데다 제사장 쪽으론 관심이 없어서 말야. 심장 내과 의사로 은퇴를 했지. 내 아들놈도 나랑 같은 심장 내과 의사고, 딸은 소아과 의사야. 내 동생은 인도에 본인 소유 요양원이 있지. 늙으면 우리 모두 거기서 지낼 거야. 우리 가문의 아이들은 학생일 때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
“아…네에.”
“저 대왕 할배 손주가 조금 있으면 제사장 취임식을 할 거거든. 지금은 잠깐 미국에 놀러왔지만, 곧 인도로 다시 돌아갈 거야. 그때 여기 있는 사람 절반은 인도로 날아가겠지. 우리 집안에서 또 다른 제사장이 나오는 거니 축하를 해야지. 성대한 파티를 열 거야.”
“…….”
“너희들이 우리 오디의 친구라고 하니 말해 주는 거다만. 사실 우리 집안 사람들이 그냥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오디 애미가 큰아들 대학원 가까이 가겠다고 여기 자리를 잡았다지만,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여기 집이 집이냐? 좁아 터져 가지고. 버지니아에 가면 우리 가문의 집이…(하략)”
처음엔 그래도 내가 정신 연령이 높으니 대답을 열심히 해 줬지만 지친다.
마. 말이 너무 많다.
게다가 전부… 자기 자랑에 집안 자랑이다.
묻지도 않은 집안 역사가 줄줄 흘러나온다.
오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전생에선 나도 한 허세 했다.
물론 집안 자랑보다는 재산 자랑을 주로 했지만.
그런데 미국 깡촌에서 몇 년 구르다 보니 그런 것들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오디 역시 우리에게 동화된 지 한참이다.
지금 이 상황이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이라고 다르냐?
흑인들은 대놓고 자랑하고, 백인들은 인종 차별을 조용히 하듯 자랑도 조용히 한다.
예를 들어, 내 자식이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졸업 연설을 한다는 건 성적으로 전교 5%안에 든다는 소리다.
졸업 연설을 한 사람만 하는 건 아니다.
우리 학교는 5명 정도가 졸업 연설을 한다.
전교 5%안에 드는 학생들끼리 투표를 해서 발표자들을 선정하는 거다.
하지만 전교 1등은 무조건 졸업 연설을 하는데, 그 사람을 가리켜 발레딕토리안(Valedictorian)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4년을 통틀어 점수를 산정한 것이니, 진짜 명예로운 자리이긴 하다.
발레딕토리안의 부모는 이메일부터 휴대폰, 페이스북 등 온갖 프로필 사진이 자식의 졸업 연설 사진으로 바뀐다.
물론 이 정도는 전 세계 어느 부모든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졸업 연설을 한다고 다 발레딕토리안은 아니다.
우리 학교 같은 경우 오로지 발레딕토리안에게만 주는 메달이 있다.
그 메달에 슬쩍 명함을 더 넣어 사진에서 눈에 띄게 만드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