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95)
195화 비프론 (5)
아우릴 가비스. 최소 150년 전 사람이다.
지난날, 레이븐에게 연도 특정 의뢰를 했을 때 ‘균해록’에 그 시절 종이가 쓰인 거로 나왔거든.
그렇기에 더더욱 놀랍다.
‘……그 새끼가 살아 있다고?’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던전 앤 스톤]의 제작자이며, 나를 비롯해 수많은 플레이어를 이쪽 세계로 보내 버린 원흉일 가능성이 가장 큰 작자인 데다가…….이곳은 단어 그대로 판타지한 세계 그 자체.
당연히 살아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용인족만 해도 수백 년을 살지 않던가.
두근!
이를 깨달았을 때 심장이 크게 격동했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경악이 아닌 기대의 의미를 담은 울림.
두근!
정말로 그 새끼가 살아 있다면.
그래서 놈을 찾아내 만날 수만 있다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막연했던 ‘귀환’의 실마리가 처음으로 눈앞에 나타난 셈,
‘……진정하자.’
애써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냉정을 찾았다.
그야 기대감을 부풀리며 희망 회로를 돌리는 건 나중에 자기 전에 해도 되는 거니까.
지금은 지금에 집중하는 편이 옳다.
“바바리안, 넌 확실히 특이하단 말이지.”
아멜리아가 날 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순간 ‘그냥 한번 아는 척해 봤다’라는 말이 구라란 게 들통난 건가도 싶었다.
하지만…….
“간담이 크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일을 겪고도 내 앞에서 농담을 던질 수 있다니. 넌…… 내가 무섭지도 않나?”
이제 보니 그냥 이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평생 이런 사람을 못 만나 봐서 이런 식의 대화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던가.
중요한 건, 다행히 잘 넘어갔다는 것.
이래서 평소에 미친놈처럼 살아야 한다. 그럼 뭘 하든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니까.
“뭐라는 거냐, 인간 여자. 나는 바바리안이 아니라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다.”
“그래, 비요른 얀델.”
아멜리아가 피식 웃었다.
내게는 그게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사인처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질문.
“근데 그자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남자다.”
“여자로 변장했을 수도 있나?”
“글쎄, 아마 그러진 않았을 거다. 기록에서는 남성우월주의가 심했던 사람이라 적혀 있었으니.”
“능력과 무관하게 그런 짓은 안 할 거란 거군. 그럼 어린아이로는? 그런 식으로도 위장할 수 있나?”
“……너무 어린아이로는 하지 않을 거다.”
“근거는?”
“체면을 중요시하던 인물이니까.”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슬쩍 물었다.
“근데 너는 그자를 왜 찾는 거지?”
당연히 대답할 수밖에 없는 쉬운 질문을 끝마친 다음에 이어서 한 질문.
어떤 책에서 봤다.
이런 식으로 질문하면 대답을 들을 확률이 커진다던가?
물론, 실전에서 통할지야 미지수였지만…….
그렇다고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로 대답도 머지않아 들려왔고.
“……개인적인 용건이다.”
개인적인 용건.
보통은 말하기 싫거나, 그럴 사이가 아니라고 선을 그을 때 현대인들이 자주 쓰던 그 말.
대충 둘러대고 싶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얘가 이렇게 말하니 또 모르겠다.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 [왜 답해 줘야 하지?]이런 식으로 대답 자체를 거부하기는 해도, 얼버무리려 거짓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어쩌면 노아르크의 지령 같은 게 아니라, 정말 개인적인 용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뭐, 이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아우릴 가비스.
만약 놈이 정말 비프론에 있는 거라면,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
***
대화가 끝난 후, 아멜리아는 도시에 들렀다가 밤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오후에는 그쪽에 볼일이 있다던가?
처음엔 너무 자연스러워서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잠깐만, 도시는 어떻게 가겠단 거지? 경비병 눈을 피할 방법이라도 있나?”
“하수도 아래에 비밀 통로가 있다.”
다시 붙잡고 묻지 않았으면 아쉬울 뻔했다.
도시와 이어진 비밀 통로라니!
“그거, 혹시 나한테도 알려 줄 수 있나?”
“흐음.”
“뭘 고민하냐? 내가 감당 못할 부탁이라도 한 것처럼.”
“……좋아, 알려 주겠다.”
내가 ‘아우릴 가비스’ 수색을 돕는 중이란 입장을 넌지시 언급하자, 아멜리아는 흔쾌히 비밀 통로를 알려 줬다.
오히려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이걸로 이제 빚은 없다는 건가?
‘덕분에 좋은 걸 얻었네.’
나중에라도 원할 때 비프론에 올 수 있는 일종의 통행권. 물론 유배 기간 동안 이 통로를 쓸 생각은 없다.
나도 내가 눈에 띄는 편이란 건 아니까.
괜히 나갔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일이 골치 아파진다.
날 들여보낸 기사도 유일하게 경고했지 않나.
뭐든 해도 좋지만 탈출만은 하지 말라고.
“그럼 다녀와라.”
“다녀오라니?”
“이따 밤에 다시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랬지…….”
비밀 통로의 위치를 전달 받을 겸, 함께 하수도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그 앞에서 아멜리아를 배웅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집결 지시를 내린 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가며 슬그머니 집결 장소로 향했다.
한때 탐험가들로 북새통을 이뤘을 차원 광장.
“이봐, 혹시 아는 게 있나? 보스는 왜 갑자기 우리를 다 부른 거지? 저기 서부연합 놈들은 또 뭐고?”
“나는 ‘이봐’가 아니다.”
“……?”
“네 보스다.”
“그게 무슨 말—”
“반문은 허하지 않는다.”
나는 인파를 뚫고 중심부로 나아갔다.
중간중간 서부연합의 일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왔다.
“충!!!”
그래, 이거거든.
“뭐지……?”
내 앞에 무릎을 꿇는 서부연합원들과 아리송한 표정만 지어대는 동부 놈들.
그래도 눈치껏 길을 터주었기에, 중심부까지 가는 게 보다 수월했다.
“오셨습니까. 저기 오르시지요.”
중심부에 도달한 후엔 재회한 징징이의 보좌 받으며 단상으로 향했다.
필요할 거 같아서 미리 준비를 했다던가?
‘거, 일 한번 잘하네.’
왠지 밖에 데리고 나가서 집사 일을 시켜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비밀 통로도 있겠다, 여기서만 데리고 다니기 아깝잖아?
경비병한테 걸리면 벌금으로 안 끝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단상 위로 오르려던 때였다.
콰지직.
나무판자로 이뤄진 계단이 박살 났다.
이런 얇은 판자때기로는 나와 장비의 무게를 버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징징,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죄송합니다.”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즉각 뱉어진 사죄.
조금은 마음이 풀렸지만…….
이 단상을 만든 놈은 바바리안 혐오자가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바바리안도 오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설계를 했을 테니까.
그래, 그 말인즉슨.
“이 단상은 해로운 단상이다.”
“예. 지금 당장 불살라 버리겠습니다.”
징징이가 횃불을 가져와 단상에 불을 붙였다.
기름으로 추정되는 액체까지 위에 부어주자 확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순식간에 불에 뒤덮인 3층 높이의 단상.
이러니까 무슨 캠프파이어를 하는 거 같네.
화르르르륵-!!
따뜻한 불길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땐 내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가.
천 명이 넘는 부하가 함께하지 않나.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창단식은 그대로 속행한다.”
“창단식……. 예, 그랬군요. 그래서 전부 한곳에 모으라고…….”
“당연한 건데, 몰랐나?”
“죄송합니다.”
나는 용서한다는 의미로 징징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높이 [도약] 했다.
목적지는 근처에 있던 4층 건물의 옥상.
콰아앙-!
옥상 바닥에 실금이 생기긴 했지만, 다행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왠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멋지게 점프해서 바닥을 뚫고 떨어졌으면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까.
‘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건가?’
나도 모르게 품위를 유지하려 한다.
“크흠흠.”
아무튼, 난간 쪽으로 향하니 광장에 빼곡하게 자리한 인파가 한눈에 들어오며 장관을 이루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창단식을 시작할 차례.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선창했고,
“베헬—라아아아아아아아!!!”
하루 선배인 서부연합원들이 즉시 후창했다.
동부 놈들은 눈만 깜빡이며 바라만 봤다.
이게 무슨 정신 나간 광경인가 하는 눈초리.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쯧.”
아직 가르쳐야 할 게 많구나.
***
새 보스의 얼굴을 조직원들에게 각인시키는 창단식이 끝난 후, 나는 징징이와 빡빡이를 불러내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비프론에 있는 모든 이의 등짝을 확인해라. 그리고 문신이 있는 놈은 전부 내게 데려와라.”
아, 물론 여자와 ‘자격 증명’도 치르지 못한 14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제외였고, 첫날이 다 가기 전에만 총 37명의 용의자가 내 앞에 끌려왔다.
하지만…….
“이 문신이 아니다.”
밤에 돌아온 아멜리아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이렇게 쉽게는 안 된다 이거지.
나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베헬-라 연합’의 부단장인 징징이와 빡빡이를 갈궜고, 2일 차 3일 차에는 훨씬 많은 용의자가 잡혀왔다.
물론, 이번에도 찾던 놈은 없었다.
심지어 양이 늘어난 대신 질도 낮아졌고.
“이건 문신이 아니라 반점인 거 같은데.”
“그렇다는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시정하겠습니다.”
쉽게 말해, 자기도 효율을 위해 아랫놈들을 갈구겠다는 뜻.
다행히 잘 갈궜는지, 다음 날부터는 되도 않는 걸 문신이랍시고 데려오는 일이 적어졌다.
4일 차, 5일 차.
그렇게 이틀이 더 흘렀다.
역시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애초에 이런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아우릴 가비스’ 같은 거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우습긴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거라도 해 봐야지. 달리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라 한들, 그 바늘이 날 집에 돌려보내 줄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는 해 보는 게 마땅하다.
따라서, 나는 계속해서 수색을 이어나갔다.
물론 조금 방식을 바꾸기는 했다.
별건 아니고, ‘보상’을 추가했다.
“매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자는 그날 밤 정신 교육이다.”
이게 어떻게 보상이 되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의 행복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쉽게 말해, 남들보다 잘 살면 그게 보상이다.
날고기를 먹고 동굴에서 맨몸으로 잠을 잔다고 원시 시대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었겠는가?
6일 차, 7일 차, 8일 차…….
이후로도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다만 아우릴 가비스는 나타날 기미가 없었고, 나도 슬슬 어느 정도 기대를 접었다.
처음으로 얻은 귀환의 단서였던지라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터이나…….
애초에 얘를 도우려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러니 그쪽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름 아닌, 아멜리아 레인웨일즈.
이 여자는 대체 뭐 하는 애일까?
‘아우릴 가비스’를 접점으로 매일 만나게 된 아멜리아와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캐냈다.
의외로 얘는 묻는 것에 잘 대답해 주었다.
중요성 낮은 정보들에 한해서이긴 했지만.
“밀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 왠지 피부가 가려워져서.”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든가.
취미가 있다면 독서 정도라든가.
그런 것은 어려움 없이 대답해 준 반면, 예전에 빚을 졌다던 바바리안이 누구이며 무슨 일이 있던 거냐는 물음에는 답변을 피했다.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
“하지만 궁금하단 말이다. 너 같은 여자가 쩔쩔매다니, 위대한 전사였을 거 아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라도 말해 봐라!”
“……굳이 따지자면 너와 조금 비슷했다.”
얘답지 않게 뒤에 군말을 붙이긴 했지만, 유의미한 정보는 아니었다.
그야 같은 바바리안 아닌가.
닮은 부분이 있을 수밖에.
아무튼, 그런 자연스러운 잡담이 이어지며 얘도 허들이 조금 내려갔을까?
“약탈은 왜 하고 다니는 거냐? 솔직히 말해서 너랑은 영 어울리지 않는데.”
“어울리지 않는다고?”
조금 예민할 수 있을 질문에도 화를 내기보단 의문을 내비치는 아멜리아.
나는 어렵지 않게 준비한 대사를 쳤다.
“그때 이후로 너 말고도 약탈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고 나니 좀 더 확실해지더군. 넌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다.”
“……웃기는군.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모른다. 하지만, 너 정도 수준이면 약탈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방법이 많다는 건 알지.”
“…….”
아멜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짧게 사정을 밝혔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다.”
“그럼 그때는?”
“그놈들은……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질렀다.”
“개인적인 원한 관계였단 뜻인가?”
“그래.”
먼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하는 아멜리아.
그 너머의 깊은 사정이 궁금해졌지만, 어떠한 원한인지까지는 들을 수 없었다.
아멜리아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별거 아닌 거로 유난 떨지 마라. 어차피 며칠 뒤면 헤어질 사이 아니냐. 남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도 있는 거다.”
“남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라…….”
그 말이 인상이 깊었는지 한 번 내 말을 곱씹던 아멜리아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늦었군. 이만 나는 가보겠다.”
“내일도 이때 오나?”
“아마도.”
왔을 때처럼 기척 하나 내지 않으며 눈앞에서 사라진 아멜리아.
쩝,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잠시 기분 전환이나 할 겸 테라스로 나갔다.
비프론의 야경은 바깥의 도시 구역들과는 전혀 달랐다.
불빛 하나 없이 어둠으로 파묻힌 거리와 건물.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네.’
테라스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며 어둠을 바라봤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서 침실로 향했다.
[23 : 57]슬슬 잠자리에 누울 시간이었다.
뭐, 잠이 오기까지는 한참이 걸리겠다마는.
「캐릭터의 영혼이 공명하며 특정 세계로 이끌립니다.」
오늘은 다들 접속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