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335)
335화 투 더 퓨처 (5)
알미너스 중앙 거래소 제1경매장.
괜찮은 물품만을 모아다가 개최하는 정기 경매 때도 절반 이상 차는 일이 없던 그곳에 인파가 바글바글 몰렸다.
심지어 어중이떠중이들도 아니다.
“저기 넨마 클랜 마스터도 참가를 했군.”
“본인이 쓰려고 하는 건 아니고, ‘철벽’이라 불리는 그 탐험가에게 주려는 게 목적일 거요. 제1팀의 수호자가 얼마 전에 죽지 않았소? 빈자리를 채울 목적이겠지.”
장비에서 광택이 좔좔 흐르는 탐험가부터 시작해.
“오호라, 라그만 상회에서도 그 정수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까?”
“값만 맞는다면 상인이 사지 못할 물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흐음, 그래도 경매에 나온 물건들은 팔았을 때 그만한 값을 받기 어려울 텐데…….”
“물건의 가치는 재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쿠도 공작님의 생일이 머지않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을 빌미로 그 연회에 참가만 할 수 있다면, 많은 귀족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겠군요.”
탐험가는 아니지만 딱 봐도 돈깨나 있는 티를 팍팍 풍기는 자들.
그냥 구경 삼아 참가한 듯한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경매가 화제 몰이를 하며 경매장 입장권부터가 아주 비싼 값에 팔렸다고 하니까.
‘애초에 값이고 뭐고 티켓팅부터가 헬이었지.’
본격적으로 정보가 풀리기 직전에 먼저 경매 소식을 알린 아멜리아가 아니었다면, 암표로 티켓 한 장 정도나 겨우 구해 혼자 들어와야 했을 것이다.
“자꾸 두리번거리지 마라,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게 없으니.”
잔소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인지라, 나는 익숙하게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너는 이런 장소에 자주 와 봤나?”
“……와 볼 만큼은.”
하긴, 얘 나보다 탐험가 경력이 훨씬 길지?
“그럼 궁금한 게 생기면 너한테 물어보면 되겠군.”
이후로는 그저 곁눈질로 주변을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의외로 우리처럼 가면을 쓴 자들이 많군? 경매 낙찰자는 어차피 익명으로 처리된다던데.”
“참가 자체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오, 저기 정장 입은 놈은 뭐냐? 탐험가도 아니고 상인도 아닌 것 같은데.”
“유력가에서 보낸 대리인이다. 깔끔한 차림새긴 하지만 귀족가에서 보낸 건 아니겠군, 귀족가는 저런 부분에서조차 가문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니까.”
“오, 그래?”
이건 뭐 백과사전도 아니고.
묻는 질문마다 딜레이 없이 답이 되돌아온다.
그래서 성능 확인할 겸 이런저런 질문들을 더 하고 있자니, 경매가 시작이 됐다.
“아멜리아… 우리 저거 못 사냐?”
“……뒤에 거를 포기한다면.”
“못 산다는 거구나…….”
3등급 정수만이 아니라 다른 물품에도 신경을 많이 썼을까? 처음으로 출품된 물건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 나오는 것들도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무슨 거래소 경매장에서 트리플 넘버스가 나와?’
심지어 성능이 구린 트리플 넘버스도 아니었다.
내게는 효용성이 떨어지지만, 날붙이를 쓰는 딜러들이라면 모두가 쓸 수 있을 공용 아이템.
‘후, 돈만 있었으면 저것도 사서 금고에 넣어 두는 건데.’
나는 새 경매 물품이 올라올 때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서 과열되는 경쟁을 지켜만 보았다.
“1억 4천만 스톤! 1억 4천만 스톤 나왔습니다. 입찰자가 더 계십니까?”
“…….”
“……익명의 입찰자분께 낙찰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경매는 굉장히 시원시원했다.
금액대 별로 진행자가 정해 둔 단위로만 입찰가를 야금야금 올릴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한 번에 높은 입찰가를 적어 넣는 것이 가능한 자유 입찰제.
그런 주제에 입찰 방식은 묘하게 현대적이었다.
띡, 띡, 띠디디딕.
의자마다 오른쪽 팔 받침대에 숫자를 적어 넣을 수 있는 마도구가 있고, 입찰가를 넣고서 엔터를 치면 단상에 있는 전광판에 가격이 나타나는 식.
덕분에 입찰자의 신분은 익명에 가려진다.
‘하긴 이런 방식으로 익명성을 지켜 주는 게 아니면 나중에 싸움이 날 수도 있으니까.’
참고로 이 방식은 천공 경매장에서 처음 사용됐다.
한창 도서관에서 역사 공부를 할 때 알게 된 건데, 명망 높은 귀족가끼리 실명을 까고 경쟁을 붙다가 일이 커져서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있었다던—.
“자, 그럼 열일곱 번째 물품입니다!”
한번의 경매가 끝나고 새로운 물품이 기다렸다는 듯 단상 위에 올랐다.
고급스러운 상자에 보관된 시험관이었다.
지금까지 정수가 등장한 적은 여러 번 있었으나, 이번에는 여러모로 상황이 달랐다.
“얀델.”
“알고 있다.”
앞선 정수들과 다르게 상자 옆에 커다란 그림이 세워져 있다. 온몸이 두꺼운 껍질로 덮인 채 포효하는 거대 괴수의 그림.
볼-헤르찬.
‘이런 것까지 준비해 두다니, 진짜 이번 경매에 신경을 많이 썼구나.’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역동적인 그 모습에 경매에 참가한 이들이 웅성거렸다.
“오호라……. 과연…….”
“이 정수는 마지막에야 나올 거라 여겼건만.”
“예. 조금 이상하군요. 오늘 출품될 물품이 총 35개였으니, 아직 반은 더 남았을 터인데…….”
누군가는 경매의 중반부에 정수가 나온 것에 의문을 품기도 했으나, 내가 보기에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칭찬할 만한 상술이었다.
“알미너스 상회가 머리를 썼군.”
정수가 마지막에 나오면 돈을 모아 온 자들이 그때까지 자본금을 쓰지 않고 아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물품들에 입찰할 여지가 적어진다.
하지만 중반부에 등장시켜 일찍이 그 주인을 정해 버리면?
그땐 얘기가 달라진다.
남은 자본금의 용도가 사라졌으니, 필요한 물건이 나온다면 심리적 저항감 없이 입찰을 할 수 있을 터.
“이번 물품은 볼-헤르찬의 정수로 마르엘 클랜의 ‘벼락불꽃’이 이번 원정에서 직접 그 흉포한 마수를 처단하고 획득한 것으로…….”
진행자가 본격적으로 이 물건에 얽힌 스토리와 함께 상품 설명을 시작하자 장내의 공기가 달라졌다.
“크흐흠…….”
앞선 경매에서는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던 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탐험가들의 눈에는 욕망이 떠올랐고, 상인의 눈은 기회를 앞둔 승냥이처럼 예리한 빛을 자아냈다.
칼만 안 들었지 전투를 코앞에 둔 자들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쯧, 누구 걸 넘봐.’
띡, 띡, 띠디디, 띡-.
나는 미리 금액을 적었다.
그리고.
“자, 시작가는 5천만 스톤으로—.”
경매가 시작됨과 동시에.
삐빅.
엔터를 눌렀다.
이에 호응하듯 전광판에 숫자가 떠올랐다.
[870,000,000]8억 7천만 스톤.
이번 경매가 나중에 아멜리아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해진 이유였다.
“……!”
“……!”
입찰이 딱 한 번이었거든.
***
실로 폭력적인 레이즈에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8억 7천만 스톤…! 8억 7천만 스톤이 나왔습니다.”
진행자가 프로 의식을 발휘하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며 소란이 시작됐다.
“8억 7천만 스톤이라고?”
“무슨 시작부터 이런 미친놈이…….”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입을 떡 벌리는 자.
“대체 어떤 자이기에 이런 금액을 한 번에…….”
내 정체를 궁금해하는 자 등등.
경쟁을 포기한 자들은 그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낸 반면.
진지하게 이 정수를 노리고 있던 자들은 달랐다.
“낙찰이 되기 전에 서둘러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안색을 달리하며 황급히 의논을 시작했다.
아, 참고로 여기서도 반응은 제각기 나뉘었다.
“8억 7천만 스톤은 무리입니다….”
진작에 예산이 초과한 자.
“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수호자들이나 쓰는 저 정수를 저 돈 주고 사는 건 미친 짓이지. 우리는 입찰을 포기한다.”
단순히 가성비를 따져 결정을 내리는 자.
그리고…….
“왜 입찰하지 말라는 건가?”
“어쩌면 거래소 측에서 수작을 부린 걸 수도 있습니다.”
의심병이 도져서 입찰을 망설이는 자까지.
“수작이라면 바람잡이를 말하는 건가?”
“그 가능성도 있지만… 거래소에서는 처음부터 미끼로 정수를 내걸었을 뿐, 판매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몇몇은 볼-헤르찬의 정수가 호객을 위한 허위 매물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
“…….”
예상을 벗어난 금액에 머리가 멍해지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주변의 말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 입찰을 할지 말지 열심히 고민을 해 나가는 그 순간에도.
째깍, 째깍-.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입찰자는… 더 없으십니까…?”
시원시원하게 낙찰봉을 때리던 진행자가 평소보다 3배는 더 시간을 끌다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
“…….”
서로의 눈치만 보기 바쁜 이들을 보며, 입찰의 끝을 알렸다.
땅! 땅! 땅!
낙장불입을 의미하는 청명한 울림이 들리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몇 번이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암, 경매의 꽃은 즉시 구매지.
***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지나간 듯한 경매가 끝나고, 우리는 물품 인도실에 가서 값을 지불하고 볼-헤르찬의 정수를 넘겨받았다.
“8억 7천만 스톤… 확인되었습니다.”
물품을 인도한 직원은 거래소 내에서 꽤 직위가 있는 듯했는데, 이상한 루머를 만든 우리를 곱지 않게 보는 것과 별개로 굉장한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프로 의식이라는 걸까?
“안녕히 가십시오.”
해당 직원은 가면을 쓴 우리를 가끔씩 살필 뿐, 정체를 묻는 것은 물론이고 쓸데없는 말조차 걸지 않았다.
“뭐 하나, 얼른 가지 않고.”
물품 인도실에서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다들 우리가 무엇을 갖고 나왔을지가 궁금해 보였다.
다만 35개의 물품 중 우리가 무엇을 구매했는지는 알 수 없기에 섣불리 말을 걸어오는 자는 없었다.
“따라오는 자는?”
“이제 없다. 수준을 보니, 그냥 호기심에 한번 뒤를 밟아 보는 정도였던 것 같더군.”
“그래?”
“어디로 갈 거냐?”
어디로 가기는.
한곳밖에 더 있어?
“신전으로 간다.”
이후 마차를 타고 컴멜비를 떠난 우리는 곧바로 레아틀라스 교단에 들어섰다. 슬슬 외부인의 방문을 막는 저녁 시간대였으나,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영혼에 새겨진 흔적을 지우기 위해 오셨군요.”
“여기, 기부금이다.”
“예. 동료분께서는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신관에게 딱 맞춰서 남겨 둔 돈을 지불하고 정수를 제거했다.
지운 정수는 미리 정해 둔 대로 시체골렘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신전에서 정수는 한 번도 안 지웠었네.’
평소에 다른 애들한테 말로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처음 해 보는 정수 제거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기묘한 경험이었다.
‘연출 보소, 게임에서는 그냥 키보드만 몇 번 움직이면 됐었는데.’
새하얀 빛이 나를 감싸며 도착한 순백의 공간.
알몸의 모습으로 그곳에서 깨어난 내 손에는 방금 신관에게 받은 푸른색 단검이 쥐어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거대한 괴수들이 득실거렸다.
모두 두꺼운 철창에 갇힌 상태였다.
오우거, 오크 히어로, 스톰거쉬, 만티코어, 바이욘.
그리고 오늘의 내 목표인 시체골렘까지.
잠시 놈들의 모습을 구경하던 나는 단검을 이용해 시체골렘과 내 육신에 연결된 빛의 실을 끊어 냈다.
그리고…….
솨아아아아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신전이었다.
“기분이 아주 이상하군.”
“영혼에 새겨져 있던 인연이 떨어져 나갔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엔 대부분 겪는 일이니 너무 걱정치 마십시오. 며칠이 지나면 빈자리도 익숙해질 것입니다.”
“인연이 떨어져 나갔다라…….”
레아틀라스 교단의 신관다운 말이란 생각이 들지만, 어딘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단순히 스탯이 줄어들며 생긴 공허함이라기엔 탈력감이 상당했던 탓이다.
“괜찮나?”
“아,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고기 좀 먹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신전에서의 용무를 마친 나는 아멜리아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경매에서 낙찰받은 시험관을 꺼냈다.
“아멜리아, 마음 준비는 됐나?”
“……?”
내 말에 아멜리아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지었다.
“이걸 먹는 순간 기록의 파편석이 반응할 수도 있으니, 놀라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
GM도 만났고, 장비를 금고에다 맡기기도 했다.
심지어 아멜리아는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미래에 세금사하지 않도록 경제적인 조치까지 미리 해 두었다.
그러니 내 예상이 맞다면…….
‘이게 마지막 퍼즐이겠지.’
나는 아공간에서 기록의 파편석을 꺼낸 뒤, 정수를 흡수했다.
‘크…… 이 맛에 정수 먹지.’
시체골렘의 빈자리를 느끼기 어려울 만큼 밀도 있게 차오르는 충만감.
시험관 안에 담겨 있던 빛무리가 체내에 흡수되며 몸에서 힘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물론 오우거 때보다는 훨씬 강도가 약했다.
깡 근력이 그렇게 붙은 정수는 2등급 이상에서도 흔치 않은 탓이다.
‘그래도 뭐, 중요한 건 스킬이니까.’
나는 여운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여전히 묵묵부답인 기록의 파편석을 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설마 이것도 아니었다는 건가.”
그럼 대체 앞으로 뭘 더 해야 하는 거지?
혹시 몇 년은 더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건가?
그런 불안감에 새 정수를 얻었다는 기쁨조차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던 때.
“그래, 슬슬 돌아갈 때가 되기는 했지…….”
아멜리아가 한숨을 내쉬듯 중얼거렸다.
“응?”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멜리아가 나를 보며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걱정 마라, 내일이면 돌아갈 수 있을 테니.”
어딘가 아쉬운 듯한 눈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