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351)
351화 암흑대륙 (2)
내리쬐는 햇살과 달아오른 모래알.
시원하면서도 어딘가 눅눅한 바람에는 소금의 짠 내가 실려 있는 이곳.
시작의 섬 라이미아.
다만, 수평선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6층 대해大海에 입장했습니다.」
포탈을 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해안선을 따라 늘어진 백 척이 넘는 초대형 범선들이었다.
어찌나 선체가 크고 숫자도 많은지, 넓은 바다가 좁게만 느껴질 정도.
“자자, 넘어왔으면 얼른 옆으로 빠지쇼! 다음 사람들도 와야 하니까!”
주변을 구경할 사이도 없이, 탐험가 길드의 문양을 지닌 탐험가의 통제에 따라 포탈 앞을 벗어났다.
말투가 너무 가벼워서 에르웬에게 물어보니 길드 소속 정규 직원은 아니라고 한다.
길드에서 의뢰를 받은 탐험가들이라던가?
탐험가 관리를 위해 왕가에게 협조 요청을 받기는 했는데, 보낼 인력이 없으니 아웃소싱을 맡긴 거다.
‘하긴, 평범한 직원이 6층까지 오긴 어려울 테니.’
아무튼, 벌써 1년도 넘게 이어진 전쟁인 만큼 딱딱 나뉜 절차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됐다.
“이리로 오십쇼! 우선 참전 등록부터 하고, 부대 지정 과정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동부 해안선에 길게 늘어선 대기열을 기다린 끝에 우선 신분증을 내고 참전 등록을 끝마쳤는데, 참고로 여기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에르웬이 유명해도 너무 유명했던 탓이다.
“에르웬 포르나치 디 테르시아……. 어… 어, 혀, 혈령후 님……?”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니… 없습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혼자 등록을 하러 온 에르웬을 보며 이런저런 의문이 생길 법도 한데, 등록원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불편해하며 서둘러 등록을 끝마쳤다.
“5등급 탐험가 에밀리 레인즈. 이전에도 참전 기록이 있군요. 등록되었습니다.”
에르웬 다음은 아멜리아 차례였는데, 이번에는 정말 1초 만에 등록이 끝났다.
2년 전에 만든 이름으로 나이는 22세.
9등급 탐험가부터 시작해 천천히 등급을 올리며 세금도 내는 등 신분 세탁을 완벽하게 끝냈다던가?
에르웬처럼 아멜리아의 맨얼굴을 아는 사람과 맞부딪치는 것만 아니라면, 신분으로는 프리 패스다.
조금 의미심장한 눈길을 받은 나와 다르게.
“5등급 탐험가 리헨 슈이츠. 참전 기록은 없으신 분이군요. 투구 좀 벗어 보시겠습니까?”
아멜리아가 구해다 준 나의 신분, ‘리헨 슈이츠’는 5년 전에 활동했던 탐험가의 것이다. 물론 브로커가 그간 세금까지 착실하게 낸 덕에 서류상 문제될 건 없었지만…….
“흠.”
29세라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묘한 반응이다.
왠지 담배를 사러 온 미성년자라도 된 듯한 기분.
그래도 신분증에 적힌 대로 밝은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덕인지 무사히 넘어갔다. 눈 색은 애초에 같은 거로 골랐고.
“뭐, 문제라도 있소?”
“아뇨, 오랜만의 복귀이신 거 같은데 무운을 빕니다.”
“고맙수다.”
한차례 투구를 올리긴 했으나, 다행히 별일 없이 등록이 끝났다.
은퇴했다가 전쟁 후에 복귀하는 케이스가 요즘에 워낙 많아 크게 의심하진 않을 거라던 아멜리아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칠강 중 이런 케이스가 두 명이나 있댔고.
“그럼 이제 부대 지정만 하면 되겠군.”
등록을 마친 후에는 옆쪽 게시판으로 이동했다.
게시판에는 현재 대기 중인 선박과 배에 승선한 인원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는데, 어느 배에 올라탈 것인지도 전쟁에서는 꽤 중요했다.
7층에 도착하면 같은 배를 탄 탐험가들끼리 하나의 부대를 이루기 때문인데…….
“뭘 탈지 고민할 필요 없다. 너는 이번이 초행이다 보니, 3등선 말고는 못 타니까.”
“3등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우지 못했거나, 대형 클랜처럼 큰 세력이 없는 탐험가들이 주로 타는 선박이다. 그러다 보니 전투력이 떨어지는 편이기에 주로 후방에 위치해서 지원 역할을 맡지.”
허허, 뉴비는 밑바닥부터 올라오라 이건가?
하긴, 위험한 전장으로 가는데 발목을 잡는 뉴비가 껴 있으면 괜히 곤란하기만 할 테니까.
“그럼 저기 타는 거로 하지.”
이후 3등선 중에 가장 인원이 덜 찬 배를 고른 뒤 셋이서 함께 승선했다.
인원이 적은 편이 객실을 고르기 유리하다는 판단.
“다행히 3인실을 얻을 수 있었군.”
“왜 3인실이 구하기 어려운 편인가?”
“그렇게 귀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가장 인기가 많기는 하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되물을 것 없이 알아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 내가 없는 동안 결속 마법이 업데이트됐지.’
지금의 시대에서는 6인 팀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딱 두 그룹으로 나누면 끝인 3인실이 가장 인기일 수밖에.
“그럼 출항일은 내일이니 지금부터는 각자 느긋이 쉬는 거로 하지.”
“네, 좋아요! 그럼 이제 무슨 얘기를 할까요?”
“……쉬자니까?”
“네, 그러니까요. 쉬려는 건데요?”
“…….”
도움을 바라는 눈빛으로 아멜리아를 봤지만, 얘는 어느샌가 주변 짐 정리를 끝내고 침대에 누운 뒤였다.
거, 자는 척하기는.
“그럼 전쟁 얘기나 할까……?”
“좋아요! 혹시 궁금한 게 있으세요?”
“보통 3등선에 탄 인원들은 후방에서 지원 임무를 맡는다던데, 정확히 어떤 것들이 있지?”
“어… 저는 맨날 앞에만 있어서 잘 모르는데……. 아마 퇴로 확보나 호위 임무 같은 걸 맡는다고 듣긴 한 거 같아요.”
딱히 피곤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후로는 에르웬과 대화를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똑똑.
돌연 방문객이 찾아왔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같은 배에 탔다기에 인사나 하러 왔어요. 오랜만이네요, 테르시아 씨.”
설마 이렇게 빨리 재회하게 될 줄이야.
***
“후우…….”
닫힌 선실 앞에 선 금발 머리의 여성이 입고 있던 제복의 옷깃을 정리했다.
그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여자는 왜 갑자기 이런 돌발 행동을 한 거야.’
혈령후, 에르웬 포르나치 디 테르시아.
지금 레이븐이 이 선실 앞에 서 있는 이유였다.
그야 어떤 이유에선지 칠강의 일원인 그 여자가 1등선이 아니라 3등선에 타 버렸으니까.
‘……진짜, 위에서 귀찮은 건 나만 시키고.’
원래 그녀가 속한 제3 마도병단도 3등선에 오를 예정이기는 했다. 마법사로 이루어진 전력상 호위 병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그 배가 이 배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윗선의 명령으로 재배치를 받게 되었을 뿐.
‘이제 딱히 친하지도 않구만. 예전에도 그리 친한 건 아니었고.’
한때 같은 클랜의 일원이었던 것을 이유로 상부는 자신을 이 배에 지정했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그 미친 여자를 무슨 수로 통제한단 말인가.
앞으로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그래도 시키긴 했으니, 일단 대화라도 나눠 보고 무슨 속셈인지 한번 떠보기라도 하는 수밖에…….’
이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이 열린 것은 노크를 하고서 약 10초 정도 흐른 때였다.
끼이익.
바닷바람에 녹슨 경첩이 소리를 내며 벌어졌고, 닫혀 있던 선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대로 총 세 명이 있었다.
‘5등급 탐험가 리헨 슈이츠. 그리고 에밀리 레인즈.’
한 명은 선실 내부에서도 투구를 쓰고 있었고, 한 명은 코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면사로 눈과 귀가 가려진 상태였다.
이에 레이븐은 더 큰 호기심을 느꼈다.
이 둘은 대체 누구기에 갑자기 혈령후 같은 여자와 함께 움직이게 된 걸까.
“아저씨는 그만 보고 용건이나 말해요.”
냉기를 넘어 공격성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에 그녀는 선실 관찰을 멈추고 에르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애써 사무용 미소를 꺼냈다.
“……같은 배에 탔다기에 인사나 하러 왔어요. 오랜만이네요, 테르시아 씨.”
“네. 그럼 인사 끝났으면 이만 나가 줄래요?”
쯧, 저 버르장머리는 대체 언제쯤 고쳐질는지.
레이븐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내색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야 이대로 나가기엔 궁금한 게 많았으니까.
예를 들자면…….
“그나저나 아저씨라고 했죠, 방금?”
왜 이 여자는 저 남자를 ‘아저씨’라고 표현한 걸까.
그 별칭은 그 남자에게만 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
애석하게도 에르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 있냐는 듯한 눈으로 빤히 노려볼 뿐.
다만 어딘가 초조한 듯한 눈빛이었다.
보이고 싶지 않던 걸 보인 느낌이라 해야 하나?
“흐음.”
그녀는 에르웬에게서 사내로 시선을 옮겼다.
굉장히 낯설고, 투구에 가려져 얼굴도 볼 수 없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뭐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아니, 공통점이랄 게 아예 없을진대도.
그럼에도 묘하게 한 사람을 닮았다.
“다, 당신 설마! 이 남자는…….”
이내 레이븐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에르웬과 남성을 번갈아서 응시했다.
***
“…….”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레이븐의 시선이 내게 오래 고정될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뭐야? 이걸 바로 들킨다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지?
악령이 아니란 걸 납득시킬 수 있으려나?
만약 납득을 못 한다고 하면 분명 왕가에도 소식이 전해질 텐데…….
“…….”
눈알만 움직여 에르웬을 보자, 얘도 마침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아저씨, 이제 어떡해요?’ 같은 눈빛.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말실수는 네가 해 놓고 그걸 왜 나한테—.
“설마…….”
그때 레이븐의 입이 열리며 불편한 정적이 끝을 고했다.
“이렇게까지 망가졌을 줄이야.”
…응?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에르웬과 내가 동시에 당황하는 차, 레이븐이 어딘가 슬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테르시아 씨, 아니 에르웬… 대신할 수 있는 걸 찾는 건 옳지 못해요.”
“아……?”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요. 그저 극복하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힘들겠지만.”
“어어……?”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됐다.
레이븐은 오해한 것이다.
에르웬이 나를 그리워하다 못해 비슷한 남자를 찾아 얼굴을 가리고서 역할 놀이를 하고 있다고.
“그리고 당신.”
아담한 제복 핏의 레이븐이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다.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다 알고 있어요.”
“……?”
“그러니 에르웬 씨를 이용하겠단 생각은 버려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런 꼴은 못 보니까. 앞으로 계속 지켜볼 건데, 만약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짓을 했다간…….”
이내 레이븐이 말꼬리를 흐리자 나도 모르게 변명의 말을 하고 말았다.
“잠깐! 무슨 오해인지 몰라도, 이용할 생각은—.”
“목소리…….”
“목소리?”
이해 못 할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레이븐이 흠칫 굳더니 내 눈을 피했다.
“목소리가… 닮았… 네.”
마치 에르웬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을 한 것만 같은 반응.
“그래서였구나…….”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레이븐이 에르웬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안 돼요. 이런 건… 그 사람도 원하지 않을 게 분명하잖아요?”
진심이 절절하게 묻어나고, 말투 또한 조언을 넘어 거의 애원하는 듯했다.
하지만, 에르웬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얘가 하고 있는 건 다 오해니까.
“다, 당신이 뭔데 간섭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이내 에르웬도 정신을 차리고 방어에 나섰다.
아, 쉽게 말해 공격했다는 뜻이다.
“당장 나가요, 다시는 찾아오지 말고!”
레이븐을 힘으로 내쫓은 에르웬이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
레이븐의 방문 이후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출항일이 되어 해안선에 떠다니던 군함들이 일제히 돛을 펼친 것은 물론이고, 이 배의 정체성도 정해졌다.
“마도병단의 호위라…….”
이 배에 탄 탐험가들은 7층에 도착하는 즉시, 제3 마도병단을 호위하며 전투에 참가할 것이다.
아, 참고로 전장에서의 진형이나 전술 등은 항해 도중에 갑판에 모여 교육을 받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래서 배마다 부대를 묶어 버리는 거구나. 가면서 교육을 할 시간이 있으니까.’
7층까지 예상 항해 기간은 약 15일.
교육 시간을 빼면 대부분이 자유 시간이었는데, 나는 거의 항상 갑판에서 보냈다.
간단한 이유다.
새삼 느끼는 것인데, 바바리안은 바다에 약했다.
“우웨에에에엑-!”
배가 이렇게 큰데도 멀미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 선실 내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야 여기선 그냥 아무 데나 토를 해도 되니까.
아무튼, 그렇게 갑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레이븐과도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빈도로.
어째선지 항상 에르웬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만.
“…멀미하는 것까지 닮았네. 기분 나빠.”
“……웨에엑.”
“얼굴은 왜 그렇게 가리고 있어요? 에르웬 씨가 시켜서?”
“웩…….”
“하긴, 얼굴이 너무 안 닮긴 했네요.”
“…….”
“왜 멀쩡한 얼굴을 갖고서 그러고 다니는 거예요? 자존심도 없어요?”
“…….”
“아주 뭐 하나만 저질러 봐요. 제가 가만 안 둘 거니까.”
아오, 힘들어 죽겠는데.
왜 자꾸 알짱거리는 거야, 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