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07)
407화 필연 (3)
캐릭터 생성 시 두 진영 중 하나를 골라, 다른 대륙에서 성장을 하며 세력을 다투는 형식의 게임.
적 진영에 원정대를 이끌고 가서 필드 보스를 스틸하는 맛이 일품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PK도 신명나게 하고.
필드 보스도 막타를 쳐서 달달하게 먹고.
거기에 적 진영 유저들에게 온갖 극찬까지 들을 수 있다니?
‘꽤 재밌는 게임이었지.’
[던전앤스톤]을 접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까지 그 게임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했던 것들 중에 그게 가장 나았거든.
‘……근데 그거 계속했으면 여기 끌려올 일도 없었던 거 아닌가?’
그런 뒤늦은 아쉬움이야 어쨌든.
거의 잊고 살았던 그 게임이 돌연 떠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어찌 보면 현 상황과 공통점이 많으니까.
현재 암흑대륙은 노아르크 세력이 점거한 상태.
우리 원정대는 지금 그곳에 몰래 발을 들이민 격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거기서 쓰던 방식이 잘 통한다 이거지.’
그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맛이 느껴진다.
“……기, 기습이다!”
“대체 어떻게 적들이 여기에……!”
“앞! 앞에 마수부터 처리해!!”
“악, 아아아아악!”
당황한 적들의 어쩔 줄 모르는 무빙.
“이익! 비겁한……!”
“하필 이때를 노리다니!”
“반드시 너희들은 데리고 가주마!”
쏟아지는 극찬.
「본 드래고니안을 처치했습니다. EXP +7」
거기에 케이크처럼 쉽게 떠먹는 3등급 몬스터 처치까지.
물론 화룡점정은 따로 있었다.
“저, 정수다!!”
기습에 성공해 부상자 한 명 없이 PK에 성공한 것도 모자라, 덤으로 잡은 몬스터에게서 정수까지 드롭됐다.
이번 원정에서 획득하게 된 두 번째 3등급 정수.
솔직히 말해 기쁜 것보다 얼떨떨했다.
‘뭐지……?’
원래 3등급 정수가 이렇게 쉽게 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그야 애초에 7층에서도 3등급 몬스터의 개체는 극히 적으니까.
아이스록에서부터 여기까지 다 합쳐도 사냥했던 3등급 몬스터가 스무 마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벌써 두 개라…….
‘운이 따라주는 건가?’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애쉬드, 너는 가서 정수부터 담아라.”
“예.”
마법사를 보내 시험관에 정수를 담는 동안 신속하게 전장을 정리했다.
그야 전리품은 정수만이 아니잖아?
늘 그렇듯, PK의 메인 디쉬는 따로 있다.
“커, 커헉… 사, 살려줘…….”
“살려줄 수 없단 건 알고 있지 않소.”
뭔데 얘는 시체랑 대화를 나누고 있어.
“쓸데없는 말 말고 비켜봐라.”
망치를 꺼내든 뒤 아직 명줄을 붙들고 있는 녀석들의 행복 버튼을 세게 눌러줬다.
콰직, 콰직, 콰직-!
살이 짓이겨지며 축 늘어지는 몸.
직접 확인 사살을 끝낸 뒤에는 대원들을 시켜서 장비들을 벗겨낸 뒤, 원정대 공용 아공간에 모두 수납했다.
“휘유, 저놈들 아공간에 들어 있을 장비들까지 생각하면 장난 아니겠군.”
“돌아가면 다들 한몫 단단히 챙기겠어.”
곁눈질해서 살펴본 것만으로도 사이즈가 예상이 됐는지 대원들이 의욕으로 타올랐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3등급 정수도 충분히 귀하긴 하지만, 7층에서 활동하던 15인의 장비에 비할 바는 아니니.
무엇보다, 전투에 들어간 노력이 적기도 했고.
“전리품 수거가 끝났어요.”
“부상자는?”
“0명이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흡족함을 감추지 못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5분 안에 깔끔하게 마무리가 된 전투.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전투를 할 계획인가요?”
“문제라도 있나?”
“아뇨. 그건 아닌데…….”
뭐라 묻던 아쿠라바가 입을 꾹 다문다.
본인도 직접 경험했으니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 진영에서 방심한 채 사냥하는 놈들을 기습하기엔 이게 최고의 방식이라는 것을.
뭐,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30분이라…….’
전투는 5분 만에 끝났지만, 놈들이 몬스터와 조우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당했다.
물론 장점에 비하면 신경 쓸 단점까진 아니다.
싸우다가 누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게 더 손실이 크잖아?
다만, 그럼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을까.
카이슬란이 조심스레 내게 조언을 올렸다.
“슈이츠, 모두 다 죽인 것은 너무 성급했소. 한 명은 붙잡아서 정보를 캐냈어야 하오.”
아, 그것도 그렇긴 하지.
“다음 기습부터는 그러겠다.”
자기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여겼는지, 확 밝아진 안색을 보이는 카이슬란.
“마법사들은 시체를 태우고, 흔적을 지워라!”
이후 주변 정리까지 끝마친 우리들은 다시금 어둠 속에 몸을 숨겼고, 다시 이동을 재개했다.
근데 주변이 워낙 조용해서였을까?
어느 대원끼리의 대화가 귓가에 들려왔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까 봤나? 그 장비들?”
“앞으로 이렇게 전투를 열 번만 치르면… 그것만 해도 대체 얼마인 거지?”
글쎄, 그건 머지않아 알 수 있지 않을까.
***
암흑대륙에 도착한 뒤 우리의 루틴은 이러했다.
터벅, 터벅.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이동.
“적이군.”
적군을 발견 시 몬스터와 싸울 때까지 기회를 엿보며 대기.
그리고…….
“지금이다!”
놈들이 몬스터에게 한눈이 팔렸을 때를 틈타 전력으로 기습.
콰콰콰쾅-!
휘이이이이익!
쿠웅-!
모든 원거리 화력을 일제히 쏟아부어 후열을 통째로 날려버린 뒤에는 더더욱 쉽다.
“가자아아아아아!”
“전부 쓸어버려라!”
근딜들이 난입해 설쳐도 전열은 앞에 있는 몬스터 때문에 쉽사리 지원조차 오지 못했다.
그렇게 이번에도 금방 끝난 전투.
‘이걸로 딱 10번째인가.’
이동하며 계속해서 이 짓을 반복했더니, 용의 심처를 벗어나는 동안에만 어느덧 횟수가 두 자릿수에 달했다.
“마법사! 소리가 안 들리게 방음막부터 쳐!”
“어이! 살살 벗기라고! 자꾸 살점까지 붙어서 나오잖아!”
전투가 끝나자 익숙하게 전리품 수거 및 흔적 지우기에 돌입한 대원들.
지켜보고 있자니 한 대원이 생존자의 머리채를 잡아끌고서 내 앞에 대령했다.
“대장! 여기 말했던 한 명이올시다!”
“수고했다.”
“별말씀을.”
두 번째 전투에서부터는 항상 한 명은 살려 둔 뒤 정보를 캐내고 있다.
그야 혹시 모르지 않은가.
미궁이란 언제 어떤 변수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
평소에도 정보 수집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심문도 내가 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준.”
“맡겨 주시지요.”
우리 원정대의 공식 정보 추출기, 준에게 잠시 맡겨두기만 하면 알아서 조금 있다가 정보들이 술술 나와서 정리된다.
예를 들어, 8층에서 사냥 중이던 녀석들이 노아르크의 최정예라든가.
그래서 본거지가 텅텅 비어 있는 것이라든가.
그런 쓸모 있는 정보들이 다 이렇게 나왔다.
다만 문제는 요즘에는 이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놈이 없어서, 새로운 정보 갱신이 없다는 것 정도인데…….
“슈이츠, 잠시 이쪽으로 와보시지요. 급한 사안입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준이 심문 도중에 날 불렀다.
뭔가 싶어서 얼른 가보니 꽁꽁 묶인 생존자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유의미한 정보가 이번 심문에서 발생했다는 뜻.
“어서 말해봐라. 뭘 알아낸 거지?”
“알아냈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
“애매하다니……?”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준이 시선을 한 곳으로 옮겼다. 그 시선을 쭉 따라가보니 빛을 내며 옅게 진동하는 돌멩이가 보인다.
탐험가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그 물건.
“메시지 스톤……?”
“이자가 소지 중이던 물품입니다.”
“그 말은…….”
“예, 누군가가 이자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지요. 어쩌시겠는지요?”
준의 물음과 동시에 메시지 스톤이 한 번 더 옅게 진동했다.
지이이이이잉-
과연 몇 번 더 이 진동이 울릴까.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거고.
스윽.
살짝 손을 들어 올려 시간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생각을 정리했다.
‘근처일까, 아니면 멀리서 온 연락일까.’
품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메시지 스톤의 반경은 한정적이다.
그러나 이곳은 노아르크의 영역.
이 연락이 아주 멀리서 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애초에 왕가에서 원정대를 만들어 본거지를 치게 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니까.
마력 파장 방출기.
현대에 빗대어 말하자면, 송신탑 비슷한 역할을 하는 바로 그 물건.
7층에 다이렉트로 입장한다는 치트키를 쓴 놈들은 원래라면 아공간에 담을 수 없을 크기의 거대한 장치를 갖고 들어오는 초강수를 뒀다.
덕분에 놈들은 대륙 곳곳에 흩어진 병력들과 자유로이 통신을 취하며 능동적으로 왕가군을 괴롭힐 수 있었고.
지이이이이잉-
사람 피 마르게 하는 진동 소리가 한 번 더 울려 퍼진다.
나는 고민을 끝내고 몇 가지만 확인했다.
“거기 너, 이게 어디에서 온 연락일 거 같지?”
“……아, 아마 정기 연락일 겁니다. 각 병력의 상태를 확인하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준, 이놈이 우릴 엿먹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신을 입에 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정도면 몹시 자신이 있다는 뜻.
“……하, 할 수 있습니다! 말하라는 대로 할게요! 그, 그러니까 제발 주, 죽여줘……!”
삶보다 죽음을 갈구하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판단을 끝마쳤다.
그래, 이 정도면 믿을 만도 할 거 같으니까.
“좋아, 연락을 받아라. 뭔가 이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일도 없다고 답하고.”
나는 그리 말하며 진동하는 메시지 스톤을 쥐고 놈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딸깍.
버튼을 눌러 연락을 받은 그 순간.
빛을 자아내는 돌멩이 너머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연락이 닿았군.]어딘가 귀에 콕콕 박히는 중저음.
이를 들은 즉시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리, 리갈 바고스 님… 이십니까?”
용살자, 리갈 바고스.
까드득.
그래, 너도 7층 어딘가에 있는 거구나.
***
이 세상에 들어와 많은 적을 만났다.
대부분은 머리통을 박살 냈지만, 애석하게도 힘이 부족해 그러지 못한 놈들이 있다.
혼돈의 군주 리아키스.
시체 수집가 아벳 네크라페토.
파멸학자, 벨베브 루인제네스 등등등.
당장 떠올려 봐도 생각이 나는 게 이만큼이나 되지만, 그중 가장 원한이 깊은 것은 역시 이놈이 아닐 수 없다.
용살자, 리갈 바고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이성이 마비되며, 피가 들끓는다.
하지만…….
꽈아악.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겠지.
꽉 쥔 주먹에 힘을 더욱 불어넣으며 감정을 식혔다.
그리고…….
[메이라스, 지금 너는 어디에 있지?]이어지는 대화에 집중했다.
“요, 용의 심처에서 팀원들과 함께 사냥 중입니다!”
“아는 거라 하심은…….”
[용의 심처로 간 놈들이 하나같이 연락이 안 되고 있다.]“그, 그, 그렇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군요. 저, 저희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마치 의심을 해달라고 비는 것처럼 과한 말투.
말을 더듬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건 좀 선을 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차.
스으윽-
준이 옆에 놓여 있던 송곳 하나를 조용히 들었고, 이에 즉시 놈의 말투와 자세가 교정됐다.
“한데 아무래도 이상하긴 하군요. 다들 연락이 되지 않는다니. 혹시 몬스터들에게 당한 건 아닐는지요?”
언제 말을 더듬었냐는 듯 또박또박한 발음.
[아무리 한심한 놈들이라도, 전부 다 당했을 리는 없겠지.]“…그렇지요. 한데, 그쪽에는 별일이 없습니까?”
더 나아가 녀석은 역으로 정보까지 캐묻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아직은.]“다행입니다. 이쪽은 제가 한 번 더 돌아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너 따위가?]“…….”
[헛짓거리 하지 말고 기다려라. 안 그래도 그쪽으로 병력을 보냈으니까. 합류해서 그쪽 말을 따라.]“예, 알겠습니다.”
[쯧, 쓸모없는 놈들.]이내 놈이 혀를 차며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자, 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쉽군요. 이쪽으로 병력을 얼마나 보냈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 그렇지…….”
“…어디 불편하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신경 쓰지 마라. 별거 아니니까.”
그저 분노를 참아내느라 조금 힘겨울 뿐이다.
저 목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그날 있었던 일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라 버렸으—
“아, 안 돼.”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휘익.
고개를 얼른 돌려보니 에르웬이 서 있었다.
툭.
무언가를 양손으로 쥐고 있는 모양새였으나, 손에 쥐고 있었을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보통 실수라면 허리를 굽혀 물건을 다시 줍겠지만, 에르웬은 가만히 멈춰선 채 나만을 응시했다.
“에르웬? 여기는 무슨 일이냐?”
의문을 느끼며 가까이 다가서기 무섭게 나는 에르웬의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잠깐만, 너 떨고 있는데…….”
“그, 그 모, 목소리…….”
“진정 좀 해봐라. 괜찮은 거냐?”
“방금! 바, 바, 방금 그놈… 그놈 맞죠……?”
어째선지 그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요, 용살자, 리갈 바고스…….”
에르웬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