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06)
406화 필연 (2)
추첨이 끝난 후, 당첨자들끼리 모여 ‘결속’부터 맺었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 중심부에 우뚝 세워진 비석으로 향했다.
후우우웅-!
손을 위에 올리자 오색 광채와 함께 열리는 포탈.
“호오, 신기하군요. 마력의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일반적인 시공 마법의 전개와는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네는 포탈 개방을 보는 게 처음인가?”
“예. 마법사는 공적에 목을 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대원들이 한마디씩 던지며 포탈이 열리는 모습을 구경하는 와중에도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빛무리는 이내 뚜렷한 형체를 만들었다.
「최초로 포탈을 개방했습니다. EXP +2」
후, 항상 생각하는 건데 8층 포탈을 여는 게 1층 포탈을 여는 거랑 똑같은 건 좀 억울하단 말이지.
후우우우우웅-!
구체의 형태로 변해 일렁거리는 오색의 빛무리.
이내 뒤를 돌아보자 다들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보기만 한다.
그래, 여는 것도 내가, 들어가는 것도 내가 먼저 하라 이거지?
“진형대로!”
혹시 포탈 너머에 누가 있을지 모르기에 진형을 먼저 갖춘 뒤, 먼저 포탈 너머로 발을 들이밀었다.
번뜩-!
눈앞으로 새하얗게 번지는 빛.
머지않아 조각난 파편들이 맞춰지듯 초점이 잡혔다.
「8층 여명의 땅에 입장했습니다.」
여명의 땅.
게임 내에서는 다운 랜드(dawn land)라고 표기되던 미궁의 심층.
「업적 달성」
조건: 8층 도달.
보상: 영혼력 수치가 영구적으로 +50 상승합니다.
5층 대마경에 처음 진입했을 때처럼 업적이 달성되며 영혼의 그릇이 넓어지는 감각이 피어난다.
그러니까, 얘네는 ‘세례’라고 불렀지 이걸?
과업을 이루었을 때 탑이 탐험가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그런 신비한 현상.
후우우우웅-!
먼저 들어가서 주변을 쓱 살피고 있자, 뒤따라 대원들이 진입했다.
“적은… 없구려.”
“다행이에요. 전에 들었던 ‘고블린 숲 전투’처럼 적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드디어 내가 8층에도 와보는군.”
“이것만으로도 원정에 참가한 가치는 있었다고 봐요.”
대원들 중 세례를 받은 탐험가는 무려 절반쯤 되었다. 아니, 사실상 마법사와 신관 쪽은 빼야 하니 절반이 넘는다고 봐도 무방하려나?.
하긴, 8층부터는 심층으로 분류가 되니까.
“신기한 곳이네요…….”
보아하니 에르웬도 8층은 처음인 거 같았고.
그나마 경험자를 뽑자면 아멜리아나 저기 저 라비옌 정도려나?
“적이든 8층이든 뭐든 됐고, 얼른 좀 먹자아아!”
“우와아아아아아!!”
“나는 상처부터! 제발 이것부터 얼른 치료를 해주쇼! 어제부터 눈에 띄게 곪더니, 이제는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
전투 대기 상태를 더 유지했다가는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았기에 얼른 휴식 명령을 내렸다.
그야 썰매에 적재 중이던 식량은 바닥났지만, 아공간에 있는 것들은 멀쩡하잖아?
찌걱, 찌걱, 찌걱.
우걱, 우걱, 우걱.
이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각자의 아공간에서 음식을 꺼내 허겁지겁 입에 들이박는 대원들.
경상으로 분류되어 치료를 받지 못했던 이는 육포를 씹어대며 신관부터 찾았다.
“아저씨, 우리도 얼른 먹어요.”
“그래.”
배가 고파서 뒈질 거 같은 건 마찬가지였기에 나도 얼른 식량을 꺼내 팀원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먹었다.
“말로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평화로운 곳인지 몰랐어요.”
“이곳 여명의 땅 말이냐?”
“네. 심층이라고 부르기에 훨씬 더 무서운 곳일 줄 알았는데…….”
뭐, 저러한 감상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뚝 솟아있는 초록색 동산.
주변으로는 드넓은 초원만이 보이며 바람을 타고 따스한 온기가 피부를 스친다.
조금 전까지 두꺼운 털옷을 입고서도 벌벌 떨고 있었으니 그 변화가 더욱더 크게 체감되겠지.
“너희는 여기서 쉬고 있어라.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오마.”
어느 정도 배가 찬 뒤에는 일행을 두고서 자리를 떠났다.
대장은 대장으로서 할 일이 있는 거잖아?
육포야 걸어다니면서 먹어도 상관이 없고.
찌걱, 찌걱.
입에 육포 다섯 개를 한 번에 넣고 씹으며 걸음을 옮긴다. 고작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꿈조차 꿀 수 없던 그런 사치.
다만, 단순히 행복에 젖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편히 쉬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게 이유였고.
‘균열이 안 보여…….’
8층 여명의 땅은 굉장히 좁은 지역이다.
아마 필드의 면적만 본다면 미궁의 전 층을 통틀어 가장 작을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도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균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럴 경우엔… 누가 먼저 들어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
8층은 반드시 한 개의 균열이 열려 있다.
어떤 타입이 열릴지는 랜덤이며, 균열을 완전히 클리어할 시 두 개의 포탈이 열리며 선택이 가능해진다.
이대로 9층으로 향할지.
아니면 다시 8층으로 돌아올지.
어느 쪽을 택하든 클리어가 된 순간, 8층에는 다시 균열이 재생성되며 그 순환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는…….
‘지금 균열에 들어간 게 분명 노아르크 놈들일 거란 건데…….’
과연 놈들은 9층으로 향할까.
아니면 8층으로 복귀를 해 다른 타입의 균열에서 사냥을 이어가길 택할까.
만약 후자라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다.
8층에서 활동할 정도면 원정대 단위일 게 분명하며, 실력도 우리보다 못하진 않을 테니까.
‘아무튼, 왕가에서 급한 이유를 알겠네…….’
직접 8층에 와보니 체감이 된다.
2년 전의 전쟁으로 왕가는 많은 상위 탐험가를 잃었다.
물론 이후 무수한 정책 지원과 비축한 정수 공급, 그리고 은퇴했던 탐험가들의 복귀로 지금은 어느 정도 그 전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이대로면 오히려 더욱 벌어지겠지.’
노아르크는 치트키를 쓰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진입 1일 차부터 7층에서 시작하다니?
곧장 8층으로 올라가 최상위 정수를 캘 수 있단 뜻 아닌가.
이대로 몇 년만 더 지나면 최상위 탐험가 간의 간극이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정수는 못 지우니까, 정수 등급은 높아도 조합은 구리려나?’
음, 대부분은 그럴 거 같다.
애초에 정수 조합을 나처럼 극한까지 효율 높게 짜는 놈은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으니.
90%는 주먹구구식 스펙일 거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중에 이레귤러는 있을 터.
‘……어찌 됐건 지금 생각할 문제가 아니겠지.’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애써 덜어냈다.
일단 왕가 산하의 포지션이긴 하지만, 내가 왕한테 목숨을 바쳐가며 충성할 것도 아니고.
미궁에 들어왔으면, 당장 눈앞의 것만 집중을 해도 모자라다.
그래, 그러니까…….
“5분 뒤 출발할 것이니 채비를 갖춰라!”
단비와도 같던 휴식을 끝마쳤다.
이제 곧 적지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늘어지는 것도 좋지는 않으니까.
“이 지긋지긋한 썰매도 이제 안녕이군!”
썰매, 그리고 보급 상자들을 아공간에 집어넣고, 그간 아공간에 봉인되어 있던 포션 및 스크롤 등의 각종 전투 소모품들을 각 팀에 적절히 배분했다.
그럼 이것으로 여정 재개 준비는 끝.
철컥, 철컥.
출발할 시각이 됐을 때는, 다들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서 대열을 맞추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나라 군대 같더라니.
이제 좀 정예 티가 나기는 하네.
“출발한다!”
8층을 경유해 암흑대륙으로 향하는 과정은 별거 없었다.
그야 균열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8층은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는 안전지대일뿐더러, 애초에 포탈도 동산에서 보일 만큼 가까이에 있거든.
터벅, 터벅.
약 3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목적지.
“여기만 넘으면 암흑대륙이 나오는 거죠?”
저 멀리서도 육안으로 확인을 했지만, 가까이서 봐도 포탈엔 이상이 없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혹시라도 노아르크 놈들이 8층 포탈을 열지 않고 내버려 뒀다면 우리는 그냥 여기서 손가락만 빨아야 했을 테니까.
‘……뭐, 8층에서 사냥은 안 해도 경험치 때문에 누군가 열기는 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지만.’
이내 진형을 유지한 채 내가 먼저 포탈로 향하자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앞이 노아르크의 영역인 만큼 슬슬 긴장이 되는 모양인데…….
“슈이츠.”
막 들어서려는 차, 카이슬란이 말을 걸었다.
“출발 전에 뭐라 한마디 하는 게 어떻소? 그대의 말이면 원정대 사기에도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오.”
음, 별로 안 내키는데.
시간만 아깝기도 하고.
그런 무심한 반응을 내비치자 카이슬란이 기겁을 하며 얼른 말을 덧붙였다.
“자, 잘 생각해 보시오. 역사적인 순간이지 않소? 만약 이번 원정이 성공하고, 승전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그대가 어떤 말을 하건 후대에 남겨져 오래도록 기록될 것이오.”
글쎄, 지금이 역사적인 순간인지는 모르겠고.
활활 타오르는 명예욕을 애써 억누르는 눈빛을 보면, 얘가 나를 부러워하다 못해 미칠 지경인 건 알겠다.
‘안 하고 지나치면 계속 아쉽다고 징징거릴 거 같은데…….’
쩝, 그냥 대충 하고 지나치는 게 낫겠네.
“크흠흠.”
이내 내가 목을 풀자 카이슬란이 근위병처럼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군은 들으시오! 지금 우리는 중대한 갈림길 앞에 서 있소. 실패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 모두 잃을 것인가, 전부 손에 넣을 것인가! 의심되고 불안한 자는 있을 것이오!”
“…….”
“하지만!”
“…….”
“나 멜란드 카이슬란은 우리가 역사에 승자로 기록될 것을 의심치 않소이다!”
“오오오오오!!”
카이슬란의 팀원들은 적극적으로 환성을 터트린 반면, 다른 대원들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쟤가 뭔데 나서는 거야?
딱 이런 느낌.
한데 그 분위기를 직감적으로 눈치챘을까?
“그런 의미에서!!”
“……?”
“모두 잘 들으시오! 왕가에서 부여한 위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전, 슈이츠 공의 말씀이 있을 것이오!”
녀석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내게 차례를 넘겼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야, 나보고 하라더니 제 할 말만 다 해버리고 마이크를 넘겨버리는 건?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기록되고 싶은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심리지만, 뭐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른 거니까. 암흑대륙과 이어진 포탈을 등지고 대원들을 보았다.
카이슬란 때와 달리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한 눈치.
이래서 미국 CEO가 그렇게 SNS에서 어그로를 끄는 건가도 싶다. 어떤 사고를 칠까 걱정이 되어서라도 관심을 가져주잖아.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크흠…….”
목을 한 번 가다듬고서 주변을 쓱 둘러본다.
지난 원정 동안 매일같이 동고동락하며,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대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때마침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길게 말은 안 하겠다!”
그래.
많이 죽이고, 많이 벌자는 말은 그때 이미 한 번 했으니까.
“최대한 많이 살아서 돌아오자!”
오늘은 이 정도면 되겠지.
***
「7층 암흑대륙에 입장했습니다.」
***
암흑대륙의 후반부 필드 ‘용의 심처’.
박물관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에 거대한 척추뼈들이 유적지처럼 널려있고, 바닥도 두개골과 뼛조각으로 가득 찬 평야.
잘그락, 잘그락.
그곳을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나아간다.
“…….”
대원 간의 대화는 없고.
잘그락.
주변을 비추는 빛조차 없다.
물론 그렇다고 시야 확보에는 크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어둠 문제는 마법으로 해결했으니까.
「리어드 애쉬드가 5등급 지원 마법 [통찰]을 시전했습니다.」
무려 5등급에 이르는 지원 마법.
이걸 상시적으로 쓰고 다니면 마력 소모가 막심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적지 한복판에 들어선 것 아닌가.
최대한 조심히 움직여야—
절그럭.
7층 한정으로 나보다 먼저 선두에서 움직이던 아멜리아가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휘익, 휘익.
급하게 손을 움직여 수신호를 보냈다.
근처에 적이 있다는 뜻.
이에 뒤따르던 수뇌부들이 선두로 합류했고, 즉시 ‘음성 제어’ 마법. 그러니까 팀 보이스 마법을 활성화시켰다.
“적의 규모는?”
“15명.”
음, 그럼 딱 소형 클랜 단위네.
하긴 이런 곳을 돌아다니려면 그 정도는 뭉쳐서 다녀야지.
“어떻게 할 거죠? 전투인가요?”
“그야 당연하지 않소. 저들은 왕국을 위협하는 적이오. 당장 칩시다!”
“저도 카이슬란 경 의견에 찬성입니다. 전공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숫자를 줄이며 이동하는 편이 안전할 테니까요.”
팀장의 의견이 순식간에 모이며, 발견한 적을 기습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 역시 대장으로서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자, 그럼 얼른 칩시다.”
“잠깐만요. 기습을 할 거라면 조금 더 준비를 해요. 마법사들과 이능술사들이 한 번에 화력을 모으면 훨씬 더 수월하게 전투할 수 있을 거예요.”
“오, 그것도 그렇구려. 첫 전투인 만큼, 선두엔 우리가 서리다.”
얘네는 또 무슨 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해?
“너희는 기습이 뭔지 모르나?”
“……?”
내가 찬물을 끼얹자 팀장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거, 다들 사람은 많이 죽여본 거 같던데.
먼저 약탈을 시도한 적은 없었나 봐?
“마법사고 뭐고 일단 기다려라.”
“기다려서 뭘 어쩌려는 것이오?”
그야 당연하잖아.
“놈들이 몬스터와 싸울 때, 우리는 그때 그 뒤를 친다.”
이게 PK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