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79)
579화 리턴 (5)
고스트 버스터즈.
20년도 전에 만들어져 향수병에 걸린 수많은 유저들의 안식처가 되어줬던 공간.
그 공간의 끝은 마지막까지도 갑작스러웠다.
[긴급 알림) 곧 서버가 종료됩니다.] [강제로 연결이 끊길 시 혹시 모를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로그인 중인 모든 유저 분들께서는 조속히 로그아웃을 해주시기 바랍니다.]현별이의 쪽지를 받고서 약 5분 정도 지났을 때 떠오른 메시지.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 나니, 안 그래도 세기말 분위기를 뿜어내던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커뮤니티가 닫힐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왜 이렇게 된 거냐는 글부터, 누군가를 찾는 글, 관리가 잘 되던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던 무지성 도배글까지.
[님들 급함. 제발 답변 좀.] [님들 급함. 제발 답변 좀.] [님들 급함. 제발 답변 좀.] [님들 급함. 제발 답변 좀.] [님들 급함. 제발 답변 좀.] [님들 급함. 제발 답변 좀.]대체 뭐가 저리 궁금한 걸까 싶어서 클릭을 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별내용 아니었다.
[안 나가고 버티면 어떻게 됨?]어휴, 그럴 줄 알았지.
그래도 나도 내심 궁금했던 부분인지라, 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꽤 오싹한 이야기다.
로그아웃을 제때 못했다고 백치가 된다니…….
진짜 그렇게까지 될까 싶으면서도 이 공간의 특이성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GM이 친히 남긴 ‘혹시 모를 문제’라는 워딩도 조금 마음에 걸리고 말이지.’
애초에 그게 아니어도 끝까지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기에 마지막으로 게시판 글들이나 한 번 쭉 읽고서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정말로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예’와 ‘아니오’로 나뉜, 이 세계에 처음 진입했던 그때가 떠오르는 선택창.
딸깍, 딸깍.
‘예’를 누름과 동시에 눈앞이 까맣게 물들며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피어난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신비로운 절대자 수사자 가면도, 평범한 직장인 이한수도 아닌.
“…평소보다 6초나 일찍 나왔군.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비요른 얀델로.
***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였을까.
커뮤니티에 다녀오면 늘 아멜리아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할 것 없다고, 몇 번을 말해도 항상 눈을 뜨면 얘가 몰래 와 있다 보니 나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솔직히 말해 고맙지 않은 건 아닌데…….
“아까는 그냥 자러 갈 거라더니? 이제 거짓말까지 하는 거냐?”
“원래는 그러려고 했었다.”
“그런데?”
“잠이 안 와서.”
잠이 안 오기는.
내가 피식 웃으며 쳐다보자 아멜리아가 변명을 하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궁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이내 상체를 일으키자 아멜리아가 물컵을 내주며 다시금 물어왔다.
“그래서,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오늘부로 집회가 폐쇄됐다.”
“폐쇄……?”
일단 냉수로 텁텁한 목을 축인 뒤에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말해주었다.
커뮤니티에 입장하자마자 공지가 떴던 것.
그리고 원탁에서 얻은 폐쇄 관련 정보들까지.
“흐음, 아우릴 가비스 그가 폐쇄에 관여했다라…….”
“표면적인 이유로는 악령들이 나태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데, 그게 진짜 이유일 리는 없겠지. 어때, 너는 뭔가 짚이는 게 있나?”
“글쎄……. 나중에 떠오르면 바로 말해주지.”
쩝, 역시 얘도 짚이는 게 없구나.
하긴 얘는 아우릴 가비스를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아멜리아가 목소리 톤을 바꾸며 나를 응시했다.
“그래서 얀델, 안에서는 또 무슨 일이 있었지?”
“…응?”
“네가 고작 그것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리 없지 않나.”
“그런 표정이라니……?”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자, 아멜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겠지만…….”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시원하게 해라.”
“왠지 괴로워 보이는 표정이다.”
아…….
“혹시 안에서 뭔가 다른 일이 있던 건 아닌가?”
하, 진짜 얘 앞에서는 뭘 숨기질 못하겠네.
어쩌지? 이걸 말해야 돼, 말아야 돼?
잠시 고민이 됐지만, 결국 그냥 솔직하게 안에서 있던 일들을 전부 쭉 말했다.
애초에 숨길 일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하기도 조금 그렇고.
“그래… 안에서 그런 일이 있었군.”
이야기가 끝나기까지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내 개인적인 관점을 배제한 채 철저하게 사건만을 시간순으로 나열했다.
하나 아멜리아는 그것만으로도 날 괴롭히던 게 무엇인지 단박에 눈치챈 듯했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이어진 말을 들어보면.
“너는 지금 네가 미샤 칼스타인에게 화를 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군.”
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내 심리 상태를 아멜리아는 딱 한 줄로 짧고 간결하게 정리해 버렸다.
왠지 속이 다 까발려져 벌거숭이가 된 듯한 기분.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반박의 말이 나왔다.
“그렇게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미샤만을 말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전부를 포함한 복합적인 문제—.”
“하지만 그 문제의 핵심은 미샤 칼스타인이겠지.”
“…….”
“내가 틀렸나?”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자니, 아멜리아가 차분하게 입을 열어 질문을 해왔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겠나?”
어느 날을 말하는 건지 이해를 돕는 수식어는 필요 없었다.
내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던 그날이겠지.
미샤가 누구랑도 대화하지 않으며 혼자 구석에 박혀 있기 시작한 게 그날부터였으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되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일의 시작점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소생의 돌에 대해서 알고 있나?”
미샤와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해야 했다. 그야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으니까.
“어느 정도는.”
“미샤 칼스타인은 우리 클랜으로 돌아오기 전에 이백호에게 소생의 돌을 받았다. 그리고 이걸 알게 된 내가 이에 대해 캐물었다.”
“그리고?”
“소생의 돌을 사용 시, 대상이 생전 기억을 전부 잃는다는 걸 알았냐고 물었고, 몰랐다는 대답을 들었지. 그래서 알겠다고 한 뒤, 이만 나가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뒤에는 어떻게 됐지?”
나는 한숨을 토해내듯 답하였다.
“미샤 칼스타인은 나가지 않았다. 화를 내도 좋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지. 그래서 나는 그냥 솔직히 말했다.”
“…….”
“네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오늘 얘기를 듣고 나서도 뭔가 더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고.”
그 말을 끝으로 잠시간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끝이다.”
미샤 칼스타인은 말없이 방을 나섰고, 그 이후로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이번 이야기의 전말이다.
“그랬군.”
이야기를 다 들은 아멜리아는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해왔다.
“미샤 칼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숨긴 건 어째서지?”
글쎄… 모르겠다. 왜일까.
어째서 소생의 돌에 관한 이야기를 아멜리아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을까.
모르쇠로 넘어가고도 싶지만, 사실 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미샤 칼스타인이 고립될 테니까.”
안 그래도 우리 클랜에서 미샤의 입지는 위태롭다.
에르웬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미샤를 보고 있고, 베르실은 아예 배신자 후보로 예의주시하는 상황.
심지어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회성이 사라진 미샤는 동료 사이였던 아이나르와도 친하게 지내지 못하며 겉돌고 있는 와중 아닌가.
여기서 이백호의 지시를 받은 정황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더 겉돌게 되겠지.’
어쩌면 끝내 제 발로 떠나가는 결말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나 자신이 우습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점점 더 내 상태에 대해 알기 어려워지던 그때였다.
아멜리아가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서였군. 네가 미샤 칼스타인에게 ‘어긋난 신뢰’를 쓰지 못한 건.”
“…….”
“분명 숨기는 게 더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을 테니까.”
정곡이었다.
참으로 모순적인 얘기지만, 미샤를 믿지 못했기에 나는 그 물건을 쓰지 못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거다.
상자를 여는 순간 이미 결과가 정해지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돼버린다.
그래서 일단은 상자를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그런 한심한 나를 보며 아멜리아는 말했다.
“너답다면 너답군.”
비난처럼도 들리는 말이었으나, 아멜리아의 눈빛은 온화했다.
“비요른 얀델. 날이 밝으면 ‘어긋난 신뢰’를 갖고 칼스타인에게 가서 숨기고 있는 게 더 있는지를 물어라. 그리고 숨긴 게 없다고 한다면 예전처럼 동료로 대해줘라.”
“만약, 내게 숨기는 게 더 있었다면?”
“글쎄, 그땐 새로 고민을 해봐야겠지.”
“그건… 좀 무책임한 조언 아니냐?”
“하지만 언제까지고 미뤄둘 수 없다는 건 너도 알지 않나?”
뭐, 그 말이 맞기는 하지.
답답함에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니, 아멜리아가 위로하듯 말했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을 해라.”
“…….”
“비요른 얀델. 너답게.”
나답게라…….
얘가 보는 비요른 얀델은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피어나는 한편으로 나는 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냐?”
“그냥 평소보다 더 어른스럽게 보여서?”
어떠한 필터링도 없이 뱉은 진심.
“윽……?”
어째선지 아멜리아가 명치를 맞은 사람처럼 움찔했다.
그리고 나를 잠시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칭찬의 뜻으로 알아듣지.”
어… 이 말이 다른 뜻으로 들릴 수가 있나?
***
일단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나는 곧장 촌장에게 찾아가 미샤에게 사용할 ‘어긋난 신뢰’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고민이 됐다.
‘이걸 쓰는 게 맞을까…….’
미샤가 뭘 감추고 있을지가 걱정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동료에게 이런 물건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야 이번에는 이걸로 넘어간다 치면 다음은?
이번 일을 시작으로 뭔가 의심스러울 때마다 ‘어긋난 신뢰’에 의지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관계를 동료라고 할 수 있나?
그런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건 이번이 끝.’
후일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일단 그렇게 다짐을 하고 나니 조금이나마 망설임이 덜해졌다.
그래, 그러니까…….
똑똑똑.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던 문을 두드린다.
반응은 없었다. 아직 자고 있는 건 아닌 듯한데.
“나다, 미샤. 잠시 얘기 좀 하자.”
다시금 문을 두드리며 말을 전하자, 머지않아 방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에? 어? 비, 비요른? 자, 잠시만 기다려, 라…….”
결국 문이 열린 건 거진 5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이른 시간에…….”
폐인처럼 지낸다는 얘기와 다르게 생각보다 훨씬 더 깔끔한 모습. 씻고 있던 중이었는지, 머리에는 미처 말리지 못한 물기가 남아 있다.
“잠시 들어가도 되나?”
“으응… 조금 지저분하긴 한데…….”
“괜찮다.”
이내 나는 닫혀 있던 문 너머로 성큼성큼 발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어긋난 신뢰를 곧장 꺼내 들었다.
“그건…….”
곧장 물건의 정체를 알아본 미샤의 표정은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 표정은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또한 동시에 무언가 실망한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 두려워 하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얘기를 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켜고 싶은데, 허락해 줄 수 있나?”
대답은 잠시간의 텀을 두고서 돌아왔다.
정확히는 대답이 아니라 되물음이었지만.
“그걸 켜고서 전부 대답해주면…….”
“…….”
“…그럼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예전처럼?”
답하기 전에 그런 궁금증이 피어났다.
돌아가고 싶다는 건 과연 어느 때를 말하는 걸까.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듯싶던 그때일까, 아니면 단순히 동료 관계를 뜻하는 것일까.
뭐, 분명 후자일 것이다.
분명하게 선을 긋고 밀어낸 건 미샤였으니.
“어쩌면은.”
나는 애매하게나마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한 가지 전제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정말로 미샤가 더 이상 내게 숨기는 것이 없다면.
그때는 정말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으로 머리 아플 일이 없던 예전으로.
“그럼… 됐어.”
이내 미샤가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캐릭터가 [어긋난 신뢰]를 사용하였습니다.」
항상 느끼는 건데, 이름 한번 참 잘 지었단 말이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