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06)
606화 군단장 (3)
자고로, 군단장이란 항상 바빠야 한다.
그야 군단장에겐 변명의 기회가 없으니까.
사람이 죽든, 계획이 어그러지든. 뭔가 잘못되면 다 군단장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화관은 얘가 돌아오면 알 수 있을 테고…….’
레이븐에게 화관 조사를 맡긴 뒤, 곧바로 조직도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딸깍, 딸깍-
현재 탐사군의 구성 방식은 간단하다.
넷으로 크게 조를 나눈 다음에 그거로 끝.
신관도, 마법사도, 기사도 적절하게 각조에 섞어 배치했기에 전력은 비등하며 해낼 수 있는 역할에도 큰 차이가 없다.
조금만 과장하자면, 대충 4등분한 다음 각자 알아서 하라는 느낌에 가깝다.
아, 물론 이 구성에도 장점이 있기는 하다.
급할 때 하나의 조만 따로 운용할 수도 있고, 그 조 하나가 전멸해도 본대 운용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데…….
‘너무 군대식이란 말이지.’
우리가 있는 이곳은 미궁이다.
희생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희생을 전제로 하고서 인력 배치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까지 손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지.’
마음 같아선 네 개의 조를 하나로 묶은 다음 하나하나 내가 지정을 해주고 싶지만, 그러려면 바꿔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릴 테고.
숙련되기 전까지 실수도 거듭 발생할 터.
‘…원래 계획대로 직급 체계만 제대로 하자.’
가장 효율적으로 하급자를 다루는 방식은 적당한 책임자를 위에 앉히고 책임자를 갈구는 것이다.
고대 군대에서부터 내려온 일명 내리갈굼.
따라서, 기존 수뇌부 회의 멤버들을 전부 다 서류에서 삭제한 뒤 처음부터 리빌딩했다.
마법사, 신관, 원딜, 근딜, 기사, 탱커, 지원, 비전투직.
조와 무관하게 모든 인원을 클래스별로 구분한 뒤 거기에 책임자 한 명을 뽑고 적당한 직책을 부여한다.
‘궁정 마법사, 성녀, 신궁, 대전사, 기사단장…….’
직책명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충 지었다.
중요한 건 이름 같은 게 아니니까.
‘후… 그럼 여기 앉힐 사람들은 다 정했고.’
직업별 총 책임자를 모두 정한 뒤에는 그 아래의 하급자 직책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마법사에선 연구, 조사, 전투.
기사 파트에서는 전투, 행정으로 나눠 파트장을 만드는 식인데…….
‘레이븐 얘는 조사랑 연구 중에 뭐를 더 좋아하려나?’
음, 이건 나중에 물어보고 정하든가 해야—.
“비요른? 많이 바뻐?”
“미샤? 여긴 웬일이냐?”
“그냥… 요즘 항상 바빠 보여서. 너 좋아하는 과일차 좀 타왔는데…….”
오, 안 그래도 당이 떨어지는 거 같았는데.
꿀꺽.
한 입에 반 정도를 털어넣은 뒤 미샤를 보자 뭔가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긴, 이렇게 뇌물까지 받고 입만 싹 닫는 건 좀 그렇지.
“잘 마셨다. 미샤, 보답으로 네게 직책을 주마.”
“…엥? 나는 그런 거 필요 없는—.”
“이제부터 너는 비서장이다. 네 임무는 사령관의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한 모든 것이며, 해당 임무에 한해 자의적인 판단을 허가하겠다.”
“어……? 그러니까 다음에도 또 가져다 달라는 거 맞지?”
뭐, 해석하자면 그렇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직책을 사양하려던 미샤가 배시시 웃었다.
“뭐,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
고양이 비서가 생겼다.
***
직급 체계 개편이 끝난 후, 간부 회의를 열었다.
중요한 회의 안건이 있는 건 아니고, 서로 바뀐 얼굴에 적응이나 하라고 연 회의였다.
이 체제로 잘 굴러가는지도 좀 궁금했고.
아, 물론 그렇다고 회의 주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석상과 포탈의 조사는 얼마나 끝났지?”
내가 막사에 처박혀 조직을 뜯어고치는 동안에도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석실을 조사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성과를 보고받는 자리였다.
“아,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소이다.”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마법사 파트의 총책임자 직위를 지닌 가휜 베실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좀 괜찮아졌나?”
“며칠 쉬어서 이제는 멀쩡하오.”
확실히… 며칠 전까지는 다리를 아직 절뚝이는 거 같더니 오늘은 잘 걷더라.
“그렇다니 다행이군. 아무튼, 이제 말해봐라. 궁정 마법사. 석실 조사는 얼마나 끝났지?”
“그… 보고를 올리기 전에 하나만.”
가휜 베실러스가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내가 왜 궁정 마법사인 것이오?”
아, 그거.
“애초에 여기는 왕궁도 아니지 않소?”
“그냥 직책명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라. 부를 이름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나?”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그런 이름으로…….”
가휜이 불만스레 중얼거렸으나, 나는 바꿔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왜 저렇게 싫어하는지도 모르겠고.
궁정 마법사.
뒤로 구르면서 들어도 꽤 멋진 직책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가휜에게 불평은 그만하고 보고나 하라는 눈빛을 쏘아대던 때였다.
흰색 법복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점잖게 말했다.
“베실러스 경 남작의 말대로일세. 이름은 이름일 뿐, 중요한 건 그 본질 아니겠는가?”
“…….”
“그리고 궁정 마법사가 성녀보단 낫지 않은가? 껄껄.”
탐사군의 성녀 직책에 앉게 된 토베라 교의 대주교였다.
“…….”
딱 봐도 본인보다 훨씬 사정이 좋지 않은 성녀가 쿨하게 넘기자, 궁정 마법사도 더 이상 투정 부릴 수 없었는지 보고가 시작됐다.
“보고드리겠소. 우선 석실 내에서 추가로 발견된 물품은 없소. 석상 세 개와 포탈 하나가 전부요.”
“그리고?”
“포탈의 경우에는 이전에 보고드린 대로요.”
“원래 있던 곳과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확단하긴 이르다는?”
“그렇소. 포탈의 성질은 분석해도, 결국 그 너머 좌표를 우리가 알아낼 수는 없으니 말이오. 다만, 그 대신 석상 쪽에 대해서 알아낸 게 꽤 있소.”
“말해봐라.”
가휜 베실러스가 대형 피규어 정도 되는 사이즈의 석상 세 개를 탁자 위에 올렸다.
석상 중 하나는 색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연구 중에 석상이 한 번 사용됐소.”
“…사용되다니?”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석상은 이곳에 있던 수호자 석상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소. 사용 시 균열을 열 수가 있지.”
“수호자만 등장하는 반쪽짜리 균열 말이냐?”
“그렇소. 여기 이 홈이 보이시오? 균열석을 이 홈 안에 넣을 시 석상이 사용되며 약 30분간 포탈이 열리오.”
“들어가 봤나?”
“포탈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 30분이 지난 뒤 사라졌기에 애석하게도 안을 확인하진 못했소.”
허… 그럼 석상 하나를 다 날렸다는 건가?
순간 아쉬움이 확 밀려들었지만, 이어진 가휜의 설명에 좀 나아졌다.
“이 석상은 일회성이 아닌 거 같소. 여기 이 검게 물든 색상 보이시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 아래에서부터 색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소.”
오, 쿨타임이 있는 식의 아이템인가?
“게다가 포탈에만 들어가지 못했을 뿐, 밖에서 알아낸 사실들이 여럿 있소. 이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가설이지만…….”
이후로는 어려운 용어가 곁들여진 설명이었다.
“그러한 연구 끝에 알 수 있었소. 이 석상에서 열린 포탈의 성질은 ‘핏빛성채’의 좌표 파장과 아주 흡사했던 것인데…….”
길고 어렵기만 한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석상을 작동시킬 때 사용했던 균열석은 1층 균열에서 획득한 9등급 균열석이었소. 그리고 우리는 이걸 우연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중이오.”
쉽게 말해, 석상에 바치는 균열석 등급에 따라 수호자 등급도 정해진다는 거다.
뭐, 아직은 다 추측이긴 하지만.
“부사령관, 현재 물자 중에 균열석이 더 있나?”
이후 우리가 가진 균열석도 체크를 해봤지만, 애석하게도 6등급 이하로 몇 개 가지고 있는 게 전부였다.
물론 이해 안 될 건 아니었다.
균열석을 갖고 미궁에 들어올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 저만큼이라도 갖고 있었단 것만으로도 왕가가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증명하는 거였다.
‘균열 생성기 하위 호환인 셈인가…….’
참고로 넘버스 아이템 중에도 이 석상과 비슷한 게 하나 있다.
No.18 균열 생성기.
이 아이템도 균열석을 넣으면 균열을 열어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9등급 균열석 10개 정도를 박으면 사용할 수 있고, 균열 생성 시 해당 층의 균열이 무작위로 열린다.
해당 층까지 가야 한단 단점이 있기는 해도, 상위 균열석이 아니어도 물량으로 때려박을 수 있단 점. 그리고 진짜 균열에 들어간단 점에서 상위 호환이라 볼 수 있었다.
‘뭐, 이 석상도 진짜 균열로 가는 포탈이 열리는 걸 수도 있지만…….’
다만 석상의 형태인 것으로 추정컨대, 이전의 수호자 석상들처럼 보스 하나만 달랑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군. 고생했다. 용도는 대강 알아낸 듯하니 석상들은 내가 보관하고 있지.”
이후로는 석상을 내 뒷주머니에 고이 모신 뒤, 다른 보고들도 확인했다.
“소울이터의 정수는?”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소이다. 결국 정수라는 게 누군가 흡수하지 않으면 연구할 거리가 별로 없다보니…….”
“연구를 하려면 누구 한 명에게 먹여봐야 한단 뜻이군. 알겠다. 이건 내가 좀 더 고민해보지.”
“그러시오.”
“슬슬 배가 고프군. 연구부장을 뺀 나머지는 모두 나가서 쉬어라.”
이쯤에서 회의를 끝내고 연구부장만을 남긴 채 모두 내보냈다.
“얀델 씨가 저만 따로 남긴 건 역시—.”
“얀델 씨가 아니라 사령관님.”
아직 공적인 자리였으나, 애석하게도 연구부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하던 말을 이었다.
“역시 그 물건에 대해 얼마나 알아냈는지가 궁금해서겠죠?”
“그래. 좀 알아냈나?”
내 말에 탐사군의 연구부장, 레이븐은 일단 음성 제어 마법부터 시전했다.
“사실 상당히 조사가 많이 끝났어요.”
“오, 정말이냐?”
“일단 이 화관, 넘버스 아이템이에요.”
“넘버스 아이템?”
1번부터 9,999번까지 전부 다 외우고 있는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넘버스 아이템 중 이런 화관은 없다.
그리고 레이븐도 이걸 모르지 않을 텐데…….
“자세히 말해봐라.”
“처음 들어오는 계층이다보니, 탐사군 내에 연구용 장비가 꽤 좋아요.”
“그래서?”
“성질 분석 결과, 이 화관은 넘버스 아이템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그대로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이 화관을 넘버스 아이템이라고 정의하기로 했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번호가 없지 않냐.”
“그건 그렇죠. 그래서, 제가 적당해 보이는 명칭을 붙여봤는데…….”
“뭘 부끄러워하고 있냐. 어서 말해봐라.”
“시크릿 넘버스… 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레이븐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얌전한 이름.
“왠지 지하 1층을 탐사하다 보면 이렇게 번호가 알려지지 않은 넘버스 아이템이 더 발견될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괜찮군.”
“어, 그럼 정식 명칭으로 해도 되는 거죠?”
“그래라.”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븐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아무래도 이후 ‘시크릿 넘버스’라는 고유 명사가 널리 쓰이는 미래를 상상한 거 같다.
거, 이름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이름은 됐으니,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나 말해봐라.”
설마 이름만 고민하다가 온 건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다행히 레이븐의 학구심은 명예욕만큼이나 진짜였다.
“확실하게 검증된 것들 위주로만 말씀드릴게요. 아직 밝혀내지 못한 능력도 있을 수 있단 점 염두에 두고 들어주세요.”
“알았으니까, 얼른 해라.”
“우선 이 화관은 착용 시에 정신 계열의 모든 해로운 효과에 면역이 돼요.”
“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능이 좋은 아이템이다.
투구 하나에 정신 면역 내성이라니?
상위 레이드에 정신 계열 스탯이나 장비가 필요한 일이 꽤 있기에 앞으로도 계속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만한 효과다.
‘내가 끼고 다니면 안 되나……?’
머리에 화관을 쓴 거대 바바리안을 상상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게이머란 무릇 외형보다는 성능을 중시해야 하는 법인데…….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이어진 설명에 나는 화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착용 시 신성력에 면역이 돼요. 신성 주문에 피해도 받지 않지만, 치유 주문 덕도 볼 수 없죠. 그 외의 이로운 축복 주문들도 당연히 무용지물이 되고요.”
“아…….”
어쩐지 핸디캡이 하나 붙었을 거 같더라니.
‘나는 못 쓰겠네.’
주기적으로 힐을 받아야 하는 탱커 특성상, 내가 쓸 수는 없는 투구다.
“알아낸 건 여기까지예요. 사용 효과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없을 가능성이 더 커보이기는 하지만요.”
“고생했다.”
“혹시 모르니 일단은 제가 가져가서 더 연구를 해볼게요. 괜찮죠?”
“물론이다. 아예 네가 이름까지 붙여봐라. 넘버스 아이템이면 이름도 있어야지.”
“………정말로 제가 지어도 돼요?”
“물론이다.”
하급자의 의욕을 증진시키는 것도 상급자의 역할 중 하나 아니겠는가.
“아, 맞다. 얀델 씨.”
“사령관님이라니까.”
“그 석실에서 나온 석상 세 개 말인데요. 균열석을 통해 작동이 되고, 그 균열석 등급에 맞는 균열이 열릴 가능성이 높댔잖아요?”
“그런데?”
이내 레이븐이 균열석 하나를 꺼냈다.
몇 등급짜리인진 모르겠지만, 척 보기에도 꽤 크기가 컸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변종 균열에서 뱀파이어 수호자를 처치하고 얻었던 균열석이에요.”
“아, 이게 그때 그거군?”
“네. 팔기도 그렇고 일단 계속해서 갖고 있던 건데…….”
“그래서?”
레이븐이 진심으로 궁금하단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걸 그 석상에 넣으면 어떤 균열이 열리게 되는 걸까요?”
어… 글쎄.
“…한번 해볼까?”
이건 나도 좀 많이 궁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