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07)
607화 군단장 (4)
한번 해보자는 나의 제안에 잠시간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 시간 동안 진심으로 혹한 눈빛으로 나를 보던 레이븐은 애써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그래도 그냥 바로 실험해 보기는 그렇죠?”
“미궁에서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투성이다.”
“그건 그렇지만요. 꽤 아끼는 물건이라……. 만약 별 쓸모없이 사라지게 되면 아쉬울 거 같아서요.”
균열석의 원주인이 저렇게 말하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설령 정말로 뭔가 히든피스가 발동된다고 해도 문제고.
우기가 끝나는 대로 탐사를 이어갈 생각인데, 시간을 많이 뺏기면 일정에 지장이 생긴다.
‘안 그래도 다들 여기에 갇혀 있느라 알게 모르게 예민해지기도 했고 말이지…….’
따라서 캠보르미어의 균열석으로 석상을 활성화시켜 보겠다는 계획은 일단 보류.
“그럼 가볼게요!”
이후 레이븐은 화관에 붙일 이름을 생각해 본다며 떠났고, 그렇게 막사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았다.
석상과 균열석에 대한 상념은 아니었다.
‘역시 공교롭단 말이지.’
레이븐에게 들은 화관의 능력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그도 그럴 게, 카루이의 사제로 전직한 대주교를 죽이고 얻은 아이템에 붙은 효과가 정신 계열 면역이라니?
‘암만 봐도 그 챕터에서 쓰라고 있는 아이템 같은데…….’
지난번에 어쩔 수 없이 확인하고 나오지 못한 붉은색 포탈이 마음에 걸린다.
그 너머엔 무엇이 있었을까?
이 화관이 있으면 다음에 도전할 때 그 너머까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재도전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바로 재도전은 안 되겠지?’
일단 균열은 클리어 판정이 되었다.
균열을 열기 위한 조건이던 5층 이하의 수호자 석상들 역시 이제는 손을 갖다 대도 포탈이 열리지 않는 상황.
당장은 석실의 포탈을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쿨타임이 얼마나 되려나…….’
글쎄, 이것도 일단 나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그 즉시 재도전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쿨타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겠지.
온갖 것이 미지로 뒤덮인 지하 1층을 감안하면 1회성 균열이면 영영 다시 못 들어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스윽.
그렇게 한참이나 텅 빈 막사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아공간에서 배낭 하나를 꺼냈다.
균열에 들어가기 전에 촌장에게 받았던 배낭.
촌장은 이 배낭 안에 수첩 하나를 넣어놨으며, 여기에 내 의문의 해답을 모두 적어 두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서 일처리가 끝나자마자 전부 읽었다.
하지만…….
‘아니, 그냥 속 시원하게 전부 말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수첩은 보면 볼수록 미스터리가 커지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도서관섬에서 뭔가 근처에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면 하루 정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게. 그러면 어지럽혀져 있던 책장이 모두 정리되어 있을 걸세.]이건 햄식이 얘기일 테고.
이건 거인섬에 있던 그 차원 비석 얘기인 거 같다.
다만, 여기 아래로는 전부 다 의미심장하다.
[거인섬을 탐색 중 갑작스레 땅에 커다란 그늘이 진다면 절대 위를 올려다보지 말게. 잠시 기다리면 그늘이 사라질 거고, 자네들은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걸세.] [자네가 나무섬이라 부르던 그 섬의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네. 만약 무언가를 보거나, 혹은 소리가 들렸다면 안대와 귀마개를 쓰고 숨을 참게. 그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걸세.] [우기 중에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한다면 즉시 여정을 멈추고 숨을 곳을 찾게. 어느 섬이든 숨을 곳이 하나쯤은 있을 걸세. 다만, 자네가 이곳에 왔을 때 처음 눈을 떴던 그 바위섬으로는 가지 말게. 그 섬에만 유일하게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 아닐세.] [황금책은 자네 목표를 이루는 데 딱히 도움되지 않을 걸세.] [우기가 아닌 시기에 하늘을 달리는 말을 본다면 섣불리 행동하지 말게. 먼저 공격하거나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걸세.]이쯤 되면 정보 전달이 아니라 괴담 퍼뜨리기가 목적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적힌 항목은 한결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차원 붕괴가 진행되어 계층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면, 우리 마을이 있던 섬으로 향하게. 지상으로 올라가는 포탈이 열려 있을 걸세.]차원 붕괴가 발생 시, 지하 1층을 탈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써 유추할 수 있는 한 가지.
‘촌장, 얘도 이 방법 말고는 탈출 방법을 모르는 거 같은데?’
마냥 차원 붕괴를 기다린다.
이것이 촌장이 알고 있는 유일한 탈출법이다.
그럼 우리랑 같이 탈출하려 하지 않고 혼자 [이교 제단]을 활용해 이 계층을 떠난 것도 납득이 된다.
촌장도 내 탈출 시기에 대해선 알지 못하니까.
만약 내가 버티고 버티다 차원 붕괴가 일어난 다음에야 탈출하게 된다면,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미지수인 것인데…….
‘무지개섬 얘기는 없네.’
수첩을 몇 번이나 정독하고, 촌장이 주고 간 배낭도 샅샅이 뒤져봤으나 무지개섬에 대해 언급이 된 무언가는 없었다.
내 생각엔 무지개섬이 탈출의 열쇠일 거 같은데.
‘알면서 안 적은 걸까. 몰라서 안 적은 걸까…….’
작금의 나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전무했다.
이미 한참 전에 도시에서 깨어났을 촌장의 멱살을 잡고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접 가보면 되겠지.’
결국엔 탐사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탐험가답게.
***
우기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포탈을 타고서 밖으로 나왔다.
바다 한복판에 우뚝 솟은 석문.
이곳에 오며 타고 왔던 조각배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나오자마자 은빛 바다에 풍덩 빠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하지만…….
‘아후, 진짜 번거롭게.’
여러 귀찮은 과정을 이어간 끝에 우리 탐사군 전원은 무사히 소환된 선박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 하나.
저 석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게 아니었다.
“문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원이 포탈에서 튀어나온 순간, 거대한 석문이 닫히며 바다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역시 바로 재도전은 못 하나보네.’
조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결국 쿨타임이 다 차면 물 위로 올라올 것이다.
저게 1회성 콘텐츠인 것만 아니라면.
“남작님, 출항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내 뱃머리 앞에서 석문이 가라앉는 걸 지켜보던 나는 주변을 쓱 훑어봤다.
내 배를 호위하듯 주변에 떠 있는 세 척의 군함.
“출항 깃발을 올려라!”
내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망루 위로 깃발이 올라갔다.
솨아아아아-!
은빛 물결을 헤치며 먼저 출발한 우리를 뒤따라 항해하는 군함 세 척.
인생사 새옹지마라던가?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저 군함들을 뒤에서 졸졸 따라가는 형국이었는데.
“비요른, 출출하지 않아?”
“아, 고맙다.”
이내 비서장 미샤가 챙겨준 간식거리를 씹으며 돌아다니고 있자니 아멜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뭐지 그건?”
“이거? 비서장이 준 간식이다.”
“……그 웃기지도 않은 직책 놀이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 거지?”
어…….
그렇게까지 말하면 아무리 나라도 좀 상처인데.
“혹시 수색대장 직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러는 건가?”
참고로 수색대장은 척후 임무에 제격인 인재들을 총괄 관리하는 직책이다.
명색이 개국 공신이라 볼 수 있으니 없던 자리를 하나 만들어서 준 것인데…….
“하아…….”
내 질문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할 일을 하러 사라질 뿐이었다.
‘할 게 없네…….’
이후로도 한참 동안 순찰을 했으나 딱히 내가 껴들거나 할 일이 있지는 않았고, 결국 방에서 쉬거나 동료들과 노가리를 까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나 더 흘렀을까.
“혼자서만 잠깐 다녀오겠다.”
마침내 도서관섬에 도착한 나는 혼자 배에서 내려 섬 아래로 향했다.
우리가 어질렀던 책들은 어느새 전부 다 정리가 된 상태였고, 내가 걷는 소리조차 몇 번이나 메아리가 칠 만큼 소리가 울렸다.
‘조용하네.’
일단 햄식이의 기척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는다.
집에서 자고 있는 건가?
“햄식아—!!”
이내 크게 소리쳐 부르자 머지않아 책장 쪽에서 복슬복슬한 생명체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어, 뭐야. 거기 있었냐? 왜 집에 안 있고?”
[……정말 몰라서 묻는 말이냐!!]아, 맞다.우리가 떠나기 전에 개박살을 내놨지.
“……미안.”
[하! 그래서 네가 여긴 웬일이냐? 그것도 혼자서만.]“잠깐, 너 보려고 왔다. 동료들은 위에서 대기 중이니 이리 와봐라.”
[…….]내 방문이 갑작스러웠을까?
햄식이는 살짝 경계하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날… 보려고 왔다고?]“그래.”
[어째서?]그야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균열에서 얘를 봤으니까.
[내 이름은 햄식이 따위가—!]동굴에서 만났던, 본인이 햄식이인 줄도 모르던 또다른 햄식이.
일명 제2의 햄식을 만나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햄식이에게는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설령 본인이 알지 못할지라도.
“섭섭하게! 친구를 만나러 오는데 이유가 필요하냐?”
하지만 일단 속내를 감춘 채 호탕하게 웃으며 햄식이에게 다가가자, 햄식이는 더욱더 경계하는 듯한 태세를 갖췄다.
[거짓말 마라!]“……?”
[네가 그냥 왔을 리 없지 않냐! 분명 뭔가 목적이 있어서겠지!]후, 벌써 사람 물이 이만큼이나 들어가지고.
예전에 순진하던 햄식일 때가 편했는데.
이내 나는 피식 웃으며 솔직히 말했다.
“그래, 목적이 있긴 하다.”
[흥! 그럴 줄 알았—.]“햄식아, 나랑 같이 여길 떠나자.”
[……뭐?]햄식이는 크게 놀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후, 이럴 줄 알고 적당히 기름칠 좀 하고 밝히려 한 건데.
[같이 떠나자니… 그게 무슨 소리냐?]“말 그대로다. 여기에 있어 봤자 그냥 하염없이 책이나 정리하고 있을 거 아니냐? 그마저도 우리가 없으면 정리할 일도 없을 테고.”
[…….]이 부분이 역린과도 같았을까.햄식이는 어딘가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바뀌기 위해서는 언제나 충격이 필요한 법.
“이쯤 하면 참 오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나랑 같이 여기를 나가자.”
[…나가면 뭐가 달라지는데?]“많은 것이.”
햄식이는 그런 내 말에도 딱히 실감이 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줬다.
“일단 밖에 뭐가 있는지 네 눈으로 볼 수 있을 거다. 애초에 넌 여기서 그토록 오래 있었으면서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지 않냐.”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드넓게 펼쳐진 은빛 바다. 미지의 섬……. 그런 게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딱 보니까 진짜 둘러대는 게 아니라 진심인 거 같은데…….
“그럼 이건 어떠냐? 너 기억을 전부 잊었잖아? 그래서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고. 어쩌면 밖을 돌아다니다보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오, 대답이 느린 걸 보니 이건 좀 땡기는 건가?
햄식이의 타당한 반박에 나는 당당하게 답했다.
“너는 어떠냐? 그런 방법이 절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냐?”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햄식이는 한참이나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억지야.]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생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단 건 변하지 않는다.”
이는 내 인생의 철학이기도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0과 1은 다르다.
처음엔 비슷해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며 그 격차는 어마무시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햄식이는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후, 왠지 여기서 조금만 등을 떠밀어주면 될 것만 같은데…….’
[하나만.]“……?”
[하나만 답해라. 왜 나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 거냐?]아오, 진짜 집요하네.
속으로 한숨을 내쉰 나는 햄식이가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보고만 있냐?”
“친구가 궁상맞게 집에만 처박혀 있는 걸.”
내가 햄식이를 데리고 나가려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새 정이라도 들었는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
햄식이의 대답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왔다.
[가겠다. 너를 따라서 밖으로.]아무래도 이후에 이어졌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여기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내 설득이 통한 모양.
“잘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근처에 있으면 문제가 생길 거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끔찍하게 보니까.]“어차피 모습이야 숨기면 되지 않냐? 너는 평소에 선실에만 숨어 있어라.”
[그럼 달라진 게 없지 않나?]“숨어 있는 장소?”
[…….]“어차피 이제 집도 잃었지 않냐. 선실엔 침대도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푹신한.”
“뭘 망설이냐! 결정도 끝났으니 얼른 가자! 이럴 시간 없으니까!”
혹여라도 햄식이가 결정을 무를까, 나는 서둘러 햄식이를 데리고 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전부 안에 들어가 있으라 해라.”
갑판을 모두 비운 뒤,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으며 햄식이를 내 선실에 들여보냈다.
“어떠냐? 괜찮지? 여기 창문도 있어서 바다도 잘 보일 거다.”
[흥. 저게 뭐라고? 이미 몇 번이나 봤던 거다.]“오, 혼자서 몇 번 올라오긴 했었나 보네? 바깥 세상엔 관심도 없는 듯하더니.”
[…….]“아무튼, 나는 이따가 다시 오마. 밖에 애들도 이제 나와도 된다고 해야 하고, 출발도 해야 해서.”
[…알아서 해라.]이후 햄식이를 내 방에 숨겨둔 뒤 밖으로 나와 인원 배치를 원상복귀 시켰다.
그리고…….
“출항하라!!”
다시금 여정을 재개했다.
목적지는 현 지점으로부터 약 한 달쯤 걸리는 거리에 자리한 미지의 무지개섬.
솨아아아아아-!
이를 향해 네 척의 배가 물살을 해치며 쭉쭉 나아가던 어느 때였다.
“……어어?”
출항한 지 얼마나 됐다고 돌연 갑판 위에 소란이 일었다.
갑판에 나가보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말?”
“그렇죠? 아무리 봐도 말처럼 생겼죠?”
……말?
얼른 고개를 드니 정말로 하얗게 빛나는 말의 형상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서둘러 촌장의 괴담 수첩을 꺼냈다.
[우기가 아닌 시기에 하늘을 달리는 말을 본다면 섣불리 행동하지 말게. 먼저 공격하거나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걸세.]설마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Any updates? I know it’s on a break but still some more chapters r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