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71)
671화 별무덤 (2)
어둠의 군주 데드레드.
이 녀석의 강력함을 설명하는 것에는 딱 한 줄이면 충분하다.
놈은 제7계층, 암흑대륙의 군주다.
뭐, 7계층의 경우엔 특이하게도 군주가 둘이나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강력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이놈이 저걸 대체 어떻게 먹은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납득이 안 된다.
정수로 찍어누르는 게 가능한 치트 버전과 달리, 오리지널 난이도에선 ‘그 방법’을 알지 못하면 사실상 공략이 불가능하다.
한데 그동안 내가 이백호를 과소평가했던 걸까?
어쩌면 이 녀석은 의외로 대단한 녀석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단히 운이 좋았거나.’
데드레드 정수를 얻게 된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추측을 해보자면 아마 저 정수를 얻은 것은 아주 오래전일 확률이 높다.
그도 그럴 게…….
‘마지막으로 소환된 게 거진 8년 전이었으니까.’
늘 탐험가들로 가득한 미궁 특성상, 계층군주를 몰래 소환하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고로, 8년 이내에는 얻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
아, 물론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말이다.
‘왕가라면 계층정수도 하나쯤 시험관에 보관하고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중간에 어떠한 거래를 통해 그것을 이백호가 얻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정황상 그 가능성은 좀 낮아보이지만.
‘……그날 정말 소환이 됐던 거구나.’
하렘을 꿈꾸며 미궁 탐사를 해나가던 이백호가 동료의 배신으로 정체가 탄로났던 것.
놀랍게도 그 시기가 딱 그때다.
그래서 나는 왕가에서 이백호에 관한 사건을 은폐하려고 계층군주 핑계를 댄 줄 알았다.
미궁에서 탐험가들이 엄청 죽어나갔다 들었거든.
‘분명 소환한 것도 이백호였겠지.’
한 번 더 궁예질을 해보자면, 계층군주를 소환한 건 이백호였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는 도박수를 던져서라도 판을 흔들 필요가 있으니—.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위력이구려…….”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던 때, 옆에 있던 아우레스가 숨을 길게 내쉬며 중얼거린다.
“다들 다친 곳은 없으시오……?”
그래도 명색이 탱커라고 동료들 안위부터 묻는 게 습관인 모양.
“전 괜찮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아우레스의 물음에 힐러 제이나와 궁수 브라이엇이 정신을 차리고 답한 반면, 아직도 내게 짐짝처럼 들려 있는 GM은 달랐다.
여전히 넋이 나가 있다고 해야 하나?
“……바, 방금 저, 저게 대체 뭡니까?”
뭐야, 얘는 게임할 때 어둠의 군주도 안 잡아 봤나?
나는 그냥 딱 보자마자 그 스킬이구나 싶던데.
“이, 이런 이능이 존재한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은 이해가 된다.
나조차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그 위력에 소름이 쫙 돋을 지경이었으니.
하물며 아예 저 스킬의 존재도 몰랐다면야.
치이이이이이익-!
지면에 남은 열기에 쏟아지는 장대비가 증발하며 생긴 수증기가 화재 현장처럼 높이 치솟는다.
물론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열기가 빠르게 식으며 수증기도 사라졌고, 그로 인해 시야도 회복됐다.
“…….”
운석 하나만 떨어졌을 때보다 훨씬 더 크게 확장이 된 크레이터.
그 안에는 이백호만이 고독하게 서 있었는데…….
“서프라이즈!”
이내 이백호가 우리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이런 걸 보면 마냥 웃긴 녀석 같은데…….
‘설마 저 웃는 얼굴 뒤편에 핵무기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어쩌면 이제는 재고를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필시 싸우면 절대 지지는 않을 거라 판단했건만.
“뭣들 해? 다 끝났는데 이리 오지 않고!”
이백호의 호출에 우리는 다시금 크레이터가 생긴 곳으로 다가갔다.
“파멸할배! 일단 이것부터 챙겨봐! 이거 엄청 비싼 거 맞지?”
이내 이백호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가리킨 지점엔 새하얀 구슬이 떨어져 있었다.
치지지직-!
구슬 안에 담긴 전류가 춤을 추듯 움직이는 구슬.
굳이 현대의 물건과 따지면 ‘플라즈마볼’과 굉장히 유사했다.
그 있지 않은가?
타로 가게에 하나쯤 소품으로 있을 법한 그거.
“이건… ‘천둥의 구’로군.”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그래서 이건 얼만데?”
“마법사들에겐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보물일세.”
“아니, 그래서 얼마냐고?”
이백호의 집요한 물음에 파멸학자가 예상되는 숫자를 대략적으로나마 읊어주자 이백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와, 이게 그렇게까지 비싸다고? 자칫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백호가 저렇게 안도하는 것도 공감은 갔다.
반경 70m가 넘는 공간을 통째로 지워버린 위력의 스킬이지 않았던가.
일반적인 마물이었다면 통째로 소멸하는 바람에 부산물은 획득할 수 없었을 터.
“응? 그거 그냥 주우면 되는 거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네만, 부산물 처리 시, 딱히 마법적인 조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알고 있네.”
“아, 그렇구나……. 그럼 이리 줘.”
이내 드롭된 ‘천둥의 구’가 이백호의 아공간 안으로 쏙 들어간다.
왠지 모르게 배가 아팠지만 딴지는 걸지 않았다.
단순히 이백호가 예상보다 훨씬 강해서가 아니라.
‘스킬 보여 준 값은 쳐줘야겠지.’
숨겨둔 비장의 수나 다름없었을 스킬 아니던가.
만약 끝까지 이백호가 이걸 보여 주지 않으려고 아꼈다면 전투는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애초에 ‘천둥의 구’가 당장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딜탱 바바로 갈 땐 저거로 망치를 만들면 좋긴 한데…….’
이미 ‘No.87 크라울의 악마분쇄기’를 얻었기에 큰 의미는 없을뿐더러, 동료들 중에 천둥 무기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로, 이번 건 지분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정말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이번에 양보한 것을 빌미로 삼을 수도 있을 테니까.
“오케이, 그럼 루팅도 끝났겠다… 다시 할 일이나 해봅시다.”
이내 루팅을 끝마친 이백호는 즉시 등을 돌리며 크레이터가 생기며 바닥에 넘어진 비석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다행히 흠집 하나 안 나긴 했네. 이거 그냥 이대로 아공간에 집어 넣어볼까? 소재로도 가치가 있을 거 같은데.”
그리 말하는 이백호에게서는 왠지 모르게 화제 전환을 하려는 느낌이 풍겼다.
‘[별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봐 그러는 건가?’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그러한 태도 덕에 정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잃었다.
‘…사실 물어봐도 큰 의미는 없을 거 같지만.’
어찌 됐든, 나도 저 비석에 관해서는 호기심이 생긴 건 마찬가지였기에 얼른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한창 이백호와 아우레스가 힘을 합쳐 비석을 아공간 안에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었는데…….
“비켜봐라. 나도 도울 테니.”
이내 나까지 가세하자 천근보다 무겁던 비석이 가벼이 들어 올려진다.
그리고…….
“억?!”
아공간에 끄트머리가 살짝 들어가기 무섭게 엄청난 반발력과 함께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쿠우우우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반쯤 땅에 박힌 비석.
“와씨! 뭐야 이거!”
이백호가 호들갑을 떨자 GM이 비석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는다.
“…굉장히 특이하군요. 내부에 마력 회로나 그러한 성질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데, 아공간에 이렇게나 극심한 거부 반응이라니.”
“확실히 수상하긴 하지?”
“예… 시간을 두고 좀 더 정밀하게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어때? 한동안 이걸 조사해보려 하는데… 아, 남작님도 동의하시죠?”
자연스레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는 이백호를 보며 나는 피식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의한다.”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심지어 중간중간 운석까지 떨어져 내리는 위험한 지역이지만, 어쩌면 이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열쇠일지도 모르니까.
“저… 그럼 우선 성분 조사부터 하려는데, 저기… 아우레스 공? 여기 이것 좀 잠시 잡아주시겠습니까?”
“오! 물론이올시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
제9계층, 별무덤.
엄밀히 말하자면 그곳과 매우 유사한 지역이라 할 수 있지만 아무튼.
이곳은 한 장소에서 무언가를 진득하게 연구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솨아아아아아-!
폭풍우처럼 쏟아져내리는 빗물은 추위나 불편함을 넘어 홍수라도 난 것처럼 계속해서 수심이 올라갔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중간중간 운석이 떨어지기도 했으며.
번뜩-!
낙뢰, 폭설, 강풍, 우박, 지진, 허리케인 등등등.
자연재해란 자연재해는 전부 다 겪었으며, 그런 와중에 계속해서 마물이 나타나 전투를 해야만 했다.
문제는…….
“야, 일주일이나 줬으면 뭔가 알아내야 하는 거 아니냐?”
“…….”
“파멸할배, 할배도 그렇게 안 봤는데 왜 그래? 못 할 거 같으면 못 한다. 그렇게 말이라도 해줘야 우리가 시간 낭비를 안 하지. 응?”
비석을 일주일에 걸쳐 정밀 조사했음에도 알아낸 것은 이 비석이 아주 단단하다는 것 외에는 제로.
다만 오히려 다른 쪽에서 소득이 있었다.
전투 횟수가 쌓이며 이곳의 마물에 대해 더욱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달까?
‘위협 수치가 확실하게 먹통이야.’
여기서는 어그로를 제대로 끌기 어렵다.
필드 효과나 그런 것 때문에 ‘위협 수치’가 0이 되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아무래도 이곳 마물들의 지능이 높아서 발생하는 현상 같습니다.”
처음엔 흥분해서 달려들던 마물들도 내가 멀쩡하게 잘 버티고 있으면 금방 생각을 고쳐먹고 딜러들부터 공략하려든다.
마치 학습이라도 하듯이.
‘어그로가 제대로 안 끌리니까 체감 난이도가 무슨 세 배, 네 배 되는 거 같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 전투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겹게 해나간 것은 아니었다.
간혹 정말 위험한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왜 사람이야말로 가장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전방 북북동 방향에 마물입니다!”
“……레디트로우스군요.”
“각자 위치로!”
혼자 앞으로 나가 메인 탱커를 하는 게 아니라, 일행 근처에 머무르며 방어벽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어차피 한 마리다! 다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보호하는 데 집중해라!”
마물이 일반 필드에 비해 극도로 적다는 점을 활용해 최대한 안전하게 전투를 치른다.
“야, 무슨 5등급 잡몹 부산물을 전부 다 챙기려 그래? 자리 없으니까 부피가 큰 건 그냥 버려!”
“등급은 낮을지라도 매우 희귀한 재료입니다. 추후 도시로 돌아가기만 해도—.”
“거, 욕심이 아주 그득그득하기는. 앞으로 챙길 것들만 챙겨서 돌아가도 엄청 땡길 수 있을 텐데.”
“…….”
부산물 중에는 특히나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 위주로 챙기고, 나머지는 대부분 그냥 내다버렸다.
어차피 도시로 돌아가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 텐데, 그때쯤에는 인벤토리가 부족할 수 있으니까.
시간 낭비를 줄이자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남작님은 어쩔 생각이에요?”
“조사는 이만하고 움직여야 한다 생각한다.”
“어디로요?”
“일단 한 방향으로 쭉 나아가는 게 좋을 거 같다.”
“하긴,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근데 그럼 어느 방향으로 가려고?”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9층 별무덤.
그중에도 중심부에 위치하는 ‘태고의 땅’이다.
참고로 여기서 특수 조건을 만족시키면 ‘태고룡’을 소환해서 잡을 수가 있는데…….
‘소환하는 순간 게임 오버니까 이건 패스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던 행선지를 말했다.
“서쪽이다.”
“여기서 서쪽이면… 옛바위 초원? 왜 거긴데요?”
그야 간단한 이유다.
“옛바위 초원에는 ‘정령의 문’이 있으니까.”
“아, 그걸 타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보려는 거구나.”
“뭐,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다.”
“그렇구나. 난 또 8단계 각인 재료 때문에 거기로 가자고 하는 줄 알았네!”
……이 눈치 빠른 녀석.
“됐고, 얼른 출발하지. 여기서 더 조사해봤자 나오는 것도 없을 거 같으니.”
“예예! 다들 들었지? 이제 가자!”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 된 후에는 앞선 계획대로 서쪽으로 이동했고, 나흘 정도 흘렀을 때 예정지던 옛바위 초원이 등장했다.
그리고…….
“……하, 여기서 막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옛바위 초원을 절반 정도 지나쳤을 때, 막다른 벽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솨아아아아아-!
라프도니아 해안선에서도 한 번 보았던, 모든 것이 색을 잃은 채 죽어가는 잿빛의 세계.
“혹시라도 다가가지 마요. 저거 닿는 순간 그냥 바로 즉사니까.”
오, 그럼 여기서 밀치면 이백호가 죽는단 뜻인가?
불현듯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일단 힘을 합쳐 여기서 나가는 게 우선이니까.
“우선 이 경계선을 따라서 빙 돌아보는 거로 하는 게 좋겠군.”
이후로는 경계선을 왼쪽에 두고서 이동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리고, 보름.
무려 15일에 걸쳐 빠르게 이동한 우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야 지도의 외곽부가 완성될수록 불길한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했거든.
“저기 혹시…….”
“그냥 조용히 있어.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예…….”
그 뒤로도 이틀이 더 흘러 17일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다시금 옛바위 초원에 돌아와 있었다.
경계선을 왼쪽에 두고서 한 바퀴를 크게 빙 돌은 것인데…….
지이이이익.
지도에 불완전하게 그려져 있던 동그라미에 선을 마침내 이어그리며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는 부정을 탈까 말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니미럴.”
우리는 이곳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