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40
40
소드마스터 힐러님 040화
14장 의문의 손님(1)
-모든 기억이 남아 있지 않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리슈발트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퍼즐 조각이 맞다면 성준의 전생 로우켈은 마물들과 손을 잡고 이계를 침공하겠다는 황제의 계획에 반대했다가 배신자로 낙인찍혀 척살당했던 것이었다.
“여기를 침공할 생각이면 나도 곤란해지는데…….”
-어차피 복수하려고 하셨던 것 아닙니까?
리슈발트의 물음에 성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생에 나를 보조했던 부관답네. 날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동조율이 올라가면서 성준의 성격은 점차 전생의 인격 로우켈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리슈발트는 그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조금 고민했었는데 잘됐어.”
성준이 말했다. 전생의 기억은 피의 복수를 외치고 있었지만 현재 성준의 인격은 출세만을 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계획과 던전, 그리고 레이드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밝혀진 지금, 성준도 도저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지구가 침공당한다.’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다. 하지만 침공당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은 뻔한 수순이었다.
-던전 공략과 레이드에 꾸준히 참여하시면서 높인 동조율로 각성 던전만 출입해도 제국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을 겁니다.
리슈발트가 말했다. 던전과 레이드에 참여하는 것은 출세를 위한 길이기도 하니, 성준이 거부감을 느낄 이유도 적었다.
전생과 현생의 목표.
두 개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충돌은 크지 않았다. 성준은 계획을 세웠다.
“먼저 뭘 해야 할까?”
-지금 당장 황제를 죽이는 건 무립니다.
“나도 알아.”
전투력에서 밀릴 게 뻔하고 무엇보다 이계로 가는 법도 몰랐다.
-당장은 동조율을 올리면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야 합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오해라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리슈발트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물론 ‘오해’라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리슈발트가 덧붙이자 성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동조율을 올려야겠네. 던전 가야겠다.”
동조율을 올리려면 마물을 죽이고 마력을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신청한 C급 던전 솔플 일정이 아직도 안 잡혔나? 확인해 봐야겠네.’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외출할 생각이 없었다.
‘내일 확인해야지.’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잠에서 깬 그는 준비를 끝내기 무섭게 택시를 타고 던전 관리국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최근에 신규 생성된 던전의 수가 적은 탓에 솔플 일정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꽤 오래 지났을 텐데…….”
성준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사무원의 모습에 더는 불평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사무원은 죄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던전에 들어가고 싶은데……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B급 던전 매칭도 대기열이 많이 밀려 있어요.”
“긴급 보충 요청은 없습니까?”
성준이 물었다. 정규 공략팀이나 매칭된 인원이 낙오되면 던전 관리국에 보충 요청이 들어온다.
운이 좋아서 보충 요청이 있다면 매칭 없이 바로 던전 공략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사무원이 보충 요청을 확인했다.
“헌터님, 보충 요청이 하나 있지만 A급 던전입니다. 괜찮으시겠어요?”
B급 헌터는 C급 던전의 솔플 일정을 잡을 수 있고 A급 던전까지 매칭을 신청할 수 있지만 안전을 선호하는 헌터들은 한 단계 위의 던전을 공략 신청하는 오버 매칭을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정규 공략팀입니까?”
성준이 물었다. A급부터는 위험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래서 매칭보다는 계속해서 호흡을 맞춰온 정규 공략팀이 주로 던전을 공략하는 편이었다.
“네, 회복계 헌터 한 명이 갑자기 펑크를 내서 급하게 보충을 요청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절차 밟아주세요.”
“던전 위치를 메시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던전 관리국을 나오기 무섭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것을 확인한 성준은 던전 위치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던전 앞에는 성준을 제외한 전원이 모여 있었다.
“뭐야?”
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달받은 공략 인원 외에도 1명이 더 있었다.
‘김기찬이었군.’
정규 공략팀 ‘에이스’의 팀장을 맡고 있는 김기찬은 외모 때문에 유명해진 A급 헌터였다. 그의 위치는 연예인과 비슷했다.
성준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합류하기 무섭게 기찬이 성준을 보며 질책했다.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말투였다. 성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주변을 살폈다.
“매칭되자마자 바로 왔습니만…….”
보는 사람이 많아서 예의는 갖췄지만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기찬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은 봐주겠지만 던전 들어가면 알아서 행동해 주세요.”
정중한 척 포장했지만 여전히 기분 나쁜 말투였다.
-감히! 주군에게! 당장 참수를 해도 부족한 녀석입니다!
리슈발트가 분개했다.
‘김기찬 성격이 개판이라더니 사실이었네.’
이렇게 직접 만나보니 오만하고 상대를 깔보는 모습이 헌터닷컴에 떠도는 소문 속 모습과 똑같았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안 좋은 취급을 받자 자연히 성준의 목소리도 날카로워졌다. 그는 여성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조심하세요.”
그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던전 공략을 앞두고 외부인의 기선을 제압해 두려는 속셈이었다.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지만 정규 공략팀에 외부인이 끼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여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윤설아라고 해요!”
갈색의 긴 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의 이름은 윤설아였다. 이름만큼이나 외모도 아름다웠다.
“회복계 헌터님이죠?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성준은 대답 대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자신을 정명수라고 소개한 남자가 와서 몇 가지 주의 사항과 정규 공략팀 ‘에이스’가 주로 사용하는 대형과 관련된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윤설아 씨는 민간인 같은데, 던전 공략에 참가하는 겁니까?”
“네, 저도 잘 모르지만 청룡 그룹과 관련 있는 분인 것 같습니다.”
“청룡 그룹이요?”
청룡 그룹은 대한민국의 5대 기업에 들어가는 대기업이다.
“네, 그쪽에서 요청을 했고 기찬이가 수락한 것 같습니다.”
“민간인이 합류하면 안전 문제가 있을 텐데…….”
“B급 헌터 3명을 경호원으로 데려왔습니다. 안전 문제는 저희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기찬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진입하겠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김기찬의 친구이자 ‘에이스’의 팀원인 정명수가 던전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윤설아 씨는 강성준 씨 옆에 붙으세요.”
회복계 헌터는 진형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활동한다. 경호가 붙어 있다고는 하지만 설아는 민간인이니까 성준의 옆에 자리 잡는 건 당연했다.
계단을 내려가서 던전에 진입하자 헌터들이 5대의 조명 드론을 작동시켰다.
“전방에 적입니다! 화염 광전사 둘에 질풍 기사 셋!”
초입부터 두 종류의 A급 마물 다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트랭스.”
“진형을 갖춰서 돌격!”
보조계 헌터가 파티에 버프를 부여하자 기찬과 명수 등의 A급 헌터 3명이 B급 헌터 둘의 엄호를 받으며 마물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화염 광전사가 입을 열고 뜨거운 화염을 토해냈다.
“내가 막을게!”
명수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방패를 들어 올려 화염 세례를 막아냈다. 다른 헌터가 질풍 기사 셋을 견제하는 사이 기찬이 화염 광전사 둘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의 검에 선명한 푸른빛의 오러가 깃들었다.
‘오러 사용자…….’
불타는 창을 날렵한 움직임으로 피한 기찬은 오러가 깃든 검을 휘둘러 화염 광전사 둘을 소멸시켰다.
다른 헌터들도 질풍 기사 셋을 소멸시켰다. 오러 사용자는 없었지만 헌터가 들고 있는 무기에는 기본적으로 마력이 부여되기 때문에 정령계 마물에도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우와…….”
헌터들의 전투를 처음 보는 설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힐러님! 치유를 부탁합니다!”
전투가 금방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A급 마물 다섯이었다. B급 헌터 한 명이 꽤 심한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힐!”
성준이 ‘힐’을 시전했다. 백색의 빛이 부상을 입은 헌터에게 깃들자 상처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게 ‘힐’이라는 거죠?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설아는 호기심에 두 눈을 빛냈다. 헌터의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를 지켜보고 있던 명수가 입을 열었다.
“B급 헌터라고 하셨는데 힐량이 상당하시네요? 이 정도면 A급 헌터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동조율이 오르면서 신체가 활성화되고 결과적으로 힐량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았다.
“회복 속도가 빨라서 다음 전투에 바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헌터가 말했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다. 파티는 던전의 깊숙한 곳으로 전진했다.
“성준 씨는 취미가 뭐예요?”
처음에는 두 눈을 빛내며 전투를 구경하던 설아였지만 자세히 보이지도 않는 전투에 곧 흥미를 잃어버리고는 옆에 있는 성준을 향해 쉬지 않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있기도 했지만 후방에서 힐만 하는 성준의 모습이 일반인의 눈에는 한가로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성준은 그녀의 말에 적당히 어울려 주면서도 회복계 헌터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
“마물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그러게…… 혹시 정예 던전 아니야?”
던전 깊은 곳으로 진입할수록 등장하는 마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헌터들은 정예 던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팀장님, 정예 던전이면 일단 물러나는 게 좋지 않을까요? A급 헌터가 한 명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략팀에 소속된 헌터의 말에 기찬은 설아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이대로 진행하자. 반대 의견은 받지 않을 거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성준이 한 걸음 다가갔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검술에는 자신 있습니다.”
성준이 말했다. 전투에 개입하지 못한 탓에 마력을 흡수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목적을 잊은 셈이 되기 때문에 전투 개입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회복계 헌터가 검을 휘두른다는 말입니까? 후방에서 조용히 힐이나 해주세요. 그게 도와주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파티장은 기찬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위치로 돌아가던 성준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찬을 보며 입을 열었다.
“참고로 앞에 30마리 이상의 마물이 매복하고 있습니다.”
“네에. 알겠습니다요.”
성준은 기척을 감지했고 그 사실을 말해주었지만 기찬은 전혀 듣는 기색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