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21)
제 1111화
247화.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10)
‘저게 크리인가…….’
진과 무라칸, 명왕족들도 상공을 올려다보았다.
크리는 본래 적명족의 상징색과도 같은 붉은 공중요새지만, 지금은 마치 종양이 핀 듯 선체 곳곳에 혼기가 묻어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하게 보였다. 마치 과거 흉신전 당시 흉신이 운영한 거대함선 ‘람’처럼.
‘람, 그 이상이리라 상정해야 할 테지.’
고오오오……!
크리를 중심으로 이제껏 대사막에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거대한 적뇌 파장이 번지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그 동력을 보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마치 태양처럼 무한한 힘이 저 산맥 같은 선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진동하는 모습을.
그저 동력이 꿀렁이는 것만으로도 대지가 분열되고 하늘이 일그러진다. 대륙을 일거에 소거할 수도 있는, 끔찍한 힘이 한 척의 공중요새에 귀속되어 있었다.
“동포들, 정신 차려라! 우리의 마지막 싸움이 이렇게 더럽혀질 수는 없다.”
시마트의 처절한 외침에도 적명족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이미 혼기에 잠식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의 충실한 동포가 아니라 혼돈의 소모품이 된 것이다.
죽어가던 대투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느새 찢어진 살과 뼈를 혼기로 회복한 채 공중요새들에 들러붙고 있었다.
[끄아아악.] [그우욱……!]바카룬은 피빌의 중앙부에, 라키만과 베키오스는 베슬과 리탈의 상부에 붙어 융합되었다. 누군가가 그들을 마구잡이로 찢어 공중요새의 파손된 부위들로 욱여넣은 듯이.
시마트는 그 기괴한 모습에 구토감이 치솟는 걸 느꼈다.
투신합일을 한 진의 무력보다도, 멸망이라는 어쩔 수 없는 미래보다도, 동포들이 혼돈의 살덩이가 된 사실이 시마트를 절망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로지 혼돈에 물든 동포들의 공허한 눈동자만이.
“로키아 가네스토. 감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알아서 네가 해야 할 일을 잘 해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시마트. 그럼 피차 피곤할 일 없었잖아.]지이잉!
별안간 크리의 상부로 거대한 붉은 창이 떠올랐다. 후드에 가려진 로키아의 얼굴이 창 안에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괜찮은 결과를 도출했으니, 나름대로 칭찬받을 일이지. 수고 많았어. 이제 편히 쉬어. 창성의 힘으로 억지로 붙잡아둔 목숨줄을 그냥 놔도 좋고, 아니면…….]크리의 중앙부에서 주포가 돌출되었다. 시마트조차 일순 놓칠 만큼 빠른 속도였고, 주포는 곧장 그를 향해 불을 토했다.
혼기와 적뇌가 뒤섞인 광파, 시마트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으나 다른 공중요새들과 달리 그건 쳐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커헉!”
또한 적뇌로 이루어진 육신이라 할지라도 충격을 피할 수 없는 공격이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포격에 완전히 파묻힌 채 경련을 일으켰다.
포격에 담긴 혼기가 벌레떼처럼 그를 파먹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구차한 삶을 내가 대신 끝내줄 수도 있고. 일종의 배려라고 할까? 마지막엔 그래도 잘 짖어준 개를 위한.]단지 검과 검으로, 무인과 무인으로서 싸워서 입는 상처와는 다르다. 그 과정에 느낀 무력감과도 다르다. 혼기에 물든 크리의 주포는, 그의 마지막 긍지를 철저히 짓밟고 있었다.
한 점의 혼기가 몸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동포들의 비명이 들렸다.
지배자로 군림하던 고대, 거스를 수 없던 대봉인, 하잘것없는 인간들에게 이용된 비참함, 투신을 되찾고도 다시 멸망을 앞두게 된 지금.
그 모든, 동포들의 절망과 좌절이 시마트의 내면을 할퀴고 있었다. 날카롭게 깨진 꿈의 파편들이.
“내 동포들을…… 그냥 죽게 두어라, 로키아 가네스토.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아아, 무섭네. 동포들이 그냥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라고? 후후, 잘도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그간 너흰 아랫것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했는데 말이야. 불사군이란 걸 운영하면서 순리대로 안식에 들어야 할 이들까지 끝까지 쥐어짜냈고.]로키아가 말하는 사이 포격의 광파가 잦아들었다.
시마트가 서 있던 자리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거대한 구멍이 남았다. 그 소용돌이 속으로 시커멓게 변한 사막의 모래들이 물처럼 빨려 들어갔다.
시마트는 마치 뼈만 남은 듯한 모습으로, 소용돌이 한가운데 적뇌 파장을 펼친 채 겨우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온몸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혼돈이 계속 그의 몸을 갉아댔다.
“그냥 죽게 두라고 하였다.”
스아아악!
테탈론이 크리를 향해 붉은 검기를 토했다. 그러나 검기는 크리의 근처에도 닿지 못한 채, 네 기의 공중요새가 형성한 보호막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포격을 맞아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진과 싸우면서도 몇 번이나 명왕군림검을 뚫고 진의 몸 곳곳에 수차례 옅은 상처를 입혔다.
지금 테탈론이 크리에 닿지 못한 건, 내면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는 최후의 긍지를 지키며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그의 검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넌 너와 네 동족들을 사지로, 혼돈의 아가리 속으로 내몬 어리석은 지도자에 불과해. 그나마 멀쩡하게 죽을 수라도 있다면, 네놈들에겐 다행인 일이겠군.
조금 전에 진이 한 말대로였다. 지금 동족들을 혼돈의 살덩이로 만든 건, 로키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인 것이다.
혼돈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로키아가 건네준 구슬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아예 받지도 않았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모두 감염된 괴물이 아닌, 적명족으로서 싸우다 죽을 수 있었을까.
눈을 한 번 깜빡일 때조차 끊임없이 후회가 밀려들었다. 두 다리가 혼돈에 붙잡혀 비틀거리고 있었다.
“진 룬칸델.”
돌연 시마트가 진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였다.
“청풍제, 그 노인네가 왜 네게 의탁한 것인지 이제야 알겠군. 우리 싸움은…… 여기까지다. 패배를 인정하지. 넌 전사로서 나보다 뛰어나고, 지도자로서도 나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월등하다.”
크적, 크드득, 치이익……! 시마트에게 들러붙은 혼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앙상해진 몸이 돌아오진 않았으나, 어차피 진짜 육신은 한참 전에 재가 되었다. 그는 아까부터 육신이 없어도 싸울 수 있었다.
“같잖게 보이겠지만, 그래도 내 마지막은 동포들을 위해서 쓰고 싶구나. 나는 이제부터 네게 등을 보이고 싸울 것이다. 저 마녀의 추종자를,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었던 공중요새를 벨 것이다. 설령 네가 나를 뒤에서 찌른다고 할지라도, 받아들이겠다.”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그를 말릴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열두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라프라로사를 지켜야 하니까.
[겨우 그 정도로 속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시마트. 주제에 맞지 않게 빛나는 눈을 뜨고 있군.]“그 무엇으로도 내가 동포들에게 저지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니 동포들아, 들어라. 내가 너희를 죽게 해주겠다. 내가 너희를 대신해 이 모든 고통과 혼돈을 짊어질 것이다. 나는 안식에 들지 못하더라도, 너희만큼은 반드시.”
시마트를 괴롭히던 내면의 혼돈이 꺼졌다.
그 속으로 들려오는 동포들의 절망과 원망마저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원한 맺힌 목소리는 초가 지날 때마다 더 선명하게 증폭되고 있었다.
그건 결코 딛고 일어설 수 없는 아픔이다.
그러나 어둠에 파묻힌 채로라도 움직이고, 싸워야 할 뿐. 눈이 보이지 않아도 길을 찾아야 할 뿐. 동포들이 안식에 들 수 있는 길을.
로키아는 그런 시마트의 내면을 훤히 들여다보며 웃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야. 그토록 피로 얼룩진 끔찍한 삶을 살고도 안식이라는 희망을 찾다니. 그것도 겨우 각성 한 번 한 걸로, 고작 처절하게 한 번 싸운 정도로. 안 그래, 후손?]로키아는 마치 파리를 쳐내듯 시마트의 접근을 쉽게 막아냈다. 크리의 주포가 적뇌를 토할 때마다 시마트는 혼돈과 함께 깊숙한 지하까지 내리꽂혔다.
연달아 이어지는 포격에 처음처럼 구덩이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시마트의 검이 다시 붉게 타오르고 있음에도 말이다.
후드 속에서 번들거리는 로키아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진에게 닿고 있었다.
그리고 진은 느끼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광심장 한가운데 숨어 있던 링링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와 반 형제의 연결을 해제하려고 애를 쓰는군, 로키아 가네스토. 그 더러운 입으로 나를 후손이라고 부르지 마라.”
[섭섭하네.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존재할 수 없었단다. 테마르가 자식을 갖기 전, 내가 그 목숨을 몇 번이나 구했을까? 그런 건 얘기 안 해줬어, 무라칸?] [로키아. 너 이 새끼…… 역시, 내가 알던 그놈이 아니로군. 네가 천 년 전부터 선을 좀 넘기는 했어도, 그 모든 건 테마르와 가문을 위한 일이었어. 하지만 우릴 배신하고 무엇을 얻었지? 너, 도대체 목적이 뭐냐?] [뻔한 걸 묻는군. 내 목적은 그때나 지금이나 오로지 하나야. 몇 번이나 말했었지, 나는 올바른 세계를 원한다고. 그렇기에 테마르에게 끌렸던 거다. 적어도 그는 한때나마, 세상을 정말 바꿀 것처럼 보였거든…… 지금 네 옆에 있는 꼬맹이랑은 비교조차 안 될 만큼 빛이 났어.]무라칸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겠답시고 마녀의 개가 된 거냐?] [마녀는 개를 키우지 않아. 적옥묘는 한 마리 길렀었지만, 그조차 떨쳐냈지. 그녀는 본질적으로 나와 아주 달라. 나는 그자가 세상에 풀어놓은 독을 이용할 줄 아는 것뿐이고.] [그리고 꼬마와 테마르. 나는 두 사람을 다 겪어보았다, 로키아. 나는 그 둘 모두의 수호룡이었어. 그런 나보다 네놈이 꼬마를 잘 알 리가 없지. 꼬마는 테마르와 다르다. 그 녀석보다…… 강해.]무라칸으로서는 처음으로 확실하게 테마르보다 진을 더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에겐 아주 낯선 일이었다. 다른 누군가를 테마르보다 우위에 둔다는 것은.
[글쎄, 그건 우리 후손이 결정적인 순간에 놓여봐야 알 테지. 소중한 무언가를, 하나만 선택해야 할 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