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36)
제 1036화
249화. 명왕족의 첫 출격(3)
반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가벼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감이 옳았군그래. 가서 죽이고 돌아오면 되겠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는 반.
“잠깐, 반 형제. 설마 지금 바로 가겠다는 뜻이십니까?”
“그렇다.”
진과 동료들은 잠시 말문이 막힌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흔하디흔한 마물 무리 따위를 토벌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흑해 5왕, 한때 세상을 종말에 빠뜨릴 뻔한 괴물을 멸하러 가는 것이다.
물론 그건 글리엑의 이야기지만, 다른 흑해 5왕도 끔찍하리만치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진과 동료들은 글리엑을, 루나는 키알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결단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반 형제.”
“번개는 빠르지.”
“예?”
“그리고 명왕족은 번개다. 즉, 나는 명왕족 중에서도 가장 빠른 사람인 셈이다.”
반 나름의 농담이었다. 아메리스와 엘티엇만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 지내며 느낀 건데, 자네는 의외로 말을 재밌게 할 때가 있더군.”
“허허, 썩 격조가 있는 농이로구나. 우리 청명의 해학이 과연 후대까지 잘 전승된 모양이군.”
“……그렇군요, 형제. 몰랐습니다.”
“괜찮다, 그래도 진 형제는 두 번째로 빠른 사람이니까.”
“잠깐, 잠깐. 반 경? 흑해 5왕이란 놈들은 그렇게 만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원정대원, 그리고 아버지조차 목숨을 걸었던…….”
“원정대가 두 번째로 만난 그 스라는 흑해 5왕은 단기간에 제압했다고 하지 않았나? 시론 룬칸델, 네 아버지가 그야말로 압도를 하였다고 들었다만.”
그런데 내가 못 하겠느냐?
반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시론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늘 절대자였던’ 사람이 가진 보통의 인식에서 비롯된 표정이었다.
진과 루나 그리고 동료들은 한동안 이상한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감히 그 시론 룬칸델과 자신을 비교하며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시론이 지금의 나보다는 더 강하기에 스를 그렇게 압도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와 나, 둘 중 누가 뛰어난가가 아니다. 적이 미지에 싸인 위험한 괴물을 이용하려 한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안전한 사람이 가서 정리한다. 중요한 건 이것일 뿐.”
진은 납득하고 말았다.
지금 ‘흑해 5왕’ 정도 되는 적을 정리하기에 가장 좋은 패는 반과 명왕족이었다.
거기에 진과 루나, 무라칸 같은 창성 인원이 추가되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지금은 전시다.
심지어 방금 읽은 편지엔 지플이 ‘상상 이상의 막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핵심 인력을 잘 배분해야 했다.
“그러니 내가 가서 최대한 빠르게 니르간드를 토벌하고 돌아오겠다.”
결국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입니다, 반 형제.”
“역시 우리 중 두 번째로 빠른 사람이로군.”
“그렇다면 출격 인원은 어떻게 편성하시겠습니까?”
“보라스 형제를 제외한 명왕족 전원, 그리고 황금함. 이만하면 흑해 5왕이 얼마나 강하든 문제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순 반의 눈동자가 살기로 어두워졌다.
니르간드를 이용하려 한다는 태양신교, 그들의 대사제인 ‘루크’를 떠올린 까닭이었다.
“명왕의 명예를 더럽힌 자, 감히 진 형제를 위협한 자를 처단하기에도 부족하지 않을 테지.”
니르간드를 잡으러 가는 건 당연히 태양신교와도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반은 니르간드와 창성에 오른 옛 선조를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명왕의 이름을 능멸한 놈을 벌하는 길에 제가 동행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군요.”
그 말에 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진의 허리춤을 쳐다보았다.
진은 그 눈빛을 바로 알아보고 시그문드를 풀어 반에게 건네주었다.
“이 검은 곧 진 형제다. 그러니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도록. 놈들에게 보여주고 오마, 명왕의 힘을.”
“알겠습니다.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그러지.”
곧바로 출격 준비가 시작되었다.
보라스를 제외한 76인의 명왕족들이 황금함으로 탑승하자, 페이텔은 진땀을 흘리며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크흠, 흠……! 며, 명왕족들이여. 이야기는 드, 들었다. 흑해… 흑해로 간다지?]페이텔이 공포에 젖어 말을 더듬은 건 흑해나 니르간드 때문이 아니다.
그는 과거 진이 청새군도에서 활약할 때도 시그문드를 보고 기겁했을 만큼 반과 명왕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반만년 전 ‘최후의 전쟁’ 당시, 그들이 신들과 어떻게 싸웠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반은 이미 지난 엿새 동안 몇 차례 대화를 나눴음에도 여전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페이텔.”
[응, 아니. 예, 대, 대총수……!]“대총수? 연합의 총수는 오로지 진 형제뿐이다. 네가 제트인가?”
[아뇨. 그, 죄송합니다.]“서로 지난날은 잊도록 하지. 이제는 같은 연합원이기도 하니, 나를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도록.”
[그, 그럴까요?]“그래. 하지만 만일 그때처럼 네가 또 비열하거나 비굴한 선택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아유,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총수에게 충성을 바친 몸. 아니, 몸은 이제 없지만, 어쨌거나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훌륭하다. 형제들, 오늘은 우리가 인세로 나와 다 함께 진 형제를 위해 싸움터에 나가는 첫날이다. 일을 할 시간이라는 뜻이지. 모두 준비되었나?”
“그렇습니다!”
“가자. 목표는 흑해 외곽, 옛 사르바 왕국 수도 터.”
과거 진이 오즈도크를 만난 지역이었다.
페이텔은 즉시 그곳으로 공간 도약 좌표를 설정했다.
우우웅……!
선체 중심부에서부터 광심장 동력원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 출력은 본래도 인세 최고였는데, 연합은 적명전쟁이 끝난 후 한 번 더 황금함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상태였다.
보라스, 그리고 적명족의 장비를 분석해서 얻은 기술력에 명왕의 힘까지 더해진 덕분이었다.
[크오옷! 반 님과 명왕족들이 탑승하니 동력 느낌이 또 달라지는구만! 이만하면 공중요새도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동력은 흑해로 바로 이어지는 초장거리 차원문을 개방하고도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명왕족들이 투신의 공명을 받고 있듯이, 황금함의 동력원도 그 영향에 강화되고 있었다. 황금함의 동력원은 광심장으로 제작되었으니 말이다.
[자, 가자아아!]쑤욱-!
황금함이 차원문으로 들어섰다.
마치 이계 설원처럼 한동안 새하얀 풍경이 펼쳐진 후, 명왕족들은 흑해 외곽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페이텔은 잔뜩 신이 나서 당장 흑해 내부로 진입할 기세였다.
그러나 반은 도착하자마자 황금함을 흑해 외곽에 대기시키기로 했다.
“발티록, 바바, 카이오 형제. 세 사람만 나와 하선한다. 나머진 여기 대기하며 혹시 모를 다른 사태에 대비한다.”
“예, 투신 형제!”
명왕족 개개인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흑해 같은 미지의 영역에 단체로 들어가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다.
하물며 니르간드나 루크 같은 이들과 격전을 치르게 되면 평전사들은 오히려 없는 쪽이 나았다. 전성기 때처럼 수만 이상의 평전사가 있는 게 아니니까.
“벨리즈 형제.”
“말씀하세요, 투신 형제.”
“우리가 흑해로 진입한 동안 형제가 지휘권을 갖는다. 전투 도중 안에서 혼기나 마물 같은 게 튀어나와 인세로 향할 수 있어. 황금함으로 흑해 외곽 전역을 순찰하면서 대응하도록.”
“알겠습니다.”
함교가 개방되었다.
반은 한동안 함교 너머로 보이는 흑해의 어두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느껴지고 있었다.
적들이 저 멀리,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흑해를 빠져나오려 한다는 사실이.
오직 반만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가지, 형제들.”
반과 세 명의 투왕이 함교에서 뛰어내려 흑해 초입으로 다가갔다.
초입에 사는 모든 마물들이 그들의 걸음을, 정확히는 반이 흑해로 들어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수십 년 전 시론이 처음 흑해를 찾았을 때부터.
흑해의 마물들에게 시론과 그가 풍기는 기운은 그 자체로 공포라는 각인이 되었다.
그 각인은 마치 유전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심지어 태어나서 시론을 직접 본 적도 없는 마물들에게까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마물들의 본능엔 새로운 공포가 추가되고 있었다. 반이 걸음을 뗄 때마다 숨어 있는 마물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마물의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반은 일부러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감각에 미세하게 걸리는 적의 흔적과 방향을 찾기 위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은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적들의 이동이 매우 빠르다. 흑해 전역에 차원문, 혹은 그와 유사한 무언가가 대량으로 형성되어 있는 모양이군. 아마 태양신교라는 놈들의 사술일 테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투신 형제.”
반은 대답 대신 검지로 왼편 저 너머를 가리켰다.
카이오는 바로 그 뜻을 알아듣고는 감각을 끌어올렸고, 정확히 반이 요구한 위치로 대궁 신살을 쏘았다.
프즈즈즛-!
그러자 한참을 날아간 시퍼런 화살이 어딘가에 꽂혔다. 반이 말한 차원문 중 하나였다.
“우선 놈들이 쓸 수 있는 차원문을 지우면서 전진한다. 운 좋게 우리를 피해서 여기까지 빠져나오면 피곤해질 수 있으니.”
인세와 가까운 통로의 숫자를 줄인 후, 남은 통로만 이용해서 적과 조우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게 반의 계획이었다.
첫 번째 통로가 파괴되자마자 세 명의 투왕이 산개하며 무기를 휘둘렀다.
한 자루의 활과 두 자루의 장검에서 쉴 새 없이 뇌전이 쏟아졌다.
반은 천천히 전진하며 형제들이 미처 놓친 차원문들의 위치로 벼락을 떨궜다.
근처의 차원문 대부분이 정리되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흩어진 투왕들이 돌아왔을 때, 반은 마지막 남은 차원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역시 혼기를 이용한 차원문이다.”
혼기 면역이 없는 이들은 들어서는 것만으로 심각하게 피폭될 수 있는 차원문이나, 명왕족에겐 해당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반과 투왕들은 주저 없이 차원문으로 들어섰다.
차원문은 흑해 중간부 초입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거리가 가까워졌으니, 반은 방금까지보다 더 니르간드의 힘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내 빠르게 움직이던 놈이 지금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우리가 온 사실을 알아차렸군…….”
아직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반은 보이는 것 같았다. 난데없는 위협에 확 움츠러든 니르간드의 몸뚱어리가.
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선고를 내렸다.
“소멸할 시간이 도래했다, 진 형제의 적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