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37)
제 1037화
249화. 명왕족의 첫 출격(4)
물론 반의 목소리가 흑해 심부에 있는 적들에게 온전히 전해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반이라 할지라도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의지’는 전해질 수 있다.
날이 바짝 선 창날처럼, 그 의지는 잠시 걸음을 멈춘 니르간드의 내면을 훅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투왕들은 방금과 똑같이 산개해서 흑해 중부 초입의 차원문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뇌전이 쏘아질 때마다 한 개의 차원문이 사라졌다.
그러다 반이 선택한 차원문만 남으면, 다시 모여서 이동하는 식이었다.
중부 시작점에서 더 깊은 곳으로, 그러다 다시 초입으로, 다시 중부로.
차원문은 마치 엉성한 미로처럼 퍼져 있었다.
탈출을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비효율적인 구조.
반은 몇 개의 차원문을 넘나들며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시론 룬칸델, 그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을 피해서 차원문을 형성한 것이군. 그래서 이렇게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는 거다.’
흑해 외곽에서부터 니르간드의 힘을 읽었듯, 반은 시론이 남기고 간 기운도 느끼고 있었다.
흑해 초입과 중간부, 그리고 심부에 남은 시론의 기운은 모두 그가 창성을 한 번 더 초월하기 한참 전에 남긴 것이다.
세월에 휩쓸려 옅어진 기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반은 그것만으로도 ‘마성화 극복 이전의 시론’이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과연 진 형제의 아비는 대단한 인물이었군.”
“여기에도 시론 룬칸델의 흔적이 남아있는 모양이군요, 투신 형제.”
“그래. 그가 남긴 이 흔적들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느낌의 힘입니까?”
“오랜 세월 홀로 세상을 짊어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다.”
“오오…….”
“뭔진 모르겠지만, 투신 형제조차 감탄할 정도라는 건 확실하군요.”
“한 번쯤은 꼭 검을 섞어 보고 싶기도 하군.”
반은 일순 시론이 남긴 흔적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곧, 그만큼 지금 반이 긴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보다 형제의 아버지에게 더 관심이 갈 정도로.
프즛, 키기기기긱-!
계속해서 차원문이 찢어지고 있었다.
벌써 명왕족들은 흑해 초입과 중부, 심부를 열댓 번이나 오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흑해엔 기존에 시론이 남긴 흔적이 한층 도드라졌고, 반이 새로이 새기는 뇌기가 늘어났다.
즉, 니르간드로서는 점점 더 갈 곳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 역시 계속 차원문 사이를 이동하고 있으나 명왕족의 포위망은 풀어질 기미가 없었다.
얼마 전 시론에게서 도망칠 때처럼, 놈은 마치 반의 검이 이미 자신의 목에 닿아 있는 듯한 착각에 휩싸이는 중이었다.
‘며칠 전과 똑같다…….’
태양신교의 무녀와 대사제를 만나기 전까지.
니르간드는 시론을 피해 전력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기에, 구차하더라도 어떻게든 소멸을 유예하는 것만이 니르간드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죽이겠다는 반의 의지가 전해진 순간, 니르간드는 즉시 깨닫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결코 대적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이미 시론이 마성을 초월한 순간부터 니르간드가 알고 있는 질서와 지식은 깨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토록 빨리 시론 같은 인물을 또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산나, 루크. 너흰 내게 신들의 신이 남긴 힘을 보여 주며, 내게는 정해진 미래가 있다고 하였다. 설마 그게 바로 이것인가?]그러자 니르간드의 옆에 새하얀 차원문이 열렸다.
그 속에서 산나와 루크가 빠져나왔는데, 그들은 침착한 표정이었다.
“니르간드 님.”
[나를 능멸하였군…….]니르간드는 그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단번에 태양신교가 무언가 그림을 구상한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계획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다는 것도.
“니르간드 님께 죄송한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니르간드 님께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잖아요? 어차피 저희가 없었다면, 니르간드 님은 이미 시론 경에게 붙잡혀 소멸하셨을 겁니다.”
당장이라도 산나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산나로부터 받은 신들의 신, 즉 태양신이 남긴 한 조각의 힘이 그 일을 거부하고 있었다.
흑해 5왕으로서도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의지가.
“참 우습죠. 니르간드 님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존재인 필멸자들은 때때로 갑자기 진짜 신의 의지를 극복해 내곤 하는데, 불멸자들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꾸몄느냐.]“저흰 니르간드 님이 품고 있는 그 한 조각 태양신의 힘이, 니르간드 님을 통해 한층 드넓게 피어나길 원합니다. 그렇기에 니르간드 님이 5왕의 영역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인세까지 그 힘을 퍼뜨릴 수 있도록 도와드린 것이죠.”
산나에겐 말을 꾸며 니르간드를 달래거나 더 속일 이유가 없었다.
태양신의 힘을 받기로 한 순간부터, 니르간드는 태양신교의 노예가 된 셈이었다.
태양신을 직접 겪어 본 적 없는 니르간드로서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을 뿐.
“잠시 후, 니르간드 님은 이곳 흑해 심부에서 명왕족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때 니르간드 님이 품은 태양신의 조각은 만개하게 됩니다.”
이미 니르간드는 자신이 품고 있는 태양신의 조각이 진동하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 또한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 힘을 이용하면 분명 그간 니르간드 님을 위협한 괴물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겁니다. 운이 좋다면 그들을 죽일 수도 있겠죠……? 싸움이 끝난 후, 니르간드 님의 유해는 온 세상에 남게 될 겁니다. 니르간드 님의 형제, 글리엑 님이 그랬던 것처럼.”
빛나는 차원문은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
산나와 루크는 뒤돌아서 다시 태양신교의 아공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짜 신의 기운을 품었으니, 니르간드 님의 유해는 글리엑 님 때보다 이 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거예요. 부디, 태양신께서 다시 피어나실 수 있는 정토가 되어 주시길. 늘 기도하겠습니다.”
[푸흐흐흐… 어리석은 놈들. 착각하고 있구나.]태양신교들이 차원문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니르간드는 어두운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니르간드의 뒷말을 들었다.
[심지어 방금 네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더냐, 산나. 불멸자는 진짜 신의 의지를 초월할 수 없으나, 필멸자는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엔 필멸자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거대한 존재가 둘이나 있다.]니르간드의 외형이 변하고 있었다.
거대한 까마귀 같던 몸체 곳곳에 황금빛 결정이 돋았고, 어둡기만 하던 두 눈동자도 황금으로 물들었다.
산나는 니르간드의 변화를 느끼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으나, 루크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들을 감히 너희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던가? 아니다. 너흰 실수하였어. 나를 이용하는 건 쉬웠을 테지만, 그들은 아니지… 하물며 이깟 한 조각 따위로는 더욱! 너흰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머잖아, 어쩌면 오늘 내로.]“……네, 유언 잘 들었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어요, 니르간드 님.”
태양신교의 차원문이 닫혔다.
그 후에도 니르간드는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선 채로 실소를 연발했다.
어차피, 이제는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앞에는 반이, 뒤에는 시론이 버티고 있으니.
반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니르간드는 자신과 형제들의 운명을 생각했다.
어쩌면, 아주 먼 오래전부터 정해진 운명이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었다.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흑해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수만 갈래 우레가 검은 땅을 짓밟고 뒤흔드는 소리가 니르간드를 엄습하고 있었다.
한 차례 묵직한 진동이 땅을 타고 번져 니르간드의 몸뚱어리를 흔들었다.
고개를 든 니르간드의 시야에, 저 멀리서부터 시퍼런 길을 내고 있는 광휘가 들어섰다.
[조금 더 걸릴 줄 알았건만, 벌써 왔군.]“그러한가. 나는 네놈이 더 발버둥을 치며 도망치려 할 줄 알았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로군.”
파랗다 못해 새하얗게 타오르는 빛 속에서 반과 투왕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묘하게도 니르간드는 반을 직접 마주하자마자 내면이 차분히 가라앉는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옛날 시론을 처음 본 순간과도, 마성을 극복한 시론이 자신을 죽이려 하던 순간과도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 흑해 5왕에게 시론은 ‘반드시 형제가 될 자’이자 떨어진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 줄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반의 경우는 그냥 피할 수 없는 사고, 혹은 거스를 수 없는 재앙이었다.
흑해의 왕들이 인간에게 그런 존재이듯이 말이다.
“반, 명왕족 투신.”
반과 니르간드는 한참 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서로의 힘을 가늠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반은 니르간드가 소유한 태양신의 힘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지 고민할 뿐이었고, 니르간드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군. 태양신교라는 작자들에게 이용당한 모양이지. 그래… 놈들은 이걸 너라는 거대한 혼기와 섞어 인세로 뿌릴 작정이었나.”
반은 단번에 태양신교의 계획을 알아보았다.
그게 아니고는 태양신의 힘을 이런 식으로 니르간드에게 묶어 둘 리 없으니까.
니르간드가 가진 혼기와 태양신의 조각은 반의 기준에서도 충분히 거대하다고 할 만한 힘이었다.
그저 거대하기만 한 힘이기도 했다.
“형제들은 내가 니르간드를 소멸시키는 동안 주변을 정돈하라. 만에 하나라도 바깥으로 태양신의 잡스러운 기운과 혼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알겠습니다.”
스릉…….
시그문드가 천천히 칼집을 빠져나왔다.
푸르고 창백한 칼날 위로 니르간드의 얼굴이 새겨지고 있었다.
“억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니르간드. 네게 그 힘을 준 자들 또한 곧 이 검에 목이 떨어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