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59)
제 1059화
251화. 대적자들(9)
시리스가 지배인에게 잔을 맡긴 사이, 진은 품속에서 단말기가 진동하는 걸 느꼈다. 탈라리스로부터 온 통신이었다.
{사위, 지금 우리 딸하고 같이 있지?}
“예, 탈라리스 님.”
{그럼 바로 티칸으로 가지 말고, 비궁으로 와. 할 이야기가 있고, 보여줄 사람도 있으니.}
“보여줄 사람이요?”
{으흥, 그래, 꽤 신비로운 사람이지. 직접 와서 확인해. 이따가 보자고.}
이내 시리스가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였던 것 같은데?”
“예, 시리스 님. 비궁에 들르라고 하셨습니다.”
“음, 하필 지금이라니. 약속대로 어색하지 않게 굴기다.”
“물론입니다, 시리스 님.”
진과 시리스가 서로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성으로서의 연심에 앞서,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가장 끈끈한 동료였다.
“가자, 모트.”
[보오옹!]이계설원의 백색문이 열렸다. 모트가 이계설원을 달리기 시작하자, 시리스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진. 어쩌면 이 이계설원도 실키아의 권능처럼 다른 차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테스의 화염계도 그렇고.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영역이잖아, 둘 다.”
[보오오.]모트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관련되어 있다는 게 아니라 가능성은 없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배제할 수는 없겠군요. 실키아에게 전달해서 연구를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트는 순식간에 비궁에 닿았다.
그리고 비궁에 오자마자, 진은 왜인지 낯선 기운이 가득하다는 걸 느꼈다.
‘……용? 비궁에 지내는 용들이 있었나?’
문득 진은 과거 시리스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지난번에 탈라리스 님과 통신할 때 듣기는 했습니다. 요즘 재미있는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고.
-그 재미있는 친구들의 정체는 용이야. 천 살쯤 먹은 젊은 용들.
-젊은 용……?
-묘한 일이지. 소속이 없는 용은 드무니까.
시리스도 그 얘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애인들이 비궁에서 지내는 거야 흔한 일이긴 한데, 오늘은 용이 좀 많군. 너한테 보여준다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모양인데?”
“그런 것 같습니다.”
진과 시리스는 비궁 안채로 들어가는 길에 많은 용들을 마주했다. 대부분 인간으로 변신하고 있지만, 어딘가 어설픈 모습이었다.
변신은 불완전해서 꼬리나 날개가 돋아 있고, 대부분 기운을 감추는 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듯 보였다.
천 살이나 된 용들이 보일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진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듯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용들처럼 보이는군요.”
“그러게.”
안채에 다다르자 가장 먼저 금팽이 상단이 두 사람을 반겼다.
“오, 파트너! 오랜만이야, 이제 너무 잘나가서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구만!”
물꼬리족 어둠불꽃과 왕코, 왕눈도 활짝 미소를 지었다.
“진, 오랜만. 시리스, 머리, 바꿨다. 예쁘다.”
“고마워, 어둠불꽃. 어머니는?”
“저쪽 방. 금설족, 안마, 받고 있다.”
방 안엔 탈라리스와 더불어 처음 보는 한 사람이 함께 안마를 받고 있었다.
“어, 딸, 사위. 왔어?”
“어머니, 옆에 계신 분은……?”
“아하하, 맞아 그렇지, 소개를 해줘야지. 인사해, 여긴 루시 룬칸델이라고…… 사위 선조야.”
진과 시리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루시 룬칸델.
진이 만나지 못한 마지막 십대기사이자, 테마르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그만한 인물이 난데없이 비궁에서 탈라리스와 안마를 받고 있는 것이다.
탈라리스는 충격을 받은 진을 보며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놀랐지? 어떻게 만나게 된 거냐면, 짧게 설명해줄게. 루시는 유폐된 공간이라는 한 아공간에서 가네스토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안전하게 인세로 나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한 거야. 그 결과 비궁 근처에 작은 차원 균열이 하나 생겼고, 그곳으로 루시의 용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 몇 명은 나랑 연애도 했고…… 그러다가 오늘 마침내 루시도 나온 거야.”
그 밖에도 설명하기 복잡한 많은 일이 있었으나, 루시는 탈라리스의 요약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흰 이만 물러가.”
“예입!”
금설족들이 떠나자 탈라리스와 루시가 몸을 일으켰다. 진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고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룬칸델 59대 소가주, 진 룬칸델입니다. 이렇게 선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까지 예의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진 경. 진짜 루시 룬칸델은 이미 천 년 전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저는 그 망령, 혹은 잔재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루시가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마치 과거의 오르갈처럼 일부가 반투명한 상태였다. 곧 사라질 것처럼 말이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검 루시 룬칸델. 천 년 전 사람들이 나를 부르던 이름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온전히 인간이라 생각하며 테마르, 동료들과 함께 가문을 지키고자 검을 들었습니다.”
온전한 인간, 진은 그 말에 집중하며 루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척 보기에도 인간보다는 마족이나 용에 가까운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엔 사슴 같은 뿔이 있고,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황금빛은, 태양기를 상징했다. 그녀도 태양신과 관련이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우리의 패배로 끝나고 깨닫게 된 진실은…… 제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전 제 자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행여 가문에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룬칸델을 떠났습니다.”
루시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지플이 그녀에게 행한 수많은 역사 조작 속에서, 루시가 가진 특이한 힘은 수없이 반발하며 자연스레 그녀를 깨우쳐주었다.
“저는 고대의 큰 뱀, 아메리스의 아홉 머리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기에 현역 때부터 이상하리만치 용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었죠. 그게 제가 깨달은 저의 첫 번째 정체입니다.”
“으흥, 첫 번째 정체라…… 참 이상한 표현이네. 두 번째 정체가 있다는 뜻이잖아?”
“맞아요, 탈라리스. 제가 아메리스의 아홉 머리 중 하나였다고 한들, 그 힘만으로는 당시의 마신석에 소멸하지 않고 저항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들이 조작을 계속 이어간 덕에 알게 된 제 두 번째 정체는, 제가 태양신 킨젤로의 자아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진은 다시 한번 태양기로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찬란한 눈동자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한 마음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모든 걸 깨달았을 때, 저는 저 자신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 루시 룬칸델은 처음부터 허상에 불과했고, 제 진짜 정체는 기괴하기만 할 뿐이었으니까요. 큰 뱀의 머리이자 태양신의 자아…… 그것도, 맹목적으로 세계 파멸을 원하는 자아였습니다.”
루시라는 태양신의 의지는 결코 이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아니다.
루시는 엘로나, 즉 ‘말루기아’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세상의 파멸을 위해 분화된 자아였다.
“가문과 세상을 지키고자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건만, 제 실체는 테마르와 동료들의 의지에 전면으로 반하는 괴물이었던 겁니다.”
신중하게 대답을 고르려던 진을 대신해 탈라리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같이 안마나 받고 있었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다니 뭐라 위로를 건네기가 어렵네. 흐응,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파멸의 자아였다기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않아? 오히려 바멀 연합을 돕고자 우리 앞에 나타났잖나.”
그 말에 루시는 한 차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녀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게 문제지요. 차라리 제가…… 제가 계속 괴물이었어야 하는데. 제가 가졌던 파멸의 힘과 의지는, 딸아이에게 옮겨갔습니다.”
재차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딸아이라 하심은.”
“저와 테마르의 딸입니다. 헤일린, 마코스. 쌍둥이였죠. 둘 중 첫째에게 제가 가졌던 태양신의 힘과 의지가 넘어갔어요.”
루시가 검마전쟁 패배 후 가문을 떠난 건 자신을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헤일린과 마코스, 두 딸을 지키기 위해서도 가문을 떠날 필요가 있었다. 그중 마코스가 바로 후일 룬칸델로 돌아와 테마르의 핏줄을 이은 자식이었다.
그리고 헤일린이, 루시로부터 태양신의 힘을 이어받은 것이다.
진은 거기까지 듣자마자 로키아를 떠올렸다.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에서, 로키아는 천 년 전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테마르를 닮은 여성의 얼굴.
그건 헤일린 룬칸델의 모습이었다.
“제 힘이 어떻게 헤일린에게 넘어갔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두 아이를 낳았을 때…… 저는 제 정체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그때 이미 헤일린에게 넘어간 상태였어요.”
활달했던 마코스와 달리 헤일린은 태어난 직후부터 단 한 번도 평범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았고, 자라면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헤일린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바위 같은 무생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둘째 마코스는 무라칸과 비슷한 성격이었으니, 진실을 모를 때에도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도피 생활 도중, 지플은 망가진 마신석을 이용해 계속 제 역사를 조작하려 했습니다. 그때마다 헤일린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죠. 이미 제 힘이 다 옮겨진 까닭이었겠죠.”
이내 루시가 손바닥 위에 한 덩이의 태양기를 형성했다.
진과 시리스, 탈라리스는 일순 흠칫하며 그 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세 사람이 없다고 가정하면, 폭발하는 순간 비궁을 통째로 날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대한 힘이었다.
“딸아이에게 옮겨진 힘은 9할이 넘습니다. 제게 남은 티끌만으로도 이 정도 힘을 형성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어요.”
이내 루시가 주먹을 쥐어 힘을 흩었다.
“진 경, 저는 딸아이를…… 이제 그 어둠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습니다. 염치없는 이야기지만, 도와주세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