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14)
제 1114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4)
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은 했지만, 확신은 없다. 그러나 발레리아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을 준 동료들이 초 단위로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고, 창성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최전선에서 가장 큰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다.
연합의 유일한 기록 마법사로서, 677차원의 유일한 히스터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지플, 역사 조작, 왜곡.
그들의 천적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오로지 히스터뿐이다.
아직 모든 전승지를 찾지 못했으니 완전에 닿지 못했지만, 반면 적은 완전을 넘어 초월에 다다랐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히스터로 태어난 이유는 없었다. 히스터로서 그토록 버거운 절망과 고독과 책임을 견뎌온 이유가 없었다.
“크으…… 형제들을, 동료들을, 세상을 위해. 난 이 목숨이 아깝지 않아, 발레리아.”
털썩! 벨리즈가 발레리아를 등에서 내려주며 쓰러졌다.
“벨리즈……!”
벨리즈의 목을 끌어안은 발레리아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벨리즈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니 울지 마,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그리고 살아, 남은 사람들을 지켜…….”
차갑게 식은 벨리즈의 손이 떨어졌다. 그녀는 창성들의 전장에 도착하기 천여 걸음 전부터, 이미 광심장 한가운데에 켈리악의 창이 꽂힌 상태였다.
반도, 진도.
벨리즈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흥분하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슬픔을 그렇게 처리하지 않으면 잠시도 목숨을 보전할 수 없는 전장이었다. 전투에 극미한 영향이라도 가는 순간, 벨리즈의 죽음은 헛되게 되는 것이다.
대신 반은 진을 엄호했고, 진은 그사이 발레리아의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로의 이름을 부를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부터 진은 발레리아를 지키며 루나와의 거리를 좁히려 시도했고, 켈리악은 그녀가 거슬리는 듯 그쪽으로 마법을 퍼부었다.
“발레리아 히스터…… 그래, 내 너를 잊고 있었군. 후후, 이 세계에선 감정이란 게 있는 모양이구나. 그리 우는 모습을 보니, 이 또한 신선하군.”
“나와 반이 창과 광선은 전부 쳐낼 것이다, 루나에게 가라!”
수없이 내리꽂히는 창들, 명원계 암원계 마력들, 존재를 지워버리는 죽음의 기둥들.
이번엔 진이 발레리아를 업고 달렸다. 진은 뒷목으로 발레리아의 눈물을 느꼈다. 그러나 루나에게 닿을 때쯤에,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업혀서 이동하는 동안 기록은 이미 살폈다. 발레리아는 진의 등에서 내려 루나의 환부를 확인했다.
고칠 수 있나.
켈리악이 강제로 비튼 현실을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나, 루나가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나.
이내, 발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 경,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시 전투에만 집중하세요. 단, 암원계 마력에 너무 깊게 당하면 그건 제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루나는 한 차례 발레리아와 눈을 맞추고는 크란텔에 다시 심홍기를 둘렀다.
이내 발레리아가 눈을 감은 채 기록 마법 특유의 푸른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하자, 정말로 환부의 진행이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넌 나를 지켜줘, 진.”
“물론.”
“그리고 미안해, 네 어깨는, 내가 해결할 수 없어.”
오직 성왕 라니만이 진의 어깨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팔 하나가 뭐라고, 나는 괜찮으니 집중해. 반드시, 내가 너를 지킬게.”
진이 브라다만테에 영기를 휘감았다.
‘켈리악 지플, 저놈을 다시 보니 인간으로 남을 수 있나, 그딴 걸 의식한 게 우습군.’
사람을 지켜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동료를, 자신을 믿고 따른 이들을 지켜야 한다. 애초부터 솔더렛의 마지막 유산을 얻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없더라도 지킬 수 있다.
‘그런 힘 없이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삶 따위, 겨우 그런 걸 얻고자 회귀한 게 아니다. 증명해주마, 켈리악 지플. 네놈이 아무리 많은 세계를 정복했다고 한들, 내가 있는 건 오로지 이곳 하나뿐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시간을 거슬렀는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다.
회귀 후 처음으로.
진은 가장 오랫동안 품어온 고민이 마침내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회귀로 인해 삶이 바뀐 사람들, 생과 사가 달라진 사람들, 고통받은 사람들, 축복받은 사람들.
그 모두는 결국 언젠가는 저 괴물에게 잡아먹혀 사라졌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하나, 짐승 한 마리, 풀 한 포기조차. 그러므로 이 세상에 무엇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진은 회귀했다.
그 대가는, 슬픔.
다시는 없을 슬픔.
켈리악의 공격을 방어하고자 온 정신과 감각을 집중하고 있음에도, 진은 자신과 창성들의 뒤편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걸 피할 수 없듯이, 전해지고 있었다.
-바네사, 편히 쉬시오.
-제드 경!
-물러나라, 두고 가라!
-흑왕단은 들으라, 죽더라도 동료를 한 사람이라도 더 라프라로사로 보내라!
-오울 님……? 히……? 죽은 거 아니지?
-오, 요나야. 너도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나. 나는 그것이면…… 족하다.
바람을 타고 나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목숨 걸고 세상에 헌신한 이들이 남기는 최후의 목소리들이 더 멀어지더라도.
기어이 버텨내서 유산에 닿으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슬픔을 맞닥뜨리고 괴로워서 몸부림을 치는 것은.
그러므로 지킬 수 없는 말이라도 해야 한다. 지킬 수 없음에도 지키겠다고 말해야 한다. 진은 그렇게 발레리아의 앞에 서 있었다.
“큽!”
이미 한껏 망가진 육신으로 날아드는 명과 암의 마력들, 이를 악문 진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켈리악은 강하다.
그는 시론과 반의 시야를 차단하고, 끊임없이 창성들의 전력이 담긴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집요하게 발레리아를 노렸다.
“커헉!”
명원계 마력을 쳐내면 정신이 멍해졌고, 암원계 마력을 쳐내면 육신 일부가 지워졌다.
그러면 발레리아는 푸른 마력으로 조작된 기록을 붙잡아 다시금 진의 몸을 빚어냈다. 어깨가 사라지면 어깨를, 팔이 사라지면 팔을, 다리가 사라지면 다리를, 심장이 사라지면 심장을 찾아주었다.
그럴수록 켈리악은 무심한 얼굴로 더 강하게 권능을 일으켰다.
‘진 룬칸델은, 확실히 특별하다. 하나 직접 보니 시론 룬칸델만큼 충격적이진 않아, 그들이 없다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잠깐, 저건?’
켈리악의 눈동자가 커졌다. 돌연 그조차 일순 착각할 만큼 완벽한 기운이 전장 곳곳에서 치솟고 있는 까닭이었다.
별처럼 빛나는 황금색 기운들.
명원과 암원의 비가 전장을 어지럽고 빽빽하게 채우고 있건만, 그 속에서 황금빛 기운이 번지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그 기운은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었다. 저 속에선 시론이나 반의 검이라 할지라도 이만한 속도로 켈리악의 마력을 밀고 나아갈 수 없었다. 적어도 켈리악이 아는 한에서는.
‘……재생의 권능이로군.’
꽃처럼 피어나는 금빛 기운의 정체는 진이 창성에 도달하며 얻은 재생의 권능이다.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전 차원을 정복하는 동안, 재생의 권능을 쓰는 적을 마주한 게 진이 최초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토록 완벽하고 광대한 재생의 권능은 없었다. 이내 켈리악은 마치 생각지도 못한 보석을 발견한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힘은 내가 취해야겠구나, 진 룬칸델. 너를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어.”
시잇-!
하늘에서 떨어진 백색의 창 하나가 진의 오른뺨을 스쳤다. 그 순간, 발레리아는 흠칫하며 잠시 집중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노화……!’
켈리악이 공격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마구잡이로 짓밟는 건 시론과 반이 있으니 효율적이지 않고, 조작과 왜곡을 통해 존재를 지워버리는 방법 또한 발레리아의 능력에 조금씩 가로막히고 있었다.
켈리악에겐 아직 수가 많이 남았다. 이어서 꺼내든 패는, ‘시간’이었다.
“나조차 아직 시간을 다 손에 넣지는 못하였다. 이조차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677차원의 발레리아 히스터.”
흰 창이 스친 오른뺨을 시작으로, 진의 얼굴이 급격히 늙어가고 있었다.
주름 패고 피부가 늘어졌다. 이어 격전 속에서도 강철보다 단단하기만 했던 근육이 쪼그라들며, 진은 순식간에 노인이 되었다.
‘나 혼자서는 진과 동료들에게 퍼지는 노화를 감당할 수 없다. 퀴칸텔 님의 도움이 필요해!’
르엣이 전장을 읽고 있으니, 이미 그녀는 퀴칸텔을 창성들 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켈리악도 이미 그걸 예상하며 두 가지 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물론 퀴칸텔이 가진 권능과 힘은 켈리악에게 결코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평범한 장작 한 조각도 거대한 불 속에 던져지면 의미를 지닐 수 있으니, 손쉽게 자를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첫째는 퀴칸텔이 지날 수 없도록 더 세찬 비를 내리는 것, 그리고 둘째는 행여 그녀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비를 뚫더라도 절망하게 만드는 것.
“나와라, 올타. 너의 수족이 감히 기적을 일으키려 하는구나. 그 어느 세계에서도 빛난 적 없는 은룡 따위가.”
즈으으으윽-!
켈리악이 손을 휘젓자 그의 앞으로 또 다른 차원문들이 열리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 속에서 빠져나온 건, 퀴칸텔을 빚은 존재.
시간의 신, 다른 차원의 올타였다. 그 권능을 느끼자마자, 퀴칸텔은 날갯짓을 멈추고 올타를 올려다보았다.
[아…….]다른 차원임에도 다른 신이라고 할 수 없다. 적어도 퀴칸텔이 인식하기에는, 완전히 똑같은 존재인 것이다. 켈리악에게 복속되어 더는 신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로 추락하였음에도.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켈리악 경.]고개 숙인 올타의 목소리에 켈리악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 수족의 삶을 회수하고, 네 계약자를 찾아 찢어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