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26)
제 1126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16)
구르르륵, 쿠으으윽……!
켈리악의 욕망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 전장은, 어디를 보아도 이곳이 흑해였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그저 끈적이는 붉은 욕망만이 대해처럼 출렁일 뿐이었다. 아직은 고지대가 많이 남아 땅을 딛고 서기에 문제가 없으나, 머잖아 그마저도 다 파묻힐 것 같았다.
모두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켈리악 본인조차 자신의 욕망이 이런 식으로 실체화가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헬루람만이 예견한 일이었다. 켈리악이 한 번 더 탈피에 성공하면, 아마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리라고.
세상 전체에 그의 욕망이 차오르고, 생명과 사물은 모두 그 속에 갇혀 질식하게 되리라고 말이다.
헬루람 또한 그런 결말을 원했던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불쾌한 욕망이 아니라 어둠과 심연이 차오르는 형태일 뿐.
쯔아아악……!
욕망의 붉은 바다 한가운데가 입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속엔 지금까지 전장에 나타난 적 없는 차원문이 있었고, 그 속에서 한 덩이의 길쭉한 돌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이어졌다.
마신석.
33차원에서 켈리악에 의해 처음으로 완성된, 세상에 다시 없을 흉물.
“확실히 상하긴 했군…….”
켈리악은 혀를 차며 마신석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단단해야 할 표면은 썩은 버섯처럼 물렁하고, 닿기만 해도 전해져야 할 조작과 왜곡의 권능은 미미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완전히 파괴했어야지, 헬루람. 내가 고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풍덩! 켈리악은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듯 흐르는 붉은 바닷속으로 마신석을 내던졌다.
어차피 이 욕망은 전부 켈리악 지플의 일부, 혹은 그 자체였다. 그로서는 품에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시간이 좀 필요할 테니, 그때까지 남은 싸움을 마저 즐기도록 하지, 다들. 보다시피 나는…… 너희 덕에 나조차 모르던 어느 선 하나를 넘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무언가가 되었어.”
“그래…… 아까는 그래도 사람 가죽을 뒤집어쓰고는 있었는데, 이제는 네놈을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
진의 말에 켈리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죽은 여전히 뒤집어쓰고 있지. 글쎄, 나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욕망의 화신? 절대자? 그런 건 진부하지. 하지만 진부해도 나를 칭하기에 이보다 적확한 말은 없을 것 같군.”
유일신
켈리악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세상에 존재한 불멸자 중, 아니. 그걸 넘어 세상을 창조한 존재조차 나보다 더 뛰어난 권능을 가진 이는 없었다. 심지어 나는 킨젤로처럼 고뇌에 빠져 자멸할 일조차 없지. 세상을 유지할지 파괴할지 재구축할지를 고민하다니, 내게 어울리는 일은 아니잖나?”
부족하면 채워주고, 쓸모없는 것은 덜어내고, 마음에 차지 않으면 차게 만든다.
켈리악은 그렇게 뒷말을 이으며 휘파람을 불기까지 했다. 수세에 몰려 지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무방비하게 서 있을 뿐이나, 아무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면으로 켈리악의 욕망이 밀려드는 걸 막아야 하는 까닭이었다. 창성들을 포함한 모든 연합원, 그리고 헬루람마저도.
믿음을 잃어가던 마신대는 켈리악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제가 경을 의심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의지하려 한 것은 사실이다, 미도르. 너는 바멀 연합과 더불어 마지막으로 나에게 경각심을 준 인간이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직은 내게 너희가 필요하다. 그러니 계속 싸워라. 마신석이 제 모습을 찾을 때까지. 그 후에는 필요치 않을 테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이 없지 않나?”
“물론입니다.”
미도르는 대답을 하자마자 몸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켈리악이 그들을 욕망의 파도에서 잠시 풀어준 까닭이었다.
“마신대의 마지막 전투다. 승리로 끝내도록.”
이전보다 마력이 더 강해지거나, 전투력이 갑자기 상승한 건 아니었다. 론도 무리는 여전히 지쳐 있었다.
그러나 연합은 켈리악이 일으키는 충동을 계속 억제하며 싸워야 했다. 머리는 둔하고, 몸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컥!”
가장 먼저 론도 무리의 마력에 찔린 건 투벤이었다. 그는 가슴에 자신의 머리보다 큰 구멍이 난 채로 서서 죽음을 맞이했고, 동료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육신이 모조리 재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황금함대는 이전처럼 무겁게 적들을 압박하지 못하고, 중앙 전장의 유일한 창성인 무라칸은 연합 모두를 통틀어 가장 극심한 충동을 겪고 있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망할…… 아니라고!]무라칸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듯 혼잣말을 외쳐댔다.
그는 마신대와의 전쟁, 붉은 바다, 죽어가는 동료들, 켈리악 지플이라는 현실 대신 충동이 빚어낸 환상을 보고 있었다.
무라칸이 겪는 충동, 켈리악의 욕망.
켈리악이 유일신으로서 행하려는 일은 태양신 킨젤로가 태초에 행한 창조와 같다. 세상을 빚고, 생명을 일으키는.
이를테면 켈리악이 욕망하는 창조란,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라칸은 지금 현실 대신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보고 있었다.
테마르 지플이 죽지 않는 세계, 솔더렛이 사라지지 않는 세계,
망령이 된 프레이, 이올로, 드라낙스를 제 손으로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계, 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지금처럼 또 동료들을 잃지 않아도 되는 세계.
붉은 바다는 전장에 있는 모두가 그런 충동에 휩싸이도록, 환상을 보도록 끌어들이고 있었다. 무라칸이 가장 먼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일 뿐, 결국엔 모두가 그처럼 될 것 같았다.
“너희는 욕망하고, 나는 너희들의 욕망을 수정한다. 마신석이 복원되면 이제 무라칸은 다른 것을 보겠지. 지플을 위해 제 손으로 자신이 사랑한 것들을 짓밟는 환상을 보게 될 거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그 환상은, 현실이 되는 것이지.”
그 누구도 자신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모든 건 켈리악의 욕망에 의해 조율되고 수정된다.
“이것이 내가 유일신으로서 세상을 다스리기로 한 방법이다, 진 룬칸델.”
“무라칸!”
론도 무리가 쏜 마력 광선과 공간 폭발이 무라칸을 덮쳤다. 무라칸은 환상에 취해 피할 수 없었다. 동료들과 황금함대가 대신 보호막을 치지 못했다면, 광선 중 하나는 그의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
[으으…… 윽.]“무라칸, 정신 차려!”
소리치고 있으나, 진도 엄습하는 충동을 겨우 밀어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회귀를 통해 이루고 싶던 건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고, 이토록 끔찍한 싸움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
‘침착해야 한다. 무라칸은 정신을 잃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싸울 수 있다. 저주 해제도…… 문제가 없다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이제 한 시간만 버티면 돼. 한 시간을…… 놈이 일으키는 정신 조작에서 버티려면.’
발레리아가 필요하다.
답은 발레리아뿐이었다. 그녀가 기록을 찾아주어야 했다. 지금 우리는 켈리악의 정신 조작에 당하고 있다는 기록을 찾고, 끊임없이 동료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발레리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진은 섬찟한 마음에 홱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발레리…… 아.”
발레리아는 넋이 나간 채 허리까지 차오른 시뻘건 바닷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떠 있는 기록창은 ‘켈리악 지플의 욕망이 번지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더 갱신되지 않고 있었다.
그녀도 무라칸처럼 이미 환상에 갇힌 것이다.
회색부엉이 용병단과 함께 생활하던 그 시절에, 진과 함께 혼카 섬의 해변을 거닐던 그 순간에, 진과 마지막으로 함께 밤을 지새운 그날에.
그 기억들은, 발레리아의 삶에 몇 안 되는 행복이었다.
불행이기도 했다. 그녀는 하염없이 환상 속을 거닐며 행복이 끝까지 행복으로만 남을 수 있는 세계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더 지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안타깝게도 발레리아 히스터도 이제 쉬기로 한 모양이군, 진 룬칸델. 이제 어쩔 것인가? 또 무슨 짓을 해서 나를 놀라게 할…….”
[진 룬칸델.]헬루람이 켈리악의 말을 끊으며 진의 이름을 불렀다.
[한 시간. 내가 켈리악 지플을 붙잡아 두겠다. 너희는 솔더렛의 마지막 유산을 찾아라.]마녀 헬루람.
그녀는 켈리악을 막기 위해 연합을 돕더라도, 진이 유산으로 들어서는 일은 반드시 막으려 했었다. 애초에 헬루람과 말루기아, 그리고 연합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헬루람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로서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일 뿐.
“마녀 헬루람, 구시대의 불멸자에게 아직 남은 힘이 있는 모양이지.”
[어린애처럼 들떠 있구나, 고아. 마신석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유일신이라는 지위는 아직 네 것이 아니다. 복원이 끝나기까지 1분이 남았든, 10분이 남았든. 그때까지는 아니다.]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켈리악이 손을 뻗자 말루기아와 아락시온이 헬루람의 품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정지한 기계처럼 미동이 없었다.
“태양신의 힘을 흡수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을 이리도 쉽게 빼앗기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치는군. 한번 아까처럼 말해보지 그러나? 네게는 다 계획이 있다고.”
전장 중앙부에선 여전히 동료들이 정신을 잃은 무라칸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라칸, 일어나라! 네가 없으면 다 죽는다고.] [나는…….]격전지의 창성들은 진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헬루람이 뱉은 말을 지키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진은 발레리아를 들어 안으며 망망하기만 한 붉은 바다를 쳐다보았다.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던 재생의 권능은 욕망에 파묻혀 한 점조차 보이지 않고, 이제 진은 이 바다를 모조리 뒤져 다시 안배의 입구를 찾아야 했다. 1초라도 빨리 테마르의 왼팔에 걸린 저주가 해제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표정 풀어, 이 자식아…… 후욱, 누가 보면 다 끝난 줄 알겠다.]오르갈이었다.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네가 처음이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이란 말이지. 어떻게든 끝까지, 저 빌어먹을 새끼를 붙잡고 끌어내려 보자고.]붉은 바다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막막하지만, 익숙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