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25)
제 1125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15)
전 차원 위에 군림하는 유일한 절대자.
마신대에게 켈리악은 그런 존재였다. 그들이 익히 알고 있던 세계의 질서, 법칙, 권능 따위를 모조리 뛰어넘고, 상식을 부정하고, 무슨 수로도 무너뜨릴 수 없던 그 완벽한 존재는 지금, 지원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 이상 켈리악 경을 능멸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미도르.”
“용납하지 않으면 어쩔 것이오? 경의 전투력은 어차피 나와 비슷한 수준이오. 켈리악 경이 홀로 일어서서 나를 벌한다면, 받아들이겠소. 아마 죽지도 못하는 영혼이 될 테지. 그딴 건 두렵지 않아. 내가 두려운 건, 오로지 켈리악 지플이라는 인간이 내 믿음을 저버리는 것뿐.”
“네놈!”
[무얼 그리 떠들어대고 있나? 싸움이 편한가?]무라칸이 론도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그는 오른팔만 용의 형상을 유지한 채 인간으로 변해 론도의 머리를 휩쓸고 있었다.
미도르의 태도에 일순 충격을 받은 게 문제였다. 론도는 갑자기 거리를 좁힌 무라칸을 제때 인지하지 못했다.
손톱 끝이 론도의 가슴팍을 베었다. 황급히 보호막을 두르며 몸을 빼내긴 했으나, 한 치쯤 파고든 손톱에 쇄골과 흉골이 걸렸다.
보호막은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무라칸의 손톱이 보호막에 걸리지 않았다면, 차라리 깨끗하게 베였을 터였다. 녹슬고 이 빠진 칼날로 친 듯, 론도의 가슴엔 지저분하고 깊은 상처가 남았다.
“커헉.”
그나마 다행이라면, 미도르가 완전히 배신을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미도르는 공간 폭발을 일으켜 무라칸을 떨쳐내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살아서 지켜는 봅시다, 론도 경. 수장이 정녕 이대로 허물어지는지!”
미도르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론도와 함께 싸우는 마신대의 창성들은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다. 켈리악이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면, 더 이상은 그를 따를 가치가 없다고.
어차피 켈리악이 지면 그들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막힐 것이며, 심지어 고향 차원이 말루기아에 의해 이미 멸망한 이들도 있었다. 바멀 연합이 자신들을 용서할 리도 만무했다.
끝까지 싸우는 것밖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더는 켈리악을 신뢰할 수 없더라도.
화염옥에서 쏘아진 창은 이번에도 어두운 하늘을 가르고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힘이지만, 엇나가고만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놈들을 끝장내고, 격전지를 지원한다!]론도가 중상을 입은 까닭에 마신대로선 이제 켈리악을 지원할 여력이 남지 않았다. 무라칸과 초인들, 함대의 압박을 견디는 게 최선이었다.
론도를 제외해도 무사한 창성이 다섯에 신들, 성수단까지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한 전력이다. 그러나 바멀 연합이 사람들을 규합하고, 함대를 만든 건 바로 이런 자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적의 창이 계속 무뎌지고 있으니, 곧 라프라로사도 지원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함대는 먼저 격전지로 가세요.]르엣의 명령에 기함 사라가 동력을 높였다.
테스는 소멸했지만 진의 청화는 꺼지지 않았다. 기함 사라가 활활 타오르는 푸른 칼날을 뽑으며 격전지의 중심으로 쇄도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쩌엉-!
켈리악이 펼친 붉은 보호막 위로 사라의 칼날이 떨어졌다. 그가 처음 나타난 때였더라면, 사라는 이렇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켈리악은 미간을 찡그리며 사라를 의식하고 있었다.
“가당치도 않은 고철 따위를……!”
키익, 그그그극! 칼날과 보호막에서 불쾌한 마찰음이 진동했다. 켈리악은 마력으로 칼날을 움켜쥐어서 부러뜨리려 했으나, 별안간 측면에서 들어온 반을 인지하곤 고개를 돌렸다.
누가 더 지쳤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둘 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반의 검도 본래만큼 예리하지 않고, 켈리악의 감각도 마찬가지였다.
반의 검이 켈리악의 목을 찌른 순간, 보호막이 무너지며 사라도 안으로 들어섰다.
“카하아악!”
눈을 부라리는 켈리악, 그는 마치 사람을 메치듯 사라를 붙잡아 내던지며 괴성을 질렀다. 선체를 방패 삼아 반의 검을 막으려 했으나, 시론과 아락시온도 그와 거리를 좁힌 상태였다.
살과 피가 튀었다. 더뎌졌어도 재생하면 그만일 테지만, 창성들은 그의 반응에 주목했다.
‘공격을 최대한 피하려 하고 있다.’
켈리악은 내내 상대의 빈틈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일부러 공격을 허용하는 전투를 구사했었다.
그가 회피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재생력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까닭일 터였다. 본인조차 그 끝을 알 수 없던 생명력은, 이제 정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전장 중앙으로 일순 시선을 옮겼다.
‘……이 내가, 저것들을 의식한단 말인가? 왜 저것들이 공중요새를 묶지 못하고 있는지, 답답하게 여긴다는 말인가.’
연합과 불멸자의 공세에 머리가 너무 자주 터졌다가 재생된 탓일까, 켈리악은 미도르가 10분쯤 전에 자신에 대해 한 말을 방금 있던 일로 착각하고 있었다.
‘미도르, 이 개자식. 옳은 말을 하는군…… 내가 쓰러지면 마음껏 비웃고 침을 뱉어라,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네놈이 적들의 공세를 버티고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다만.’
한없이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면 온몸의 뼈들이 덜걱거렸다. 눈앞은 점멸하는 등처럼 껌뻑였고, 마력은 마구잡이로 흐르는 급류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실수가 많았다.
불현듯 켈리악은 흔히 ‘절대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믿은 역사 속의 수많은 우인과 자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하기에 오만하고, 두려운 게 없기에 안일하며, 세상 전부를 가졌기에 지루하다. 역사 속에 반드시 몇씩은 있는 그 머저리들과, 사실 나도 똑같았다는 말이지…….’
변치 않는 것을 변하게 한다.
그 어떤 세계에서도 어떤 시간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마저, 뒤틀 힘을 갖는다.
켈리악은 자신에게 남은 욕망이 이제 그것 하나뿐이라고 여겨왔다. 전 차원을 정복하고, 태양신을 부활시키는 건 단지 그를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켈리악은 깨닫고 있었다.
‘먼저 나부터 그 흔해 빠진 놈들과는 달랐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으니 지금 이 꼴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야.’
살고 싶다.
누리고 싶다. 뜻대로 역사를 바꾸고, 시간을 움직이고, 세상을 빚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욕망이 켈리악의 내면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은 단지, 그의 내면에서만 꿈틀거리는 게 아니었다.
‘이건 또 뭐야……!?’
별안간 격전지의 대지로 불쾌하고 끈적한 액체가 차오르고 있었다.
선지처럼 붉게 빛나는 액체였다. 켈리악으로 인해 시작된 변화는 분명하나 그건 마력도 아니고, 피도 아니었다.
욕망.
마치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 의지만으로 검을 형성하고, 산조차 일격에 가를 검기를 발산하듯이.
켈리악은 자신의 욕망을 물화시키고 있었다. 내면의 감정을 실체화하고 있었다.
채 5초가 지나기 전에 액체는 이미 전장 전역을 뒤덮었고, 흑해 저 끝을 향해 나아갈 지경이었다.
“읍……!”
발레리아는 갑자기 기록창에 서술된 모든 기록이 똑같은 문장으로 뒤덮이는 걸 보며 헛구역질을 뱉었다.
“발레리아!”
“발레리아?”
진과 엔야의 부름에도 발레리아는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운 듯 잠시간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록을 수호하는 자로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자로서 이 욕망이 초래할 결과를 직감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런, 이런 기록이, 이런 게 세상에 남아선 안 돼, 지울 수 없어…… 어서 저 괴물을 끝내야.”
“그게 무슨.”
“잘 들어, 진. 이 붉은 액체는 켈리악의 욕망이 물질화된 것이고, 오늘이 지나기 전에 전 세계로 퍼질 거야. 그렇게 된 땅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어. 네가 가진 재생의 권능조차도, 다 집어삼킬 정도니까.”
“욕망…… 이라고? 이게?”
주위를 돌아보니 그 말대로였다. 붉은 액체는 진과 동료들이 남긴 금빛 기운을 벌써 모조리 덮어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헬루람의 어둠에도, 말루기아의 태양기에도 지워진 적 없는 빛임에도.
욕망이 부풀어 오른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발목을 적시던 욕망은, 이제 무릎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 창성들도, 불멸자들도 그걸 피해 고지대를 찾으며 켈리악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만, 말루기아는 하늘로 떠올라 가만히 붉게 퍼지는 액체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얼굴을 한 채.
“말루기아, 너는 결국 실패했구나!”
켈리악이 말루기아를 올려다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이제 설령 네놈이 어떤 파괴를 이룩하더라도, 이 붉은 자국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저 허무라고 부를 수 있는 종말은 이제 실현될 수 없지.”
전 차원이 종말을 맞이해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욕망의 흔적.
켈리악은 자신으로부터 쏟아지고 있는 붉은 액체와 덩어리들의 성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수억, 수어억! 검풍을 일으키고, 뇌기를 폭발시켜도 붉은 욕망은 잠시 사라지는 듯 보일 뿐, 순식간에 다시 그 자리로 차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 현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 어딘가가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욕망을 존중하고 따라야 할 것 같은, 기괴한 충동이 머릿속을 휘젓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네게는 싸워야 할 이유도, 네가 존재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 것이다. 필멸자들처럼 원한을 갚겠다며 설치고 싶지도 않을 테니…… 내게로 와라. 내 너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마.”
말루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 선 헤일린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그들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지상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존재가 욕망의 붉은 바다로 빠지기 전, 그들을 구한 건 헬루람이었다. 헬루람은 돌처럼 굳은 두 사람을 품에 안으며 켈리악을 내려다보았다.
[기어이 세계를 망가뜨렸구나, 고아야…….]그 말에 켈리악은 눈동자를 빛내며 이렇게 답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마녀. 느껴지나? 네가 그토록 어렵게 훼손한 마신석이, 방금 이곳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