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37)
제 1137화
259화. 세상의 진실, 너의 진실, 나의 진실(6)
왜 677차원의 발레리아 히스터만 나와 한 세계에 공존할 수 없을까, 왜 처음 차원 통로로 떨어진 순간 하필 677차원으로부터 가장 먼 곳이었을까.
어쩌면 그 모든 건 나와 그녀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인 걸까. 과거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과거와 현재가 함께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하…….”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는 공존할 수 없다는 당연한 상식이 적용된다면, 지금껏 겪은 다른 역설들은 뭐지? 왜 그것들은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하면서, 나와 677차원의 발레리아에게만 간단명료한 질서가 적용되는 것이지?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반면, 내게는 다른 할 일이 많았다.
진을 구하고, 세상이 전부 마신대의 손아귀로 들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 어차피 처음부터 나는 그걸 위해 시간을 되돌리자고 말했다.
나만 고독하고 아픈 것도 아니었다. 나만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지플에 대항하다, 마신대에 대항하다 스러진 모든 발레리아들도, 사람들도 그렇게 아팠을 것이다.
막, 진이 라프라로사를 해방했다는 기록이 창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녀에게 온전히 닿을 가능성은 작겠지.
“677차원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공존이 불가하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진을 도와야 해.”
677차원의 역사는 진으로 인해 너무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마신대가 677차원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기록도 발견했으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모든 건, 나와 진. 그리고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677차원에 개입할 방법을 찾으면서, 틈틈이 직접 진입하는 일도 계속 시도했다.
그러다 딱 한 곳, 내가 직접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시간을 돌리기 전 솔더렛과 내가 마신대의 기록을 살피던 바로 그 아공간이었다.
“여긴, 애초에 677차원으로 분류되지 않네. 차원 통로에 해당된다는 말이지…….”
그래도 677차원에서 가장 가까운 차원 통로였다. 내 기록창엔 어느 때보다 677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이 기록되고 있었다.
“너도 나처럼 시간이 돌려지는 대신, 차원 통로로 쫓겨난 거구나.”
솔더렛은 이곳에서 시간을 되돌렸으니, 시작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건…… 문? 이런 게 있었나?”
새하얗고 거대한 문.
분명 세계가 회귀하기 전, 나와 솔더렛은 이런 문을 만든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이게 솔더렛이 남긴 유산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솔더렛이 지금도 힘이라는 형태로 남아 진을 돕고 있는 것처럼, 이 아공간에 남은 것도 그가 남긴 권능이었다.
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니 사실이었다. 이 문 너머엔, 솔더렛이 마지막 순간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남긴 권능이 있었다.
빛이 있었다.
얻는다면, 33차원의 켈리악 지플과도 얼마든지 싸워볼 수 있을 것 같은, 빛이.
그간 차원 통로를 헤맨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확 두려운 마음이 치솟았다.
‘테마르의 육신과 바리사다가 있으면…… 이 공간은 솔더렛의 허락이 없어도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심지어 차원 통로를 이용하면, 그것들이 없어도 진입할 수 있어.’
테마르의 육신이 남은 차원이 또 있던가? 바리사다는 차원마다 한 자루는 있었는데? 마신대가 이 유산의 존재를 알게 되면, 그들은 이 힘을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공간에 진입한 이상 추적자들은 결국 언젠가 이곳을 찾을 터였다. 각 차원의 마신석이 끊임없이 내 행적을 파헤치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유산은 양날의 검이었다.
‘아공간과 문에 봉인을 걸고, 마신대보다 진이 먼저 여기 닿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해. 이제 정말…… 다 왔어.’
33차원의 켈리악 지플은 내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677차원으로 난입했다.
다행히 내 기록창 위로 677차원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점점 더 많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말루기아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끝이었어.”
물론 바멀 연합이 그만큼 저력을 보여준 덕에 변수도 유의미하게 작용한 건 맞다. 하지만 켈리악이 회복해서 돌아오면, 그때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처가 깊긴 했던 모양이다. 바멀 연합이 흑해로 갈 때까지, 그리고 론도 지플이 이끄는 백색함대가 677차원을 침공할 때까지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쯤부터 나는 거의 실시간으로 전장의 기록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메시지도 원하는 순간에 닿기 시작했다.
얼마나 간절하게 바멀 연합을 응원했는지 모른다.
마신대의 추적 때문에 매 순간 메시지를 줄 수는 없었다. 메시지를 계속 줘야 할 만큼 바멀 연합의 저력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제발, 제발 조금만 더 버텨……!”
세상을 지키려는 이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에게 달려드는 이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이들이, 쓰러지지 않는 이들이.
안쓰러워 미칠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전장으로 달려가 나도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내 싸움은, 흑해가 아니라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추적자다!’
바멀 연합이 테마르의 왼팔에 걸린 저주를 풀기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반드시 이곳을 지켜야 했다.
나는 즉시 봉인 밖으로 나가 적들을 차원 통로의 다른 지역으로 유도했다. 추적자는 실린 지플, 그리고 그자의 직속 창성 마법사 셋.
그 정도로는 나를 잡을 수 없다. 마법으로 물질을 창조하는 경지에 다다른 나였다.
평소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힘을 아껴야 한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진을 위해 세상의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마법을 준비한 상태였고, 때문에 전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허억, 헉…….”
그래도 적들을 물러나게 만드는 일은 성공했다. 마법사 셋은 차원 통로의 미로 속으로 처박았고, 실린은 떨쳐냈다
다만 차원 통로의 빛에 상처를 치유할 여유는 없었다. 이번엔 부상이 너무 깊은 탓에 빛의 치유력만으론 해결이 안 될 정도기도 했다.
다시 유산으로 돌아와 확인한 기록창에는 한없이 암담한 전황이 서술되고 있었다.
각성해서 한층 더 끔찍한 괴물이 된 켈리악이 진과 그의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내용이 쉴 새 없이 갱신되었다.
진이 죽게 둘 수는 없다.
나는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짜내 진과 아메리스, 로키아를 제외한 전장의 시간을 멈췄다. 단 한 번, 내가 677차원에 직접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사용했다.
가장 적절한 순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성공이길 기대하면서, 나는 의식을 잃었다.
성공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진을 만났다. 그의 마력을 조금 받아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리기 전부터, 그토록 보고 싶던 사람이…… 내가 선택한 단 한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별과 별 사이를 넘듯이 수많은 차원을 넘나들고, 공허한 차원 통로를 수없이 헤매며 기다린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는 내게 실망하고 있었다.
서운하지 않았다. 나라도, 누군가 뜻대로 나를 선택해 세상을 바꾸려 했다면…… 그럴 것이다. 그게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해도.
그래도 그에게 업혀 솔더렛이 남긴 백색 문으로 향하는 십여 분 남짓한 시간은, 내 삶에 다시 없을 따뜻한 순간이었다.
설령 그사이에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잠시라도 더 이렇게 있고 싶을 정도로…….
진.
진…… 나는…….
“아…….”
진은 쓰러진 발레리아를 끌어안았다.
“발레리아…… 발레리아.”
진은 발레리아를 처음 본 순간 그녀가 그토록 익숙하게 느껴진 이유를 깨닫고 있었다.
이 사람은, 스승이다.
전생의 나를 구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시간이 돌려질 때, 그 사람은 나처럼 모든 기억을 가진 채…… 차원 통로로 추방되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영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끝없이 어두운 시간 속에서, 알 수 없는 미래를 견디며 나를 찾아왔다.
그런 사람에게 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지 못 했냐고, 이게 최선이었냐고 따지듯 말했다.
발레리아는 진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행이야, 너를 위한 기억은 빚을 수 있었네.”
“나는…… 다 잊고 있었어. 미안해, 발레리아. 다 잊어버리고 말았어…….”
그때 우리를 잊지 마. 이 모든 걸 잊지 마, 진은 솔더렛이 시간을 되돌리기 전 발레리아가 자신에게 새긴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발레리아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진, 이제 어서 가자.”
솔더렛이 빛의 힘을 남겨둔 백색 문.
기억을 읽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발레리아는 기록 마법으로 백색 문을 살펴 빛의 힘에 대한 모든 걸 알아냈다.
진이 그 힘을 얻는 순간 이 공간은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사라진다. 677차원의 발레리아와 함께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렇게 하면 네가.”
“어차피 난 이 공간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여기까지야. 알잖아…….”
발레리아의 팔이 진의 목을 감쌌다. 뺨에 입을 맞추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진, 나는 나의 진 룬칸델을 구했어.”
그러니 너는 너의 발레리아 히스터를 구해.
우리의 세계를 구해.
목이 메어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질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진은 다시 발레리아를 등에 업었다.
“가자, 진. 업어주라.”
백색 문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문 너머의 빛으로 나아갈 때마다 등이 점점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는, 어딘가 이어져 있어. 그러니 우리가 지금 그 엉켜있는 시간을 넘어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죽음과 삶도 마찬가지일 거야. 진, 기억해. 이건, 우리가 해낸 일이야. 나를…… 부탁해. 내가 어떤 세계에서도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을 부탁해.”
눈 부신 빛 속에서, 발레리아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