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36)
제 1136화
259화. 세상의 진실, 너의 진실, 나의 진실(5)
처음엔 이곳이 차원 통로라는 걸 알지 못했다.
솔더렛이 시간을 되돌리는 걸 실패한 건지, 그 과정에 나도 죽음을 맞이해서 사후세계에 도착한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긴…… 어디지. 솔더렛, 솔더렛!”
몇 시간은 솔더렛을 부르며 정처 없이 앞으로 나아갔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새하얀, 바닥과 하늘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하얀 풍경만 나타날 뿐.
기록창을 열어도 나타나는 문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승지를 찾으며 수많은 아공간을 경험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곳이 차원 통로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낮과 밤이 존재하지 않아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없고, 나는 절망감에 빠져 일부러 잠을 자기도 했다. 눈을 뜨면, 내가 알던 세상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아무리 움직여도 허기가 지지 않았다.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을 한계까지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중 나는 문득 그곳이 온통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빛……?”
하늘도 없고 태양도 없는데 어디를 봐도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문득 솔더렛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환하게 빛나며 소멸하던 그 모습이.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공간을 물들인 빛이 솔더렛 그 자체는 아닐까. 그 빛 덕분에 허기를 느끼지 않고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배고플 일도, 마력이 고갈될 일도 없으니 나는 매일 기록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기록창에 나타날 때까지 영원히 그렇게 하자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그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히스터로서 쌓아온 그간의 지식을 고찰하고, 마법을 변형하고, 강화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계속 그렇게 기록 마법을 사용하던 중, 나는 처음으로 창에 문장이 나타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싶던 내용이었다.
기록 마법에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덕에 생긴 결과였다. 그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시간을 되돌린 건 성공이고…… 솔더렛은, 다시 빛이 되었다고?”
다시.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다. 그의 본질은 빛 그 자체였다는 것.
나는 점점 더 기록 마법을 탐구했다. 더 많은 기록을 찾아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곳을 탈출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세상은 분명 30년 전으로 돌아갔고, 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나만 시간이 돌려지지 않고 이 공간에 갇힌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 진. 내가 갈게. 너 혼자 싸우게 두지 않을게.”
그렇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내 체감상으로는, 백 년은 넘었을 것 같다. 어쩌면 수백 년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내 기록 마법은 거의 통달의 경지에 다다랐고, 새로운 기록들이 창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구원과도 같던 그 한 문장을 시작으로, 나는 모든 차원의 기록을 조금씩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다른 차원의 기록을 살펴볼 수는 있으나, 여전히 나는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진에게 내가 아는 정보를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후 진의 기록을 추적한 바에 따르면, 내가 그에게 남긴 기록은 유효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만 나는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진의 기록을 보며,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내 기록은 유효하지 않더라도, 어째서인지 진은 시간이 되돌려지기 전 자신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고. 그리고 솔더렛 또한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니라, 단지 힘의 형태로 남아 그를 돕는 중이라고.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끝내 직접 677차원으로 갈 수 없다면, 최소한 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677차원만 신경 쓰진 않았다.
나는 지플의 역사 조작에서 파생된 거의 모든 차원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나 ‘회귀한 진’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들은, 솔더렛이 시간을 되돌리기 전과 거의 유사한 역사를 보여주었다.
가능하다면 그 차원들에도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이미 앞서 살폈듯이 677차원처럼 진과 내가 깊은 인연을 맺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곳에도 발레리아 히스터는 분명 존재했다.
진이 없어도, 발레리아 히스터는 어느 세계에서나 지플에 대항하다 죽음을 맞이했었다. 그리고 모든 발레리아 히스터는 기록 마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내가 그 세계로 기록 마법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세계에 아주 작은 변화가 생긴다면, 누군가는 그 기록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신대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233차원의 발레리아 히스터에게 처음으로 내 메시지가 닿았다. 안타깝게도 메시지의 전문을 받진 못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마신대가 존재한다는 내용은 전달된 것 같았다.
이를테면 거리라고 해야 할까, 차원마다 그게 달랐다. 내가 있는 이곳, 차원 통로는 233차원과 가장 가깝던 것이다.
다른 차원과의 거리는 기록창에 흘러들어오는 정보의 양으로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은 기록이 들어오는 곳은 가깝고, 가장 적은 기록이 들어오는 곳은 멀다.
안타깝게도 677차원은 가장 멀었다. 그 수많은 차원 중 제일 적은 정보가 나타났다. 우연은 아닐 것 같다.
차원을 골라서 메시지를 남길 수는 없었다.
쪽지가 담긴 유리병을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닿길 기도하면서, 나는 다른 차원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다.
회색부엉이.
마신대가 반군이라 부르는 회색부엉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다른 차원의 발레리아들은, 그저 내 메시지를 받아 독자적으로 마신대에 대응할 방법을 궁리했을 뿐이다. 어떤 차원의 발레리아는 꽤 거대한 세력을 만들기도 했고, 어떤 차원의 발레리아는 끝까지 혼자 활동했다.
모두가 회색부엉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 그리고 끝내 전부 실패한 것.
그게 모든 발레리아들의 공통점이었다.
“결국 677차원…… 진에게 모든 게 달렸어. 이대로라면 곧 진이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차원이 마신대에 정복된다.”
메시지가 전달되기 시작하는데도 역사가 바뀌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간혹 나타나는 677차원의 역사만이 위로가 되었다. 그곳에선 진이 또 다른 나를 만났고, 그녀와 일찍부터 유대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위로만 된 건 아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677차원에 있는 발레리아는…… 누굴까. 나인가, 그렇다면 여기 있는 나는. 뭐지?”
질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전생의 기억을 지닌 진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내 지난날을 잊지 않았다. 시간이 돌려지기 전, 내 삶은 진을 만나기 전까지 그저 어두운 증오의 세월일 뿐이었다.
저 발레리아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저 발레리아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 할 일을 하자. 이런 생각은 마신대를 막는 일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이 아득한 차원 통로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보았다.
“발레리아 히스터, 여기 숨어 있었군…… 네놈이 반군의 수장일 테지.”
실린 지플.
그토록 고독했건만, 하필 처음 나타난 타인이 마신대의 일원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다른 세계를 정복하며 차원 통로에 대한 여러 비밀을 알아낸 모양이었다.
세상의 기록을 살피느라, 나는 정작 내가 있던 차원 통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지플의 추적을 피하며 매번 차원 통로의 미로를 넘나들었다. 처음엔 차원 통로에서 이동하는 법도 알 수 없어, 실린 지플이 남긴 흔적을 이용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곳을 찾아올 수 있다면, 나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실에 들떠서 상처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상처는 다행히 차원 통로에 남은 빛이 스미며 회복되었다.
“나갈 수 있다. 나가야 해, 어서 진에게 가야 해……!”
마신대의 추적자들이 남긴 기록을 분석해, 그들이 차원 통로를 넘나드는 방법을 익혔다. 그들은 차원 통로의 미아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들이 마신석으로 분석한 정보에 의하면 차원 통로는, 인세의 흑해와 유사했다. 매번 길이 바뀐다는 점에서. 마신석조차 차원 통로의 길을 완전히 분석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차원으로, 가능하다면 677차원으로 직접 나가고자 매일 차원 통로의 지도를 기록했다.
기록하고, 파기하고, 기록하고, 파기하고. 그 와중에도 다른 세계의 기록을 읽었고, 기록의 크기를 기반으로 해당 차원과의 거리를 짐작하고, 그러다 추적자들이 찾아오면 도망치고.
매 순간 목숨이 위험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기록을 살피고 메시지만 보내던 때보다는, 차라리 더 나았다. 적이라곤 해도 어쨌거나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까.
내가 처음으로 직접 진입한 차원은 262차원이었다.
그때쯤 나는 마법으로 물질을 창조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고, 차원 통로와 이곳에 남은 빛을 분석하다 태양신이라는 ‘물질’보다 먼저 존재한 빛이 솔더렛이고, 어둠은 헬루람이었다는 사실까지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빛과 어둠에서 킨젤로를 통해 물화된 존재이니, 빛과 어둠 그 자체는 아니다.
어쨌거나 262차원은 내가 들어간 시점에 이미 마신대에게 정복당한 상태였다. 실로 오랜만에 맡는 바깥 공기에선, 피와 재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들의 추적을 피해 차원 통로로 몸을 숨겼다.
12, 31, 632, 55차원 등, 이후 내가 직접 들어간 차원은 전부 그런 상태였다. 나중에는 통로에서 해당 차원의 상황만 살피고, 직접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가도 어차피 그곳은 마신대의 지배를 받는 중이니 켈리악이 나를 추적하기만 편해지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던 역사대로 모든 차원이 켈리악의 손에 들어가고 있는 와중.
나는 마침내, 그토록 꿈에 그리던 677차원에 가까워졌다. 그때 677차원의 발레리아는 이미 내가 남긴 몇 가지 메시지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677차원은, 앞서 내가 직접 들어갈 수 있던 세계들과 다르게…… 내가 직접 들어갈 수 없었다.
“왜…… 왜 여기만…… 들어갈 수 없는 거지?”
멍한 얼굴로 혼잣말을 했지만, 사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진과 함께 마신대에 대항하고 있는 발레리아 히스터.
그녀와 나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