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6)
제 111화
37화. 세상을 지우는 힘, 세상을 지탱하는 힘(1)
파즈즉!
함포가 쏘아지기 직전, 다행히 탈라리스가 반 템포 빠르게 만빙을 휘둘렀다.
투명한 검 끝에서부터 쏘아진 것은, 코젝을 단숨에 갈라 버려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거대한 검기.
한기를 가득 머금은 검기가 함포를 향해 나아가자, 그 길을 따라 바람이 얼어붙으며 반짝이는 빛을 남겼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위대한 검기를 감상할 틈 따윈 없었다.
덥석!
진이 라오사를 어깨로 들쳐 탈라리스의 뒤편으로 내달렸고, 시리스가 그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이 모든 일은 1초 남짓한 사이 동시에 일어났으나.
함포가 콜론을 지워 버릴 기세로 발사된 것도 그 1초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콰아아아……!
일순 어둑한 새벽하늘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응축되고, 또 응축되어 이내 황금색을 띠게 된 마력이 코젝의 포신에서 쏟아진 결과였다.
아마 그 위력은, 탈라리스의 검기에 가로막히지 않았다면.
콜론의 중심부를 완벽하게 지워 버렸을 것이다.
씨이이익! 키익!
검기와 포가 맞닿자 귀를 찢는 날카로운 굉음이 일었다. 한 인간의 힘과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전쟁 병기, 코젝의 위용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코젝의 포는 온전한 형태로 지상을 내리칠 수 없었고, 탈라리스의 검기는 하늘 높이 뜬 선체에 닿지 못했다.
대신 수백 년 뿌리를 내린 거목조차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충격파가 콜론을 휩쓸기 시작했다.
탈라리스가 원주민들에게 쳐 놓은 얼음 결계에 쩌적 균열이 일었고, 그녀의 근처에서 휘몰아치는 수만 개의 얼음 결정도 쉴 새 없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번쩍이며 낙하하는 오러와 마력의 파편들.
탈라리스가 피하라고 소리친 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파편은 한 조각, 한 조각이 단련된 무인조차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그걸 다 피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미친 듯이 달려 파편의 영향이 가장 적은 공간에 닿았지만, 유적지 전 영역에 완전히 안전한 곳은 없었다.
“신녀! 여기 엎드려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마십시오!”
동시에 발검해 파편을 쳐 내기 시작한 진과 시리스. 다행히 진은 시리스가 먹인 비궁의 영약 덕에 쾌검을 구사할 수 있는 정도까진 몸이 회복된 상태였다.
룬칸델 연회장에서 검을 섞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일까. 정신없이 쏟아지는 파편 속에서, 두 사람의 검은 합을 맞춘 것처럼 조화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파편마다 6성 기사의 일격에 가까운 위력을 품고 있으니, 파편을 다 쳐 낸 그들은 수십 명의 무인과 싸운 것 같은 기분마저 느껴야 했다.
“그때보다도 실력이 좋아졌군, 진 룬칸델.”
“시리스 님 역시. 후, 그런데 오자마자 상황이 영 좋지 않군요. 당장 원주민들에게 라오사 님을 데려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끔찍한 파편 세례가 한 번으로 끝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벌써 코젝은 다음 포를 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탈라리스 또한 만빙의 힘을 언제든 최대로 개방할 수 있도록 기운을 끌어올렸고 말이다.
“와, 정말로 쏠 줄은 몰랐네? 나 탈라리스 엔도르마야. 정신 차려, 애기들.”
탈라리스가 과장된 몸짓으로 이마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녀를 쳐다보는 백야 마법사들의 낯빛이 어두웠다. 물론 막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설마 일격에 코젝의 함포를 베어 버리리라곤 그들 모두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 경고요! 비궁주,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콜론을 통째로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의 의뢰인들을 모두 죽일 것이오.”
“흐응, 차마 날 죽인다는 말은 낯 뜨거워서 못 하겠지? 그건 네놈들 전체 전력이 전부 이 자리에 있어도 불가능한 일일 테니 말이야.”
“그 말이 맞소. 하지만 비궁주, 그대라 할지라도 이 함포 세례 속에서 저들을 모두 지키는 건 불가능할 테지. 우린 작은 굴욕감을 견디면 될 뿐이나, 그대는 의뢰 실패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오.”
탈라리스가 미소를 지었다.
반박할 말이 없기에 억지로 나온 미소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 비궁과 지플. 어느 쪽이 불명예를 뒤집어쓰나 한번 재 보자고. 딸! 너희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어떻게든 그 여자를 저쪽으로 보내!”
원주민들이 의식을 치르고 있는 쪽.
진, 시리스가 서 있는 자리는 그곳과 칠백 걸음 정도가 떨어져 있었다. 달리면 순식간에 닿을 거리지만, 바닥 곳곳에 흐르는 오러와 마력의 잔재에서 용암보다 뜨거운 열이 올라왔다.
오러로 온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단순히 걷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
게다가 다시 한 번 빛을 머금기 시작한 코젝의 포문은 첫 포격 때보다 한층 더 짙은 금빛이 돌았고, 탈라리스 역시 더 강한 검기를 펼쳐야 상쇄할 수 있을 터였다.
‘방금보다 더 많은 파편이… 쏟아진다.’
빗대자면 곳곳에 용암이 흐르는 와중, 낙진을 쳐내며 라오사의 안전을 확보한 채 의식 현장까지 당도해야 하는 것이다.
‘무라칸은 균열이 생긴 결계를 대신해 원주민들을 지키고 있으니 도울 수 없다. 나와 시리스 님 둘이서만 그걸 해내야 한다는 뜻인데.’
심지어 둘 중 한 사람은 라오사를 업고 이동해야 했다.
신녀라고 해도 라오사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똑같은 수준이니, 이토록 열기가 흐르는 땅을 밟아 가며 직접 걷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난관도 이런 난관이 없군.’
태어나서 칠백 걸음쯤 되는 거리가 오늘처럼 길게 보인 날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해내지 못하면. 지금껏 이어진 싸움은 모두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의미한 소요로 그칠 뿐이다. 지금껏 콜론인들이 받아 온 수백 년 학대와 탄압의 역사 또한.’
시리스가 낮은 한숨을 내쉬자 진이 그녀와 눈을 맞췄다.
“시리스 님은 제 뒤에서 신녀님만 챙겨 따라오십시오. 길은 저 혼자 열겠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둘이서도 버거운 걸 혼자 하겠다니, 게다가 넌 아직 몸도 정상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파편을 쳐 내겠다는 겁니다. 우리 둘 중, 내가 먼저 죽었을 때가 그나마 원주민들이 있는 곳까지 도착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시리스 님은 멀쩡하니까요.”
“진심이냐?”
“물론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왜 그렇게까지?”
“탈라리스 님과 시리스 님도 지금 무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보통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것과 이 경우는 달라. 나와 어머니는 절대적으로 죽음을 면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 콜론인들이 딱한 건 사실이지만, 죽음을 염두에 둬야 할 위기가 온다면 우린 즉시 빠질 것이야.”
그러자 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탈라리스 님은 감히 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강자시죠. 아마 탈라리스 님이 적기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죽었거나, 그에 가까운 대가를 치렀을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진 룬칸델.”
시리스는 다소 화난 목소리였다. 지금 그녀의 눈에 진은 그저 모닥불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고, 그게 왜 화가 나는지는 스스로도 알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본래 온전히 나와 내 동료들이 감당해야 할 일을, 강자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 있는 주제에. 목숨을 걸 만큼의 절박함마저 없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자 시리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울러, 막 몸을 일으킨 라오사도 온몸에 부끄러운 전율이 흐르는 걸 느껴야만 했다.
‘나는…… 콜론의 신녀로서. 과연 콜론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절박했던가?’
-도망치세요, 신녀님!
-신녀님이 죽으면 콜론도, 클람께서 내려 주신 우리의 사명도 끝입니다! 부디, 저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십시오.
-신녀님, 신력을 더 잃기 전에 떠나십시오. 우린 괜찮습니다.
3년 전, 판과 함께 콜론에서 탈출할 때 들었던 다급한 목소리들.
동족들이 도망치라고 말한 건 사실이나, 문득 라오사는 그때 ‘도망치기로 선택한’ 것이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도망친 곳에서.
그저 신처럼 강하고, 대단한 구원자가 나타나 주기만을 기다렸더라는 사실도.
고개를 들어.
진을 올려다보는 라오사.
“……그러니, 라오사 신녀께서도 각오하십시오. 탈라리스 님의 도움을 받은 제가 목숨을 걸었으니, 제 도움을 받는 신녀께서도 그만한 절박함을 보여주십시오.”
“진 공자. 나는.”
칠백 걸음 너머, 그만한 절박함을 보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신녀도, 강자도 아닌 평범한 콜론의 사람들은. 만약 파편에 맞아 온몸이 부러지고 터져도 의식을 멈추지 않았을 터였다.
“우린 죽어도 저곳까지 갑니다. 아시겠습니까?”
라오사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출발합시다!”
시리스가 라오사를 업고, 진이 앞장서 걸음을 뗀 순간.
“지금이다, 쏴라!”
콰아아아……!
코젝이 포신에 머금고 있던 금빛 마력을 내뿜었다.
백야의 마법사들은 일부러 진과 시리스, 라오사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탈라리스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의뢰인을 죽이는 것이니까.
또 한 번 만빙의 검기와 코젝의 함포가 격돌하자마자.
“큭!”
예상했던 대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파편이 콜론 전역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고막을 긁는 충격파도 한층 더 날카로워져, 아까 미도르의 마법에 다친 귀에서 다시 핏물이 흐르기까지.
한 조각, 한 조각 파편을 칠 때마다 두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진은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육백칠십, 육백육십구… 육백… 오백십…….’
검을 쥔 손아귀에 벌써부터 힘이 빠지고 있었다.
진이 믿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최소 삼천 번 이상은 처음과 똑같이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의지.
칠백 걸음을 나아가겠다는 절실한 의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시리스는 같은 무인으로서. 매 순간 심장 박동이 가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존경심, 지금 시리스의 마음을 뒤덮고 있는 건 그 비슷한 감정이었다.
“이제 오십 걸음 정도밖에 안 남았어! 진, 조금만 더……!”
휘청!
“젠장, 진!”
마지막으로 브라다만테를 강타한 파편이 진의 예상보다 무거웠다. 무게 중심을 잃은 진이 가까스로 다음 파편을 쳐 냈고, 시리스가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여기서부턴 제가 직접 걷겠습니다.”
“용암 지대나 다름없는 여길 신녀, 그대가 어떻게 걷겠다는 말이오! 오러로 몸을 보호할 수도 없잖소!”
“제 두 발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그러니 그대는 이제 진 공자를 보호해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이러다간 진 공자가 죽겠어요.”
라오사가 시리스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녀가 시리스의 등에서 내려 바닥에 발바닥을 대자마자. 치이익, 신발과 살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라오사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연신 헛숨을 토하며, 그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