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21)
제 111화
39화. 굴러들어 온 제트가 의외로 쓸 만해(1)
진은 테싱을 괴멸시킬 당시, 세 가지 투서를 세 기관에 나눠 보냈다.
비먼트엔 노예 명부가 담긴 투서를, 지플엔 불법 거래 장부가 포함된 투서를, 아킨의 소식지엔 당시 테싱의 고객 명단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투서에 제트의 이름을 적었다. 덕분에 제트는 비먼트와 지플의 수사대로 끌려가 취조를 받았지만, 비먼트의 증인 보호법 덕에 지금껏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때, 진은 제트가 어린 아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 몰골로 티칸을 찾은 제트를 보니, 진은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충 알겠군. 비먼트의 증인 보호가 내 생각보다 허술했던 모양이야. 아마 지플의 추적자들에게 쫓기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겠지.’
그다지 동정심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전생엔 아킨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몇 번이나 후린 양아치였고, 이번 생에도 만나자마자 음료에 독을 풀었던 놈이니까.
이제 겨우 세 살이 된 아들만 아니었다면, 아마 진은 카시미르에게 제트를 그냥 쫓아내라고 권했을 것이다.
“일단 얘기나 한번 들어 봐야겠군. 데려오게.”
우락부락한 호위들이 제트를 끌고 카시미르의 집무실로 올라왔다.
말 그대로 몰골. 밤새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기라도 한 건지, 제트의 얼굴 곳곳엔 피딱지가 붙어 있기도 했다.
카시미르 앞에 마주 선 제트는 불안한 눈초리를 공손히 내리깔았고, 호위들은 계속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은 여전히 창가에 기댄 채 제트를 등지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흠, 우리 비밀 본부 하나를 알고 있다기에 칠색조 올드보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전혀 모르는 얼굴이로군.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냐?”
제트를 대하는 카시미르의 태도가 싸했다.
카시미르로서는 칠색조의 내부 정보가 새어나갔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저는 아킨에서 정보상을 운영했던 제트라고 합니다.”
“아킨? 그러면 테싱 밑에서 일하던 놈이었을 테고. 테싱은 망했으니 일자리를 잃은 모양이지? 우리 비밀 본부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대답 여하에 따라 네 목숨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자 제트는 카시미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았다.
“……정보상에게, 보안은 생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건 제가 카시미르 님의 사람이 되기 전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놈! 감히 누구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냐. 바른대로 말해라, 우리 본부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건 제가 카시미르 님과 거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때려죽이셔도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제트의 두 눈동자가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전 칠색조의 비밀 본부뿐만이 아니라, 최근 칠색조가 매달리고 있는 한 의뢰에 대해서도 괜찮은 정보를 하나 갖고 있습니다.”
“뭐라?”
“절 써 주십시오. 만일 한 달 내로 제 유능함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그땐 절 어떻게 하셔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카시미르는 제트에게 묘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제트가 보여 주는 태도가 썩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입’은 정보상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 그런 면에서 제트는 꽤 훌륭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셈이었다.
테싱 괴멸 이후 지난 몇 달간.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제트는 진이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비록 추레한 몰골이지만 양아치 같은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궁지에 몰려 결연해진 한 남자가 있을 뿐인 것이다.
“카시미르 님이 저를 이 자리에서 죽이신다면, 솔직히 저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칠색조 말단, 3급 정보부에서 허드렛일만 해도 좋습니다. 한 달만 주시면 카시미르 님도 제 능력을 알아보실 겁니다.”
“아주 막무가내로군… 게다가 우리 정보부가 3등급으로 나뉜 것까지 알고 있단 말이지.”
카시미르가 한층 누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카시미르 님께선 밑질 게 하나도 없는 거래입니다. 전 충직한 부하가 될 예정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저를 치워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흐음, 공자. 공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상한 놈이지만, 칠색조의 보안 사항을 알고 있는 걸 보니 조금 호기심이 돋는군요.”
카시미르가 진을 부르자 제트의 시선도 진에게 향했다. 처음 방으로 끌려왔을 때부터 제트는 계속 진을 신경 쓰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티칸의 주인은 분명 귀검 카시미르다. 그런데 카시미르를 앞에 두고 창가만 바라보고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니, 대체 누구지?’
진이 천천히 돌아본 순간.
제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너, 너, 너는……!”
“오랜만이군, 정보상 제트. 분명 헤어지기 전에 내가 꽤 많은 보석을 준 것 같은데, 그건 다 어디에 팔아먹고 이런 몰골을 하고 있나?”
“이 사기꾼! 이번엔 카시미르 님에게 또 무슨 사기를 치려고! 카시미르 님, 저자에게 속으시면 안 됩니다! 저자가 바로 베라딘 지플을 사칭해 테싱을 괴멸시킨 작자입니다! 비먼트 특임대라고요!”
순식간에 혈안이 되어 버럭버럭 악을 지르는 제트.
그럴 만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진을 만난 이후 이 꼴이 됐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으니까.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실제로 진의 전생에서 제트는 아킨의 거물 정보상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의 제트는 명백한 악당이었지만.
잠시 정적이 흐르고, 카시미르와 진이 동시에 풋 웃음을 터뜨렸다.
“공자…… 크하하, 공자께서 비먼트 특임대였다는 건 저도 처음 알았군요.”
“제트, 나를 특임대로 착각하고 있었나 보군. 하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카시미르 경이 설마 내 정체도 모르고 나와 함께하고 있을 것 같나?”
진이 말을 끝맺자마자 제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럼… 설마 테싱이 붕괴된 것도, 카시미르 님이 저자를 보내서……?”
그 순간, 무라칸이 벌컥 문을 열어젖히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야! 미물! 내가 구해 놓으라던 빨간책 어디 있어. 벌써 며칠이나 지났… 엥? 이놈은?”
“어……?”
“아킨에서 우리 음료에 독을 탔던 놈팡이 자식이잖아? 미물, 이게 왜 여기 있는 거냐?”
“히익.”
제트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카, 카시미르 경을 미물이라고 부르며 하대하고 있어!?’
그리고 제트가 기억하는 한, 이 무식하고 무서운 남자는 분명 저 사기꾼의 심복.
제트의 머리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카시미르는 티칸의 주인이다. 그런데 이 무식한 놈은 티칸의 주인인 카시미르를 하대한다. 그리고 무식한 놈은 사기꾼의 부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은?’
속으로 원망해 마지않던 사기꾼.
제트가 제발 자신을 고용해 달라며 머리를 조아려야 할 사람은 바로 진이었다.
털썩!
거의 엎어지듯 무릎을 꿇는 제트.
“아이고! 나으리, 그때나 지금이나 이 멍청한 소인이 몰라 뵀습니다. 하, 하하. 비먼트 특임대, 사기꾼이라니! 당치도 않지요. 감히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소인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오호, 이제야 좀 제트 같군.”
“아이고오, 아이고오. 나리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아킨을 떠난 이후 고초가 얼마나 심했는지! 그래도 나리 덕에 뒷골목 잡배에 불과했던 이 제트가 아킨의 공공 이익을 위한 용사로 거듭나지 않았겠습니까?”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제트의 마음속엔, 처음 진이 ‘베라딘 지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때처럼 희망이 샘솟고 있었다.
‘이제는 저자의 정체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지만! 정말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카시미르를 부릴 정도의 인간이다. 그 밑에 소속되면 내 인생도 다시 장밋빛으로 물들 수 있어!’
-비범한 분인 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만! 지플가의 자제분일 줄이야. 나리, 앞으로도 제가 충심을 보일 기회를 주십시오. 뭐든 받들겠습니다.
테싱의 지하 경매장에서 진이 베라딘을 사칭했을 때 제트가 내뱉은 말.
‘저자에게 속아 온갖 고초를 겪은 건 잊자. 어쨌거나 헤어질 때, 보석을 한 무더기나 쥐여 주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정 없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제트가 싹싹 손을 비비며 진을 올려다보았다.
“흠, 네 말대로 꽤나 고생한 것 같긴 하군. 그 점은 미안하게 여겨 주마…… 그래, 칠색조에 소속되고 싶다고?”
“예이! 나리는 겪어 봐서 아시겠지만, 이 제트가 꽤 쓸 만한 구석이 있는 놈입니다요. 아킨에서 절 아주 요긴하게 쓰셨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했지…… 그때 네놈 덕에 일이 잘 풀리긴 했어. 좋아. 카시미르 경이 허락하신다면 네놈을 칠색조 말단으로 써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묻는 질문 몇 가지에 성실히 대답하도록.”
“무엇이든 여쭤 보십시오!”
“첫째. 네놈이 칠색조의 비밀 본부를 어떻게 알고 있지?”
“아킨에서 정보상을 운영할 때, 우연히 칠색조 대원의 노트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요. 심심풀이로 그 암호문을 해독하면서 비밀 본부 한 군데를 알게 되었습죠.”
“하! 아까는 때려 죽여도 말 못 하겠다더니 공자가 물어보니 술술 부는군요. 난 안 무섭고, 공자는 무섭다 이거냐?”
그렇게 말했지만 카시미르는 사실 진에게 실토한 제트가 별로 밉지 않았다.
오히려 카시미르를 놀라게 만든 건, 제트가 칠색조의 암호문을 스스로 해독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정말로 ‘쓸 만한’ 인물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음, 좋아. 그럼 두 번째. 네 아들은 어떻게 된 거냐? 설마 도피 생활 중에 어디론가 팔아넘겼다거나,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나리께서 보시기에 제가 밑바닥 양아치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건 사실이기도 하지만, 이 제트! 아들은 끔찍하게 생각합니다요. 제 아들은 지금 티칸 탁아소에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돈을 거기 썼습죠.”
제트가 죽음을 각오한 채 카시미르를 찾아온 것은, 탁아 기간이 끝나면 도저히 아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부끄럽지만 만약 카시미르 님이 저를 죽인다면, 제 어린 아들만큼은 챙겨 주십사 부탁을 하려고 했습니다… 듣기로, 카시미르 님은 온정이 있는 인물이라 하였으니 말입니다.”
진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제트의 아들이 잘못됐다면, 그건 자신의 회귀로 인한 일이니 그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다. 이 질문에 대한 답까지 마음에 든다면, 넌 아마 칠색조의 대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씀해 주십시오, 나으리!”
“아까 카시미르 경과 대화할 때. 너는 최근 칠색조가 매달리고 있는 한 의뢰에 대해서도 괜찮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의뢰에 대한 정보지?”
제트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걸렸다.
그가 알고 있는 칠색조의 의뢰는, 진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나으리께서 무너뜨린… 테싱의 우두머리, 거미손 알루. 칠색조는 최근 그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있더군요. 그리고 저는 놈의 과거를 조금 알고 있습니다요.”
진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오랜 의문에 대한 열쇠를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