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46)
제 111화
49화. 뜻하지 않은 승리(1)
1796년 9월 8일 아침.
세 사람은 밤새 무사히 상급 생도들의 습격을 막아내고 여관방을 찾았다.
기묘한 건, 그들은 밤새 도시 파괴를 이어간 다음 마지막엔 굳이 문제의 식당을 다시 찾아 금화를 내려뒀다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만난 식당은 난동 중 반쯤 무너지고 불에 타버렸는데 말이다…….
“우웨에엑!”
베라딘은 긴장이 풀리자마자 나무바가지에 얼굴을 처박고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간밤에 생도들이 거리에 뿌린 독무를 미처 쓸어내지 못해 반 모금을 마신 결과였다. 마법사인 그는 진이나 단테처럼 강철 같은 육신을 지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베라딘은 마법사치고도 유난히 몸이 허약한 편이었다.
“베라딘, 괜찮소!? 허, 여기 물 좀 마시구려. 호흡을 크게 하시오, 독기가 빠져나가야 하니.”
단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베라딘의 등을 두들겼다. 베라딘은 토를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치유 마법을 펼쳤고, 조금씩 상태가 좋아질 때마다 척 엄지를 치켜들었다.
‘왠지 익숙한 풍경인데. 저것들도 참 죽이 잘 맞는단 말이지.’
이동관문을 탈 때마다 맛이 가는 무라칸과 고소공포증의 길리가 떠오르는 느낌. 진이 고개를 저었다.
“식은땀이 멈추질 않소. 진, 베라딘을 위해 우리가 뭔가 해줄 순 없는 거요?”
“맞아, 진. 너도 나 좀 걱정해줘! 챙겨주면 더 좋고.”
진이 베라딘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놈은 진짜 속을 모르겠단 말이야.’
그는 단테와 달리 베라딘이 지금 일부러 저러는 걸 모르지 않았다.
아무리 몸이 약하기로서니, 베라딘 정도의 치유 마법이라면 그깟 연한 독 따윈 대번에 지워버릴 수 있을 터.
의도가 뭘까?
이내 고민을 멈춘 진이 뚜벅뚜벅 걸어가 품속에서 약초 몇 개를 꺼내 단검 손잡이로 빻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본 방법대로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자.”
“와!”
해독제를 받아든 베라딘이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그리곤 단숨에 삼키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살겠어.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단 말이야?”
“오오, 이제 괜찮아진 것이오?”
“진 덕분에. 흐흐, 친구가 준 해독제를 삼킨 건 처음인 걸.”
유난히 ‘친구’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베라딘.
베라딘이 연기를 한 이유는 우정이라는 기분을 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진은 언제나 거리감을 유지하므로 그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베라딘이 진을 마냥 친구라고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친구에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
“다들 지금부터 푹 자둬. 해가 지기 전까지는 생도들의 공격이 없을 거야.”
“어떻게 아시오?”
“사밀의 높은 사람과 내기 비슷한 것을 하고 있거든. 낮에는 공격하지 않는 대신, 밤에는 조를 짜서 사람을 보내는 게 룰이야.”
“네가 이기면 뭘 얻기로 했는데?”
“경험과 성장.”
“그것 때문에 사밀까지 와서 목숨 건 내기를 하고 있다고!?”
“안 될 것 있나?”
진이 차분하게 답하자 베라딘은 감탄사를 내뱉었고 단테는 역시 그대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목숨을 걸진 않았다. 퀴칸텔의 물건이 있으므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았으니. 그리고 단지 경험과 성장만을 위해 온 것도 아니다.
다만 만독주를 두 사람과 나눌 생각은 없으므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물건도 아니고.
‘녀석들이 싫은 건 아니다만, 그건 나눠줄 수가 없어.’
만독주 외에 다른 걸 얻게 된다면 나눠줄 용의는 있었다. 비록 스토커처럼 찾아왔으나, 고작 금화 몇 개에 함께 생도들을 물리쳐주겠다며 나선 이들이다.
대체 세상의 그 누가 그만한 조건으로 이 두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맙다.”
진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두 사람이 찌르르 어깨를 떨었다.
‘들었어?’
‘방금 들었소?’
동시에 그런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은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진은 뒤돌아 눈을 감은 채 명상에 돌입했다.
‘무엇보다 실전이 가장 확실한 훈련이란 걸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는군. 며칠 생도들 상대했다고, 심안의 영역이 한 걸음 가까워진 게 느껴진다…….’
마음의 눈으로 보렴.
생도 시절 루나에게 수백 번은 들은 이야기. 처음 심안 훈련을 시작한 이후 벌써 몇 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깨달음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진은 조급해하고 있었으나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단테는 지금 진이 심안에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깜짝 놀라 뒤집어질 것이다.
보통의 무인들이 심안을 개안하는 건 7성 중반 이후. 그마저도 감각이 탁월한 무인에 한했으며, 8성은 물론 9성이 지나서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게 바로 심안이었다.
흔히들 ‘초고수’ 혹은 ‘규격 외’라 불리는 무인들의 기본기이자 심화 능력.
그것에 진은 7성에 오르기도 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과 루나의 조기교육, 스스로 밀어붙인 생사결의 순간들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생사결의 순간들.
스스로 쉬운 듯 표현했으나, 열여섯의 6성 기사가 사밀의 상급 생도들과 며칠간 혈투를 벌여 살아남았다는 건 누구도 선뜻 믿지 못할 일이다.
“먼저들 자, 장비는 너희들 것까지 내가 검수해놓을 테니.”
“고맙소!”
“멋져!”
두 사람은 드러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갑작스레 이어진 난전에 사실 체력이 바닥났던 것이다.
‘단테는 여전히 몸이 약하군. 하지만 반드시 극복해내겠지. 자아…… 내일부턴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지켜준다.’
활용은 간단했다. 세 사람은 전투 시 묘하게 합이 잘 맞아 서로서로 놓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진은 그들을 보호할 생각도 해야 했다.
‘요나 누님은 분명 더 수준 높은 생도들을 더 많이 보내기 시작할 거다. 진짜 살수가 올 것도 대비해야 해. 그리고 놈들은 무력과 마법이 뛰어날 뿐, 암살 위협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
간밤에 싸울 때 느꼈다. 두 사람이 생도보다 압도적인 힘을 지녔기에 잘 버텼을 뿐, 더 강한 암살자들이 몰려오면 금세 버거워질 터.
한창 방법을 고민하던 진이 별안간 흠칫하며 주위를 살폈다.
‘인기척?’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허!’
새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명왕 오울, 그러나 검은 띠를 풀고 와서 진은 그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 수는 없었다.
오울은 몇 초쯤 말없이 가면 너머로 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뜻 없이 빛나는 듯 보이는 눈동자 속에 번들거리는 정제된 살기.
바위나 나무 같은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압도해버릴 것 같은 그 눈동자.
단번에 알 수 있다.
지금의 자신 정도는 백 번을 노려 백 번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껏 진이 보아온 초월적인 무인들의 눈빛이 바로 저러했으니까.
‘인기척은 일부러 흘린 것이다. 내가 알아보나 시험해보기 위해.’
무명의 최고 살수 중 하나일까?
아니다. 요나를 제외한 최고 살수가 굳이 자신을 시험할 이유는 없었다.
“까마득한 후배가 85대 무명왕을 뵙습니다.”
예의를 차린 듯 보이지만 진은 여전히 정좌한 채였다. 오울은 조금 놀랐으나,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진을 내려다보았다.
“시론 경이 말년에 보석을 얻으셨군. 과연, 비궁과 혼담이 오갈만한 기백이야. 하나 나인 줄 알고도 일어서지 않는 걸 보니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하마터면 바보같이 예? 하고 되물을 뻔했다. 무명왕이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쯤은 놀랍지도 않은 일.
그러나 혼담이 어쩌고 하는 것은 지금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우선은 그가 찾아온 이유를 생각하고,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행여 유백의 주인께서 제 목숨을 거둬갈지도 모르니 만용을 부려보았습니다. 죽는 순간 비굴한 것은 룬칸델이 아니니까요. 이틀 동안 도시를 파괴한 건에 대해 책임을 묻고자 오신 것이겠지요.”
“내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는 걸 쉽게 장담하는구나. 내 땅을 그토록 휘저어놓고, 뻔뻔하기까지 하군.”
“굳이 아버지의 존함을 덧붙여주셨으니 분에 넘치는 배려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예비 기수라지만, 굳이 시론의 이름을 거론하며 룬칸델에 칼을 들이밀 필요는 없다. 특히 무명왕처럼 룬칸델과 지플, 비먼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나를 진 그레이가 아닌 진 룬칸델로 대하는 이상, 조금은 배짱을 부리는 편이 대화를 이끌어가기 훨씬 유리하다.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여 봤자 불리해지기만 할 뿐이야.’
요나와 무명왕의 관계는 모르더라도.
룬칸델과 무명의 관계는 잘 알고 있었다. 진은 그걸 이용해 주도권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와 검과 검으로 싸우는 건 아직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조건과 조건의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지금처럼 무명왕이 ‘다급하게’ 찾아온 것이라 확신이 드는 경우엔 더더욱.
처음부터 진은 오울이 도시 파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라면, 진이 룬칸델인 걸 모른 척하며 최고 살수를 투입하거나 직접 무명관으로 불러 벌을 내려야했다.
그러나 오울은 그러는 대신 마치 도둑처럼 진의 방을 슬쩍 찾아왔다.
‘뭐 때문에 무명왕이 이토록 급하게 찾아와, 내 목숨을 끊지 않겠다는 보장까지 해주는 거지?’
오울의 깊은 눈동자가 제 몸을 짓누르는 동안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그 배경을 짐작하지 못하면 대화고 뭐고 모든 게 무명왕의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도시 파괴가 아니라면 요나 누님과 관련된 것밖에 없다.’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나 누님과 관련하여 제게 하달하실 사항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하하…….”
오울이 낮은 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칼처럼 날카로운 살기가 배어 있어, 진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감각에 솜털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시론 경, 그분조차 유백의 땅에서는 우리의 약점을 함부로 쥐고 흔드시지 않거늘. 감히 룬칸델 말석에 불과한 네놈이……!”
흡!
진이 반사적으로 제 목을 움켜쥐었다.
생전 처음 겪는 종류의 투기에 숨이 쉬어지질 않는 것이다.
시론의 투기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광대무변한 힘을 품었고, 탈라리스의 투기는 온 대지를 한기로 뒤덮는 냉한 그 자체이며, 루나의 투기는 마주하는 순간 그녀가 세상에 벨 수 없는 것이 없다는 확신을 준다.
그간 진이 겪어온 절대적인 무인들의 투기는 늘 그렇게 발산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오울의 투기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밤과 같다. 눈을 떠도, 감아도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이었다.
순식간에 의식이 몽롱해지는 와중, 진은 필사적으로 한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약점……!? 요나 누님이 무명의 약점이라니?’
오울은 착각하고 있었다.
진이 도시를 그만큼 때려 부순 이유, 그러고도 이토록 당당한 이유, 그리고 핏덩이 주제에 지금 감히 자신을 상대로 룬칸델 특유의 거만함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명이 요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협상이 아니라 협박을 해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군.’
컥컥, 진이 막힌 숨을 토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