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80)
제 111화
59화. 영검의 전승지(4)
샤악, 샤악, 샤악……!
정확히 다섯 시간 동안 일만 번 검을 휘둘렀다. 일만 번의 종베기는 처음과 끝이 완벽히 같아서, 가르문드는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우, 다했습니다.”
진이 앞머리에 맺힌 땀을 털어내며 말했다.
먼저 돌아가겠다던 탄텔도 그 자리에 서서 종베기를 지켜보았고, 삼천 번쯤 휘둘렀을 땐 어제 투신전 대문에서 난리법석을 떤 명왕족 사람들도 찾아와 구경을 시작했다.
오천 번이 넘었을 땐 가르문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칠천 번이 넘었을 땐 식은땀이 흘렀다.
마침내 일만 번이 끝났을 땐, 가르문드는 자신이 진을 얕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실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설마 그걸 해낼 줄이야. 이런 경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어쩌지?’
와아아!
가르문드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근처에 모인 명왕족들은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일반 전사들은 대부분 투신전의 명왕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그들은 테마르 이후 천 년 만에 나타난 전승자가 어떻게든 승승장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멈춘 시간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가르문드,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진이 씨익 미소를 짓자 가르문드가 헛기침을 뱉었다. 흠흠, 흠흠! 다른 형제들이 이토록 즐거워하건만, 혼자만 실패하기를 바란 스스로가 민망하기도 했다.
“훌륭……하군. 설마 이렇게까지 잘해낼 줄은 몰랐다.”
“아뇨, 내가 들어야 할 말은 그런 미지근한 칭찬이 아닙니다.”
“흥! 그럼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
“내가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걸 인정해주시죠. 직접.”
진이 아무 생각 없이 가르문드를 도발하는 것은 아니다.
곁에 서서 지켜본 일반 전사들 모두가 진의 ‘믿는 구석’이었다. 진은 가르문드가 아까부터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가르문드는 명왕족 중에서도 유난히 끈끈한 형제애를 지닌 인물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구경꾼 형제들은 크나큰 실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쳇, 좋아! 인정한다, 진 룬칸델. 넌 위대한 명왕족의 팔투왕, 나 가르문드에게 영검의 비전을 전수받을 준비가 된 인간이다.”
“오오! 멋집니다, 팔투왕 형제!”
“팔투왕, 가르문드 형제! 가르문드 형제!”
일반 전사들이 한입으로 가르문드의 이름을 연호하자, 가르문드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심장도 조금 더 빛나는 것이, 감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자자, 다들 이제 물러가라고.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해야겠으니.”
물러가는 명왕족들이 저마다 엄지를 추켜세우거나 환호를 내질렀다. 진도 감사의 의미로 그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시 훈련장엔 진과 가르문드,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나이가 몇이냐, 전승자.”
“열여섯. 이제 12월이 지나면 열일곱이 되겠군요.”
가르문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열여섯이라면, 명왕족 중에서도 진과 똑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터였다. 진은 이미 심검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는 나도 흥미가 생기는군.’
스릉!
가르문드가 부드럽게 검을 뽑았다.
“이번엔 대련입니까?”
“크허허, 스스로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구나. 대련이란 것은 어느 정도 격이 맞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진은 투신과 투왕들의 무위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과 나의 격차는 어느 정도죠?”
“넌 내 검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없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이 가르문드의 목을 향해 영흡검을 찔러 넣었다.
챙!
여유롭게 검을 들어 막은 가르문드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무슨 짓이지?”
“검을 움직일 수도 없다고 하시기에, 과연 그런 게 가능한 것인지 시험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니로군요. 방금 검을 들지 않았습니까.”
가르문드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당혹, 당혹, 그야말로 당혹의 연속이었다.
‘녀석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면, 한 번 내 검을 내리쳐보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그랬다.
가르문드가 ‘넌 내 검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없다’고 말한 것은, 위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의 공격을 막을 때 검을 움직일 필요도 없는 초월적인 무인은, 이제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네 녀석이 아무리 힘껏 내리쳐도 내 검엔 미동이 없을 거라는 의미였다.”
“아아, 그런 의미였습니까?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습니다. 제가 가르문드 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군요.”
물론 진은 가르문드가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다만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싶었을 뿐. 강한 인상을 남겨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이니까.
‘무엇보다, 약간 놀리는 맛이 있는 아저씨로군.’
진은 가르문드 같은 부류를 싫어하지 않았다.
“흠, 아무튼 다시 해봐라. 날 노리지 말고, 내 검을 노려.”
“알겠습니다.”
한 발 앞으로 뻗으며 영흡검을 휘둘렀다.
쩌엉!
‘오……!’
이번엔 진도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검이 아니라 성벽을 내리친 것 같군! 단순히 엄청난 완력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오러를 싣지는 않았으나 꽤 힘껏 내지른 일격이다. 그러나 가르문드의 검은 미동조차 없이, 그의 손을 따라 뻗어 있는 모양 그대로였다.
당연하게도 가르문드의 자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면 진은 반동에 튕겨 잠시 중심을 잃었다.
훗!
가르문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바람을 뿜었다.
“말하지 않았더냐, 넌 아직 내 검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고.”
“다시 해보겠습니다.”
“얼마든지 쳐봐라.”
물러난 진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손아귀에서 돋아난 푸른 오러가 영흡검을 단단하게 휘감고 있었다.
흡!
이번에는 진심을 담은 검격이었다.
실전에서는 쓸 수 없는 일격이기도 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는 걸 대체 어떤 적이 기다려주겠는가.
쩌어엉!
검과 검이 부딪치자마자 쩌렁쩌렁한 굉음이 퍼졌다.
그러나 가르문드의 검은 흔들리지 않았고, 진은 반 보쯤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입가에서 주륵, 선혈 한 줄기가 흘렀다.
“큭……!”
본래 가르문드는 양껏 비웃어줄 요량이었다. 진은 제 검을 흔들지 못할 거고, 이렇게 초라한 모양새로 튕겨나갈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하마터면 검이 부러질 뻔했다.’
무려 천 년 만에.
가르문드는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손바닥을 뜨겁게 달구는 통증에 절로 미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인간들의 기준에선 8성에 근접한 일격.
진은 아직 7성이지만, 룬칸델 특유의 괴력과 대사막을 건너며 얻은 성취 덕에 한순간이나마 그런 위력을 낼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팔투왕 가르문드가 벌써부터 예쁘다, 예쁘다 해줄 수는 없는 노릇!’
이제 라프라로사에 도착하고 겨우 하루가 지났다.
벌써부터 오냐오냐, 아껴주면 이 건방진 인간 녀석이 어디까지 기어오를지 모른다.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내 검이 움직일 만큼 강한 일격을 완성시켜라.”
“방법은 따로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그것은 세 번의 신기루가 이미 네게 알려주지 않았나. 믿음이다.”
“믿음?”
영검은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세상에 벨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믿음을 영기로 승화시키는 게 핵심인 것이다.
일반적인 무인들이 사용하는 심검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지만, 영검의 특이점은 ‘확장성’에 있었다.
영검은 단지 대상을 효과적으로 베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 기한은 일주일. 일주일 동안 몇 번이고 내 검을 내리쳐라. 손아귀가 찢어지고, 이가 부러질 만큼 악을 써라. 영검의 기본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지.”
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주일이라. 이번에도 자기 딴에는 일부러 기한을 촉박하게 잡았을 테지. 이것까지 시간 내에 끝내면 확실히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군. 설마 그때도 아닌 척 헛소리를 하진 않겠지?’
반면 가르문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은 좀 심했나? 네 녀석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을 거다. 몇 번이고 좌절을 딛고 일어서라, 두 번째 전승자. 그러면 나도, 형제들도, 차츰 너를 인정할 것이다.’
* * *
정말 그것밖에 안 되나, 전승자!
믿음이 흔들리면 검은 힘을 잃는다. 그걸 아직도 모르겠나?
그러고도 정말 솔더렛의 계약자란 말이냐?
흥, 그건 무슨 눈빛이냐. 각오가 덜 되었었나보군.
테마르는 이걸 이틀 만에 해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투신전에서 네 이름을 그토록 당당히 밝히지 못했을 테지…….
이런 식으로, 가르문드는 정말이지 많은 일침을 준비했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진의 검격을 부동자세로 받아내며 진을 절망시킬 계획을 세워놓은 것이다.
……그러나 사달이 난 것은 고작 사흘이 지났을 때였다.
파창!
이만 칠천오백육십 번째 검격에 가르문드의 검이 부러졌고, 그는 검을 쥐고 곧게 뻗어진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준비한 일침들은 ‘테마르는 이걸 이틀 만에 해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진을 자극하지 못했다.
약 이만 칠천여 회에 이르는 검격을 날릴 때마다 진은 즐거워보였고, 속이 타들어가는 쪽은 오히려 가르문드였다.
“테마르보다 하루 더 걸렸군요.”
진이 부러진 가르문드의 검 파편을 하나 주우며 말했다.
내내 즐겁던 얼굴에 처음으로 그늘이 껴 있었다. 선조보다 하루 더 늦었다는 사실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이었다.
‘제길, 조금만 더 집중했다면 어제 부러뜨릴 수 있었을 텐데.’
하아, 한숨을 내쉬는 진을 보며 가르문드는 한동안 커다란 눈동자만 끔뻑일 뿐이었다.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을 예상했건만, 그걸 고작 사흘 만에 끝낼 줄은…….
물론 테마르에 비하면 늦었다.
‘하지만 영흡검이라는 불리한 조건으로 성공한 것과, 나이를 감안하면…… 하루 차이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고 봐야하겠군.’
진은 이미 완성된 전사로서 이 땅을 찾았다. 명왕족이 그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어쩌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몰랐다.
가르문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팡, 팡!
가르문드가 진의 어깨를 호쾌하게 두들겼고, 껄껄 웃으며 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전승자, 진 룬칸델. 솔직히 처음엔 아니꼽게 보았으나, 끝내 자네가 나를 감동시키는군.”
“이제 절 인정하는 겁니까?”
“나는 그렇다. 그러나 다른 투왕 형제들도 머잖아 네게 마음을 열어줄 것이다. 순수하고 강인한 전사의 혼을 그들도 느낄 수밖에 없을 테니.”
가르문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진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탁이요?”
“네가 이룬 업적을 내가 가장 먼저 맛보아도 되겠나?”
“맛을 보다니…… 그게 무슨?”
“대답해다오.”
그 진지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십시오.”
가르문드가 진의 손아귀에서 부드럽게 검 파편을 빼냈다.
그러고는 파편을 으적으적 씹어 삼키더니 몹시 만족스러운 듯 제 가슴을 두들겨댔다.
“라프라로사에 무척 어울리는 맛이로군. 내일부터는 오투왕 형제도 수련장에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