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81)
제 111화
59화. 영검의 전승지(5)
오투왕은 자신을 보라스라 밝혔다. 그는 가르문드보다 반 뼘쯤 키가 작았고, 조금 더 수다스러운 성격이었다.
또한 가르문드에게 무슨 이야길 들었는지, 처음부터 진에게 호감을 드러냈다. 가르문드가 밤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진을 칭찬한 사실을 아마 진은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가만 지켜보니, 명왕족은 큰 개들과 비슷한 느낌이 있군.’
라프라로사에서 바라본 명왕족들은, 전설로 전해지던 악명과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면모보다 순박하고 다소 귀엽게 멍청한 성격이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찹!
‘허!?’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보라스는 냅다 진의 턱부터 붙잡았다.
‘내가 반응을 못 했어……? 맙소사, 뭐 이렇게 빨라?’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지만 충격적인 일. 진이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가르문드는 재밌다는 듯 웃었고(반응하지 못한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보라스는 자연스레 진의 입속을 살피는 모습.
보라스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진 않았다. 이놈의 명왕족 투왕들이 얼마나 대단한 완력을 갖고 있는지 벨리즈 때 이미 충분히 겪은 것이다.
“이봐, 두 번째 전승자. 너 왜 어금니가 하나 없어?”
“부러졌습니다.”
“잉? 어쩌다가?”
“일단 이것 좀 놔주셔야.”
보라스가 손을 떼자 진이 차분히 어금니가 부러진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사막에서 테마르를 베기 위해 이를 악물다가 부러진 일을 말이다.
“크! 죽이는 걸. 네 이는 웬만한 마물보다도 훨씬 단단한데, 부러질 정도로 악물었단 말이지? 팔투왕 형제 말대로 물건은 물건이로군.”
“……물건?”
진이 쳐다보자 가르문드는 딴청을 피웠고, 보라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안 돼,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흐흐, 이빨은 소중한 거라고. 음, 아무래도 새것이 필요하겠군.”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뚝 소리가 났다.
보라스가 제 입속으로 손을 넣어 생니를 하나 뽑은 것이다. 둥글고 날카롭고 큼직한 어금니였다.
‘미친.’
입에서 그야말로 ‘철철’ 피가 흐르건만, 보라스는 뽑은 어금니를 진에게 보여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 봐라! 이게 우리 명왕족이 자랑하는 이빨이다. 바위도, 강철도, 금강석도 모조리 씹어 먹을 수 있지. 아, 물론 충분한 악력이 받쳐줘야 하지만 말이야.”
“명왕족 이빨이 튼튼한 건 어제 검 파편 씹는 것을 봐서 잘 알겠습니다만…… 그건 대체 왜……?”
“흐하하, 지금부터 이걸 깎아서 네 어금니가 있던 자리에 박을 거야! 가르문드랑 놀고 있어라. 작업하고 올 테니.”
보라스는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사라지는 것마저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뒷모습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놀랍게도 가르문드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명왕족의 이빨을 내 잇몸에 넣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안될 건 없지.”
“전에도 이런 적이 있나보군요.”
“아니? 처음 있는 일이다.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 수련이나 하도록 하지. 영검 1식, 영혼 베기다. 시범을 보여주도록 하지.”
스릉!
가르문드가 새 검을 뽑으며 자세를 잡자 진은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빨에 대해 더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제1식 영혼 베기는 영검의 시작이자 끝이다.”
무라칸에게 영기 해방을 배울 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시작이자 끝, 사실 모든 무예가 그랬다.
검술의 기본인 베기도, 창술의 기본인 찌르기도, 권술의 기본인 내지르기도. 결국 경지의 끝에 다다르면 그 자체로 결전기나 다름이 없었다.
“놀라지 마라, 전승자.”
후우우웅!
별안간 가르문드의 검에 시커먼 기운이 몰려들었다. 진한 영기다.
가르문드가 검게 물든 칼날을 괜히 요리조리 움직이며 진의 눈치를 살폈다. 계약자가 아닌 나도 영기를 쓰는데, 왜 놀라지 않느냐는 표정.
“솔더렛이 당연히 권능을 나눠줬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영기를 다루지도 못하면, 어떻게 영검을 사용하겠습니까?”
“아, 뭐, 그건…… 그렇지.”
좀 묘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계약자인 자신 외에 다른 누군가가 영기를 쓰는 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보여주기나 하시죠.”
“쩝, 알았다.”
눈빛을 바꾼 가르문드에게서 폭풍 같은 위세가 뿜어졌다.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려야 한다고 판단한 진이 그로부터 이십여 걸음을 빠르게 물러섰다.
추켜세워진 검신이 무엇이든 불사를 듯 검게 이글거렸다.
이윽고 벼락처럼 칼날이 떨어지자, 일순 검은 섬광이 가르문드의 앞에 놓인 허공을 집어삼켰다.
가르문드의 영혼 베기에는 소리가 없었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도, 검기가 돌바닥을 긁고 지나가며 일으키는 마찰음도 없다. 그저 영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에겐 한없이 낯선 어둠만이 있을 뿐.
퍼걱!
동작이 끝나고 처음으로 소리가 났다. 훈련장 바닥이 충격에 터지고 갈라지며 작은 파편들이 사납게 튀고 있었다.
오십 걸음 크기의 검흔이 남았다.
영혼 베기를 끝낸 가르문드가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어떠냐?”
“빠르고, 크고, 조용하고, 강하군요.”
담담하게 대답했으나 진은 속으로 루나의 심검 적월을 떠올리고 있었다.
‘적월의 축소판 같은 일격이었다. 그러나 적월보다 체력적 부담이 훨씬 낮아 보이고, 이걸 연속으로 사용한다면…….’
7성 이하의 무인은 감히 몇 수도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보여준 건 5할 정도의 위력이다. 그래서 테마르가 영혼 베기를 완성시키자마자 남긴 저 검흔에 비해 절반 크기밖에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아까 영혼 베기는 영검의 시작이자 끝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렇다면 영혼 베기를 대성하더라도 이 훈련장에 백 보 정도의 검흔을 남기는 게 한계라는 뜻인가요?”
그러자 가르문드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영혼 베기만 대성하면 그게 한계가 맞다. 그러나 영검이라는 무예의 끝에 다다르면, 영혼 베기는 검술이 아니라 권능이 된다.”
“권능이라면?”
“제1식의 이름이 왜 영혼 베기겠나. 넌 너보다 의지가 약한 상대의 목숨을 언제든 거둘 수 있게 된다. 그가 가진 절대적인 힘이 너보다 높다 할지라도, 혼을 베어버리는 건 피하거나 막을 수 없거든.”
지금으로선 얼른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투신 반은 물론이고 테마르조차 닿지 못한 영역이니 진이 고민하기엔 이른 문제였다.
“영기와 검이 하나가 된다는 감각을 깨달아야 해. 그게 어떤 거냐면…….”
“방금 소감을 물어봤을 때 미처 대답하지 못한 게 하나 있습니다.”
빠르고, 크고, 조용하고, 강하다. 그 외에 진이 깜빡 잊은 대사 한 가지.
“익숙합니다. 영흡검만 아니었다면 당장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오호…… 설명해봐라.”
가르문드는 더 이상 진에게 충격 받지 않았다. 이 녀석이라면 뭐든 다 잘해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이 뮤론의 지옥문과 골텝의 망치를 벤 이야기를 하자, 가르문드가 손뼉을 쳤다.
“그래! 바로 그 감각이다. 정확한데? 쪼그만 녀석이 밖에서 툭하면 험한 싸움을 하다 우연히 영검 1식의 성취를 이룬 모양이야. 베겠다는 믿음을 주문으로 치환하는 방식이라…….”
짝! 또 한 번 손뼉을 치는 가르문드.
“옳거니, 이제 알겠다, 다시 보여주마.”
한 번 더 시범을 보여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방금 진과의 대화를 통해 오히려 가르문드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영혼 베기를 펼치는 가르문드가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것을 벤다, 벨 수 있다. 진과 똑같은 방식으로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다시 검게 물든 검이 허공을 물들이자, 이번엔 팔십여 걸음의 검흔이 남았다.
“오오! 이거였군!”
“아니, 당신이 날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반대가 된 것 같은데?”
진이 헛웃음을 터뜨리자 가르문드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난 영검보다 명왕검이 더 익숙하다보니…… 아무래도 내게는 비효율적이거든, 영검은.”
몹시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가르문드는 잘도 비효율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당신은 선생이지 않습니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다. 그러니 성내지 말고, 영흡검이나 극복해봐. 그것만 극복하면 영검 1식은 금방 완성시키겠구만. 그럼 곧장 사투왕 형제도 여길 찾아올 거고.”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인데요.”
“기분일 뿐이다.”
“명왕검도 보여줘요, 그럼.”
이제는 영검 1식보다 명왕검에 더욱 관심이 가는 진이었다.
“그건 안 된다.”
“왜 안 되는데요?”
“넌 아직 우리 형제가 아니잖아.”
“다른 명왕족들에게 당신이 오히려 내게 영검 1식을 배웠다고 소문을 낼 겁니다.”
“감히 날 협박해……? 팔투왕 가르문드를!”
가르문드가 괴성을 지르며 한발로 쿵 바닥을 내리찍었다. 쩌적, 바닥이 갈라지며 한순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오히려 영검을 펼칠 때보다 위압감이 짙군.’
하지만 허세였다. 그것도 잘못을 들킨 어린애들이 괜히 화를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허세.
진이 똑같이 기운을 일으키며 노려보자, 가르문드가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딱 한 번 만이다.”
“좋습니다.”
진이 명왕검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영검 1식보다 더 구미가 당기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투왕 형제의 수련까지 끝나면, 매일 일반 전사들과 대련이 시작될 거다. 그전에 가르문드 형제를 꼬셔서 명왕검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두는 게 좋을 걸.
-그냥 네가 보여주면 되잖아, 탄텔.
-투왕 형제쯤은 되어야 나중에 투신 형제가 대체 어떤 놈이 보여준 거냐고 물어보실 때, 뒤탈이 없겠지?
어젯밤 나눈 대화가 신경 쓰여서 한 번은 봐둘 작정이었다. 적당한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명왕검의 가장 기본적인 투로 한 가지를 보여줄…….”
가르문드가 온갖 생색을 부리며 자세를 잡기 시작한 그때.
투다다다다!
훈련장 저 멀리서 누군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까 어금니를 깎겠다며 떠난 오투왕 보라스가 하필 지금 돌아온 것이다.
“아쉽게도 못 보여주겠군.”
“나중에라도 볼 겁니다.”
“이제 너와 내가 단둘이 있을 시간은 없다. 보여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어쩔 수가 없어.”
“치사하군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보라스가 이빨을 내밀었다. 처음 보라스의 잇몸에서 뽑혔을 때와 달리, 진의 깨진 어금니 자리에 딱 맞을 크기.
찹!
또 빛과 같은 손놀림으로 자신의 턱을 붙잡는 보라스를 보며, 진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 사람한텐 이런 몸놀림을 배워야겠군. 그나저나, 방금까지 남의 이빨이었던 것을 이렇게 막 받아도 되나.’
약간 찝찝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부할 새도 없이, 보라스는 이미 진의 잇몸에 새 이빨을 박아 넣고 있었다.
“흐흐, 아주 마음에 들 거다, 전승자.”
쏘옥.
어금니가 흡수되듯 잇몸에 뿌리를 내렸다. 묘한 이물감에 인상을 찌푸리려던 찰나, 진은 새 어금니에서 마력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룬 문자가 발현될 때와 똑같잖아……!?’
어금니에서부터 마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법은 충격적이게도, ‘기억을 전송하는’ 종류인 듯했다.
명왕검의 형식들이 어금니를 타고 진의 머릿속으로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