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85)
제 111화
60화. 수혈, 형제(2)
‘난 어디 누워 있는 거지?’
사방이 좁게 막혀 있고 천장이 코에 닿을 듯 낮아 관 속인 것 같기도 했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두 허벅지에선 불에 지져진 듯 뜨거운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샤쿠가 내 다리를 베었던 것 같군. 사지를 잘라놓겠다더니, 빈말이 아니었어. 보라스가 특수 접합술로 다시 붙여놓은 건가.’
절단상은 최상급 치유사들에게도 쉽지 않은 영역이다. 하지만 진은 명왕족이라는 종족을 더 이상 상식선에서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단지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 시대와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기술과 문명을 지닌 종족이었다.
‘현 시대 인류의 기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야. 일반 전사에 불과한 샤쿠조차 룬칸델 최고 수준 수호기사를 한참 뛰어넘고 있다…….’
수호기사가 아니라 ‘흑기사’만큼 강할지도 몰랐다.
멸망하기 전엔 샤쿠 같은 인물이 라프라로사 길거리에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 광경을 떠올리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신이 명왕족을 멸망시킨 건, 명왕족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게 두려워서일지도.’
생각하는 사이 다시 반이 입을 열었다.
“못 하겠어? 보라스 형제.”
“아니, 할 수는 있지. 하지만 투신 형제가 무슨 생각으로 진에게 피를 주겠다는 건지 얼른 이해가 가질 않는군. 시험을 하고 싶은 건가?”
“보라스 형제도 진을 만나자마자 어금니를 주지 않았나. 기억까지 담아서 말이지.”
“그것과는 다른 문제야. 과연 진이 투신 형제의 피를 감당할 수 있을까? 까딱하면 죽는다고. 테마르도 그래서 거절했었고.”
“테마르와 이 아이는 달라.”
“난 솔직히 진이 더 마음에 들지만, 다른 형제들이 여전히 테마르를 기억하는 건 그 녀석이 엄청나게 강했기 때문이지. 투신 형제는 진이 테마르보다 뛰어나다고 보는 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적어도 아직은.”
진으로선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도 안 나오고, 사지를 움직일 수도 없으니 의사 표현을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피를……?”
“성장을 끝낸 테마르는, 나조차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인간이 되었어.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지? 그는 사라진 우리 형제들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으음.”
“만일 이 아이도 그렇게 끝장난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지?”
“그렇게 된다면 우린 다음 전승자를 기다려야겠지.”
“테마르 이후 바깥은 천년이 흘렀어. 그러나 솔더렛이 반만년 전 처음 예견한 것과 달리, 테마르 이후 전승자는 단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았다.”
“……진이 마지막 전승자일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그래. 무엇보다 이 아이에게선 솔더렛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그 어두운 신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해. 이 아이의 죽음은, 어쩌면 우리의 완전한 소멸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야.”
보라스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투신 형제는 진에게 명왕족의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것 같군. 하지만 지나치게 도박수야. 투신 형제 말대로라면, 진이 피를 못 견디고 죽는 순간 모든 게 끝이잖나?”
“샤쿠와 싸우는 걸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더군. 만약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그건 우리와 전승자의 운명이 거기까지였던 거겠지.”
“투신 형제가 이토록 조급해 보이는 건 오랜만인데.”
“조급함이 아니라 기대감일 뿐이다.”
“뭐, 좋아. 투신 형제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사실 내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어. 수혈하도록 하지. 진이 잘 버텨내기를 기도해보자고.”
잠시 후, 관 속에 투신 반의 피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진은 가만히 눈을 감고 그 피를 받아들였다.
* * *
만독주 덕을 톡톡히 보았다.
진의 몸속에 내재된 만독주는 투신의 피를 ‘독’으로 인식했고, 한 달이 넘도록 제독을 위해 치열하게 끓어올랐다.
그 결과 투신혈의 독성은 사라지고 고유의 신성과 강성만이 고스란히 진의 혈맥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다시 깨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느꼈다. 만독주가 아니었다면, 1년은 깨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그러나 끝내 투신의 피를 극복하고 깨어나기는 했을 거라고 말이다.
깨어나자마자 투신 반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진이 피를 받아들이는 내내 한 번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깨어났나, 전승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보라스는 어금니를 주더니, 이번엔 피라니.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말이죠.”
“거부하고 싶었는가?”
“내게 그럴 권한이 있기는 했습니까? 보라스랑 대화할 때, 내가 깨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죠?”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그러시라고 한 말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신과 또 한 번 계약을 맺었다고 이해했으니. 당신은 투신이라 불리기도 하고 말이죠.”
“의외로군. 불 같이 따질 줄 알았는데.”
“당신이 내 적이었다면 그랬을 겁니다. 사실 따지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거든요. 5월쯤엔 돌아가야 합니다.”
진은 시간이 한 달쯤 흘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만독주가 활성화된 동안 줄곧 의식이 깨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1797년 3월 16일, 진이 라프라로사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6월 1일 나침반 탈취 작전이 시작되기 전엔 반드시 돌아가야만 했다.
“몸은 어떤가?”
“아주 좋습니다. 가볍고 충만하군요. 가슴팍에 광심장이 생긴 건 상당히 당황스럽긴 합니다.”
진이 제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러로 형성한 광심장이 아니라, 반의 피가 형성한 진짜 광심장이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진의 주먹 반만 한 크기지만, 그 속에서 맹렬히 요동치는 오러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걸 갖게 되었다고 해서, 당신들이 말하는 형제가 된 것은 아닐 테죠. 오히려 샤쿠 같은 인물들은 나에 대한 반발심이 더 심해질 것 같은데요.”
반면 가르문드, 보라스, 린파, 벨리즈처럼 진에게 호감을 가진 이들은 좋아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당신이 보기에, 이런 도움 없이는 내가 떠나기 전에 그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습니까?”
진이 담담한 눈으로 반과 시선을 맞췄다.
만약 그렇다는 대답이 들려오거나,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면. 고민하지 않고 광심장을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심장을 부술 것인가?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닌 힘이니까?”
반은 곧바로 진의 의중을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진은 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을 준비했다.
“정확히 보셨군요. 하지만 이 심장은 엄연히 내가 쟁취한 겁니다. 내가 먼저 원한 것은 아니나, 당신의 기준에 미달했다면 피를 수혈 받을 일 따윈 없었을 테죠. 전승의 한 방식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부수겠다는 것이지?”
“쟁취한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온전히 당신의 선의로 얻은 힘이라면, 내 뜻대로 부술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건 오롯한 나의 것이 아니니까.”
반이 미소를 지었다.
“넌 내 피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형제들에게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잘 쓰도록 하죠.”
진이 관 옆에 놓인 옷을 입었다.
깡, 깡. 피를 흡수하는 동안 계속 들어온 망치질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진이 한 달 동안 누워 있던 곳은 보라스의 대장간이었다.
“린파와 영검 2식을 수련하고 있겠습니다. 오후엔 샤쿠와 대련을 하면 됩니까?”
“칠투왕 형제도 훈련장에 있을 것이다. 벨리즈 형제는 네게 영검 3식을 전수해줄 거고.”
“빡빡한 게 마음에 드는군요. 그럼 오후에 다시 봅시다, 투신.”
* * *
오전엔 훈련, 오후엔 대련.
그렇게 또 49일이 흘렀다. 그간 진은 샤쿠와 49번을 싸워 49번의 패배를 맛봤고, 그때마다 사지 중 한 곳이 잘려 보라스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명왕족은 강했다.
광심장을 얻었다고 격차를 단번에 좁힐 수 있다면, 세상의 수많은 무인은 수련이 아니라 기연을 찾는 일에 목숨을 걸 것이다.
진은 패배할 때마다 샤쿠의 실력과 명왕족의 힘을 제대로 알아보고 있었다.
처음엔 막연히 자신보다 아득히 강하다고만 여겨졌고, 열 번쯤 싸웠을 땐 그가 루나만큼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스무 번을 싸웠을 땐 ‘샤쿠가 루나만큼 강하다는 판단’에 의심이 생겼고, 서른 번을 싸웠을 땐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판단을 번복했다.
마흔 번을 싸웠을 땐 곧 샤쿠의 팔 하나쯤은 벨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상대를 보는 눈이 시시각각 변화한다는 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는 의미다. 루나가 아직 먼 산이라면, 샤쿠는 이제 고지가 보이기 시작한 산이었다.
그 사실을 스스로 잘 알기에, 진은 늘 샤쿠와의 싸움이 즐거웠다.
“오늘은 왜 벌레 씹은 얼굴이야, 샤쿠. 이제 나랑 싸우는 게 지겹나?”
진은 한창 즐거워하는데, 얼마 전부터 샤쿠는 진을 베는 걸 점점 꺼리는 눈치였다.
늘 고까운 시선으로만 보던 일투왕 발티록 역시 더 이상 진과 그를 아끼는 형제들을 비아냥대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샤쿠도, 발티록도 진이 어여쁘게 보였다.
투신의 인정을 받았으나 교만하지 않고, 매일 사지가 잘리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끝없는 패배에도 절망하지 않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형제들은 진즉부터 진을 아껴주고 있으니, 그들이 보는 앞에서 매번 진을 묵사발로 만드는 게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런 건 아닌데, 매일 이어지는 대련에 정이 든 것 같군. 널 베는 게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맞아, 테마르 때도 그랬어.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명왕족은 진 앞에서 테마르의 이름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미적지근한 마음가짐으로 상대해주면 수련이 잘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제대로 하자고, 네 마음은 알겠으니까.”
“음…… 알았다.”
“잠깐, 투신 형제!”
별안간 구경꾼 사이에서 누군가 반을 찾았다.
탄텔이었다.
“왜 그러지? 탄텔 형제.”
“이제 진 룬칸델, 전승자는 곧 라프라로사를 떠나야 합니다. 남은 시간은 2주 정도죠. 그리고 일투왕 형제와 샤쿠 형제도 진을 인정하려는 눈치고요.”
“계속 말하게.”
“슬슬 전승자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모든 형제들의 검을 한 번씩 겪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샤쿠 형제 혼자만 너무 많은 시간을 독차지했습니다.”
“맞습니다! 정작 전승자를 처음부터 아껴준 형제들은 매번 구경만 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샤쿠가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투신 형제. 라프라로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 말고 다른 형제들도 진과 대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샤쿠까지 그렇게 말하자, 반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형제들이 진을 형제로 인정하겠다면, 그 의견을 수용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