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86)
제 111화
60화. 수혈, 형제(3)
진을 싫어한다던 일투왕 발티록은 물론이고, 아직 겪어보지 못해 의중을 알 수 없던 다른 투왕들도 하나같이 찬성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열두 투왕 전부에게 인정받는 건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러기엔 기간이 너무 짧았다. 작년 12월이 끝날 무렵 라프라로사에 도착했으니, 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5개월 남짓뿐.
그 안에 모든 명왕족의 호감을 얻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르문드나 보라스, 린파, 벨리즈처럼 모두가 다 구워삶기 쉽거나 처음부터 자신을 좋아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은 언젠가 다시 라프라로사를 찾을 때 포섭하려고 했다. 어차피 영검을 다 깨우치려면 두어 번은 더 찾아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뭔가 생각보다 너무 쉽게 형제로 인정받은 기분인데.’
진과 달리 명왕족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진이 가르문드에게 역으로 영검 1식 영혼 베기의 심득에 도움을 줬다는 건 소문이 파다했고, 보라스가 어금니를 준 것도, 린파가 금언 수련을 깬 것도 공공연한 이야기.
그것만으로도 명왕족들에겐 진이 ‘특이하고 재밌는 전승자’로 보이는 마당에, 샤쿠와의 대련에선 과연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의 정신력을 보였다.
49일간 매일 사지가 잘렸다가 붙여지기를 반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은 종종 지난 생의 끔찍한 나날들 때문에 본인의 대단한 노력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나쁠 것은 없지. 샤쿠 녀석 사지 한쪽을 잘라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투왕들의 동의가 끝나자 일반 전사들도 찬성을 외쳤다.
그러나 투신이나 투왕이 바라기 때문에 찬성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분위기나 흐름에 휩쓸려서 진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더더욱 아니었다.
명왕족은 투신 반을 제외하면 투왕과 일반 전사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처벌과 강요도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은 늘 자율적인 선택을 할 권리가 있었다.
설령 반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다른 명왕족들은 그에게 눈치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투신이 ‘모든 형제가 동의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내건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샤쿠가 마지막으로 찬성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나는 어제까지 49번이나 진 룬칸델의 사지를 끊었소, 형제들. 그러나 이제 그는 우리의 형제가 되었으니, 같은 일이 반복될 일은 없을 거요.”
“참나, 한 번쯤은 복수할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불순한 형제로다, 빛의 왕들끼리는 은원을 계산하지 않아. 이것만큼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지, 알아두게. 진 형제.”
샤쿠가 씨익 웃으며 물러나자 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형제가 동의했으므로 이제부터 진 룬칸델은 우리의 형제다. 따라서 탄텔 형제의 의견을 수용할 테니, 진 형제와 대련하고 싶은 형제들은 순서를 고르라.”
즉시 명왕족이 저들끼리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하네, 네가 먼저 하네. 마치 아이들이 놀이를 두고 다투는 것 같았다.
“난 전승자를 직접 데려왔다고, 그러니까 내가 먼저 해야지! 안 그런가, 형제들?”
“아니지. 탄텔 형제는 전승자를 데려오면서 칼을 한 번 섞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에 하는 게 맞지.”
“형제들, 싸우지 말고 가위바위보로 정해.”
처음 라프라로사에 왔을 때 진을 목욕시킬 사람을 고를 때도 이런 식이었다. 한 무리 큰 개가 컹컹 흥겹게 짖어대는 것 같았다.
‘웃긴 놈들.’
사실, 형제가 되었다고 해서 크게 감동스러울 것은 없다.
진은 그들과 생사를 걸고 전선을 넘나든 적도 없으며, 오랜 시간 진한 유대감을 쌓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단지 ‘마음에 드는 전승자’라는 이유로 형제로 인정받은 셈. 그래도 기분이 나쁠 리는 없었고, 좋은 게 좋은 법이었다.
칠투왕 벨리즈가 진에게 다가왔다.
“함께 동고동락한 적이 없어도,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생김새가 다르더라도, 계기마저 약했더라도.”
홱 돌아본 진이 벨리즈를 올려다보았다.
난데없이 속마음을 읽힌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한 번 형제가 된 이상, 형제들은 네가 처음부터 라프라로사에 있던 것처럼 대할 것이다. 그게 명왕족의 방식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벨리즈.”
“그걸 진 형제를 칭하는 종족이 이해하고 있었다면, 반만년 전의 우리는 그들을 훨씬 덜 죽였겠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명왕족은 마냥 바보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익숙한’ 진이 이해할 수 없이 드넓은 종족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형제여. 단지 피를 나눴다는 우연으로도 형제가 되고,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어. 그에 비하면 진 형제가 우리의 일원이 된 건 훨씬 더 필연에 가깝다.”
“묘하군요. 형제가 되었기 때문에 없던 유대감이 생긴다는 겁니까? 그래서 얼떨떨해요, 엄청나게 실감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죠.”
“바다에 강물이 섞이면 그것은 무엇이 되겠나? 바닷물이 강물을 차별할 것 같은가?”
“날 목마 태울 땐 힘세고 호탕한 아주머니 같더니, 이제는 현자 같은 말을 하는군요. 의외입니다, 벨리즈 형제.”
가위바위보가 끝났다.
64명의 일반 전사 전원이 조를 나눠 가위바위보를 했건만, 놀랍게도 첫 번째 대련자로 지정된 것은 또 다시 샤쿠였다.
“아니, 샤쿠 형제는 빠지는 게 맞지 않아?”
“샤쿠 형제는 방금 자연스레 물러난 것 아니었어? 또 해먹겠다고?”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으나, 신성한 가위바위보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샤쿠는 야유를 받으며 다시 진 앞에 섰고, 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한 번은 다시 싸울 기회를 줘야지, 49번이나 내 몸을 찢어발겼는데. 그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고. 오늘은 기필코…….”
콱!
벨리즈가 한손으로 지그시 진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번에도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진은 그 손아귀를 떨쳐낼 수 없었다.
“이제는 형제와 전승자가 아니라, 형제와 형제의 대련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단다, 진 형제.”
“그러는 벨리즈 형제는 제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어깨뼈를 금방이라도 으스러뜨릴 기세인데요.”
진은 투왕 중에 벨리즈가 가장 강할 거라고 직감했다.
“날붙이를 쓰지 않고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의 뼈나 근육을 파손시키는 것 정도는 괜찮아. 물론 목숨을 해할 의도가 없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지만.”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로군요. 그럼 이것 좀 맡아주십시오.”
진이 허리춤에서 브라다만테를 풀어 내밀었다.
“50번째 대련은 맨손 격투로 하지, 샤쿠 형제.”
“맨손은 더 안 될 텐데…….”
샤쿠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젓자 뿌득 이가 갈렸다. 어제까진 찢어발기고 싶었는데, 샤쿠는 이제 얄미워서 속이 터질 것 같은 인물로 변모해 있었다.
“샤쿠 형제 다음엔 모우카 형제, 그 다음엔 슐 형제, 그 다음엔 아노트 형제, 그 다음엔…… 아무튼 엄청나게 많이 싸워야하니까 힘을 다 쓰지는 마, 진 형제.”
샤쿠와의 첫 대련에 이어.
진은 오늘 64인의 명왕족 일반 전사 전부와 새벽까지 대련을 할 예정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말이다.
* * *
‘젠장, 샤쿠 그 자식. 그렇게 대놓고 져주다니……!’
샤쿠와의 첫 대련에선 승리를 거뒀다. 시작과 동시에 섬광포를 샤쿠의 코앞에 정통으로 터뜨려주고, 우왕좌왕하는 그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아니, 패려고 했다.
다섯 대를 때리기도 전에 돌연 드러누운 샤쿠가 아이고, 내가 졌네! 라고 소리치지만 않았다면 분명 몇 군데는 부러뜨렸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얄미울 수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와중, 따질 새도 없이 다음 상대들이 밀려왔다.
더 열이 받는 건, 그들에겐 그야말로 묵사발이 되도록 터졌다는 사실이다.
명왕족의 맨손 격투는 인간 격투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차라리 무기를 들었다면 조금은 덜 맞았을 텐데, 진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명왕족 전통 과자 ‘칵토’를 찾았다.
우물우물.
빠르게 원기가 회복되고 찬찬히 부기가 가라앉았다. 얼굴이 수박처럼 불어났고 온몸에 시커먼 멍 자국이 가득하건만, 뼈가 부러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괴물 놈들…….’
침대에 누워 칵토를 먹고 있으니 계속 픽픽 웃음이 나왔다. 창틈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이토록 개운하게 느껴지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진 형제, 들어간다?”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들어간다는 말이 먼저 나오냐.”
양어깨에 큼지막한 술통을 메고 있는 탄텔이었다. 쿵! 통을 내리자마자 잔을 채운 탄텔이 진에게 술을 내밀었다.
“이건 첫날 마신 술이잖아. 맛이 끔찍하던데.”
“보석주다. 아마 그때랑은 맛이 다를 걸.”
쭉 들이켜니 과연 첫날과 달리 달달하면서도 녹진한 맛이 났다.
“오.”
“광심장을 얻었으니 달라진 거야.”
“그때는 인간은 술맛을 모르네 어쩌네 하더니.”
“바깥 이야기나 좀 들려줘. 다른 형제들은 일부러 듣고 싶지 않은 눈치라 혼자 왔다.”
그러고 보니 명왕족은 바깥일을 전혀 묻지 않았다.
그들이 한 때 정복했던 땅들이 누구의 소유가 되었는지, 그들이 누비던 터전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과 싸우던 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시간이 멈춘 이후, 절대로 그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여긴 우리가 살던 라프라로사를 그대로 재현해놨지만, 사실은 일종의 저승 같은 곳이지.”
“그럼 오히려 바깥이 더 궁금할 수도 있지 않나?”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형제. 또한 추억해봐야 그곳엔 우리가 사랑했던 형제들이 아무도 없지. 다만!”
탄텔이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엿듣는 사람이 있을 리 없건만 중요한 이야기라는 듯 괜히 분위기를 잡는 것이다.
“나는 투신 형제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뭔데?”
“바깥은 벌써 반만년이나 흘렀으니, 어쩌면 우릴 꺼내줄 수 있는 마법이나 장치가 개발됐을지도 모른다더라고.”
안타깝게도 진이 알기로 그런 것은 아직 없었다. 인간들에게 라프라로사보다 수천 배는 익숙한 불사조들의 세계, 화염계조차 인세와 똑바로 이어질 방법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관련 연구자들도 많지 않았다. 성국수호전 이후, 이계와 관련한 마법은 불사조 소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협회와 학회에서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계 관련 마법은 압도적으로 어둠 계통 마법의 지분이 높았다. 어둠 계통 마법 자체가 유실, 금지된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니 앞으로도 관련 마법이 개발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다면. 형제가 좀 알아봐줬으면 해.”
“형제들이 스스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건가? 탄텔 형제는 날 데리러 대사막에 나왔었잖아.”
“그건 대사막 근처에 전승자가 왔을 때 한정이야. 그거 외에 바깥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한데, 그건 별로 의미가 없어.”
“왜?”
“그건 투신 형제가 알려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