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00)
제 222화
66화. 바네사 올슨(1)
티칸의 훌륭한 식당을 찾아다니고, 끝내주는 찻집에서 티타임을 갖고, 밤에는 섬 최상층으로 가서 야경을 즐겼다.
그때까지도 바네사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품위 있는 노부인을 연기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 오늘의 마지막 다과가 올라왔다.
“무화과와 청포도, 그리고 호두를 섞어 만든 쿠키입니다. 이름은 리트라 쿠키. 저도 처음 먹어보는 건데, 요즘엔 이걸 먹으려고 3층 다과점 앞에 항상 줄이 늘어져 있다더군요.”
“오호, 그래요?”
“그래도 못 먹고 돌아가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합니다.”
“음, 난 후원 한 번 제대로 한 덕에 편하게 먹는군요. 아마 티칸의 권력자들이 그 다과점 앞에 줄을 설 일은 없겠지요?”
“아뇨, 부인을 안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제트라는 대원이 내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운 좋게도 마지막 남은 쿠키였다더군요.”
바네사가 피식 웃으며 쿠키를 물었다. 오독, 입속에서 쿠키가 부서지며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선선한 밤바람이 테이블을 지나쳤다. 쿠키 맛이 무척 흡족한 듯, 한동안 바네사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진은 바네사가 쿠키를 음미할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 쿠키가 사라졌을 때,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서 더 견딜 수가 없군요, 바네사 올슨 님.”
바네사는 티칸에서 가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이 본명을 말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눈치였다. 내내 그랬던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저택에 용 비린내가 진하게 나던데, 그들이 내 이름을 알려줬나 보군. 뭐가 궁금하지? 진 룬칸델.”
표정은 같으나 말투가 변했다. 부드럽고 소박한 노부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녀는 최강자들 특유의 깊고 예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절 시험해보라고 보내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꼭 손자랑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만 행동하시니, 혹 제 착각인가 싶습니다.”
“아니, 정확히 알아보았다. 시론 경이 내게 편지를 보냈다, 널 한 번 만나보라고.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간을 즐긴 건…… 그냥, 잠깐 변덕을 부린 것이지. 널 보니 생각나는 시절이 있어서 말이야.”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금까지 진은 바네사 올슨이 시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전혀 놀라지 않는 눈치로군.”
“놀랍긴 합니다. 바네사 님 정도의 무인에 대해 제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게 말이죠.”
“세상은 넓다, 진 룬칸델. 그러니 너 같은 녀석도 존재하는 것이지. 검술에, 마법에, 영기라…….”
“아버지께서 바네사 님을 무척 신뢰하시나 봅니다.”
“시론 경이 등을 맡길 정도는 된다.”
그 대목에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창성기사 시론 룬칸델, 자신의 아버지. 그가 타인에게 등을 맡기는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용들 사이에선 바네사 님을 안테 산맥의 공포라 불렀다고 들었습니다.”
“난 그 유치한 이명으로 불릴 때보다, 흑기사였던 시절을 더 자주 추억하지.”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도대체 아버지와 무슨 관계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는데, 전대 흑기사였단 말인가……!’
바네사 올슨.
그녀는 인세에 이름을 알리기 전, 룬칸델의 흑기사가 되어 시론의 곁을 지켰다. 언제나 검은 투구와 갑옷으로 자신을 가린 채 묵묵히 시론을 따른 것이다.
‘들어본 적 있다, 전대 흑기사는 가문 역사상 최강이었다고. 그중에서도 늘 아버지와 함께 흑해를 토벌하던 몇몇은 특히 더 대단하다고 했었지.’
바네사 올슨은 그중 하나였다.
안테 산맥에서 용들을 죽이던 그녀가 어쩌다 흑기사가 되었는지, 흑기사가 된 후엔 어떤 업적들을 이뤘는지, 시론과 함께 얼마나 많은 적들을 베었는지.
그 모든 내막을 진이 당장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가 지닌 어마어마한 힘을 납득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하나.
‘아버지가 조슈아에게 흑기사들을 넘겨준 건, 그들이 진짜 최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은퇴한 전대 흑기사들은 모두 바네사 올슨처럼 여전히 아버지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분명 그럴 것이다. 바네사 올슨을 만나고 나니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 흑기사들은 언젠가 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혹은 진을 벨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진이 시론을 실망시키고, 가문을 이끌기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말이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진이 한쪽 무릎을 굽혔다.
“룬칸델의 예비 기수가 가문에 헌신한 위대한 검을 뵙습니다.”
은퇴한 흑기사에겐 기수조차 먼저 예를 갖추는 게 전통이었다.
룬칸델의 기수나 원로 중엔 ‘영묘’에 안치되지 못하는 자가 적지 않았으나, 흑기사는 역모 수준의 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사후 영묘에 이름이 새겨졌다.
“아주 되먹지 못한 녀석은 아니로군.”
“인사가 늦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무기를 챙기고, 티칸 이동관문 지기에게 슈체론 왕국으로 가겠다고 전해라. 그곳에서 널 벌하도록 하겠다.”
벌?
되묻고 싶었으나 진은 묵묵히 무기를 챙기러 저택으로 돌아갔다.
대문이 열리자마자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보였다.
“공자! 행여 그자가 공자를 해하지 않을까 다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별일 아닌 거죠? 퀴칸텔 님께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한 은거기인이 왜 갑자기 도련님을 찾아왔는지…….”
“퀴칸텔이 까딱하면 큰일 난다고 얼마나 호들갑을 떨던지, 고양이로 변신해서 네놈 근처에 있을 수도 없었다. 바네사인지 뭔지, 그거 대체 뭐냐?”
카시미르와 길리, 무라칸이 차례대로 말했다.
“그거가 아니라 전대 흑기사였어, 바네사 경은. 무라칸은 퀴칸텔 님 말 듣길 잘했다. 용 비린내가 난다면서 단번에 알아보던데. 그리고 아버지가 보낸 게 맞고, 음…… 날 벌하러 오셨다고 하더군.”
“무, 뭐라고요!?”
“그 여자, 어느 날 갑자기 안테 산맥에서 사라진 이유가 룬칸델 흑기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나. 그런데, 벌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도 시험인 줄 알았는데, 벌이라고 말해서 당황스럽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슈체론 왕국으로 가야합니다. 카시미르 경, 이동 관문 좀 준비시켜주십시오.”
“공자, 괜찮겠습니까? 바네사 올슨이라는 인물, 분명 놀라운 인물이긴 하지만…… 전대 흑기사였다는 건 말뿐이지 않습니까. 혹시 시론 경의 증표 같은 것이라도 보여줬습니까?”
“그런 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 꼬마가 평소답지 않게 왜 이렇게 단순해. 그럼 그 바네사라는 여자의 말만 믿고 혼자서 슈체론 왕국까지 따라가겠다는 거냐?”
“단순해야 하니까 단순하게 구는 거야. 물론 바네사 경이 흑기사가 아닐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사실이라면? 정말로 아버지의 명을 받고 날 벌하러 온 것이라면, 의문이나 거부 의사를 드러내는 순간 끝장이야.”
진이 바보여서 슈체론 왕국으로 가자는 요구에 순순히 응한 게 아니다. 바네사의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겠답시고 시간을 지체했다간 벌이 아니라 ‘큰 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엔 적어도 ‘탈출은 가능한’ 수가 하나 있었다.
“역사상 최강이었다던 전대 흑기사가 아닌 이상, 그만한 무위를 설명할 길도 딱히 없잖아.”
“하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벌이라니요, 대체 도련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룬칸델로 태어나 지플을 사칭한 죄? 얼마 전엔 특임대를 사칭한 죄? 루나 아가씨와 계속 연락한 죄? 아니면, 요나 아가씨와 만난 죄?”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 같구나, 딸기파이여.”
“제길! 앗,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도련님이 지은 죄가 꽤 되는군요. 제 입으로 말했지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오히려 짐작 가는 바가 없어요.”
무라칸이 길리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데. 룬칸델 정보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걸 다 어떻게 알겠어?”
“맞아요, 적어도 사칭 쪽은 아닐 거예요. 우리 중에 누군가 룬칸델에 진 공자의 행적을 보고하는 첩자라도 있지 않는 한!”
엔야가 큰소리를 치자 일순 카시미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세 안색도 하얗게 질리는 것이, 딱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모양새였다.
진은 그런 카시미르를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카시미르 경이 그런 걸 다 보고하진 않았을 거다. 설령 다 아버지께 보고했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어.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날 벌하려고 하시는 건.’
마음 같아선 카시미르에게 괜찮다고, 경이 그렇게 찔릴 것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그의 입장을 생각해 참아주었다. 카시미르에겐 책임이 없을 것이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큰 죄였다면, 아버지께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보내지 않으셨을 겁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거나, 흑해로 불러서 직접 추궁하셨겠죠. 어쩌면 벌이라는 말도 형식상 그렇다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흠, 형식상의 벌이라면 또 상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군. 요나와 만독주에 대한 건을 눈감아주고, 흑광갑을 받아왔을 때처럼 말이야.”
“아무튼, 바네사 경을 더 기다리게 하면 안 될 것 같군요. 전 다시 올라가볼 테니, 이동 관문이 준비되는 대로 알려주십시오.”
* * *
슈체론 왕국으로 도착하자마자 마차를 구했다.
그리고 또 바네사가 직접 마차를 몰아 사흘을 내리 달렸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톨카르 황야’였다.
그야말로 마른풀과 바위밖에 없는 척박한 땅. 바네사가 이곳을 고른 건 다름이 아니었다.
“여기라면 마음 놓고 네 힘을 다 써도 문제될 일이 없겠지, 진 룬칸델.”
바네사가 마차에 묶인 말들을 풀어주며 말했다. 이내 말들이 황야를 뛰어 달아나자, 황야엔 온전히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벌이란 게, 바네사 경과의 대련입니까?”
“그런 셈이지. 오는 동안 네 죄가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았나?”
말 한마디 없는 바네사를 앞에 두고, 사흘 내내 정말 열심히 고민했다. 자신이 벌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러나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건 마음에 들어. 그 솔직함 때문에 벌을 받게 생겼지만 말이야. 네 죄는 이것이다,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떠벌린 것.”
“증명되지 않은 사실……?”
“정말로 네가 시론 경과 일합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
-이제는 아버지와 일합을 겨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시미르 경.
-오오, 진 공자. 정말입니까?
-그걸 깨닫기까지 투신 형제에게 구만 번을 살해당했죠.
떠올랐다. 나침반 탈취 작전이 끝난 후, 술자리에서 카시미르에게 그렇게 말했던 사실이.
‘세상에, 그걸 그대로 아버지께 전했단 말이야……!?’
순간 엔야의 ‘첩자’ 운운에 안색이 하얘지던 그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그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스르릉……!
천천히 검을 뽑는 바네사.
“무죄를 주장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명료하다. 전력으로 증명하고, 책임져라. 네 스스로 뱉은 그 오만한 이야기를.”
“음, 증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바네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시론 룬칸델을 모욕한 죗값이 과연 무엇일 것 같나? 내가 그간 지켜본 바로는, 최소가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