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01)
제 222화
66화. 바네사 올슨(2)
최소가 죽음이다…….
진으로서는 참 많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오늘 진이 바네사에게 살해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바네사가 인정할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분명 큰 대가를 치르게 될 터. 지금껏 예비 기수로서 누려온 여러 특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스릉.
진이 시그문드를 뽑았다.
“까딱하면 오늘 제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지.”
“설마 제가 바네사 경을 이겨야 하는 조건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바네사가 크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대놓고 무시당한 셈이지만 진은 민망한 기색 없이 담담한 표정이었다.
진이 얼마 전 백랑족 돌격대장 다섯을 죽이고, 칼 지플과 추콘 톨더러를 상대로 빛나는 실력을 과시한 건 사실이지만.
바네사는 젊은 시절 안테 산맥에서 용을 멧돼지 잡듯 썰어댄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시론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그녀가 인세에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면 세계 최강을 논할 때 빠질 수가 없는 인물이라는 뜻.
반면 진은 아직 열일곱, 규격 외의 강자가 되어가고 있으나 한창 성장 중인 무인이었다. 그런 진에게 바네사를 꺾으라는 건 지나친 농담에 불과했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란 말이냐? 네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막무가내는 아니다.”
“다행이로군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바네사가 가볍게 검을 돌렸다. 어느 대장간에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철검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내게 네 검이 닿으면 합격이다. 옷자락만 스쳐도 인정해주마.”
샤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이 시그문드를 휘둘렀다. 둘 사이의 거리는 대여섯 걸음에 불과했고, 뇌기를 머금은 시그문드에선 명왕검 평식 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칫!’
챙!
바네사의 철검에 시그문드가 튕겨나갔다. 일합, 진은 압제의 힘이 무색할 만큼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고, 바네사는 그런 진이 가소로운 듯 미소를 머금었다.
‘안될 것 같긴 했는데, 너무 여유롭게 쳐내잖아…….’
분명 ‘잡아당기는’ 감각은 있었으나 바네사가 가진 엄청난 오러와 완력 때문에 압제의 힘이 빛을 바랬다.
10성.
바네사의 경지. 세상에 그녀와 일대일로 호각을 이룰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압제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바네사에겐 조금 신기한 기술에 불과했다.
검술 실력이 대등했다면 그녀에게도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아주 되먹지 못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럭저럭 되먹지 못한 놈이었구나. 시작하라고 명하기도 전에 검을 뻗을 줄이야.”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그렇다면 너는 방금 기회를 놓친 것이겠지. 흠, 방금 펼친 게 명왕검인가? 신기하군, 영기와 마법 쪽도 궁금해지는 걸.”
“아버지께서 별걸 다 알려주셨군요. 전 아버지께 명왕검을 익혔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살아서 돌아가거든 네 동료 중 시론 경의 첩자를 찾아 책임을 묻도록 해라.”
바네사는 진이 갖고 있는 힘을 전부 알고 있다.
그건 곧 변수를 만드는 게 어렵다는 의미였다. 진이 꼼수를 부릴 수 있던 건 방금 일격이 마지막이었다.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해야 했다.
‘10성, 애초에 저런 괴물한테 변수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에 대해 몰랐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우우웅!
바네사의 검이 굵직한 울음소릴 터뜨렸다. 거대한 오러가 압축되어 검신 속에 스며든 것이다.
그것만으로 싸구려 철검은 그 어떤 명검보다 위험한 무기가 되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오러에 그들이 선 어둑한 황야가 밝아질 지경.
파즈즉!
그 검이 자신을 향해 떨어지기 전에, 진이 먼저 평식 벼락으로 뇌전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그문드를 휘둘러 벼락을 내리치려는 순간.
어디선가 광풍이 몰아쳤다. 황야의 대기에 고여 있던 바람이,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바닷물처럼 바네사에게로 응축되고 있었다.
‘뇌전이…… 비틀어졌어!?’
피직, 지지직……! 벼락이 그 바람에 섞여 길을 잃었다. 이내 틀어진 뇌전은 바람 속에서 완전히 분해되어 푸른 입자만을 남겼고, 한순간에 돌풍이 잦아들었다.
쿵!
검을 휘두르기 위해 검을 뗀 순간, 바네사의 발밑에서 부서진 돌덩이들이 튀었다. 그리고 돌조각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돛처럼 펼쳐진 검기가 그것들을 집어삼키며 진에게로 쇄도했다.
검기에 닿지도 않았건만, 궤도에 떠 있는 돌조각들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검기를 아우르고 있는 무형의 예기에 갈려나가고 있었다.
진은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눈을 깜빡일 틈이 없었던 덕이다. 깜빡였다면, 그래서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 역시 돌조각처럼 분해되어 황야의 바람에 섞이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보법을 밟아 검기를 피하고, 이를 악물며 다시 바네사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그녀의 각력에 처참히 깨진 돌바닥만이 보일 뿐이다.
바네사는 이미 쏘아진 검기 뒤에 바짝 붙어, 진의 측면을 잡고 있었다. 때문에 진은 손안에 숨겨두고 있던 섬광포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바네사는 고대의 빛 마법을 처음 볼 것이다. 아니, 빛 마법은 과거 그녀가 죽인 마법사나 용들에게서 보았다 할지라도, 분명 섬광포는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몇 번이나 겪어본 마법인 것처럼 능숙하게 섬광포를 피했다. 10성 기사의 감각 덕분인지, 아니면 그조차 카시미르가 서신으로 알렸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은 전자일 거라고 판단했다. 그녀가 사전에 완벽히 첸미의 섬광포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지금 철검을 막을 틈 따윈 없었을 테니까.
쩌엉!
이어지는 일격은 가까스로 막았다. 그리고 얼음송곳 두 개를 만들어 그녀의 얼굴과 몸통을 향해 쏘았다.
당연하게도 3성 빙결 마법 따윈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으니 의미 없는 견제였다. 그러나 이런 의미 없는 견제가 쌓이다보면,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일격을 시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칭, 칭칭, 퍼걱! 연발로 쏜 얼음송곳들이 바네사의 몸을 휘감은 기운에 맥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마검사라, 흥미롭군. 무인을 상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안광을 희번덕이며 완전히 몰아붙이는 형세지만, 바네사는 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느끼고 있었다.
상대의 손에서 갑자기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점에선 암살자와 비슷했고, 거리가 벌어질 때마다 크고 작은 마법들을 쏴대는 점은 궁수와 비슷하며, ‘마력’을 이용해 속임수를 부리고 착시를 유발하는 것은 마법사와 같았다.
그런데 근접전에선 순혈 룬칸델 특유의 괴력을 지닌 무인의 성질을 그대로 갖고 있으니, 신기함을 넘어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뇌기까지 부리니 어지간한 9성 기사들도 꽤나 애먹겠어. 아직 영기는 사용하지도 않았고.’
왜 시론이 그토록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대번에 납득할 수 있었다.
하나 아직까지는 ‘시론과 일합을 겨룰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준은 아니었다.
“큽!”
진이 한 움큼 피를 토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바네사의 마지막 일격에 옅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열일곱이라고 했나, 그 나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이군. 그때의 루나와 비교해도 될 정도야.”
“갑자기 칭찬이십니까.”
“하지만 그 아인 너보다 더 적은 재능을 타고났다. 오직 검, 그것 하나뿐이었지. 네게 영기와 마법, 그리고 기연이 있던 걸 생각하면 부족한 감이 있군.”
“루나 누님께선 열일곱에 아버지와 일합을 겨룰 수 있었습니까?”
고개를 젓는 바네사.
“아니, 열여덟부터 가능했을 것이다.”
“돌아가거든 누님께 자랑이라도 해야겠군요. 제가 더 나은 것 같다고 말입니다.”
“전투는 훌륭한 것 같으나,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 룬칸델의 교육이란 게 썩 훌륭하진 않으니 그럴 수는 있다.”
전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언뜻 보기엔 상당히 절망스러운 흐름이었으나.
사실 진은 속으로 뿌듯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직 꺼내지 않은 패가 이렇게 많은데, 10성 기사를 상대로 이렇게 버틸 수 있다는 말이지…….’
물론 바네사가 애검이 아닌 싸구려 강철검을 쓰고 있고, 은근히 완급 조절을 해주고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진은 충분히 훌륭하게 맞서고 있었다.
라프라로사를 떠난 후, 나침반 탈취 작전에서는 제 실력을 명확히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백랑족 다섯은 너무 쉽게 죽였고, 마법사들은 너무 쉽게 속았다.
사람은 벽을 마주했을 때 본인의 위치를 확실히 알게 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은 자신의 성장세가 상상을 한참 뛰어넘었다는 걸 절감하고 있었다. 진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 적들조차 예상치 못할 것이다. 지금 바네사가 속단하고 있는 것처럼.
또한.
진은 슬슬 확신이 서고 있었다.
‘바네사 경이 계속 이 정도로 싸워준다면, 옷자락 정도는 문제없이 벨 수 있다. 관건은 얼마나 큰 부상을 각오해야 하느냐다.’
진짜로 목숨을 건 일대일 사투가 아닌 만큼, 바네사는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간 ‘시험’이라는 게 성립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반면 진은 다르게 판단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딱 한 번 파고들어서 바네사 경을 벨 때, 경의 검이 과연 어디에서 멈출까?’
목을 베고 지나간 다음 멈출까? 목 앞에서 멈출까? 아니면, 사지 중 한 곳을 베고 지나가다가?
그것만큼은 계산할 수가 없었다. 바네사가 ‘널 죽이지는 않겠다’고 맹세한 적은 없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파고들기로 결정하면, 온전히 바네사 경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다. 날 죽일 가능성은 낮지만, 팔 하나쯤은 벨 수도 있어.’
실제로 바네사는 딱 그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이 만약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오른팔을 가져가려고 계획해둔 것이다.
시론 룬칸델을 함부로 ‘평가’한 것엔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합을 겨룰 수도 있다는 말은 시론에게 잣대를 들이민 것이니, 평가나 다름이 없었다.
이내 진이 고민을 끝냈다.
‘우선 바네사 경에게 좀 더 놀라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 아까워서라도 내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도록. 이만하면 져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도록.’
보여줄 것은 많았다.
바네사는 기다려줄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을 보기 위해 진을 찾아온 것이니까. 그리고 진은, 충분히 그녀를 만족시킬 자신이 있었다.
프즈즈즉!
시그문드가 다시 뇌기를 토하기 시작했다.
투신기를 펼치기 위한 준비였다. 예상대로 바네사는 진이 뇌기를 일으킨 그 찰나의 순간에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게 네 비장의 한 수라면, 정말로 신중히 펼쳐야 할 것이다.”
“천천히 감상하셔도 됩니다, 꽤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