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02)
제 222화
66화. 바네사 올슨(3)
어그러지듯 검으로 모여들던 뇌기가 푸른 막대로 변해 허공에 흩뿌려졌다.
뇌기를 머금은 수십 개의 작은 기둥들이 어두운 황야 한가운데서 신령스러운 빛을 뿜었다. 불안정하게 꿈틀대던 뇌기는 온데간데없이, 뇌기의 기둥들은 누군가 빚어놓은 것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시작으로 고른 것은 투신기 4검.
침식.
푹!
진이 시그문드를 바닥에 꽂았다. 그러자 부유하던 뇌기의 막대들이 일제히 바닥에 내리꽂혔다.
바네사는 그때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진이 시그문드를 꽂는 그 순간, 기술을 펼치겠답시고 무기를 바닥에 꽂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 빛나는 애송이에게 알려주고자 했었다.
그러나 공격 대신, 그녀는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온 바닥에 날카로운 뇌전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바닥뿐만이 아니었다. 숨을 들이쉴 때에도 가시처럼 따가운 뇌기가 목구멍을 찔러댔다.
시그문드가 꽂힌 지점을 중심으로 둥글게 자리 잡은 푸른 막대들이, 두 사람이 선 땅을 뇌전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일단 바네사로서도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다.
뚫고 나아가는 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으나, 저 ‘뇌전 지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껄끄러웠다.
뇌전 지대 바깥에서 검기를 쏘는 선택지를 두고, 굳이 격차를 과시하기 위해 어울려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건 검이 아니라 마법에 더 가까운 느낌이로군.’
훅, 숨을 통해 들어온 뇌기가 심상치 않기는 했으나.
내심 바네사는 룬칸델 결전기처럼, 투혼을 담은 파괴적인 일격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반만년 전 세상을 지배하던 자들의 검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마법사들의 속임수 같은 기술이라니.
‘몇 개 더 있다고 했으니,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볼까. 계속 이런 식이면 그만큼 실망도 더 클…….’
돌연 생각을 멈춘 바네사의 시선이 제 발 아래로 향했다.
파직, 파지직.
좁쌀처럼 작은 뇌기가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시그문드와 푸른 기둥들이 침식하고 있는 범위는 완전히 벗어났다.
그녀의 발아래 놓인 뇌기는 잿불처럼 미약해서, 침식된 땅의 사납고 거친 뇌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피하라고.
탓! 바네사가 반사적으로 보법을 밟았다. 경지에 오른 후, 그녀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쿠즈즉, 카지지직-!
그 작은 뇌기를 향해 진의 근처에 모인 뇌전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뇌속, 예측하지 않고는 10성 기사라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속도.
거대한 뱀이 지나간 듯, 바네사가 서 있던 자리에 시커먼 구멍이 생겼다.
‘그냥 몸으로 막았어도 별 볼일 없는 위력이었군.’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바네사의 두 눈동자에 시퍼런 천둥의 상이 맺혔다. 문자 그대로의 우레, 그것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구덩이를 한 번 더 강타한 것이다.
고막을 찌르는 강렬한 뇌성이 번진 후, 이번만큼은 바네사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지진이…… 일었어?’
우레가 구덩이에 떨어진 직후, 그들이 선 땅에 옅은 지진이 번졌다.
그리고 바네사는 지진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우레를 불러온’ 손톱만한 뇌기가, 실은 일대에 다 퍼진 상태였다는 걸 말이다.
사방에서 그런 뇌기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만약 셀 수도 없이 많은, 그 작은 뇌기들 전부가 우레를 부를 수 있다면…….
그런 모습을 상상하자, 실로 오랜만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물론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일 리는 없을 터. 그건 수천 개의 우레를 부리는 신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랬다면 내가 진에게 도전하는 입장이 되었겠지.’
반면 진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번에 펼친 단죄도, 침식도. 투신 형제가 보여준 것에 비하면 한없이 미미하군.’
투신 반이 펼친 침식은, 딱 바네사가 상상한 정도였다. 그의 뜻대로 쉴 새 없이, 감히 9성 이하는 막거나 피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우레가 수천 갈래씩 몰아치는.
비록 아직 반과 똑같이 수천 갈래의 우레를 부릴 수는 없어도, 수십 갈래를 부리는 건 진에게도 가능한 영역이었다.
카지직, 카직, 크즈즉!
바네사의 근처에서 뇌기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또한, 바네사는 과연 시론이 등을 맡길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근처에 흩어진 작은 뇌기가 셀 수도 없건만, 그녀는 1초가 지나기도 전에 우레에 반응해 터지려는 뇌기들을 정확히 골라냈다.
일반인들은 동체 시력이라 부르고, 무인들은 안력이라 부르는 능력이 상식을 한참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진도 예상한 일.
‘바네사 경은 침식의 우레를 피하려고 할 거다. 쳐내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거야.’
그래서 시그문드를 땅에 꽂자마자 테스 소환을 준비해두었다. 뇌전에 이어, 난데없이 중압의 불꽃까지 쏟아지면 바네사로서도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을 터.
가아악!
진의 위에 열린 차원문에서 테스의 시퍼런 날개가 빠져나왔다. 테스가 소환되자마자 진은 시그문드를 회수해 바네사를 향해 전속으로 돌진했다.
그녀가 침식의 우레를 피하는 틈에 공격하려는 계획이었다. 제아무리 10성 기사라 할지라도 급히 몸을 빼낼 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이 다가온 순간.
내가 피할 것이라 생각했나?
바네사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곧 우레가 떨어지므로 그럴 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일 뿐, 진은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진짜배기 10성 기사의 저력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쿠르르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진의 광심장이 뜨겁게 타오르는 와중, 중압의 불꽃이 바네사를 통째로 집어삼킨 와중.
하늘이 찢어진 듯.
수십 갈래의 우레가 바네사라는 한 점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중압의 불꽃에 짓눌려 다 피하진 못했을 테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우레는 쳐내면 될 터였다.
바네사는 그렇게 하는 대신, 검에 힘을 실었다.
‘설마 이걸 다 쳐내겠다는 겁니까?’
진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청화와 뇌기 속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단 한 줄기의 검광.
그러나 그것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에게나 한 줄기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수십, 수백 개의 검기가 검광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것은 청화를 붙잡고, 어떤 것은 뇌전을 찢어발기고, 어떤 것은 진을 옥죄어왔다.
이번엔 진의 등줄기에 소름이 번졌다. 검광이 번지고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으나, 진은 이미 잠시 후의 미래를 보았다.
‘바네사 경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완벽하게 쳐낼 것이다……!’
침식의 우레도, 테스의 청화도, 그녀의 옷자락조차 건들지 못한 채 검기에 휩쓸려 사라질 것이다.
말하자면 진의 계산은 틀렸다. 원한다면, 세상을 능히 뒤흔들고도 남았을 무인을 감히 얕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카아아!”
바네사가 괴성을 내지르자 충격파가 번졌다.
어느새 청화와 우레는 검기에 짓눌려 꺼져버렸고, 테스는 진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 숨결을 토하고 있었다.
그걸 다 깨뜨리고도 남은 검기가 진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조금이나마 기세가 꺾였으나, 테스가 언제까지 막아줄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아직 진은 바네사의 몸에 검을 대지 못했다.
계산이 틀렸다고 해서,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이것까지 실패한다면, 제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스릉, 후우웅…….
브라다만테가 검집에서 빠져나오자 영기가 흘렀다. 내내 푸르고 새하얀 기운만이 가득했던 황야에, 칠흑 같은 영기가 번지니 괴리감이 들었다.
영검 1식.
진이 몸을 낮추며 자세를 잡았다.
영혼 베기, 라프라로사에 가기 전에도 스스로 완성시켜가고 있던 그 기술.
언제나처럼 진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벤다, 바네사 경을 벤다. 저 괴물을 벤다…… 주문에 깨어난 영기들이 검신을 어둡게 물들여갔다.
“정말로 마지막이겠군.”
“앞선 것들은 즐거우셨습니까?”
“기대하겠다.”
바네사의 철검은 이가 빠진 상태였다. 10성 기사의 오러에 물들어 있었다지만, 싸구려 철검의 한계였다.
‘조금 더 좋은 검을 챙겨올 걸 그랬나. 기가 막히는군, 후후.’
그래서 바네사는 자신이 이미 패배를 인정했다. 이런 검으로는 진의 마지막 일격을 정면으로 받아줄 수도 없으며, 이것은 결투가 아닌 대련이다.
설령 검이 없더라도 진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나, 이미 바네사는 진이 시험에 합격했다고 판단을 내렸다.
옷자락도 멀쩡하고, 검이 몸에 닿은 적도 없지만 바네사는 진의 우레와 청화를 막으며 스스로 제한하기로 했던 힘의 한계를 한참 지나쳤다.
이를 테면, 지금 진의 마지막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주는 것은.
시험관으로서 일종의 추가 점수를 주려는 의도였다. 혹은, 룬칸델의 영묘에 안치될 일원으로서 훌륭하게 자라고 있는 어린 룬칸델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했다.
진의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영혼을 직접 베어버리는’ 영역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라프라로사에서 다듬은 영검 1식엔 소리가 없다.
유령 같은 칼날은 그저 상대를 관통해 벨 뿐이고, 믿음만 충분하다면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바네사는 직감적으로 영검의 속성을 통찰했다.
그녀는 솔더렛의 계약자가 아니고, 영기를 겪어본 적도 많지 않지만. 검의 끝에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자에겐 보이는 법이다.
검이라는 사물을 통해 행하는 모든 행위의 깊이가.
‘훌륭하구나.’
영기에 물든 브라다만테가 바네사의 뺨을 스쳤다. 핏, 붉은 핏방울이 번졌고 진은 그녀를 지나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인으로서, 검이라는 바다의 어딘가에 떠 있는 자신을 평가한다면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시론의 아들로서, 아버지가 내린 시험에 기대 이상으로 부응했다는 사실엔 스스로가 대견했다. 특히 이번 시험으로써, 진은 시론과 ‘일합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철그렁……!
바네사의 철검이 깨졌다. 부러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깨져서 후드득 바닥으로 쏟아지는 모습.
그건 진이 태어나 들어본 것 중, 가장 좋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짜릿한 소리였다.
“진 룬칸델, 한 가지 묻고 싶군.”
“말씀하십시오, 바네사 경.”
바네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진을 돌아보았다.
“내가 만약, 이보다 조금 더 많은 힘을 사용했어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 같나?”
바네사가 보기에, 진은 시론과 일합을 섞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때문에 무인으로서 순수한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이합까지도 가능할 것인가.
“……음, 실은 하나가 남았습니다.”
“뭐? 지금까지 보여준 것 외에, 하나가 더 남았다는 말이냐?”
“그러나 검이라고도, 마법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의미는 없군요.”
“검이라고도, 마법이라고도 할 수 없다?”
진이 대답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자세한 건 알려줄 수 없다는 의미. 바네사는 이 맹랑한 룬칸델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내 완패구나. 네 아버지는 분명 벌을 내리라 했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상을 줄 수밖에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