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05)
제 222화
67화. 마녀 헬루람의 유산(2)
1797년 8월 15일.
진 일행은 흑해 한복판에 서서 멍하게 지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흑해에 도착하고 열흘이 흘렀다. 그간 찢거나 베거나 때려서 죽인 마물이 삼백 마리를 넘어가고, 슬슬 돌아갈 때 사용할 식량이 아슬아슬해지고 있었다.
흑해엔 사람이 먹을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은 만독주가 있으니 마물을 먹어도 딱히 문제될 것이 없고, 무라칸과 퀴칸텔은 용이므로 독성이 약한 종은 그냥 먹어도 되지만 세상에 마물로 끼니를 때우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지도가 있어도 길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군. 여기 표시된 돌기둥이 왜 안 보이느냔 말이지? 이 근처인 것 같긴 한데. 이거 지도가 잘못된 것 아니야?”
“지금까진 잘 찾아왔으니 맞는 지도겠지. 아버지와 전대 흑기사들이 어설프게 제작했을 리는 없어.”
“날아서 확인할 수도 없고, 답답하군.”
흑해에선 몇 종류의 마물을 제외하면 용이라 할지라도 고도비행을 할 수 없다. 상공을 뒤덮은 시커먼 구름에서 용비늘조차 초콜릿처럼 녹이는 맹독이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용들이 날아다닐 수 있는 땅이었다면, 전대 흑기사들이 지도를 만들고자 그토록 애를 쓰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돌기둥은 왠지 저것 같은데? 지도에 표시된 이 돌기둥은 다른 것과 달리, 근처에 원이 그려져 있었잖아.”
진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있는 구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치 달이 앉았다가 뜨기라도 한 듯, 거대한 구덩이였다. 척 보기에도 100미터를 가뿐히 넘을 것 같은 깊이였고, 그 한가운데 우뚝 돌기둥이 솟아 있었다.
바네사가 진에게 준 지도는 ‘초기형’이었다. 그마저도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춘 부분이 많아, 독도법에 완전히 숙달한 자들도 쉽사리 읽기 어려운 지도였다.
“흠, 맞는 것 같군.”
“하이고오, 저길 어떻게 내려간답니까? 전 자신이 없습니다요.”
“걱정 마라, 제트. 내려가는 건 간단하니까.”
독구름은 상공에만 있다. 일행은 본모습으로 변신한 무라칸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가까이서 본 기둥은 생각보다도 더 거대했다. 그리고 일행의 생각과 달리 평범한 돌기둥이 아니었다.
둥지. 돌기둥은 흑해에 서식하는 비행종 마물, ‘콜기아’의 거대 둥지였던 것이다.
“키에에엑!”
“키이익!”
돌연 돌기둥의 틈들이 벌어지며 콜기아 떼가 괴성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하늘을 검게 뒤덮는 모양새가 수백 마리를 넘어가는 것 같았다.
진과 카시미르는 재빨리 무기를 꺼내들었으나, 퀴칸텔이 그럴 것 없다며 손을 들었다.
“가만히 있어. 무라칸이 알아서 할 테니까.”
[감히…….]안광을 빛내며 숨결을 모으는 무라칸. 벌어진 주둥이 사이로 모여든 어둠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쏘아질 기세였다.
진의 영기가 강해진 덕에, 무라칸은 처음 깨어났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치이잉……!
숨결이 쏘아짐과 동시에 5할 이상의 콜기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조차 그 위력에 깜짝 놀라 무라칸을 쳐다보았고, 카시미르와 제트는 아예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표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진을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은 실제로 앞이 컴컴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숨결에 담긴 영기가 그들이 서 있는, 구덩이 안쪽을 완전히 뒤덮어버린 것이다.
처음 숨결에 닿지 않은 콜기아들도 어둠 속에서 온몸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작은 살점 한 조각조차 바닥에 떨어지는 일 없이, 기세 좋게 등장한 콜기아들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저 녀석이 옛날에 괜히 최강이라 일컬어지던 게 아니거든.”
이내 영기가 걷히자 퀴칸텔이 짝짝 박수를 쳤다. 카시미르와 제트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녀를 따라하는 모습.
“흥, 그래봐야 전성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이, 이게 새 발의 피라굽쇼? 전 방금 제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요. 매일 우리랑 농담이나 주고받으시던 무라칸 님이 맞나 싶었다니까요. 카시미르 경, 안 그렇습니까?”
“어, 어…… 그렇지. 아니, 그런데 무라칸 님. 이런 힘이 있는데 왜 그간 저랑 퀴칸텔 님이 거의 모든 마물을 죽이게 두셨습니까?”
“나한테 지금 따지는 거냐?”
“아닙니다. 그냥, 멋져서 해본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해, 꼬마 녀석이 강해지는 것에 비해 힘이 돌아오는 속도가 너무 느리단 말이야…….”
카시미르와 제트가 놀라거나 말거나, 무라칸은 방금 펼친 숨결의 위력이 못마땅한 듯 쩝 입맛을 다셨다.
“심장이 박살났던 것치고, 그 정도면 잘 돌아오고 있는 것 아닌가?”
“꼬마 녀석 영기가 6성에 닿았는데, 내 힘도 6할 정도는 돌아와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지.”
“너무 많은 걸 바라는군. 숨 붙어 있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텐데.”
“좀 알아볼 필요는 있겠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확실히 회복이 더딘 편이긴 하니까.”
“그러면 네 누이를 한 번 찾아봐.”
“하, 웬만하면 그거랑은 마주치고 싶지가 않은데.”
“어쩌라는 거야?”
무라칸과 퀴칸텔이 투닥투닥 말씨름을 하는 사이 진과 동료들은 지도를 살폈다.
“지도대로라면 여기서 협곡을 지나 몰로스라고 적힌 강을 건너야 하는군요. 그러면 도착입니다. 바짝 걸으면 오늘밤쯤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와 마물이 비슷하게 출몰한다면 말이죠.”
“그럼 오늘 밤까지 도착하는 걸 목표로 하고, 가서 진은 하룻밤 푹 재우도록 하자고. 헬루람의 마물이 어떤 놈인지를 알 수 없으니, 이왕이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마주쳐야지. 그걸 쓰러뜨리라고 했다며?”
다행히 협곡을 지날 때도, 몰로스 강을 건널 때도 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근처에 사는 마물들이, 몰로스 강 근처에 오면 반드시 ‘죽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론과 전대 흑기사들이 헬루람의 마물을 관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그 지역의 마물을 죽여 왔기에 생긴 인식.
일행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편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진과 동료들은 저녁 즈음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들을 마주한 것은, 일종의 숲이었다.
“숲?”
세간에 알려진 바로, 흑해엔 나무가 없다. 온통 바위와 화산, 그리고 독기 가득한 늪과 강으로 이루어진 땅이라고만 알려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였다.
흑해엔 수많은 숲이 있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숲은 그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며, 흑기사가 제작한 지도에 표시된 것만 열 개가 넘는 숲이 있었다.
당연히 바깥의 숲과 전혀 다르기는 했다. 온통 맹독을 품고 있는 가시나무들의 가시는 창끝보다 날카롭고 잎사귀엔 ‘주둥이’가 달려 있었다.
그런 가시나무들이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큼의 틈만 남기고, 빼곡하게 펼쳐져 있었다.
“히익!”
제트가 생각 없이 숲 입구의 나무에 다가갔다가 뒷걸음질을 쳤다. 가슴께까지 내려온 잎사귀가 주둥이를 벌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모습을 본 것이다. 캉! 주둥이를 닫자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을 가져다대기라도 했다면…… 그런 생각이 스치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뭐, 뭐 이런 기괴한 숲이 다 있답니까요? 저 속으로 나리 혼자 보내야 하는 겁니까?”
“나와 봐.”
퀴칸텔이 제트를 지나쳐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가시나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먹으로 부러뜨리고, 잎사귀들은 마법을 이용해 태워버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만상을 다 쓰며 다시 동료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독기가 가득해. 만독주, 혹은 그에 준하는 내성을 가져야 활동할 수 있겠더군. 바네사의 말대로 말이야. 심란해지네. 저런 곳에 대체 뭔 마물이 사는 거야?”
일행은 여전히 헬루람이 길렀다던 마물의 정체를 유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키운 마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중 대다수는 당대의 실력자들이나 용들에게 살해당했다.
“뭐가 됐든, 꼬마가 이길 만한 마물이니까 지도를 줬겠지. 그런데 마물을 죽여서 대체 무슨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 내단인가? 그건 인간한테는 아무 쓸모가 없는데.”
마물의 내단은 용에겐 영약으로 취급되나 인간에겐 전혀 효능이 없었다.
“네 입으로 진이 이길 만한 마물이라고 했으면서, 내단이라니? 내단을 가진 마물을 진이 혼자서 어떻게 잡을 건데.”
내단을 가진 마물은 용들도 토벌대를 짜서 상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또한 그런 마물은 자아와 지능이 존재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서 지냈다.
“하긴, 그건 그렇군. 아무튼, 제트! 천막 치고 식사 준비해. 돌아갈 때 좀 덜 먹더라도, 오늘밤이랑 내일 아침은 꼬마를 확실히 먹여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건육이랑 고깃가루 팍팍 사용하겠습니다요.”
“안 그래도 식량이 부족한데, 그렇게 할 필요 없어.”
“나랑 퀴칸텔이 마물 잡아먹으면서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먹어라.”
다음 날 이른 아침.
동료들은 숲 앞에서 진을 기다리기로 했고, 진은 싸움에 대비해 몇 가지 마법을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숲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검으로 가시나무를 베고, 마법으로 불을 지르니 그럭저럭 나아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여기서부터 독기가 시작되는군.’
독기가 시작되는 지역부터는 초입처럼 가시나무가 빼곡하지 않았다. 대신 자욱한 독기에 숨이 갑갑해졌는데, 만독주가 없었다면 1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을 걸었다. 숲 내부는 상당히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야지대와 숲지대가 뒤섞인 것 같았다. 완벽하게 둥근, 인위적으로 깎은 것이 분명한 바위들이 굴러다니는 평야가 나오고, 그걸 지나치면 다시 가시나무 숲이 시작되고, 또 평야가 나오고…….
그런 식으로 구획된 숲이었다.
둥근 바위가 굴러다니는 평야와 숲. 진은 자연스레 두 지대의 차이를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왜 이렇게 구분되어 있는 거지? 바위를 둥글게 깎은 건, 흑기사인가? 근데 왜 깎아놓은 거야?’
나무는 흑해라는 자연에서 파생된 것이라 쳐도, 둥근 바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보였다.
무슨 의식 같은 것에 사용되는 물건인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벌써 숲에 들어오고 세 시간이 흘렀건만, 마물은 보이지 않고 둥근 바위와 끔찍한 가시나무만 가득하니 짜증이 치밀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금까진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털이었다.
굵고, 검고, 이 독기 가득한 가시나무 숲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털. 진은 자연스레 바닥에 떨어진 털을 따라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15번째 평야지대를 발견했을 때.
진은 ‘둥근 바위’를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던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미야앙.]평야지대 한가운데서 웬 고양이가 바위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다만, 진짜 고양이와는 달리 본모습으로 변신한 무라칸과 엇비슷한 몸집을 지녔다는 게 문제였다.
마녀 헬루람의 고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