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11)
제 222화
69화. 청새 군도 32번 섬의 비밀(2)
사밀과 라프라로사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진은 방금 이들의 기습에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계가 있던 모양이다. 젠장, 신의 무덤이라니. 네 검이 아니었으면 위험했겠어.”
무라칸이 재빨리 뇌전을 쳐내며 말했다.
이곳은 과거 명왕족에게 살해당한 천둥의 신, ‘그람’의 무덤이 있는 땅이었다. 당연히 신의 무덤인 만큼 결계가 펼쳐져 있었고, 무라칸은 시그문드가 그것을 허물어뜨린 덕에 기습을 피했다.
시그문드는 그람의 힘을 봉해 만든 검이었다.
“우리가 네놈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를 거다……!”
쿠잔이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소리쳤다.
그와 베리스는 델키 왕국에서 진과 싸울 당시 진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무라칸의 영기를 보고 곧장 침입자가 솔더렛의 계약자, 찢어 죽여도 모자랄 자신들의 원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아악, 이 개자식들!”
베리스는 어머니의 원수를 만났다는 사실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놈들은 조슈아의 밑으로 들어갔었나.’
타이뮨 마리우스가 조슈아의 사람이었으니, 타이뮨의 사람이었던 쿠잔과 베리스가 조슈아에게 귀속되리라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청새 군도 32번 섬에서 느닷없이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진과 무라칸은 물론이고, 쿠잔과 베리스 역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들을 율리안과 함께 이 섬으로 보낸 조슈아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조슈아가 진이 나침반을 탈취한 사실과 그 목적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결코 이 섬으로 사냥개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한 맺힌 어머니의 넋을 기리겠다…….”
콰아앙!
진과 쿠잔의 검이 부딪히며 칼날에 맺힌 오러가 폭발했다. 검이 아니라 포탄이 터진 것 같은 폭음이 일었고, 진은 단번에 쿠잔 역시 강해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육체 개조.
쿠잔은 여전히 8성에 머무르고 있으나, 타이뮨에게 전수받은 육체 개조를 통해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베리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도 심상치 않았다. 8성, 그러나 생명력을 담보로 한 사나운 마력 운용 덕에 위력은 9성에 버금가는 수준.
“율리안! 인간을 먼저 노려라, 수호룡은 그 다음이다!”
괴성에 가까운 목소리, 베리스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찾아올 줄 알고 기다리던 눈치는 아니고, 뭐냐? 왜 네놈들이 여기 있지?”
진이 검을 맞댄 채 쿠잔과 눈을 맞췄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놈들은 오늘 죽는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보자마자 영문 모를 분노를 토해내는데 말이야, 오히려 내가 네놈들에게 이를 갈아야 하는 것 아닌가. 델키에서 덕분에 죽을 뻔했거든. 그리고 어머니라면, 타이뮨 마리우스를 말하는 건가?”
“더러운 입으로 그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대답할 새가 없었다.
맹독에 젖어 있는 쿠잔의 검이 끊임없이 시야를 어지럽혔고, 베리스는 델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법 지원을 하고 있었다.
베리스와 쿠잔. 그들이 육체 개조를 통해 강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델키 이후, 진이 이룬 성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때의 진은 이들과 싸우며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본격적으로 시그문드의 뇌기를 방출하지 않고 있는데도 공방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만독주를 얻어 쿠잔의 검에 스치는 것도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했고, 무라칸까지 함께 있으니 진이 이들에게 당할 수는 없었다.
‘이 두 놈은 문제될 게 없다. 신중하게 상대하면, 제압이나 사살을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있을 정도야.’
베리스와 쿠잔은 현재 진이 지닌 패를 다 알지 못했다. 명왕검과 영검, 역천, 그리고 만독주. 이 네 가지 힘은 델키를 떠난 이후 얻었으니 당연한 일.
따라서 진의 입장에선 변수를 만들기가 너무 쉬웠다.
‘율리안이라고 했나. 오히려 저자가 거슬리는군. 페이텔의 계약자, 게다가 뇌궁이라…….’
페이텔은 계약자에게 무기를 하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신이었다.
폭풍의 힘으로 이루어진 뇌검, 뇌창, 뇌궁.
그중에서도 뇌궁 ‘하르밀라’는 페이텔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계약자에게만 내려지는 무기였고, 율리안이 가진 활이 바로 그것이었다.
프즉, 프즈즛!
사방에 뇌전이 퍼지고 있었다. 시그문드가 아니라 하르밀라에서 퍼진 그 뇌전은, 시위에 감기기도 전에 율리안의 의지를 따라 솟구치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율리안은 베리스의 말을 따르지 않고 무라칸을 상대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무라칸 역시 율리안이 쿠잔 쪽보다 위험한 상대라고 인지했다.
“하, 전성기 좀 지났다고 별 게 다 덤비네. 꼬마! 얼른 그것들 정리하고 넘어와라, 그전까지 이건 내가 대충 족치고 있을 테니까.”
진과 베리스, 쿠잔.
무라칸과 율리안.
빠르게 전투의 구도가 잡혔다.
진 쪽은 정신없이 오러와 마력이 튀었고, 무라칸 쪽에선 영기와 뇌기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비바람과 강풍까지, 청새 군도 32번 섬은 순식간에 마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네놈들이 내게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단 말이지. 꼭 내가 타이뮨 마리우스를 죽였다는 듯이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닥치란 말이다!”
“쿠잔, 네놈이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도 이해가 안 가는군. 델키에서 마주쳤을 땐, 저 미친 여자랑 달리 꽤나 냉철했었잖아?”
꽤나 냉철한 정도가 아니었다.
델키에서의 쿠잔은, 진이 그때까지 아니, 지금까지 만난 모든 적을 통틀어도 손꼽힐 정도로 냉정하고 통찰력이 있는 상대였다.
섬광포에 당하고도 당황하지 않았으며, 즉시 진이 마검사라는 걸 간파한 후 신중을 가한 건 물론이고.
테스가 베리스를 덮쳤을 때에도, 뮬타의 룬에 회심의 일격이 가로막혔을 때에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목숨만큼 소중한 인물이 분명한 베리스가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땐, 베리스를 구하지 않고 전투를 속행해서 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기까지 했었다.
그 전투에서 쿠잔이 유일하게 당황한 순간은 단 1초, 진이 영기를 드러낸 직후였으나.
그마저도 독검으로 반격에 성공해 진을 죽음 직전까지 몰았던 게 바로 쿠잔 마리우스였다. 그날, 델키의 3왕자 라이카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진의 운명은 거기서 끝이었을 것이다.
반면 베리스는 시종일관 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8성 마력이 아까울 정도로 서툰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진이 보기에 쿠잔은 그때의 베리스와 다를 게 없었다. 더 강해졌음이 분명한데도 위압감이라곤 없이, 분노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의 모습뿐이었다.
“아, 혹시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베리스에게 타이뮨을 죽인 게 나라고 덮어씌우고 싶어서?”
“무슨 개소리를……!”
“타이뮨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 룬칸델 집행기사로 위장한 다섯 명의 암살자였다. 그리고 놈들의 단검엔, 네놈의 독이 묻어 있었지.”
일순 쿠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토록 냉정하던 놈이, 이렇게 쉽게 흔들린단 말인가. 타이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묘한 괴리감이 진의 뇌리를 자극하고 있었다.
“난 당연히, 조슈아가 네놈의 독을 이용해 타이뮨을 처리한 줄 알고 있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까 내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잖아?”
“다, 닥쳐라…….”
“쿠잔, 저놈 말 듣지 마! 분명 우리한테 죽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하는……!”
파지직!
지금껏 오러로만 물들어 있던 시그문드에 처음으로 시퍼런 뇌기가 서렸다.
명왕검 평식 벼락.
진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벼락을 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베리스를 단숨에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뇌전은 아까부터 그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 곳곳에 퍼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건 모두 율리안의 뇌전이었다. 때문에 쿠잔과 베리스는 시그문드가 푸르게 빛난 순간에도 그것이 진의 뇌기라는 사실을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카악!”
평식 벼락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베리스에게 쏟아졌다.
첫 번째 벼락에 보호막에 균열이 생겼고, 두 번째 벼락엔 완전히 찢어졌다. 그리고 세 번째 벼락이 떨어졌을 때, 베리스는 온몸에 화상을 입으며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보호막을 정비할 틈 따윌 진이 허락할 리 없었다. 세 개의 벼락은 거의 동시에 베리스를 강타했다.
그녀는 ‘검기’를 막을 만한 보호막만 준비한 상태였고, 나머지 마력은 전부 공격에 쏟고 있던 터라 벼락을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진이 명왕검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착오였다.
“베리스!”
“안 죽었어. 저 시끄러운 친구는 일단 좀 재워놔야겠더군.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죽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어. 나도 네놈들에게 빚이 있잖나? 그런데 저 여자를 살려둔 이유는, 너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쿠잔이 대답하지 않고 진을 노려보았다.
“쿠잔, 정말로 내가 타이뮨을 죽였다고 생각하나?”
“네놈이 아니면 누구란 말이냐.”
“조슈아 룬칸델. 타이뮨 마리우스의 주인이었던 자. 내가 보기엔 나보다 그놈에게 타이뮨을 죽여야 할 이유가 더 많았거든.”
“무슨 소리…….”
“안타깝게도 조슈아는 내 큰형님이다. 그리고 타이뮨을 시켜 키다드 홀을 포섭했고, 내게 저주를 걸려다가 실패했지. 난 그 과정을 추적하는 도중, 델키에서 너희들을 만났던 거고.”
쿠잔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네놈이…… 진 룬칸델이란 말이냐……?”
“타이뮨이 내 저주와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곧장 큰누님과 함께 그녀의 별장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을 내 두 눈으로 보았지. 주인에게 버려진 사냥개의 비참한 최후를 말이야.”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시뻘겋게 충혈된 쿠잔의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날 타이뮨의 원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네놈이 조슈아에게 속았기 때문일 거다. 내 말이 틀렸나?”
“……증거는? 입증할 수 있나?”
차분한 듯 들리지만 그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응어리져 있었다. 쿠잔이 지닌 무위와 상관없이, 진조차 일순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네가 지금껏 내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증거다. 조슈아, 그놈은 내가 마검사라는 것은 물론이고, 솔더렛의 계약자라는 것도 알고 있거든. 놈이 켕기는 게 없었다면, 그 사실을 네게 알렸겠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믿어주질 않는군. 그렇다면 나도 더 설명할 생각은 없다. 네놈은 그냥 무조건 내게 책임을 돌리고 싶은 것 같군. 타이뮨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말이야.”
쿠잔의 검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면, 타이뮨을 죽인 진짜 범인인 조슈아와는 싸울 자신이 없는 건가? 나와 싸우다 죽으면, 그걸로 타이뮨에 대한 도리를 다 했다고 자위라도 할 셈이냐?”
쿠르르르-!
진이 말을 끝맺기 무섭게 하늘에서 천둥이 내리쳤다.
투신기의 기운에 빗대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거대한 그 천둥은, 무라칸이 아니라 율리안을 직격으로 가격했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쳐다보는 진.
율리안은 천둥이 남긴 뇌기에 휩싸인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왜인지 몸이 조금씩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꼬마. 문제가 좀 생겼다.”
“뭐?”
“아무래도 천둥의 신 그람의 기운이 페이텔을 자극한 모양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놈이 페이텔의 화신체가 된 것 같다고.”
쿠르르! 쿠르르르-! 파지직!
율리안이 다시 눈을 뜨자, 동시에 시커먼 밤하늘의 눈동자가 벌어진 듯.
하늘이 온통 뇌전으로 뒤덮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