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32)
제 222화
75화. 라니 살로메(2)
1797년 12월 14일.
진과 무라칸이 라니 살로메를 만나기 위해 성국을 찾았다.
성국 반켈라는 아율라가 처음 성국에 강림한 날을 기리는 축제, ‘강림제’가 한창이었다. 무려 일주일이나 내리 이어지는 성국 최대의 축제였다.
거리 곳곳에 아율라를 상징하는 ‘휴화산’이 그려진 색색의 깃발이 가득했다.
“휴화산이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들이 참 상징을 잘 골라줬단 말이지.”
평화의 신 아율라, 성국 반켈라가 주신으로 모시는 존재.
무라칸이 기억하는 그는 평소엔 자애롭기 그지없으나, 진노했을 땐 무엇이든 불살라버리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신이든 인세에 지나친 혼돈을 야기하면 아율라가 면담을 빙자한 협박을 했다더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 번은 소멸시킨 적도 있고. 상대가 축복의 신이었던가.”
“그래?”
“용들 사이에서 희망의 신, 누메루스를 소멸시킨 것도 아율라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한창 돌았던 시기도 있었지. 아무튼 과격한 양반이야.”
거리 곳곳에 듣기 좋은 선율과 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환호가 가득했다. 성국 신민들과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곳.
수도 대광장 한가운데, 한 풍채 좋은 노인이 강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황금 지팡이에 휴화산 왕관, 온몸을 은은히 휘감고 있는 노란빛의 신성한 마력,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속에 환하게 빛나는 가지런한 이빨이 인상적인 그 노인이 바로 성왕 미클란이었다.
“성왕 폐하아!”
“성왕 폐하!”
미클란을 향한 신민들의 사랑은 절대적이었다. 기득권층의 특혜를 쪼개 신민들에게 나눠준 성왕은 성국 역사를 다 뒤져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자신을 성왕으로 옹립시켜준 대신관들의 공을 치하하느라 오히려 특혜를 더해줬던 것이다.
두 사람도 한동안 광장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저 사람이 성왕 미클란, 라니의 아버지인가.’
전생에선 미클란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적이 없었다.
“저 녀석이 현재 성왕이란 말이지?”
“목소리 낮춰, 무라칸. 누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 날 이야기를.”
“흠, 생각보다 평범한 느낌인데.”
“그래? 평범하다고?”
진도 비슷한 느낌을 받기는 했다.
“뭐랄까, 내가 그간 봐온 성왕들은 인간 주제에 꽤나 대단한 기운을 갖고 있었거든. 강하다기보다는,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신성한 느낌이 있었지. 그런데 저자는…… 잘 모르겠군. 아우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라니의 재판은 현재 성왕 때문에 미뤄진 상태였다.
그러나 성왕이 권력을 이용해 처벌을 막아준 것이 아니라, 강림제 때문이었다.
강림제 기간 동안엔 죄인을 심판하지 않는 것이 성국의 전통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매년 강림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성왕 축성식.
이름 그대로 성왕이 직접 신민들을 하나하나 축성해주는 의식. 그것이야말로 강림제의 꽃이라 할 수 있었고, 라니는 열다섯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성왕을 대신해 축복문을 읽어주었다.
-따라서 라니 살로메가 갑자기 빠져버리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여명회 집행부가 일시적으로 라니를 풀어준 것 같습니다. 재판이 끝나기 전에 라니를 한 번 만나볼 수 있을 것 같군요.
두 사람이 성국에 오기 직전 카시미르가 알려준 정보.
진과 무라칸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재판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아그작.
진이 방금 가판에서 산 휴화산 모양 사탕을 깨먹으며 성왕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금설족 염색약으로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인 채 관광객 행세를 하고 있었다.
“뭐가?”
“라니는 불과 얼마 전에 성왕이 축복 의식을 하는 신전에서 행패를 부렸어. 그런데 성왕 축성식 같은 중요한 행사에 라니를 굳이 쓰겠다는 게 앞뒤가 안 맞잖아.”
“체면치레 때문 아닌가? 매년 그 여자가 축복문을 대신 읽었다며.”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기엔 묘하게 찝찝하다는 말이지. 행여 라니가 축성식 도중 또 행패를 부리기라도 하면 그건 대사건이거든. 저번 행패 때처럼 감출 수 있는 수준의 사고가 아니란 말이야.”
신전에서의 행패는 자국 신민들이 전부였기에 라니의 신전 행패는 외부 언론에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카시미르처럼 특급 정보원들을 심어둔 경우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지켜보는 관광객이 한둘이 아니다. 라니가 사고를 치면 성왕과 성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건 그렇지. 뭔가 조치를 취해두지 않았겠냐? 아니면 라니가 그땐 잠깐 미쳤던 거고, 여전히 성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만나보면 답이 나오겠지.”
라니의 집은 성국 수도의 ‘아율라 대신전’ 바로 인근의 자그마한 주택이었다. 하지만 그 집은 매일 미클란과 라니를 추종하는 신민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라니가 진짜로 주거하는 공간은 수도 동부의 ‘아율라 동부신전’으로, 그곳은 현재 보수 공사가 한창이기 때문에 관련자 외엔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물론 일행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슬슬 동부신전으로 가보자고.”
두 사람이 동부로 가는 이동관문에 올랐다.
“웨엑!”
“이제 익숙해질 때 되지 않았냐?”
순간이동이 끝나자마자 구토를 해대는 무라칸. 그는 여전히 이동관문에 취약했다.
“망할, 힘을 4할이나 되찾았는데도 마음대로 비행조차 할 수 없군.”
“조금만 참아. 내가 기수가 된 이후엔 적어도 휴페스터 상공은 편하게 날아다닐 수 있을 테니.”
아율라 동부신전은 위치를 찾아 헤맬 필요조차 없었다. 이동관문을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이 동부신전이었다.
축제의 열기가 가득한 중앙에 비해 동부는 한산했다. 강림제 동안엔 상인들조차 중앙 지역에 가판을 세우러 떠날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 언덕을 올라 동부신전에 다다랐다. 산텔에서 중갑을 입고 도시를 틀어막던 성기사들과 달리, 동부신전을 지키고 있는 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일반 병사들이었다.
신전을 보수하는 인부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축제를 즐기러 중앙으로 떠난 것이다.
성국 내엔 감히 허가 없이 신전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고, 관광객 입장에선 동부신전에 볼 게 없고, 중요한 성물은 죄다 중앙 신전으로 옮겨놨으니 굳이 경비가 삼엄할 필요가 없었다.
진이 품속에서 자그마한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엔 쿠잔이 제조한 수면독이 담겨 있었다.
‘좀 미안하지만, 위험한 독은 아니니까.’
진이 무라칸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냐는 얼굴을 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양이로 변신하는 무라칸.
“냥.”
무라칸이 유리병을 입에 문 채 경비들에게로 다가갔다.
자연스레 경비병들의 시선이 무라칸이 물고 있는 유리병으로 향했다. 무라칸은 그들이 유리병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그들 앞에 떨궈 수면독을 퍼뜨렸고 말이다.
“이게 뭐야? 어, 모, 몸이……?”
털썩, 털썩.
“미안합니다.”
금화를 몇 개씩 찔러준 뒤, 두 사람은 유유히 대문을 지나쳐 신전으로 들어섰다. 라니의 방은 신전 3층의 복도 끝에 위치해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독한 술 냄새가 났다.
다행히도 내부엔 다른 병사가 더 없어서, 일행은 탈 없이 라니를 만날 수 있었다.
“라니 살로메. 술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군.”
진이 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목소릴 내자, 라니는 그때서야 그를 쳐다보았다. 일부러 인기척을 지우지 않고 접근했는데도 그전까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말이다.
“……진 룬칸델?”
산텔에서 굳센 신념과 긍지가 가득 담겨 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비탄에 빠져 젖어 있는 눈동자가 보였다.
라니는 한동안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설마 그가 자신을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던 모양새였다.
“어떻게……?”
“약속하지 않았나, 빚을 갚으러 왔다.”
펑!
무라칸이 인간으로 변신하며 라니의 앞에 섰다. 그가 멀쩡한 모습을 보자, 라니가 술병을 내려두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오랜만이군, 종교쟁이. 덕분에 이렇게 살아서 널 찾아왔다. 보아하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위대한 흑룡 무라칸이 다 해결해줄 테니 나도 한잔 주지그래.”
무라칸이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레 그녀가 술을 더 마시지 못하도록 잔을 빼앗았다.
라니는 그때까지도 얼떨떨한 듯 눈동자만 끔뻑이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가 밖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를 악문 채 말이다.
두 사람은 잠시 그녀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아니, 그만 울고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봐.”
“아버지, 아버지가…….”
“네 아버지? 성왕 미클란?”
“아버지가 붙잡히셨습니다.”
진과 무라칸이 서로와 라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종교쟁이. 우린 방금 중앙 광장에서 성왕을 보고 오는 길이라고. 멀쩡하게 거기 서서…….”
“놈들이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그건 가짜에요. 얼굴만 똑같은 대역이란 말입니다. 진짜 아버지는 납치당하셨어요.”
“뭐?”
“성왕이…… 납치되었다고?”
가짜.
그 말을 듣자마자 당연하게도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킨젤로의 조각가, 부바르 가스톤.
진은 그 순간, 왜 라니가 ‘성왕 축성식’에서 언제나처럼 축복문을 읽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협박당했군.’
현재 성왕 미클란을 인질로 잡은 세력은 라니를 협박하고 있었다. 진짜 미클란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라고 말이다.
그러던 중 울분을 참지 못해 가짜가 축복 의식을 행하는 신전에서 행패를 부렸고, 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라니 살로메, 성왕을 납치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킨젤로.
당연히 그 이름이 나올 줄 알았다. 부바르의 변신술을 이용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라니가 꺼낸 이름은 킨젤로가 아니었다.
“지플. 그놈들이…… 아버지를 납치했습니다.”
“지플이라고? 확실해?”
“확실해요. 다른 세력도 연루된 것 같지만…… 하,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었습니다.”
라니가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떨었다.
“괜찮아, 라니. 물부터 좀 마셔. 진정하고 제대로 이야길 해야 우리도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지플과 킨젤로의 동맹은 끝났다.
설마 다시 손을 합친 것인가? 순간적으로 그런 의문이 떠오른 찰나.
쿵쿵쿵쿵-!
돌연 문 바깥에서부터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진과 무라칸의 침입 사실을 인지한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일 텐데, 어째서인지 이 소리는.
결코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