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51)
제 222화
78화. 예비 기수의 위업(1)
아무도 그 이름이 튀어나오리라 예상치 못했다. 후드 속에 감춰져있던 화려한 금발이 드러난 순간, 짙은 화장에 덮인 퇴폐적인 얼굴이 밝혀진 순간, 당연히 바멀의 소개가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진 룬칸델이라니.
일순 광장이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제 귀를 의심하며 진이 뒷말을 잇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 룬칸델?’
‘바멀이 아니라 진 룬칸델이라고? 룬칸델의 예비 기수?’
기자들은 황당하고 놀라운 마음에 서로 그런 눈빛을 주고받기 바빴다.
광장 한편에서 조문하고 있던 룬칸델의 사절단들은 눈동자가 튀어나올 기세였다.
‘하여간 막내, 이 미친…… 녀석. 귀띔도 해주지 않고, 알아서 손발 맞추라는 거냐!’
루나조차 미리 전해들은 바가 없었다.
다만 루나는 막내라면 뭔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순간 쌍욕을 뱉을 뻔했으나, 그녀는 자신이 막내의 ‘검’이 되기로 한 사실을 잊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나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검. 자신의 역할은 그것이므로, 당황하지 않고 막내의 뜻이 무엇인지를 읽고 그에 맞춰 움직이기로 했다.
루나의 옆에 있는 조슈아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 네놈. 기어이 이런 사고를 치는군.’
조슈아가 생각하기에, 지금 정체를 밝히는 건 문자 그대로 자살 행위였다.
지플이 ‘바멀’을 처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가.
가문의 위신도, 이미지도 다 버린 채 가짜 암살자까지 만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이겠다는 뜻. 적당히 넘어가기엔 지플이 받은 피해가 너무 많았다.
까득!
이를 가는 조슈아의 목에 핏대가 불거졌다. 하필이면 빌어먹을 막냇동생이, 지금 정체를 밝힌 이유를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가문의 법도를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널 죽지 않게 둘 것이란 확신이 있는 것이로구나. 네놈의 잘난 그 계약을 믿고……!’
영기, 조슈아가 그토록 탐내는 그 힘.
진이 죽으면 조슈아는 솔더렛의 계약을 빼앗을 수 없었다. 따라서 조슈아는 진이 영기를 볼모 삼아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속셈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사람이 알아보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예비 기수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는 건 금기 중의 금기였다.
예비 기수를 검의 정원에 속한 자가 돕는 것도 마찬가지.
개인으로서 명성을 쌓을 때 룬칸델의 위세를 등에 업는 시시한 행동 따윈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룰.
그건 외부인들에게도 유명한 법도였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눈이 있는 자리에서, 예비 기수와 기수가 동시에 룰을 어긴다면?
둘 다 죽이거나 가문에서 추방시키는 게 엄격한 법도지만, 하필이면 기수 쪽은 차기 가주로 알려진 조슈아였다.
‘어머니가 날 제대로 처벌할 리는 만무하고, 내가 처벌받지 않으면 본인 또한 안전하다는 것을…… 저 영악한 놈이 모를 리 없다.’
흑표범, 로사 룬칸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슈아를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로사라 할지라도 진만 따로 처벌할 수 있는 명분 따윈 없었다.
조슈아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막내의 계략을 다 알면서도 어울려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지금은 네놈 장단에 놀아나준다만, 언제까지 이토록 활개를 칠 수는 없을 것이다.’
계산을 끝낸 조슈아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수호기사들은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하라.”
조슈아가 낮은 목소리로 뒤에 선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플이 진을 덮치면 즉시 보호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충.”
“충.”
수호기사들은 속삭이면서도 절도 있게 대답하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진은, 가까스로 표정을 관리하고 있는 조슈아 쪽으로 은근히 시선을 던졌다.
조슈아와 진.
잠시 두 사람의 눈빛이 맞닿았다.
가볍게 입꼬리를 올린 진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꾸미고 있지만, 네놈 머릿속이 훤히 보인다. 조슈아. 날 도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갈 테지. 네놈은 나한테 안 돼.’
미소를 유지하며 군중들을 향해 뒷말을 잇는 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룬칸델의 예비 기수입니다. 1795년부터 예비 기수 활동을 시작했고, 몇 개의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오늘은 그중 바멀이라는 이름으로서 여러분의 앞에 선 것이고요.”
“정말 당신이 진 룬칸델이란 말입니까!? 진 룬칸델은 흑발에 흑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 기자가 소리쳐 물었다.
그러자 진이 품속에서 손수건을 한 장 꺼내 얼굴과 머리카락을 닦았다.
손수건이 움직일 때마다 화장이 지워졌고, 금빛 머리칼이 본래의 검은빛을 되찾아갔다.
바멀은 전 세계 소식지에 ‘화려한 금발, 예쁜 얼굴’이라는 외형이 제대로 묘사된 적 있으나, 진 룬칸델의 외모는 외나무다리 파티 이후에도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룬칸델의 막내공자가 흑발에 검은 눈동자라는 사실은 세상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탄식을 내뱉는 와중.
진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이 몇 있었다.
“저, 저…… 지, 진 그레이잖아!”
“오오오, 코스모스 각축장의 우승자 진 그레이!”
조문을 위해 찾은, 벨라도 제후국의 귀족들 일부가 그랬고(잔뜩 신이 나서 우승자라고 외친 인물은 당시 진 덕에 돈을 많이 딴 귀족이었다).
“틀림없어, 미텔 왕국에서 본 그 어린 제왕이 맞군.”
마찬가지로 조문 사절단으로서 성국을 찾은 용병대, ‘흑왕단’의 단원들이 진을 알아보았다.
“진 공자라면, 언젠가 반드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리라 내 분명 예상했었지. 외나무다리 파티에서도 보통이 아니었거든. 크하하!”
용왕기사단의 존시나 페럴도 진을 보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외에도 외나무다리 파티에 참석했었고, 성국에 조문을 온 다른 가문의 기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진혼제를 함께하는 것은 조문의 마지막 절차인 만큼, 지금 광장엔 각국의 모든 사절단이 모여 있었다.
또한 기자들은 벨라도 제후국의 귀족들이 말한 ‘진 그레이’라는 이름을 통해, 또 다른 사건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역류의 키다드.
그를 죽인 의문의 검객 또한 진 그레이라는 이름을 남겼던 사실을 말이다.
기자들의 본능이 움직이고 있었다. 성왕 시해나 지플의 내정간섭보다도 더한, 인생에 다시없을 특종이 바로 지금 펼쳐졌다고.
당장 질문을 던져야 했다.
기자들이 판단하기에, 진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곧 지플의 마법사들이 진을 잡으러 광장을 덮칠 테니 말이다.
그때 과연 룬칸델과 휴페스터의 기사들이 진을 도울 것인가, 기자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 공자! 키다드 홀, 그를 죽인 것도 당신이었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플이 두렵지 않은 겁니까?”
“예비 기수의 법도를 어기면서까지 성국을 도운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가문 차원에서 지령을 받은 것입니까?”
“성국의 라니 경과는 어떤 관계인지 알려주십시오!”
돌연 기자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룬칸델과 휴페스터의 무인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나, 지금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는 진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지플의 마법사들이 도착하는 순간 광장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하나라도 답을 듣고, 어서 이 자리를 떠야 했다.
진은 아귀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기자들을 보며 순간 환멸을 느꼈다. 기자들이 극성인 건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애도의 광장에서 이렇게까지 품격을 잃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들 닥치십시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진이 목소리에 한껏 기운을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기자들이 움찔하며 말문을 닫았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온 건 당신들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떠드는 기자는 두 번 다시 펜을 잡지 못하게 될 겁니다.”
진의 눈빛에 담긴 형형한 살기가 말하고 있었다. 단지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기자들이 조용해지자 살기를 가다듬은 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예비 기수로서, 차후 기수가 될 때의 내 이익과 명성을 쌓기 위해 여러 땅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과거 콜론에서 지플의 생체 실험을 목격했고, 그 실험엔 지플뿐만이 아니라 킨젤로라는 테러 단체도 참여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자들은 진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적기 바빴다.
“그리고 나는 성국이 지플과 킨젤로에게 잠식당한 것을 알지 못했는데, 나로 인해 놈들의 동맹이 깨졌더군요. 그 결과 성국 내에서 두 세력이 온갖 암투를 벌였고, 나는 그에 대해 약간의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진의 담담한 목소리에 라니는 참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했죠. 예비 기수로서 일국의 비리를 밝히고, 룬칸델의 경쟁 가문을 엿 먹이는 것보다 좋은 공적은 없지 않겠습니까?”
미리 연출하기로 한 모습이었다. 진은 라니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영달을 위해 성국을 도운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킨젤로의 땅을 찾아가 성국 신민들을 구해왔고, 그걸 라니 경에게 넘겼습니다. 라니 경에겐 차후 내 공을 본가에 증명해주기로 약속을 받은 게 전부였으나, 지플이 마지막에 내 발목을 붙잡았군요. 나는 칼 지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그건 내게 손해밖에 안 되는 일이거든요.”
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즉, 나는 바멀이라는 내 가명이 칼 지플의 암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또한 지플과 킨젤로의 패륜을 밝힌 건, 가문이 아닌 온전한 나의 공적입니다. 다들 이 사실을 잊지 않아주면 좋겠군요. 왜냐하면…….”
진이 돌연 손가락으로 광장 한쪽을 가리켰다.
“지금부터 저자들이 날 칠 테니까요. 살아서 다시 봅시다, 다들.”
그곳엔 로브를 뒤집어쓴 지플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공격 마법의 영창과 조준을 막 끝낸 채 말이다.
수호기사들은 예비 기수를 보호하라!
조슈아가 그렇게 소리치려는 찰나.
루나가 먼저 목소리를 드높였다.
“룬칸델 수호기사, 그리고 휴페스터의 모든 기사들은 양민들을 보호하라! 예비 기수를 도우려는 자는 내가 직접 목을 벨 것이다!”
진은 루나의 명령을 듣자마자 속으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루나가 제 뜻을 정확히 읽어준 것이다.
피이잇-!
다섯 줄기의 마력 광선이 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진은, 마력 광선을 가볍게 베어버리며 단상에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