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67)
제 222화
86화. 환영받지 못하는, 믿음직한 기수(1)
원로회장은 꼭 비먼트 대법관들의 재판장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가장 먼저 드넓은 회장 중앙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육중하고 거대한 세 개의 나무 단상이 보였다.
단상엔 각각 원로장과 부원로장, 원로회 서기장 세 사람이 서 있었고, 그 뒤로 의자에 앉은 다른 원로들이 아치를 그리고 있었다.
단상에 선 세 사람은 원로회의 산하기관인 ‘흑검회’, ‘호법회’. ‘호민회’라는 단체의 수장들이다.
말하자면 원로회의 주축들인 것이다.
호법회와 호민회는 문자 그대로 룬칸델의 법도와 휴페스터 백성 수호라는 가치를 내걸었고, 흑검회는 룬칸델의 전반적인 ‘은원 정리’를 담당했다.
죽일 놈과 챙겨야 할 놈을 구분하고 각각 필요한 처분을 내리는 집단.
원로회는 가문 내에서 꽤나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그중에서도 흑검회는 독보적이었다.
그들이 휴페스터 내에서 누군갈 죽이고자 마음먹으면, 그는 죄가 없어도 역적이 되며 공이 있어도 배신자가 되었다.
양민, 귀족을 가리지 않고 휴페스터에서라면 누구든 소리 소문 없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늙은 귀신들.
물론 그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다고 하나, 그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는 건 아니었다.
가주 내외와 12명의 기수가 그들을 억제할 수 있었다.
특히 가주의 명은 절대적인 만큼, 그들이 척살령을 내려도 가주가 반대하면 명부에서 즉시 대상의 이름을 지워야 했다.
바로 오늘 진의 이름이 룬칸델 척살 명부에서 지워진 것처럼.
“진 룬칸델.”
“예, 원로장님.”
“올해로 십구 세. 자네는 1798년 1월 1일부로 룬칸델 척살 명부에 이름이 올랐다가, 1799년 2월 9일. 오늘 정오 무렵 명부에서 이름이 빠졌군.”
원로장(흑검회장) ‘조르덴 룬칸델’은 그 사실이 매우 못마땅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룬칸델답지 않은, 다소 가늘고 신경질적인 기색이 묻어나는 목소리. 거기에 턱 아래로 가늘게 난 흰 수염이 더해져, 도무지 외형적 위엄은 찾아볼 수 없는 인물.
‘겉으로는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당숙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지. 아버지와 가주 경쟁을 하고도 끝내 살아남아 나름대로 권력을 움켜쥐었으니.’
룬칸델은 보통 가주의 자식들끼리만 기수로서 경쟁을 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이를테면 승계 과정에 후계가 다른 기수들을 ‘너무 빨리’ 정리했거나, 가주의 사촌 이내 혈족 중 뛰어난 재목이 있을 땐 이야기가 달랐다.
조르덴의 경우는 두 가지 다 포함되는 경우였다.
젊은 시절 두각을 나타낸 그는 기수 2진으로서 시론과 서열 전쟁을 펼쳤었다.
물론 조르덴은 시론에 비하면 봉황과 뱁새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시론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순혈이었다면 오히려 조르덴 쪽이 대부분 봉황에 빗대어질 것이다.
즉, 시론이 없었다면 가주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인물.
“기분이 어떤가?”
“좋습니다.”
“그래……. 자네의 입장에선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일 테지. 그러나 나로서는 꽤나 불쾌한 경험을 한 셈이다. 수배자가 찾아왔는데 기수로 만들어주는 꼴이라니.”
조르덴이 대놓고 시론의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조르덴 당숙이 아버지께 늘 두려움과 열등감을 느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가문에 하나도 없다. 그로 인해 괴팍한 성격이 되었다는 것도. 그러나 이렇게까지 조심성이 없는 줄은 처음 알았군.’
조심성이 없는 이유는 뻔했다.
원로회에선 그가 최고 권력자일뿐더러, 원로들 중 이런 사소한 언행까지 시론에게 고자질하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르덴은 로사의 심복이었다.
다 같이 늙은 처지지만, 일반 원로가 그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무엇이겠는가.
“원로장님, 고정하시지요. 저 또한 마검사가 룬칸델의 기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못마땅하나, 적어도 오늘은 환영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원로장(호법회장) ‘린 밀카노’가 점잖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과거 밀카노가의 가주였던 그녀 역시 로사의 사람이었다.
그건 곧 흑검회와 호법회, 원로회의 두 기둥이 모두 조슈아의 뒷배라는 의미였다.
원로회 서기장(호민회장) ‘텔롯 룬칸델’은 말없이 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래, 부원로장의 말이 맞소. 가문의 열두 번째 기수가 탄생했으니 축하해야 마땅한 자리이긴 하지……. 그래, 축하한다. 진 룬칸델.”
조르덴이 그렇게 말하며 성의 없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이만 가보라는 의미였다.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좀 심하군. 결전기의 결 자도 꺼내지 않을 줄은 몰랐는걸.’
기수가 처음으로 원로회를 찾으면, 각 원로들은 축하와 함께 결전기와 비기를 전수해주겠다는 말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조르덴이 이렇게까지 대놓고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있으니 원로들은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도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진은 아까부터 인상을 팍 구긴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한 원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제드 룬칸델.
생도 시절 진을 가르친 자신의 숙부. 그는 당장이라도 조르덴을 찢어 죽이고 싶은 눈치였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어 울화통을 삭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르친 아이가 무시당하는 건, 곧 자신이 무시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제드 숙부께 작은 선물을 하나 드려야겠군.’
진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르덴과 눈을 맞췄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로장님.”
“알겠으니까 가봐. 아직도 거기 서 있었나?”
“원로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진이 말을 끝맺기 무섭게.
조르덴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쾅!
주먹으로 단상을 내리친 조르덴이 진을 노려보았다.
“방금 무어라 했느냐?”
그가 이토록 분개하는 건, 제드와 같은 이유였다.
무시를 당한 것이다.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이제 막 기수가 된 막내에게.
원로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말은 곧 흑검회가 무능했기에 자신이 잡히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었다.
사실 흑검회와 룬칸델의 기사들이 무능해서 진을 못 잡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제드가 박장대소를 터뜨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하하하!”
돌연 일어선 제드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무엇이 그리 웃기시오? 제드 원로.”
“원로장께서 한 방 먹었구려. 저놈이 처음 중급반에 왔을 때 나도 몇 번이나 물을 먹었소. 괜스레 동질감이 느껴져서 웃은 것이니 너무 기분 나쁘게 여기지 마시오.”
“허……!”
“우리 뒷방 노인네들이 워낙 까칠하게만 굴고 있으니 막내 기수가 단단히 뿔이 난 것 같군.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오. 아니, 사실 저놈이 마검사였다는 걸 알고 나보다 큰 배신감을 느낀 사람은 없을 게요.”
“제드 원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린의 물음에 제드가 진을 가리켰다.
“지금 여러분들 눈엔 저놈이 원로장을 도발하는 천덕꾸러기로만 보이겠지만, 한 번 생각해보시오. 진은 가주의 일검을 받았고, 세 시간 만에 깨어났소. 그 직후에 한 행동이 무엇이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제드가 뒷말을 이었다.
“영묘에 간 것이오. 의료원도 아니고, 식당도 아니고, 가주의 집무실도 아니라 영묘였단 말이오. 적어도 아주 싸가지가 없는 놈은 아니라는 뜻이지. 지금 세대 기수들 중, 진처럼 가문의 수호신들을 곧장 찾아간 녀석이 하나라도 있었소? 없었소이다.”
“그게 뭐 대단한 행동이라고 이렇게 추켜세워주시오? 제드 원로가 가르친 아이라지만, 금칠이 심하군.”
“대단한 행동 맞소, 원로장님. 원로회의 입장에선 특히 그렇지 않겠소? 저렇게 싸가지가 있는 놈이야말로, 나중에 권력을 쥐고 나서도 우리 같은 뒷방 늙은이들을 잘 챙겨주는 법이란 말이외다.”
흑검회, 호법회, 호민회 할 것 없이.
의외로 꽤 많은 일반 원로들이 제드의 말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
사실 기수들 중 일반 원로들을 똑바로 대접하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조슈아가 한때 원로들을 극진히 모셨으나, 권력을 잡은 이후로는 제대로 상급자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이다.
“비약이 심하시군. 12기수가 예의라는 걸 쌀알 하나만큼이라도 알았다면, 감히 나를 능멸해선 안 되었소.”
쯧, 혀를 차는 조르덴.
“그거야 원로장께서 너무 짓궂게 굴지 않으셨소. 아무튼, 다들 이놈에게 결전기를 알려주기 싫어하는 눈치인데. 이 제드 룬칸델은 더 늙고 힘이 없어졌을 때를 생각해서, 12기수에게 결전기를 전수할 생각이오.”
“뭐,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런데 제드 원로, 잊은 건 아니시겠지? 원로회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결코 전수할 수 없는 결전기와 비기가 많다는 것을.”
일순 제드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일반 원로인 데다 외골수 성향이 강하고 다혈질인 자신.
각각 원로장과 부원로장 자리를 꿰찬 채 일반 원로들을 이끌고 있는 조르덴과 린.
원로들이 누구의 의견에 힘을 실을지는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그러나 제드는 전혀 자존심이 상하지 않은 척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바보인 줄 아시오? 설마 그런 법도를 까먹었겠소. 여러분이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전수할 수 있는 것들만 알려줄 것이오.”
“그럼 지금 당장 투표를 해봅시다. 12기수에게 결전기를 전수해주고 싶은 원로는 손을 들어보시오!”
조르덴이 윽박을 지르자 찬물을 끼얹은 듯 장내가 조용해졌다.
‘아니, 이 노인네들. 아무리 조르덴의 눈치를 본다지만, 설마 하나도 손을 안 든다고!? 진이 그렇게까지 잘못을 했나? 오히려 원로장에게 대든 건 룬칸델로서 칭찬해줘야 할 일이건만!’
정말 단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은근히 믿고 있던 호민회장, 텔롯 룬칸델마저도 은근히 제드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후후, 보다시피 결과가 이렇군. 제드 원로, 아쉽게 되었소. 이제 12기수를 그만 내보내도 될 것 같소만. 원로회의 동의 없이 전수할 수 있는 결전기는 그대가 알아서 잘 하시오.”
룬칸델엔 총 열 개의 결전기와 일곱 개의 비기, 그리고 세 개의 오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오의는 원로회가 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결전기와 비기 중엔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전수할 수 있는 게 각각 여덟 개와 다섯 개였다.
원로들이 속된 말로 ‘하급’이라 부르는 결전기와 비기만 전수할 수 있는 셈.
제드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 됐구나, 진.’
제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진은 오히려 이번 원로들과의 만남에서 기대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어차피 결전기 중 일부는 투신기와 명왕검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당장 익혀야만 할 만큼 무위 향상이 급한 것도 아니고.’
반면 ‘제드 룬칸델’이라는 아군의 발견은 무척 새로웠다.
내심 숙부조차 완전히 조슈아의 편으로 돌아섰다면 원로회를 구슬리기가 피곤하겠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조르덴 당숙을 구워삶거나 처리하는 건 차차 해결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쪽은 호법회장, 린 밀카노인데…… 이 할머니의 약점이 될 만한 게 무엇일까?’
밀카노가.
마침 그곳엔 진이 잘 아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