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68)
제 222화
86화. 환영받지 못하는, 믿음직한 기수(2)
진이 물러나자 원로회장에 모인 이들이 모두 해산했다.
제드는 자연스레 진을 따라 나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제드 숙부님. 아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인사를 올리지 못했…….”
“네놈이 내게 먼저 할 말은 그게 아니지 않느냐? 중급반 시절 마미트 임무를 어떻게 성공시켰나 했더니. 마법이었을 줄이야! 대체 그때 마법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 아, 무라칸 님이 알려줬겠군.”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빤질빤질한 얼굴로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제드는 이 맹랑한 늦둥이 조카의 머릿속을 뒤져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진.”
“예, 숙부님.”
“아깐 네놈 행동이 속 시원해 나서긴 했다만, 조르덴 원로장은 보기와 다르게 만만찮은 인물이다. 그저 그런, 속 좁은 꼰대처럼 보여도 아주 영악하고 강인한 작자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서열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분이잖습니까.”
“그건 뭐…… 가주께서 그냥 봐줬다고 해석해야 옳긴 하다만. 어쨌거나 잘 안다는 놈이 왜 그리 미친개처럼 날뛰었느냐?”
“저는 그저 숙부님의 가르침을 잘 따랐을 뿐입니다.”
“뭐라?”
“중급반 시절, 매일 투쟁하라고 가르쳐주셨잖습니까? 저는 실제로 제 삶을 통틀어 그 말을 실천하는 중이고, 원로장께 다소 도발적인 언사를 던진 것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제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생도일 때도 간이 배 밖에 나온 것 같긴 했다만……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단 말인가? 젊은 시절의 가주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않았다.’
중급반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진은 단숨에 제드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과하면 넘치는 법이다. 계속 그렇게 하다간, 기껏 이 몸이 결전기를 알려줘도 제대로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가는 수가 있느니라. 조만간 전수해줄 테니, 연락을 기다리도록.”
“감사합니다, 숙부님. 오늘의 배려는 잊지 않겠습니다.”
“난 네놈이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잊을 것이다.”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하여간 내게 호의를 가진 분들도 어느 정도는 날 악당처럼 취급하는군.’
악당, 혹은 돌아온 탕아.
지금 룬칸델에서 진은 딱 그런 취급을 받는 중이다.
진심으로 진을 환영하는 사람은 시론과 루나, 두 사람이 전부였으나. 시론은 그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고 루나는 아직 본격적으로는 진을 옹호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엠마가 진을 반겼다고 볼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진을 이용해 자신과 토나 형제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속셈일 뿐, 진심으로 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차별과 편견.
그런 것과 싸우는 것은 전생에서 이골이 났다.
또한, 지금의 악당 취급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니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제드를 보내고, 길리와 무라칸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막내 도련님.”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긴 한 중년이 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진은 잠시 그의 복장을 살펴보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승진 축하하네, 페트로. 1등 집사가 되었군.”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가주께서 기수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저도 도련님께 축하한다는 말씀을 올려야겠군요. 첫 기수 회의시지 않습니까. 가주님의 집무실로 가보십시오.”
오자마자 시론의 검을 받고, 임명식을 했고, 원로들을 만났고, 이번엔 회의였다. 이쯤 되니 진도 복귀 첫날이 다소 정신없이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셔서 무척 기쁩니다. 앞으로 도련님께 제가 많은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검의 정원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담백하고 살갑게 대해주는 인물을 만났다.
그러나 진은 왠지 페트로의 태도가 조금 불길하게 다가왔다.
페트로가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일종의 좋지 않은 예감이었다.
집무실에 도착하자 진을 기다리던 형제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진은 별다를 것 없는 형제의 표정을 읽다가, 유독 루나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
‘루나 누님께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어째 페트로의 친근한 태도가 묘하게 불길했건만.’
페트로는 루나의 사람이었다.
“다 모였군. 앉아라.”
“예, 가주님.”
진이 말석에 자리를 잡았다.
시론은 아무런 설명도, 전조도 없이 대뜸 이렇게 첫 마디를 뱉었다.
“나는 오늘부로 다시 흑해로 떠난다. 그간엔 여러 이유로 가문에 돌아올 일이 많았으나, 이번만큼은 확실한 성과가 있을 때까지 흑해를 벗어나지 않고자 한다.”
기수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흑해에서 어떤 성과를 올리겠다는 것인지, 감히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이번 흑해 임무엔 1기수와 흑기사 셋이 나와 동참할 것이다.”
누님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가 있었군.
진은 일부러 루나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루나의 출정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 루나를 의식하는 모습을 시론에게 보이는 건 치명적이었다.
시론이라면 그런 사소한 행동조차 ‘나는 루나 누님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흑해에서 일시적으로 복귀할 일이 많았다는 것은, 그간 기수들이 나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다들 분발해야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죄송합니다.”
기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자 로사가 나섰다.
“1기수가 장기 임무에 투입되는 만큼 너희들이 할 일이 늘 테지만. 오늘 새로 12기수가 왔으니 빈자리가 조금은 채워질 터. 그러니 기수들은 긴장을 놓지 말되, 큰 걱정은 하지 말거라.”
로사는 그 한 마디로 루나의 위엄을 깎고, 진의 미래를 예고했다.
로사의 말은 1기수와 12기수가 동등한 수준이라는 뉘앙스이면서도, 그간 루나가 담당해온 임무들을 진에게 넘기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날 말려 죽이겠다고 작정을 하신 모양이로군.’
진으로서는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다.
일부러 임무를 주지 않는 것보다야, 아무리 어려운 것이든 임무를 받아 완수해내는 쪽이 나았다.
온갖 방해 공작과 곡해가 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결국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모든 임무를 다 완수해내면 될 일이었다.
결국 그러다 보면 흐름은 자연스레 진에게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조슈아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갖 추잡한 수를 쓸 것이다.’
돌아보면 로사의 수는 그간 조슈아나 뮤, 앤이 진을 압박했던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수를 펼치더라도, 그 주체가 로사라면 진도 긴장을 해야 했다.
지력으로나, 무력으로나 그녀는 조슈아보다 한참 우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늘 흑해에 나가있는 시론을 대신해 검의 정원을 지휘하며, 사실상 룬칸델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둔 지 벌써 수십 년이 된 것이다.
“언제나처럼 내가 없을 땐 로사가 가문의 최고 지휘권을 갖는다. 너희가 우열을 판가름하는 것도 중요하나, 현 시국이 좋지 않다는 것도 늘 유념하라.”
시론이 직접 시국이 좋지 않으니 서열 전쟁을 적당히 하라는 말을 남긴 것은 상당히 놀라웠다.
그건 곧 로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이야기이며, 기수들의 세계는 ‘진이 모르는 것’ 천지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3기수.”
“예, 가주님.”
“검의 정원에 현재 지플의 첩자가 몇이나 있지?”
“정확히 파악된 것은 하인 구십칠, 하급 수호기사 스물, 중급 수호기사 열둘, 상급 수호기사 다섯, 2급 이상 집사 및 문사 열다섯, 기수 2진 둘, 집행기사 다섯, 원로 일곱, 그리고 흑기사 하나입니다. 이외에도 치명적인 수준의 첩보가 가능한 첩자가 최소 스물은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룬티아의 보고를 들은 순간엔 하마터면 탄식을 내뱉을 뻔했다.
‘뭐? 흑기사라고?’
기수 2진과 집행기사도 놀라울 지경이건만, 흑기사까지 확인된 첩자가 있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지플 측에 심어둔 첩자는?”
“지플 본가엔 하인 사십, 하급 마법사 열, 중급 마법사 다섯, 원로 하나, 마탑 마법사 하나. 이상입니다.”
순간적으로 진은 혹 이 대화가 일종의 신고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정보전 상황을 부풀려서 말해 겁을 주려는.
그러나 시론 룬칸델이 그딴 시시콜콜한 짓이나 하는 위인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이렇듯, 놈들은 각종 마법과 아티팩트를 이용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검의 정원은 그야말로 놈들의 수정구 안에서 놀아나는 꼴이로군.”
“가주,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내가 창성에 오르고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적들이 강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 통탄할 뿐, 그대는 잘못이 없소. 다만, 흑기사 첩자는 하루빨리 처리할 필요가 있겠군.”
“12기수에게 그것을 첫 임무로 주고자 합니다.”
그 말에 얼굴이 조금이라도 꿈틀대지 않은 것은 진 본인과 조슈아뿐이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일순이지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나치다는 마음, 통쾌하다는 마음, 혹은 막내가 수호룡 무라칸의 힘을 이용해 그 임무를 해내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당혹감이었다.
늘 그랬던 것이다.
영기와 마법이라는 비밀이 있었다곤 하나, 모두가 이번엔 죽을 것이라고 믿을 때마다 진은 승승장구하며 돌아왔었다.
그러니 형제들 사이에 진이 ‘흑기사 암살’을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믿음이 돌 수밖에.
“그대의 판단에 맡기겠소.”
로사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시론은 진에게 시선을 두었다.
달리 진에게 무슨 말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간 알게 모르게 이뤄졌던 시론의 개인적인 지도와 보살핌은 정말로 끝이 났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시론이 진을 믿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회의를 종료하겠다. 1, 2, 3, 4기수는 남고, 나머지는 돌아가서 로사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집무실을 빠져나온 기수들이 각자의 거처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란과 뷔고는 밖에서 대기하던 그들의 집사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며 복도를 빠져나갔고, 뮤와 앤은 진을 향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토나 형제는 진에게 뭐라도 말을 건네고 싶은 눈치였는데,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어 서성이다 돌아가는 모습.
피식.
진이 토나 형제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순간.
마지막 남은 형제 하나가 거칠게 진의 어깨를 두들겼다.
“야! 이 자식, 엄청나게 잘 커서 돌아왔다! 아주 만족스러워.”
“메리 누님.”
“이 누나가 말이다, 널 보자마자 얼마나 속이 근질거리던지 머리털이 다 뻗치는 줄 알았다. 가자, 불사조 심장 값 좀 받아야겠으니.”
“안 그래도 저 또한 머리가 조금 어지럽던 참입니다. 가볍게 한 잔 하면서 밀린 이야기나 좀 나누실까요?”
그러자 메리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너랑 술이나 먹자고 그 긴 시간을 기다린 줄 알아? 빨리 따라와, 한 판 붙어보게.”
진은 그녀를 보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건 싫습니다,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