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69)
제 222화
87화. 남매(1)
꼴꼴꼴…….
밀라 산 명주가 잔에 채워지는 동안, 메리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꼭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실연에 준하는 정신적 충격을 맛보는 중이다.
“아니……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그렇게 단칼에 거절하고 돌아가? 이게 말이 돼? 어떻게 납득해야 하지?”
“뭘 그렇게까지.”
앞에 앉은 디푸스가 어깨를 으쓱이자, 메리가 대번에 칼눈을 떴다.
“오라버니는 지금 오라버니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이 몸은 지금 충격이 이루 말할 수가 없거든.”
두 사람은 기수 회의가 끝난 후(1, 2, 3, 4기수만 남았던 회의까지) 메리의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충격 받을 일이냐? 아버지께서 복귀하시자마자 다시 흑해로 떠나겠다고 선포하신 게 진짜 충격적인 일이지. 아버지 복귀만 기대하고 있던 휴페스터의 무가들이 또 얼마나 극성을 부리겠어? 기수들 당분간 엄청 바쁠 거다. 달래줘야 할 테니까.”
디푸스의 말대로, 룬칸델의 휘하 가문들, 그중에서도 중소 규모의 가문들은 이번 시론의 복귀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지플 때문이었다.
‘성국 사건’ 이후 룬칸델과 지플의 냉전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검의 정원이 있는 이곳 칼론이나, 어느 정도 힘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몰라도. 중소 규모의 세력, 가문은 냉전의 압박에 질식할 듯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말만 냉전이지, 언론에 보도만 되지 않을 뿐. 사실상 매일 곳곳에서 루테로 마법 연방과 교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중소 가문은 이번 아버지의 복귀로 인해 숨통이 트일 거라고 생각했을 거란 말이다.”
그런데 시론이 오자마자 돌아간다고 하니, 그들로서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 때문에 내일부터 룬칸델의 기수들은 발에 땀이 나도록 휴페스터 전역을 돌아다녀야 할 판.
시론을 대신해 중소 세력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기수들의 역할이었다.
“아악! 배은망덕한 녀석……! 네가 어떻게 나한테!”
파직, 쨍그랑!
메리가 울분을 토해내며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쿠라노의 장인들이 정성스레 빚은 유리잔이 무참히 깨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디푸스가 메리에게 손수건을 내밀며 이마를 짚었다.
“아니, 둘째 오라버니. 우리 휘하 가문들이랑 루테로 마법 연방이 싸우는 건 하루 이틀도 아닌, 그냥 일상적인 현상이야. 당연한 일이라고, 그 당연한 사실이 지금 내 심정보다 중요해?”
“그래, 말을 말자 그냥.”
홱!
디푸스에게서 술병을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켜는 메리.
그녀는 최근 들어 오늘처럼 속상한 날이 없었다.
“그나저나 메리, 막내 녀석 말이다.”
“어.”
“가문의 수호신이었던 흑룡 무라칸을 타고 왔잖아. 그렇다면 녀석은 솔더렛의 계약자이기도 하다는 건데. 분명 비궁과 지플이 벌인 서해 전투와도 관련이 있을 거다.”
“허, 맞네! 서해 전투는 비궁주와 지플, 흑룡의 삼파전이었으니까.”
“내가 보기엔 서해 전투에서 비궁주가 막내를 보호해줬던 것 같거든. 막내는 그 이후 비궁에서 지냈을 거고.”
“그 전투는 지플이 승리했는데 막내가 어떻게 비궁에서 지냈겠어?”
“당연히 거래가 있었겠지. 내 생각은 이래. 그날 서해 전투의 승리자는 사실 지플이 아닌 비궁 측이다. 그리고 비궁주는 자신의 패배로 발표하는 대신, 지난 1년간 진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지플과 거래를 했다.”
메리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 꽤 그럴듯한 이야기네, 그거.”
진이 성국 사건으로 실체를 까발린 이후, 지플의 위신은 날이 갈수록 바닥을 치고 있었다.
예비 기수인 진이 지플을 농락했음에도 전면전을 펼치지 않고 있으며, 금화 1억을 현상금으로 걸고도 진을 잡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안드레이, 뮤론, 칼의 죽음과 성국 사건도 모자라 비궁과 싸워 패배하기까지 했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 지플은 안 그래도 흔들리는 위신이 더 추락하는 건 절대적으로 막고 싶었을 거다. 진을 포기하더라도 말이야.”
“막내가 지난 1년 동안 대체 어떻게 우리와 지플의 수배망을 피해 살아남았는지 궁금하긴 했어. 비궁주가 직접 보호해줬다면 이해가 가네. 그런데, 비궁주가 그렇게까지 해서 막내를 챙길 이유가 있나?”
“기억 안 나? 연회 때 막내랑 비궁의 영애가 키스했던 것.”
“기억 나. 그런데 그게 왜?”
“비궁은 우리 가문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 비궁주는 하나뿐인 자식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지. 연회 끝나고 좀 알아보니, 비궁의 영애는 그간 연애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어. 제 어머니랑 다르게. 진이 처음이라고.”
“……진이 죽으면 딸이 슬퍼할 테니 도와준 것이다?”
“그렇지.”
“오라버니 말이 사실이라면, 비궁주는 진을 사윗감으로 점쳐두고 있다는 거네.”
“그래. 그리고 그 배경엔 아버지의 입김도 작용했을 거다.”
“뭐?”
“아버지가 막내를 너무 쉽게 기수로 인정해줬다는 느낌이 들지 않냐?”
“쉽게 인정해줬다니. 아버지의 그 일검을 받는 걸 직접 보고도 그런 소리를.”
“메리. 아버지라면, 녀석을 보자마자 한눈에 아셨을 거다. 충분히 당신의 깨달음이 담긴 일검을 받을 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알고도 일부러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러신 거야. 다들 지금 너처럼 자연스레 진을 인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메리의 눈동자가 커졌고, 디푸스는 제 추리를 확신하며 뒷말을 이었다.
“즉, 아버지 또한 비궁주처럼 비궁의 영애와 진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보고 계실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이 시국에 룬칸델과 비궁이 혼인을 통해 동맹을 맺는 게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혼인이라…… 하긴, 진을 살려둬서 비궁과 엮으면 룬칸델은 손해 볼 게 없네. 차후 지플이 제대로 책임을 묻는다면 비궁 측으로 전가할 수 있고, 또 가문의 정통성을 훼손한 사실도 진이 비궁 사람이 되면 그만인 문제니까.”
“게다가 지플과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게 되더라도, 비궁은 룬칸델의 편에 설 테고 말이지.”
“그렇네.”
“흐음, 녀석이 나와의 결투를 받아주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비궁주가 패배를 꾸며가며 1년이나 지켜준 목숨인데, 오자마자 나랑 싸운답시고 함부로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곤란할 테지. 그런데, 오라버니.”
“왜?”
“어머니 말이야. 흑기사 첩자를 잡는 걸 진의 첫 기수 임무로 줄 예정이라고 하셨잖아. 오라버니의 추측대로라면 아버진 진을 비궁에 넘길 생각이신 건데, 어머니는 시작부터 진을 제대로 몰아붙일 느낌이거든.”
“어머니의 의중은 나도 잘 모르겠군. 큰형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될 수 있으니 그냥 제거하고 싶으신 건가? 아버지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으실 테니.”
디푸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뒷말을 이었다.
“내 추측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 어쨌거나 당분간 상황 돌아가는 걸 좀 주의 깊게 살펴야겠구나.”
“머리 아픈 이야길 좀 했더니 짜증만 더 나네. 후, 내가 해야 될 고민은 이게 아니었는데.”
“고민?”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중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녀석과 하루라도 빨리 겨뤄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다고. 오라버니 때문에 이야기가 딴 길로 샜잖아.”
“또 그 얘기냐, 하여간!”
이쯤 되면 디푸스로서도 버럭 소리를 지를 수밖에.
“오라버니, 지금 얘기해보니 새삼 좀 똑똑한 것 같은데, 뭐라도 의견 좀 내놔봐.”
디푸스는 재차 소리를 지르려다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게 내 동생 메리이긴 하지.’
단순하고 싸움 좋아하고 지는 건 절대로 못 참는 애.
그저 메리는 강자와 싸우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만 굳게 믿을 뿐이었다.
그녀는 다른 형제들처럼 속내가 시커멓지도, 질투심에 눈이 멀지도, 열등감에 취해있지도, 우월감에 빠져있지도 않았다.
디푸스가 혈육 중 그녀를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후우, 그래. 너도 참 징그럽다, 징그러워. 뭐, 아주 수가 없는 것 같지는 않군. 네가 막내랑 한 판 붙는 방법 말이다.”
“오! 뭔데, 뭔데!”
메리가 반짝 눈을 빛내며 디푸스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멱살을 잡는 행위가 그토록 정겹게 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일단 이것 놓고, 안주가 없으니 과일이라도 하나 깎아와 봐라.”
“그래, 깎아올게! 대신 묘수가 아니면 오라버니 목도 함께 깎이는 거야.”
* * *
시론은 자정 무렵 검의 정원을 떠났다.
올 때는 성대한 도열이 있었으나, 갈 때는 그의 명에 의해 아무도 배웅하지 못했다. 대신 기사들은 검의 정원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말없이 검례를 올렸다.
진도 창가에 서서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경례를 올렸다.
“진.”
루나, 그녀는 내일부터 한 달간 휴페스터 전역을 돌아다니며 휘하 세력을 격려한 후 흑해로 떠날 예정이었다.
“예, 누님.”
“네가 돌아오면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구나. 내가 없는 동안 네게 또 어떤 벅찬 일들이 생길지 감조차 잡히질 않아. 이제는 펜던트도 줄 수 없는데 말이다.”
“이상한 걱정을 하시는군요. 누님 눈엔 제가 아직도 그렇게 약해보입니까?”
“아니. 하지만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네게 적의를 드러내셨다. 원로들은 네게 결전기를 넘기지 않을 분위기고. 그런데 나까지 떠나야 하다니, 속이 썩는 기분이로군.”
“누님께서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수가 된 이후 모든 것이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 낫다고 생각됩니다.”
“그래?”
“사실 돌아온 즉시 포박당해 지하 감옥에 갇혀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아버진 떠나기 전 제게 기회를 주셨고, 어머닌…… 아직 방심하고 계시는군요.”
“방심이라.”
“저와 너무 정정당당히 싸우려고 하시는 것 같더군요. 저였다면, 제가 가문에 돌아온 순간 아버지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대하더라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겁니다.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권속들이 보는 앞에서 가주의 위엄을 흔드는 건, 어떤 면에선 배신보다도 가문에 큰 타격을 주는 일이다.”
“누님이 보시기엔. 아버지의 위엄에 흠집이 한 번 나는 것과, 제가 가문 내에서 앞으로 활개를 치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조슈아의 룬칸델에 더 위험한 것 같습니까?”
지금의 룬칸델이 아닌 조슈아의 룬칸델.
루나는 곧 결론을 내렸다.
“후자.”
“그런 겁니다. 어머닌 처음부터 실수를 하셨어요. 가장 좋은 기회를 놓치셨죠. 조슈아가 그랬던 것처럼.”
순간 루나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껴야만 했다.
언제나처럼, 진은 자신이 걱정할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진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게 옳았다.
“누님의 흑해행 역시 제게는 호재에 불과합니다. 아버지와 전대 흑기사들이 그곳에서 대체 무슨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건지, 아버지의 룬칸델이 흑해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알아봐주십시오.”
흑해.
시론이 그 땅에 집착하는 이유는 1기수인 루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수련을 위해서, 라는 건 분명 반쪽짜리 진실일 겁니다.”
“알겠다. 아버지께서 전우가 아닌 자를 흑해에 데려가는 것은 처음이니, 네가 만족할 만한 소식을 가져오도록 하마. 대신 오늘은 나랑 밤새도록 마시면서 밖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해줘야 하느니라.”
“누님.”
“말해라, 동생아.”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하루밖에 없다는 게, 아마 누님보다 제게 더 섭섭한 일일 겁니다.”
“그런 놈이 아까 임명식에서 그렇게 세게 검을 올려쳤단 말이냐?”
“그거야 일종의 치기 어린 자랑이었죠. 이제 누님도 절 상대하려면 긴장해야 한다, 뭐 그런 겁니다.”
“후후, 틀린 말은 아니다만. 과연 네 녀석이 이 누이처럼 검 한 자루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오르는 날이 언제일지, 궁금하긴 하구나.”
“그리 멀진 않을 겁니다.”
남매는 밤이 다 지나가도록 술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