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79)
제 222화
89화. 테마르의 첫 번째 무덤(1)
빈은 화신이 끝난 다음 모든 전말을 알게 되었다. 피콘이 화신한 짧은 시간 동안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어…… 신기하네요, 전설의 대장장이, 피콘 민체! 제가 그런 대단한 분의 핏줄이었을 줄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악귀인 줄 알았는데, 신의 목소리였다니. 하하.”
빈이 잔뜩 부어오른 턱을(피콘이 화신한 상태였기에 진의 주먹을 맞고 그 정도로 끝난 것이다) 쓰다듬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는 의외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자신을 비롯해, 피콘 이후의 모든 조상들이 계약자로서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까지도.
“빈 브랑슈.”
“예! 진 경. 아까는 경황이 없어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군요. 갑자기 제 몸이 통제를 벗어나기도 했고…….”
“억울하지는 않나.”
“어떤 것이요?”
“자네와 자네의 조상들은 나 때문에 원치 않은 희생을 했다.”
빈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희생은 무슨 희생입니까? 계약자인 걸 몰라서 특별히 혜택을 본 건 없지만, 특별히 손해를 본 것도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요. 게다가, 제가 대장장이의 신 계약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지플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높으면 당연히 숨기고 살았어야죠. 그러니 희생이랄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혜택을 본 건 없지만, 특별히 손해를 본 것도 없다.
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제가 계약자라는 걸 진작부터 인지했다면, 제 삶이 달라질 수는 있었을 겁니다. 높은 확률로 그랬겠죠. 룬칸델의 대장장이가 되거나, 민체 대장장이 협회에 소속되었다면 지금보다 풍족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게 과연 지금의 제 삶보다, 절대적으로 더 행복할 것이란 보장이 있나요?”
이번엔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룬칸델의 대장장이가 되었다면, 돈은 많이 벌어도 높으신 분들의 눈칫밥을 견디느라 죽어났을지도 모르죠. 룬칸델은 무서운 곳이잖습니까? 민체 대장장이 협회에선, 온갖 시기와 질투를 받았을지도 모르고요.”
잠시 말을 끊은 빈이 어깨를 으쓱이며 뒷말을 이었다.
“반면 전 지금의 제 삶을 사랑합니다. 비록 미치도록 가난한 영주님 밑에서 지내다가 납치까지 당했지만, 이렇게 진 경께서 직접 구하러 오시는 걸 경험하기도 했고…… 영주님도 좀 운이 없어서 그렇지 좋은 분입니다.”
“계속, 이야기해보게.”
“그게 전부입니다.”
“이제부터 피콘 님은 나 때문에 자네의 몸을 통해서 브라다만테를 강화시킬 것이다. 자네 입장에선 부당한 일일 테지. 그에 대해서 내게 따지고 싶은 게 있다면, 이야기해주게. 최대한 수용할 테니. 혹 거부한다고 해도 자네를 벌하거나, 해칠 생각은 없어.”
“진 경,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오늘 피콘 님은 경도, 저도 우연히 만난 것일 뿐입니다. 제가 대장장이의 계약자였다는 걸 제외하더라도, 경께선 제 목숨을 구해주셨잖습니까?”
빈이 다시 한 번 손사래를 쳤다.
“그러니 저는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경께 빚진 목숨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좋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경께서 절 찾아오신 이유도 짐작이 갑니다. 볼타가만 축하 선물을 보내지 않아서, 실무자인 제게 영지 상황을 물어보고자 오셨을 겁니다. 하지만 진 경, 이건 알아주십시오. 저희 영주님은 세금을 착복한 적이 없습니다.”
빈은 한 가지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피콘을 만난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지만, 진이 자신을 찾아온 건 필연이었다.
사실, 빈은 진에게 기수 임명 축하 선물을 보내지 못했다는 걸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진이 설마 선물 따윌 따지는 쩨쩨한 인간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빈 역시 진이 예비 기수 시절 성국에서 벌인 일화를 기사로 접했으니까.
그래서 빈은 진이 볼타 가주의 세금 횡령을 의심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아무리 몰락했기로서니 명색이 귀족 가문인데, 선물 하나 보내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되니 말이다.
휴페스터의 수많은 가문 중, 자신이 집사로 있는 볼타가를 제외하면 모두가 진에게 선물을 보냈을 터.
빈이 보기엔 충분히 진이 의심할만한 상황이었다.
“영주님은 자기 살림까지 다 팔아서 빈민들을 구제했습니다. 원래도 척박한 땅에 기근이 이어지고, 도적떼까지 창궐하니 선물은커녕 좋은 편지지 한 장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갑작스런 빈의 변호에 진은 황당한 마음이 일었으나.
딱히 그의 오해를 정정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볼타 가주가 세금을 횡령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자네 말대로 영지 상황이 궁금하긴 했지.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지원을 해주고 싶었어.”
그러자 빈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 기우였군요! 진 경, 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영지처럼 중요하지 않은 땅까지 살펴주시고, 도적들로부터 절 구해주시기까지…… 이 영광,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진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째…… 이 친구의 오해가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아니, 오해가 아닌가? 대장장이의 신을 먼저 확보할 수만 있다면 볼타가에 충분한 지원을 할 예정이긴 했으니.’
확보한 것뿐만이 아니라 대장장이의 신이 변경된 것과, 그것이 솔더렛의 안배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브라다만테 강화까지 약속을 받았다.
진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내 검을 잘 부탁하네.”
빈이 브라다만테를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저는 대장술을 모르니, 선조께서 다 하실 겁니다. 전 영지 내에 선조께서 아무도 모르게 검을 벼릴 만한 공간만 잘 확보하면…….”
“그건 내가 할 일이야. 대장장이의 신이 일하는 동안 자네가 난처해지지 않도록, 각종 조치를 취해주겠네. 그리고 저택 보수를 비롯해 지원금과 구제 식량을 조달하도록 하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넙죽넙죽 절을 할 기세로 고개를 숙이는 빈을 보며, 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외에 내게 원하는 것은 없나?”
“없습니다. 이미 차고 넘칩니다, 진 경.”
“원한다면 자네 개인에게도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어. 아까 피콘 님과 내가 대화한 걸 기억하고 있겠지. 피콘 님께 내가 자네를 지원하는 건 막지 말라고 했던 것.”
“하하, 말씀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 경, 아까도 말씀드렸듯 전 제 삶이 좋습니다. 이 영지는, 볼타의 저택은 제 집이고, 그곳이 이 힘든 시기를 딛고 일어서는 건 곧 제가 다시 일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진은 빈이라는 인물에게 상당한 호감을 느꼈다.
얼마든지 더 많은 것을 원할 수도 있었다. 선조들과 자신의 희생을 보상해달라며 악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빈은 그러지 않았다.
“고맙군. 이제 돌아가지, 자네 집으로.”
* * *
검의 정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진은 페트로를 찾았다.
“내일 아침에 볼타 영지를 직접 방문하고, 과하지 않은 선에서 볼타가를 지원하게. 금화와 식량을 위주로 하고, 병력은 보내지 말게. 다른 형제들 눈에 특별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티칸에 연락해서 믿을 만한 사복 수비대 다섯 정도만 볼타가의 영지에 상주시켜 달라고 요청해줘.”
“예, 도련님.”
페트로가 떠나자 한창 술잔을 나누던 길리와 무라칸이 다가왔다.
“도련님,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볼타가만 축하 선물을 보내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한 번 만나보고 왔어.”
“이야, 기수가 됐으니 벌써 권력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는 거냐? 우리 꼬마, 그렇게 안 봤는데. 몰락 귀족이면 살림살이가 꽤 빡빡할 거라고. 그런 녀석들 돈 뺏고 그러는 거냐, 어?”
“무라칸 님, 도련님께선 괘씸해서가 아니라 분명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가신 걸 거예요.”
“영지 상태가 아주 안 좋더군. 지원을 해주기로 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대장장이의 신 계약자를 만났어.”
“네?”
“뭐라고?”
진이 피콘과 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자, 두 사람은 흥미를 보이다가 금세 납득하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꼬마, 네 말은. 그롤러가 죽은 이유는 알 수 없고, 새로 대장장이의 신이 된 피콘은 널 위한 솔더렛의 안배였다는 말이지. 게다가 테마르의 첫 번째 무덤? 하!”
“도련님은 어쩜 가는 곳마다 엄청난 존재들과 엮이네요.”
“이젠 하다하다 그런 시골 촌구석에서도 신을 만나냐?”
“두 사람 다 별로 신기하지 않은 눈치네?”
“네놈 이런 적이 한두 번이냐? 콜론에서도 클람인가 뭔가 이상한 신 만나서 거울을 받았고, 그것도 솔더렛의 안배였고. 비먼트 무인도에서 광팬 구할 때도 마신석에, 뭐에. 대장장이의 신 정도면 무난하지. 솔더렛의 계획 하인 것 같기도 하고.”
길리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피콘 민체가 킨젤로 단장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능력을 썼단 말이지?”
“그래. 묘하게 단장 쪽 능력이 우월해 보이긴 했는데, 피콘 님도 철을 다루더군. 그자가 그랬던 것처럼. 대장장이의 신이 본래 지닌 능력인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전임인 그롤러가 원체 폐쇄적인 신이었거든.”
“만약 그 능력이 대장장이 신 고유의 것이라면, 그롤러의 죽음은 킨젤로 단장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넌 아직 킨젤로 단장에 대해 짐작 가는 바 따로 없는 거지?”
-[테마르가 폭주한 널 죽이려고 했을 때, 그 친구를 말린 게 바로 나다. 무라칸.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
-이 새끼가 감히 누구 이름을 함부로 팔아대는 것이냐. 보아하니 나이깨나 먹은 마족 같은데, 테마르가 네깟 것과 어울렸을 리 없다. 게다가 폭주라, 어디서 주워들은 건 좀 있는 모양이야? 그날 폭주한 건…….
-[네가 아니라 테마르였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옛 오테리엄에서 킨젤로 단장과 무라칸이 나눈 대화.
그날 이후, 무라칸은 계속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도 킨젤로 단장과 관계를 맺은 기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 없어. 망할, 나도 그 새끼가 누군지 궁금해서 돌아버리겠다.”
“어차피 킨젤로가 수면 위로 드러났으니, 정체가 밝혀지긴 할 거야. 우리 말고도 놈이 궁금한 사람들은 많을 테니까.”
무라칸이 답답해하자 길리가 주제를 돌렸다.
“피콘 님이 브라다만테를 개량해준다니 기대도 되지만, 도련님이 초대 가주님이 첫 번째로 묻혔던 곳에 가시는 건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왠지 위험할 것 같아요. 그 의지, 라는 것이…….”
“걱정하지 마, 길리. 거긴 무라칸이랑 함께 갈 거야.”
“네 어미도 모르는 걸 대장장이의 신이 알고 있군. 이장이 있었으니 찾아가도 테마르 녀석에게 인사할 순 없겠어. 후, 테마르의 첫 번째 무덤이라…….”
무라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처음 진이 테마르의 무덤 관련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애써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래, 위치는 어디라고 하더냐? 그 녀석이 묻혔던 곳 말이다.”
“안즈 대평원. 추콘 톨더러의 땅이었던 곳이지.”
진이 피콘에게 받은 ‘열쇠’를 보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