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91)
제 222화
91화. 힘, 그리고 힘을 숭상한다는 것(3)
1799년 3월 8일.
바르톤 비체나를 죽이기 위해 모인 룬칸델의 검들이 분쟁 지역 벤티카에 도착했다.
벤티카는 겨울이 한창이었다. 하늘은 물기 한 점 없어 말라붙은 것처럼 보였고, 그 아래로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어 지상을 긁어대고 있었다.
그야말로 흙과 돌산밖에 없는 광야였다. 그럼에도 지난 수백 년 동안 이곳이 크고 작은 분쟁으로 끊임없이 들썩인 이유는, 자원 때문이었다.
광야 곳곳에 하나씩 거대한 구멍이 파여 있었다. 그저 듬성듬성 빈 곳이 있는 듯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가면 대부분이 범선도 들어갈 것 같은 크기였다.
모두 자원을 캐낸 흔적들이다. 이상할 정도로 매장 자원이 풍부한 이곳은 언제나 정복자들의 쏠쏠한 돈줄이었다.
고대 만년철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신비의 광물은 발견될 때마다 큰 세력들의 알력 다툼으로 이어졌다.
바로 지금 룬칸델의 기사들과 지플의 마법사들이 여기 모인 것처럼 말이다.
‘백야, 저 짜증나는 함선의 위력을 또 한 번 겪겠군.’
저 멀리 지평선 가까운 쪽에서 무언가 태양처럼 빛을 내뿜고 있었다.
코젝, 지플의 거대 전쟁 병기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섯 마리의 적룡이 호위함처럼 백야에 바짝 붙어 비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거대 함선과 다섯 용이 장악하니 드넓은 하늘도 답답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진은, 단 한 명의 기사가 그것들을 마주하고 있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자가 바르톤 비체나인가…….’
휘날리는 망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한 자루의 검, 검은 투구.
코젝과 다섯 적룡을 앞에 두고 홀로 서 있는 바르톤의 존재감이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사이에 수백 미터의 거리가 있으나 이미 서로의 사정거리 안이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적룡들을 유린하고, 코젝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룬칸델의 흑기사.
검은 투구를 쓰고, 흑기사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건 가문을 통틀어도 고작 열 명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다.
진은 그가 뿜어내는 기운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과연, 바르톤은 검은 투구를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문제는 그가 배신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로사 혼자 바르톤을 첩자라 확신했다면 진은 따로 사실을 파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론까지 그가 첩자라는 걸 부정하지 않았으니, 그는 명백한 배신자였다.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편하지는 않았다. 문서에 의하면 바르톤은 분명 룬칸델에 원한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을 겪었다.
그러나 망설임은 금물이었다. 그저 한 번쯤, 죽이기 전에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오셨습니까, 4기수.”
진과 디푸스, 수호기사들이 다가오자 바르톤이 먼저 입을 열었다. 투구 사이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음울하면서도 위압적이었다.
경어를 사용했지만 뒤돌아보지도 않는 모습. 기수라 할지라도 흑기사보다 위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었다.
디푸스가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바르톤 경.”
“설마 12기수가 이번 임무를 함께 수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로사 경의 결정입니까?”
뒤늦게 뒤를 돌아본 바르톤이 진을 살피며 말했다.
진은 곧장 그 담담한 말투 속에 함축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실망.
불쾌한 것 같았다. 흑기사인 자신이 이제 막 기수가 된 진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디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르톤 경.”
“꽤 위험한 전투가 될 겁니다. 4기수께선 12기수를 잘 보호해주십시오.”
“뭐, 그렇게 보호가 필요한 수준은 아닐 겁니다.”
“4기수의 판단이 그렇다면 할 말은 없군요. 하지만 저것들을 상대로는 제게도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주시길.”
“새겨듣도록 하죠.”
다소 명령조인 바르톤의 언사에도 디푸스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는 듯 순순히 따르는 모양새였다.
바르톤이 첩자라는 사실을 배제하면 디푸스는 옳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었다.
기수는 죽어서 ‘영묘’에 가지 못하는 자가 훨씬 많지만, 흑기사는 역모에 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영묘에 안치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톤은 영묘에 갈 수 없었다.
“4기수는 저와 함께 중앙 전선을 맡으십시오. 수호기사들은 가장 뛰어난 3인이 침투조를 맡고, 나머지 7인은 전장을 이탈한 적들을 처리하라.”
“충!”
“충!”
“돌발사태, 혹은 위급상황에 일시적으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 중앙 전선 쪽으로 경로를 정하지 마라. 오히려 휩쓸려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바르톤은 끝내 12기수, 진에겐 아무런 명령도 하달하지 않았다.
처음에 단 한 번 언급한 뒤로는 그야말로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배신과 별개로, 바르톤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문제겠지. 새파랗게 어린 데다, 가문의 정통성까지 훼손하고 있는 나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진은 바르톤의 태도에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며 소리쳐봐야 우스워지는 건 자신 쪽이고, 실제로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바르톤에게 딱히 악감정이 돋지도 않았다. 오히려 배려 받은 기분이었다. 바르톤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다.
죽든지, 도망치든지, 싸우든지.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만 들렸다.
“이상, 각자 위치로.”
바르톤의 말에 수호기사들이 재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침투조로 결정된 세 명은 자리에 남아 복면을 둘렀다. 자신들을 특정하기 어렵도록.
코젝과 적룡들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꽤 멀었으나, 적룡들이 일제히 보호막을 펼쳐 상공에 거대한 원을 형성했다.
스릉…….
그와 동시에 바르톤과 디푸스, 침투조 수호기사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적룡들이 보호막을 펼친 건, 코젝이 함포를 가동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4기수.”
휘이익-!
안광을 빛내며 질주하는 바르톤. 그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위 파편이 튀었고, 오러를 머금은 검에선 이미 돛처럼 거대한 검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디푸스도 그의 뒤를 따라 앞으로 쇄도했고, 침투조 수호기사들은 검기와 함포가 충돌해 떨어질 파편의 위치를 예측하며 전진했다.
파편이 떨어지기 시작해도 제약 없이 전투를 펼칠 수 있는 건 디푸스와 바르톤 두 사람뿐이었다. 바르톤은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다.
‘난 일단 물러나볼까.’
진은 우선 빠지기로 했다. 몸 상태도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 처음부터 힘을 낭비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 첫 번째.
두 번째는, 바르톤에게 자신의 전력을 최대한 늦게 노출하자는 의도였다.
‘바르톤이 너무 일찍 내 무위를 파악하면 곤란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여러 확인 작업을 거칠지도 모른다.’
이번 임무는 바르톤의 입장에서만 ‘벤티카 확보’였다. 그는 아직 기수들과 수호기사들이 자신을 죽이러 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면 진을 이렇게 무시하지 않았을 터.
그러므로 진은 최대한 전력을 감춰야 했다.
최선의 전개는 진이 참여할 필요 없이 디푸스와 바르톤, 수호기사들만으로 지플 측을 패퇴시키는 것이었다.
이후 진이 지친 바르톤을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처리하거나, 적의 손에 죽도록 유도하면 임무 완수다.
‘하지만 결국 내가 나서야 할 가능성이 높다. 승리에 쐐기를 박는 역할이든, 전세를 뒤집는 역할이든, 기사들을 구해야 하는 역할이든, 다른 무엇이든.’
차선은 오히려 룬칸델 측이 패배하고, 도주 중 바르톤을 사살하는 그림이었다.
이 경우엔 벤티카를 적에게 내어줘야 할 테지만, 그 책임을 지는 것은 진이 아니라 디푸스가 될 확률이 높았다.
‘애초에 이 임무는 내게 손해될 게 없다. 이득이 될 것도 없지. 성공하든 실패하든 공과는 어차피 디푸스 형님의 몫이니까. 어머니는 정말로, 날 효율적으로 이용해 먹기 위해 이 임무를 내린 거야.’
그렇다면 언제나처럼, 이득은 알아서 챙기면 될 일.
그런 의미에서 진은 이미 자신을 공기처럼 대한 바르톤 덕에 괜찮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룬칸델과 지플, 전투가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나도 디푸스 형님과 바르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때, 기회가 된다면…… 디푸스 형님까지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처리한다.
그건 꼭 죽음을 뜻하는 바가 아니었다. 디푸스가 다시는 자신을 어설프게 대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그의 마음에 공포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아직은 디푸스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조슈아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을 벌써 제거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형님은 살아서 할 일이 많습니다.’
진이 미소를 지으며 전방을 주시했다.
전투를 감상할 시간이었다.
콰아아아……!
코젝이 황금빛으로 응축된 마력포를 토해냈다.
콜론에서 겪은 바 있는 그 함포는, 온전히 지상에 닿으면 능히 일대의 지반 전체를 무너뜨리고도 남을 위력을 품고 있었다.
다행히 콜론에서 마주했던 것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지플이 고대 만년철을 거울보다 중히 여길 리 없으니, 함선 탑승자들이 그때보다 뛰어날 리 없는 것이다.
씨이이이, 키이익-!
디푸스와 바르톤의 검기도 하늘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두 힘이 맞부딪히자 굉음과 충격파가 일어, 한순간에 황량한 하늘이 환하게 물드는 광경이 이어졌다.
이어 파편이 쏟아졌다. 한 조각, 한 조각이 6성 무인의 일격에 준하는 파편이 초장부터 지상을 다 뒤덮을 기세로 낙하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콜론 때와 거의 비슷한 양상이다.
그러나 그때는 탈라리스가 본격적으로 지플을 공격할 수 없었고, 원주민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룬칸델의 기사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콜론에서처럼 단지 검기와 함포의 힘 싸움으로만 이어질 필요도 없었다.
바르톤은 검기를 쏜 이후, 두 번째 함포가 지상을 강타하는 걸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플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젝에 탑승 중이던 백야의 마법사들이 적룡을 타고 하나둘씩 공중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공중에서 지옥풍과 빙렬검을 비롯한 온갖 상위 파괴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고, 바르톤과 디푸스는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도약하는 형세가 이어졌다.
‘괴물은 괴물이로군, 바르톤 비체나.’
도약, 몸이 공중에 뜬다는 것.
그 상태에선 당연히 지상에 비해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바르톤은 공중에서 검기를 흩뿌려 마치 비행을 하듯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검기를 방출할 때의 반동을 추진력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검기들조차 하나도 낭비되는 것 없이 적들의 보호막을 부수고 있었다.
디푸스 쪽도 비슷한 그림이었다. 다만, 그는 아직 10성에 이르지 못했기에 바르톤보다 효율적으로 오러를 사용하려는 것이 도드라졌다.
한창 두 무인이 하늘과 지상을 오가며 전장을 휘젓는 와중, 퍼엉!
두 사람의 이동 경로에 별안간 ‘예고 없는 폭발’이 번졌다.
다행히 바르톤과 디푸스 둘 다 정타는 피했으나, 추락은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진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디푸스와 바르톤도 방금 자신들을 공격한 마법이 무엇인지 인지하고는 용들 사이를 살폈다.
‘공간 폭발’을 사용한 마법사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알기로서는 공간 폭발을 사용하는 건 세상에 오직 켈리악 지플 하나뿐인 것이다.
진은 즉시 공간 폭발을 누가 펼친 것인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미도르 엘너, 그자다!’
콜론에서 그의 공간 폭발에 애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진도 그를 찾기 위해 재빠르게 눈을 놀렸다.
그러나 몇 초 후.
진은 공간 폭발을 사용한 마법사가 미도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새하얀 백발이 멀리서도 도드라졌다.
‘베라딘……!?’
그는 적룡에 올라탄 채, 화염에 젖은 듯 붉게 빛나는 눈으로 룬칸델의 기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