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95)
제 222화
91화. 힘, 그리고 힘을 숭상한다는 것(7)
불들을 통제하던 중, 진의 시야에 베라딘의 지팡이가 보였다.
명백히 자신을 향한 지팡이에선 어째서인지 살의와 함께 흥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베라딘은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이 무척 즐겁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진은 더 이상 씁쓸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자신에게 지팡이를 겨눈 자는, 베라딘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확신할 수 있었다.
지플이 베라딘을 계속 저 지경으로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순히 전투 인형이 필요하다면 베라딘 말고도 써먹을 인물이 많다. 평소엔 멀쩡한 모습으로 지낼 것이다. 차기 가주가 전쟁과 싸움에만 미친놈이어선 안 될 테니까.’
전생에서도 분명 지금처럼 정신을 조작 당했으리란 생각이 스쳤다.
‘불쾌한 새끼들.’
반짝이는 룬 문자들이 코젝을 향해 부유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룬 문자가 화염옥의 공격 지점을 가리키는 표식이라는 걸 모든 마법사들이 알았다.
때문에 모두가 기겁하며 룬 문자에 지팡이를 겨냥했다.
룬 문자를 밀어내기 위한 온갖 마법이 쏟아졌다.
그러나 룬 문자는 너무 작은 데다 쉴 새 없이 움직여서 요격이 거의 불가능했고, 설령 마법으로 맞춘다 한들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바람처럼 유유히 마법을 지나쳐 계속 떠오를 뿐이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룬 문자가 코젝의 선체 곳곳에 들러붙었다.
그러자 진의 화염옥에서 룬 문자와 똑같은 수의 화염 줄기가 뻗어졌다.
불의 사슬들이 똬리를 틀듯 코젝을 둥글게 휘감고, 조이는 모습에 마법사들은 또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으악-!”
크즈즉……!
여러 마리의 뱀이 동시에 한 먹잇감을 조이는 듯 보였다.
순식간에 선체 곳곳에 작은 균열이 일었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마법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불의 사슬들이 이대로 코젝을 짓뭉개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살아있는 적룡들이 선체를 묶은 불을 끊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적룡들의 힘으로는 그 불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불을 물어뜯으려던 적룡들은 또 다른 불의 사슬에 몸통을 관통당하거나 목이 잘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의 눈빛이 한없이 차가웠다.
“선체를 돌려!”
“배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단 한 사람, 그것도 룬칸델의 12기수에게 코젝이 묶이는 건.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서른 마리의 불사조는 한 마리도 남김없이 소환이 해제되었다. 그건 곧 소환의 주체인 마법사가 전원 사망했다는 의미.
가아아악……!
포효와 함께, 테스의 숨결이 코젝을 향해 치솟았다. 진의 불에 이어 청화의 중압까지 더해지자 코젝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진동했다.
수호기사들은 넋이 나간 듯 진과 코젝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배신자인 바르톤조차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이게…… 12기수의 힘이란 말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10성에 이른 자신조차 코젝을 저렇게 무력화시킬 수는 없었다. 코젝이 최대 효율을 내지 못하고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이대로라면 지플 측 마법사는 전멸이다. 베라딘 지플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어.’
벤티카를 지플이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켈리악 지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우선, 베라딘 지플이 뭔가를 시도하려는 것 같으니…… 그에 맞춰서 대응을 생각해봐야겠군.’
진이 포효를 내지르며 화염옥의 마력과 영기를 높였다. 동시에 베라딘의 지팡이가 붉게 물들었다.
그 역시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1형의 술식을 끝맺은 것이다.
베라딘의 몸에서도 리올 지플이 남긴 룬 문자가 빠져나왔다.
그것들은 진의 룬 문자와 뒤엉키며 곧장 새로운 화염을 불러일으켰다.
1형 역시 최종형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화염옥의 형태였다.
순수하게 마력만으로 이루어진 화염옥이 방패처럼 코젝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옥은 비록 진의 것보다 작았으나, 분명 더 많은 마력을 품고 있었다.
베라딘의 입가에 한 줄기 선혈이 흘렀다. 공간 폭발을 계속 사용한 것에 이어, 이런 거대한 마법을 운용하니 몸이 따라주질 않는 것이다.
‘마력 역류 증상이다. 그런데, 고통을 못 느끼는 것 같군.’
피를 토하면서도 베라딘은 화염옥에 계속 마력을 더하고 있었다. 까뒤집힌 두 눈이 희번덕였다.
“으하하하……!”
이윽고 베라딘이 완성된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1형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그 사실이 무척 흡족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진의 최종형과 다르게, 베라딘의 1형은 대상을 향해 움직이는 마법이었다. 1형의 화염옥이 진이 떠 있는 허공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무척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형의 화염옥이 너무 거대하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 실제로는 무척 빠른 속도였다.
코젝이 먼저 최종형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느냐, 아니면 1형의 화염이 먼저 진을 덮치느냐…….
주변인들만 바싹바싹 속이 타들어갔다.
진은 여전히 담담한 눈빛이었고, 베라딘은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마법 쓰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군.”
베라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플을 향한 이야기였다.
정신 조작은 분명 마법으로 이뤄졌을 터였다.
진이 보기에 그 마법은 지극히 비효율적이었다. 전투에 있어 이성을 잃는다는 건 곧 눈을 감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 불안정한 정신 조작으로, 베라딘을 광전사로 만들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제 몸이 역류에 부서지는 것도 모르는 채 마구잡이로 덤비기만 하는데 말이다.
후우웅……!
하늘을 시커멓게 칠하고 있던 영기가 사라져 갔다.
검게 변했던 진의 몸도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영기의 입자로 흩어지고 있었다.
입자들은 모두 진의 화염옥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그에 따라 화염옥이 점차 어두워졌다.
화염옥이 하늘을 가득 채웠던 영기를 모두 흡수하기까지 3초가 걸렸다.
아직 베라딘의 1형은 진과 꽤 거리가 있었으나, 최종형은 폭발할 준비를 끝낸 것이다.
“개자식들.”
텅…….
검은 태양처럼 변한 화염옥의 중심에 돌연 새하얀 빛이 일었다.
칼날이 지나간 듯 가늘고 긴 빛이었다. 잠시 후 폭발이 시작되자, 놀랍게도 지상에 지진이 일었다.
상공에서 펼쳐진 폭발의 충격파로 인한 지진이었다.
단지 충격파만으로 땅이 갈라졌다. 적룡들과 마법사들의 시체가 바위와 함께 이리저리 튀는 와중, 하늘은 더 충격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구름이 찢어지고 있었다. 어떤 거대한 손이 마구 잡아 뜯기라도 한 것처럼. 겹겹이 번지는 충격파 때문에 하늘 전체가 일그러진 듯 보이기도 했다.
폭발 때문에 코젝이 부표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역사를 다 통틀어도, 코젝이 지금 이 순간보다 초라했던 적은 없었다.
룬칸델의 12기수에게 지플의 결전병기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폭발에 측면 함포가 부서졌다. 코젝을 뒤덮은 보호막은 이미 깨진 유리처럼 변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코젝을 묶고 있는 불의 사슬들은 아직까지 그대로였다. 어쩌면, 코젝을 완파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디푸스는 안심할 수 없었다.
“막내……!”
악을 내지르는 디푸스.
여전히 베라딘의 1형이 진을 덮치기 위해 낙하하고 있었다.
진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최종형은 명왕군림검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그에겐 큰 무리를 주는 마법이었다.
후우, 후욱……!
거칠게 호흡을 내뱉는 사이 베라딘의 화염옥이 가까워졌다.
“피해라, 어서!”
디푸스는 베라딘의 마법 또한 진이 펼친 것과 동류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받는다면 자신조차 몸이 성하지 않을 위력.
그러나 충격파 때문에 진을 도울 수가 없었다.
수호기사들은 간신히 땅에 검을 꽂아 자신을 고정시키는 게 전부였고, 바르톤은 부상자들을 보호하는 척 진을 돕지 않았다.
바르톤으로서는 진이 사망하는 게 최고의 전개였다. 이후 코젝이 퇴각하면, 디푸스와 남은 수호기사들을 모조리 죽인 다음 검의 정원으로 복귀하면 되는 것이다.
‘저 배신자 새끼가……!’
까득, 디푸스가 이를 악물었다. 바르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벤티카에 도착하기 전, 디푸스 역시 기회가 되면 진을 죽일까 고민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룬칸델을 위해 진은 아직 죽어선 안 되는 인물이었다.
“피하라고!”
재차 소리치는 목소리에 진이 고개를 들었다. 디푸스 쪽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코앞까지 다가온 베라딘의 화염옥을 보기 위해서였다.
피할 힘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성국에선 날 지켜주겠답시고 이 마법을 펼치려고 했었지.’
-그만. 진, 단테. 너흰 먼저 가라. 저것들은 내가 막는다.
-좋아, 우린 먼저 빠져주마, 베라딘.
-진! 우리만 도망치면, 베라딘 공은!
-단, 넌 날 막으려다 장렬히 패배한 거야.
그날, 베라딘은 1형을 펼치려다 진에게 두들겨 맞고 마력 역류에 빠졌었다.
진이 그렇게라도 말리지 않았다면, 베라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룬칸델을 위해 권속을 죽인 지플이 되었을 터.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1형은 그런 각오로 쓰려던 마법이었다.
조작된 정신 따위로, 제대로 펼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커헉!”
별안간 베라딘의 몸이 쓰러질 듯 앞으로 꺾였다.
마력 역류.
그때처럼 턱을 돌려주진 못했으나, 진은 사실 베라딘이 1형을 펼친 순간부터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의 베라딘은 절대로 1형을 온전히 펼칠 수 없다고.
행여 펼치더라도, 자신에게 닿을 때까지 끌고 나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두 뼘.
진에게 닿기까지 딱 두 뼘을 남겨두고, 화염옥이 빠르게 사그라졌다.
“크아아악……!”
고꾸라지며 비명을 지르는 베라딘. 피를 토하는 것도 모자라, 그는 온몸의 실핏줄이 다 터진 채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눈 깜짝할 새에, 그토록 거대했던 화염옥이 달걀만 한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통제를 잃은 마력이 허망하게 공기 사이로 흩어지고 있었다.
푸시싯, 퐁, 퐁…….
겨우 진에게 닿은 화염옥은 사밀에서 그랬던 것처럼, 퐁퐁거리는 작은 소음을 일으키며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진은 가만히 손을 뻗어 그 화염을 그러쥐었다.
몇 초쯤, 진이 손바닥에 남은 그을음에 시선을 두었다.
디푸스는 그런 진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설마, 마력 역류 때문에 베라딘 지플의 마법이 꺼질 수밖에 없다는 걸 계산했단 말인가……!’
머리 위 저 높은 곳에선 여전히 진의 화염옥이 코젝을 박살내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위력이 많이 잦아들어, 천천히 선체가 돌아가는 중이었다.
“……4기수, 추격하십시오. 놈들이 도망칠 테니.”
진이 손바닥에 번진 그을음을 닦아내며 말했다.
“알겠다! 바르톤 경, 갑시다!”
디푸스가 바르톤의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