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94)
제 222화
91화. 힘, 그리고 힘을 숭상한다는 것(6)
수십 가지의 불이 내뿜는 열기에 벤티카가 통째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특히 하늘은 완전히 붉게 물들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베라딘을 태운 적룡은 바르톤을 피해 코젝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디푸스가 대검을 치켜들었다.
막 준비된 코젝의 함포가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지이이잉, 마력이 응축되며 번지는 불길한 노이즈가 전장의 소음을 가로질렀다.
콰아아아……! 조준된 함포에서 폭음이 일었다.
동시에 포효를 내지르는 디푸스. 대검 볼가르가 광휘를 뿜으며 검기를 발산하자, 함포와 맞물려 파편이 튀었다. 파편이 지상에 검버섯 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코젝과 더불어 마법사들도 지상을 향해 총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백야의 불사조들은 바르톤을 저지하며 괴성을 질러댔다.
하늘이 어지러웠다. 불과 마법, 함포 사이에서 바르톤의 검기가 도드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검기는 계속 간발의 차로 베라딘을 놓치는 모습.
디푸스는 배신자의 연기에 분노를 다스려야 했으나 진에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크직, 퍽-!
디푸스가 진과 테스의 근처로 날아든 파편을 쳐내며 인상을 구겼다. 여파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건만 코젝은 벌써 다음 함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플 놈들은 저런 걸 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모르겠군. 그런데, 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배신자가 지플의 차기 가주를 죽일 리 없잖나. 차라리 바르톤 경에게 아군 수습을 부탁하고, 나더러 베라딘을 치라고 하는 게 옳았던 것 같은데 말이야. 네 말대로라면, 마지막 기회였는데.”
디푸스는 진이 예비 기수 시절 코스모스의 각축장에서 단테, 베라딘과 밤새 술잔을 기울였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의 정체가 밝혀진 후 그의 과거를 조사해본 것이다. 당시 결승전을 관람한 벨라도 귀족 중 세 사람의 술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있었다.
물론 디푸스는 고작 그것만으로 진이 베라딘과 모종의 관계를 형성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배신자인 바르톤에게 베라딘을 맡긴 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나를 의심하는 듯 말하는군요. 4기수는 왜 내 말을 따랐습니까?”
“잠시 냉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어도 수호기사들이 사망할 위험에 놓여있었고.”
“4기수, 우리가 받은 임무가 무엇입니까?”
“뭐라고?”
“베라딘 사살은 이번 임무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물론 베라딘의 목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중요한 건 벤티카 확보와 배신자 척살입니다.”
디푸스는 함포를 마주한 채로 진을 돌아보지 않았다.
“바르톤 경에게 베라딘을 맡긴 건, 그가 베라딘을 공격하는 척 연기를 하다가 부상당할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 근거했을 뿐입니다. 그쪽이 차후 바르톤 경을 사살하기에 용이하니까. 설명이 되었습니까?”
디푸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찝찝한 마음이 치솟았으나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야기였다.
재차 코젝이 황금빛 마력포를 뿜었다.
온 전장에 함포와 화염, 검기, 파편이 가득했다.
침투조 수호기사들은 이제 열기를 버틸 수 없어 디푸스가 있는 쪽으로 물러나는 중이었고, 바르톤도 곧 추락할 기세였다.
“도련님을 확보했다!”
이윽고 베라딘을 태운 적룡이 코젝에 닿은 순간 마법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퍼엉-!
코젝에 탑승하자마자, 베라딘이 바르톤을 향해 공간 폭발을 시전했다. 테스의 영역이 상공 전체에 닿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큭!”
바르톤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비행할 수 없다는 당연한 명제를 부정하던 그는, 공간 폭발에 가슴팍을 얻어맞아 떨어지면서도 두 마리의 적룡과 열 명 이상의 마법사를 베는 기염을 토했다.
산산조각 난 적들의 시체가 파편에 뒤섞여 쏟아지고 있었다.
배신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진과 디푸스조차 바르톤이 일부러 베라딘을 놓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베라딘의 안전을 확보했으니 지플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테스 때문에 공간 폭발에 큰 제약이 있긴 했으나 이제는 시간문제였다.
“진 룬칸델과 테스를 공격해! 놈들만 없으면, 룬칸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플의 불사조들이 하강을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테스가 아닌 추락한 바르톤을 노렸다.
하늘에선 함선과 마법, 그리고 적룡들의 숨결이 쏟아졌고.
지상에선 불사조들이 화염을 토하고 있었다.
전장의 혼란스러운 풍경은 그야말로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은, 아까부터 준비하던 한 마법의 술식을 완성시켰다.
“4기수, 지금부터 전황이 바뀔 겁니다.”
반사적으로 진을 돌아본 디푸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가 본 것은 온몸이 영기에 젖어 검게 물든 진의 괴이한 모습이었다.
“막내?”
“벤티카부터 확보하겠습니다. 코젝이 퇴각하면, 바르톤 경과 함께 추격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물러나십시오.”
퇴각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그렇게 물을 뻔했다. 비록 필사적인 척 연기를 한 것이라고 하나, 흑기사인 바르톤과 자신조차 부수지 못하고 있는 적의 거대 비행 함선을.
진은 너무도 당연하게 ‘퇴각시키겠다’고 확언하고 있었다.
‘잠깐, 갑자기 하늘이 왜 이렇게……!?’
하늘이 어두워졌다.
방금까지 함포와 마법으로 미친 듯이 어지럽게 빛나던 풍경이 시커멓게 젖어들었다. 영기에 휩싸인 진의 몸과 같은 색으로 말이다.
-마법사들의 마력 개방은, 자연에 존재하는 마력에 본인이 지닌 마력을 연결하는 행위지. 내가 그걸 통해 뭘 추구한다고 했지?
-마력 회복과 마법 강화.
-그래. 자연의 힘을 이용해 떨어진 마력을 채우고, 다음에 펼칠 마법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거야. 영기 개방의 경우도 그와 똑같다. 다만,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지.
-무슨 차이점인데?
-영기 개방은 네 힘을 자연에 연결하는 것이 아니야. 자연을 네게 연결시키는 거지.
무라칸에게 처음 영기에 관한 개념을 배울 때 나눈 대화.
하늘빛이 칠흑으로 변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영기를 개방한 진과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달빛 한 점, 별 하나 없는 밤하늘도 이보다 어둡지 않을 것 같았다.
당황한 것은 디푸스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사들도 갑작스레 검게 물든 하늘에 잠시 공격을 멈출 지경.
다들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뭔가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암천暗天
‘화염옥’ 계열의 마법에 굳이 그런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리올 지플의 유산은 솔더렛의 힘을 기반으로 한 마법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힘이, 영기라는 것을 전장의 모두가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 전장에 영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도.
룬칸델과 지플.
두 세력의 지휘관들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보호막을 펼치고, 진 룬칸델을 저격해!”
“룬칸델의 모든 기사는 집결해서 12기수를 보호하라!”
진은 태연한 얼굴로 코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함선 선두에 서서 백발을 휘날리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장의 어둠을 뚫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베라딘이 킥, 킥킥, 킥, 웃음을 흘렸다.
이전보다 더 붉어진 눈동자를 한 채.
결코 추억이 떠올라 흘린 웃음이 아니었다.
진은 어딘가 어그러진 그 미소를 보며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최종형을 영창했다.
‘크게 다치진 않길 바란다.’
거대한 짐승이 아가리를 벌리듯, 하늘 한가운데 공동이 열렸다.
그 공동 속에서 불덩이가 빠져나오는 모습이 이어졌다.
불덩이는 코젝보다도 더 거대해서, 태양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의 몸이 불덩이에 이끌리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리올 지플이 남긴 룬 문자들이 진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이어 룬 문자가 진의 몸을 빠져나가며 전장 곳곳에 반짝이는 흔적을 남겼다.
한 마법사가 곁으로 날아든 룬 문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멸살암천화염옥에 대한 기록을 떠올린 한 지휘 마법사는 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룬 문자를 피해라, 그건 표식……!”
반짝이는 꽃잎처럼 보이는 룬 문자는 표식이었다.
하늘에 뜬 거대한 구체가 형벌을 내리기 위한.
화륵, 치이이익-!
지휘 마법사가 채 말을 끝맺기 전에, 불덩이에서 화염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체 불의 촉수가 몇 갈래나 되는 것인지, 세어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부유하는 룬 문자를 따라 불길이 내리쳤다.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는 룬 문자가 닿는 자리마다 사람이 불타고, 비명이 번지고, 재가 휘날렸다.
진 룬칸델을 저격하라.
지휘 마법사의 그 명령은 실행될 수 없었다. 마법사들은 생전 처음 보는 궁극의 마법에 보호막만 겨우 펼칠 뿐이었다.
그러나 보호막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화염 촉수들의 위력이 10성에 가까운 탓도 있지만, 하늘을 뒤덮은 영기가 보호막을 뭉개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기는 그저 하늘빛을 바꾸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불덩이가 화염을 토하고 있듯, 영기의 장막 속에서도 그림자가 퍼져 보호막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미친…… 이런 게, 정말 마법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걸 막내가 펼친 것이라고……?’
허공에 떠오른 진을 올려다보며 마른침을 삼키는 디푸스.
마법사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을 그가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가 보기에, 진이 펼친 것은 마법이 아니라 신의 권능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켈리악 지플.
일순, 적의 수장이 떠올랐다. 십여 년 전 단 한 번 직접 마주한 적 있는 그의 가공할 마법을 볼 때도 지금과 똑같은 기분이었다.
막내를 보며 그 기분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불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코젝 바깥에 있는 마법사들은 벌써 절반 이상이 죽음을 맞이했다. 적룡들조차 무서울 만큼 빠르게 그 수가 줄어들었다.
전황이 한순간에 뒤집힌 것이다.
그러나 ‘리올 지플’에 관한 기록을 살펴본 마법사들은 알고 있었다.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불덩이가 화염의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폭발하는 순간엔 자칫 코젝이 부서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도련님, 퇴각해야 합니다! 예상 밖의 변수가 너무 큽니다.”
지휘 마법사의 목소리에 베라딘이 고개를 저었다. 공허한 눈동자 속에 읽기 어려운 감정들이 어둡게 일렁였다.
“도련님……!”
베라딘이 전장을 집어삼키고 있는 진의 불들을 보며 홀린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손아귀에도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순히 시뻘겋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모질고 사나운 불꽃이었다.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1형, 그 역시 리올 지플이 남긴 마법이었다.
베라딘의 지팡이는 진을 조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