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99)
제 333화
92화. 휴가(1)
1799년 3월 10일, 로사가 기수 회의를 소집했다.
긴 테이블 위에 바르톤 비체나의 텅 빈 투구가 놓여있었다.
진을 제외한 모든 기수들이 그 투구를 바라보며 충격에 빠졌으나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이미 기수들은 이번 임무의 주역이 디푸스가 아니라 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디푸스가 메리에게 말한 것이다. 진이 없었다면 이번 임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고. 메리는 그걸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수들에게 소문내고 다녔다.
차륵, 차르륵…….
조용한 가운데 로사가 보고서를 살피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서를 완독한 후, 로사가 첫 마디를 내뱉었다.
“임무 내용을 잊은 모양이로군.”
“무엇이 부족했습니까?”
진의 태연한 물음에 몇몇 형제들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란, 뷔고, 뮤, 앤, 토나 형제. 그들은 진과 디푸스가 임무를 완벽하게 성공했다고만 들은 것이다.
“벤티카를 확보하고 바르톤 비체나를 사살한 것은 좋다. 그러나 가문이 너희에게 요구한 것은 자연스러운 사망이었다.”
가문이 너희에게 요구한 것.
로사는 그 말에 힘을 주었다.
‘임무 중 적의 손에 의한 사망 처리’는 실제로 로사 개인뿐만이 아닌, 원로회 전체의 판단이었다.
“바르톤 비체나. 그를 그냥 사살할 것이었다면 굳이 너희 기수들의 힘을 쓸 필요도 없이. 나와 흑검회가 직접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어머니.”
“말하라, 12기수.”
“이번 임무에서, 바르톤 비체나를 적의 손에 사망시키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켈리악의 권능이라는 변수 때문에 더 많은 인원이 필요했죠.”
“그런 판단이 들었다면 바르톤 비체나가 퇴각을 주장했을 때 물러난 후, 다음 기회를 노렸어야 옳았다. 물론 그때는 너희가 아니라 다른 기수들이 그 임무를 맡게 되었을 테지만 말이다.”
진은 그 대목에서 망설임 없이 디푸스의 이름을 팔았다.
“그러기엔 결정권자인 4기수의 임무 속행 의지가 강력했습니다.”
“4기수.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어째서 물러나지 않았지?”
“1기수가 부재한 지금, 저와 12기수보다 해당 임무를 더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기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너의 생각일 뿐이다, 디푸스.”
“실제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자연스러운 사망은 연출하지 못했으나, 사망자 한 명 없이 두 가지 과제를 달성했습니다.”
“가문이 왜 바르톤 비체나를 그토록 복잡하게 죽이려고 했는지 모르는 것이냐? 그의 배신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함이다. 퇴각한 지플의 마법사들 전원이 그가 생존한 사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외부에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 룬칸델은 흑기사를 숙청한 꼴이 된다.”
임무 중 전사와 숙청.
다른 기사라면 모를까, 흑기사는 반드시 전자여야 했다. 룬칸델 최강의 전력이 숙청당하는 것은 곧 결속력과 충성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리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흑기사가 숙청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터였다. 룬칸델뿐만이 아니라 휴페스터 내에서 흑기사가 갖는 상징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전자의 경우에도 룬칸델의 위신에 생채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벤티카 확보 임무’에 투입된 전력은 대외적으로 지플 쪽이 훨씬 강세였다.
코젝과 백야를 상대했으니 흑기사가 사망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것이다.
임무가 본래대로 흘러갔다면 오히려 흑기사가 ‘기수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했다는 선전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였다.
“다들 알다시피 민감한 시기다. 가주와 1기수가 자리를 비운 가운데, 지플은 날로 세를 확장하고 있지. 이런 상황에 흑기사가 숙청된 사실이 알려지면, 동맹들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뮤와 앤은 고소한 마음에 하마터면 키득,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럼 그렇지. 디푸스 오라버니와 막내 놈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결국 사람이지. 공에 눈이 멀어 무리하다가 낭패를 봤네. 조슈아 오라버니가 패권을 잡으면, 저것들부터 쳐낼 테지.’
‘원로회가 결전기 전수도 거부하고 있다는데, 꼴좋다. 이번 일로 한 번 더 원로회 눈 밖에 나겠군.’
란과 뷔고는 디푸스와 막내가 바르톤 비체나를 죽였다는 사실 그 자체에 속으로 감탄했을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토나 형제는 언제나처럼 걱정이 가득했으나 가까스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로사에겐 그 여섯 사람의 생각이 훤히 보였다. 그래서 속으로 혀를 차며 답답한 마음을 억눌렀다.
“……4기수와 12기수에게 이에 대한 혜안이 없다면, 이번 임무는 실패로 간주하겠다.”
“어머니, 바르톤 비체나가 전투 중 사망했다고 발표하셔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진의 말에 여섯 사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방금 로사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그 여섯 사람이었다.
반면 로사와 조슈아, 룬티아, 디푸스, 메리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적은 코젝이 반파되었고 적룡 여섯과 정예 마법사 서른 이상을 잃었으며, 베라딘은 켈리악의 힘을 사용하고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벤티카조차 확보하지 못했죠.”
켈리악의 힘을 사용했다.
그 대목에서 여섯 기수가 다시 한 번 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눠준 보고서에 그런 내용은 없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 과정에 룬칸델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코젝을 파괴한 것이 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단지 체면을 구기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요.”
“잠깐, 막내. 코젝을 파괴한 게 디푸스 형님이 아니라 너였단 말이냐?”
뷔고의 물음을 무시한 채 진이 마저 뒷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흑기사가 전사했다고 거짓 발표를 하는 건 지플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서로의 실리를 챙기는 것이죠. 당연히 우린 실제 피해가 없고, 벤티카를 확보했으니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챙기는 셈입니다.”
“지플이 흑기사가 사실 첩자였다는 사실을 밝힐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냐?”
“예.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바르톤이 배신자였다는 사실을 밝히면, 지플은 코젝에 배신한 흑기사까지 데리고 패배한 것이 됩니다. 만약 지플이 전말을 모두 밝힐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란, 뷔고, 뮤, 앤, 토나 형제와 달리. 나머지 인물들은 지금까지의 대화가 로사의 ‘시험’이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로사가 진을 압박하듯 말했던 건 단지 진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번 임무는 정말로 가문에 중요한 문제이므로, 진이 기수로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한 번 지켜보고 싶었다.
또한 지금껏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기수들에게 귀감을 보이고 싶었다. 룬칸델의 기수란 이래야 한다고 말이다.
진이 그저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대답을 가져왔다면 로사는 즉시 임무 실패에 대한 벌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진은 언제나처럼 흡족한 결과물을 가져왔다. 공간 폭발이라는 심각한 변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가까운 임무 성공을 이뤄냈다.
그렇기에, 미치도록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이 아이를 추락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통탄스럽군. 그때까진 가문을 위해 네가 해줘야 할 일이 많겠구나.’
‘마음껏 이용하십시오. 결국 그게 어머니와 조슈아의 목을 조르게 될 겁니다.’
진과 로사, 마주친 두 눈 사이에 서로 다른 생각이 떠다니고 있었다.
똑똑똑!
누군가 회의실 문을 두들겼다.
“로사 경, 집사 하인츠입니다.”
“들어오게.”
목례하며 들어선 하인츠의 손에 소식지가 한 뭉치 들려있었다.
루테로 마법 연방의 소식지들이었다.
“지플 측에서 벤티카 임무에 대한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지플이 패배했으나, 흑기사를 살해하는 쾌거를 이뤘다는 논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켈리악 지플이 선수를 쳤군. 귀신같은 자야. 이번 임무의 흐름만으로 바르톤이 발각된 사실을 확신한 것인가.”
이번엔 상위 기수들도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물론, 룬티아는 늘 그랬듯이 하품을 참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대응 기사 작성을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바르톤 비체나의 죽음은 아름답게 포장하되, 그자의 본명은 밝히지 말도록. 또한 바르톤에 대한 모든 기록과 문서를 말소시키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오늘부로 휴페스터 전역엔 바르톤을 찬양하는 기사들이 쏟아질 테지만, 그의 검은 투구와 유해는 영묘에 안치되지 못할 터였다.
하인츠가 떠나자 로사가 다시 진에게 시선을 두었다.
“네 말대로 흘러갔구나, 12기수. 상을 내려야겠군. 원하는 게 있느냐?”
“고대 만년철 채광이 끝나면 1할을 제게 주십시오. 그리고 열흘 정도의 휴가를 갖고 싶습니다.”
“알겠다.”
의외로 로사는 흔쾌히 진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녀는 당분간 진을 견제하기보다 이용하는 쪽에 초점을 두기로 한 것이다.
룬칸델과 지플이 서로의 실리를 챙기고 있듯 진과 로사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로사는 진이 얻는 모든 것이 결국 시간이 흐르면 조슈아에게 귀속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일정 수준 이상의 지원은 그녀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때로는 날개를 달아줄 필요가 있었다.
“이상, 기수 회의를 종료한다. 5, 6, 7, 8, 9기수는 저녁에 임무 배정이 있을 예정이니 내 집무실로 각 집사들을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회의실을 빠져나온 직후, 진은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신, 토나 형제를 지나칠 땐 약속을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밤에 술 한 잔 해.”
“그, 그래! 좋은 걸로 준비해둘게!”
다른 기수들은 그런 토나 형제를 보며 혀를 찼지만, 디푸스와 메리는 무척 부러운 기분이 되었다.
메리는 단지 진과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나, 디푸스의 경우는 달랐다.
‘막내가 보여준 그 뇌검은 분명…… 제6결전기 전광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마신석이라니? 막내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게 너무 많다. 마법의 위력도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었어.’
디푸스의 목덜미를 본 메리가 흠칫하며 눈을 껌뻑였다.
“오라버니? 추워? 목덜미에 닭살이 돋았네. 징그럽게. 우리도 뜨끈하게 데운 술 좀 마셔야겠다.”
방으로 돌아오자 길리가 진을 반겼다.
그리고 약 3000세의 흑룡, 무라칸은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진에게 눈을 흘겼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련님.”
“고마워, 그런데 무라칸은 또 왜 저래?”
“아, 그게…….”
난처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짓는 길리.
무라칸이 이토록 뿔이 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길리가 이번 휴가를 ‘다 함께’ 가자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즉, 무라칸으로서는 고대한 데이트가 물 건너간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올망고의 계약자가 슈체론 왕국에 있다면서요? 그쪽 해변은 전부터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는데, 티칸의 동료들까지 다 같이 휴가 겸 떠나면 무척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찮다면, 도련님도 같이 가시는 게…….”
다시 한 번 인상을 구긴 무라칸을 보며, 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