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98)
제 222화
91화. 힘, 그리고 힘을 숭상한다는 것(10)
“시론 경이 아닌, 기수들의 검에 룬칸델에서의 최후를 맞이할 줄은 몰랐군. 아쉬운 게 있다면 그것이로구나.”
바르톤이 디푸스의 검을 살피며 말했다.
대검 볼가르에 오러의 결정이 맺혀있었다. 결정들은 오러가 아니라 실제의 광석처럼 단단해 보였다.
콰앙! 크드드득-!
다시 시작된 공방, 먼저 돌진한 쪽은 바르톤이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해 본래의 무위를 다 발휘할 수 없었다.
하나 오러와 체력이 바닥을 향하고 있다 한들, 죽음을 각오한 10성 기사의 발악에 지축이 흔들리고 있었다.
보법을 밟을 때마다 지면에 균열이 일고 바위가 튀었다.
몸에 두른 보호막은 8성 수준이었으나, 보호막 자체가 품고 있는 예기만으로도 파공음이 번질 지경.
진기를 전부 쏟아 일으킨 최후의 반조返照.
희번덕이는 바르톤의 눈빛에 담긴 것은 광기였다.
간자 노릇이 탄로 나 검은 투구의 명예를 모두 잃었다는 자조 섞인 허망과, 시론 룬칸델이 아닌 기수들의 검에 죽는다는 것에서 비롯된 수치심.
그리고 ‘켈리악 지플’을 만나보고 룬칸델을 배신하기 이전, 흑기사로서 가슴에 품었던 자부심 같은 것들이 바르톤의 내면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바르톤은 분명 지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지플의 편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말뿐인 초월이 아닌, 진짜 초월에 닿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바르톤 비체나는 명백히 인간이다.
한계에 가까운 무력을 얻었고, 배덕감과 척살에 대한 공포는 오래전에 떨쳐냈으며, 검은 투구로 감정을 감추고 있어도. 아직은 인간이었다.
“부끄럽긴 한가 보군, 바르톤 비체나. 잔뜩 개폼을 잡으며 날뛰는 꼴을 보아하니. 네게 아버지의 손에 죽을 만큼의 명예가 남아있을 것 같나?”
진은 바르톤의 어지러운 내면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대답 대신 목젖으로 칼날이 날아들었다. 칼날이 흐릿했다. 흐릿하게 보인다는 건 이미 일섬이 지나간 다음이라는 뜻.
반사적으로 반 보를 물러선 뒤, 하마터면 진은 저도 모르게 목을 만져볼 뻔했다.
재능 혹은 성취.
둘 중 하나라도 충분치 않았다면 손을 들어 목을 만졌을 터였다.
베였는지, 간발의 차로 피했는지를 확인하다가 그 틈에 치명타를 허용했을 것이다.
그러는 대신 진은 오히려 반격을 위해 검을 뻗었다.
바르톤의 공격이 진의 목젖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듯, 시그문드도 그의 뺨 옆을 스쳤다.
두 검이 서로를 향해 교차되기도 전에 그들 사이에 하나 더 날카로운 빛이 번졌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떨어지는 대검 볼가르였다.
세 자루의 검이 소용돌이를 그렸다. 검들이 부딪히며 1초에도 십여 회의 파열음이 겹쳐 울렸다.
멀찍이 떨어져 검진을 펼치고 있는 수호기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최소 8성으로 구성된 무인들임에도 함부로 전투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검술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었다.
몸이 버티질 못했다. 룬칸델의 축복받은 육체, 혹은 한계에 이른 강체. 그런 요소 없이는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충격파에 수천 개의 표창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핏, 시익,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작은 소음이 일 때마다 세 사람의 몸 어딘가 생채기가 남았다.
카아아악-!
디푸스가 괴성을 내지르며 보법을 밟았다.
그러자 대검 볼가르에 맺힌 오러의 결정들이 더욱 밝은 빛을 발했는데, 바르톤은 처음부터 계속 그것을 의식한 듯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 이어졌다.
코젝에 쏟지 않은 오러가 빛을 발할 때였다.
디푸스가 준비한 것은, 룬칸델의 제6결전기.
전광
볼가르에 맺혀있던 오러의 결정들이 깨졌다.
결정이 유리 파편처럼 흩어지자 수백 개의 조각 사이사이에 오러가 흘렀다.
키지직!
뇌기가 번지는 것 같은 강렬한 소음이 일었고, 눈부신 빛이 꺼졌다 퍼지기를 빠르게 반복하고 있었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대검의 궤적이 바뀌었다.
불규칙한 형태의 오러 때문에 검신의 길이가 시시때때로 바뀌었고, 깨진 결정들이 대검과 함께 춤을 추는 형상이 이어졌다.
“큽!”
바르톤이 몸을 회전시키며 대검을 쳐냈다. 온전히 쳐낸 듯 보였는데도 갑옷이 찢기고 선혈이 튀었다.
대검에 붙어 다발을 이루고 있는 오러에 당한 것이다.
처음 대검 볼가르에 결정이 맺힌 순간부터 의식하고 있었기에 그 정도 피해만 입었다. 전광의 형태를 몰랐다면 바르톤이라 할지라도 중상을 면하긴 어려웠을 터.
대검에 맺힌 오러의 다발은 뇌기와 거의 흡사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진짜 뇌기가 아니라 오러였고, 명왕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룬칸델 제6결전기 전광은 명왕검을 본떠서 만든 기술이라는 사실을.
공교로운 일이었다.
전광은 진이 펼치려는 ‘명왕검 절기 천둥날’에서 파생된 기술인 것이다.
프즈즈즉-!
시그문드가 광심장의 뇌기를 머금었다.
대검 볼가르에 맺혔던 것과 비슷한 결정들이 창백한 검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게, 막내가 사용한다는 그 뇌기인가? 어째서 전광과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거지?’
‘제드를 제외한 원로 전원이 결전기 전수를 거부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수로 전광을 익힌 것인가?’
디푸스와 바르톤이 동시에 생각했다. 진이 두 사람 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술을 펼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달랐다.
전광이 단지 대검의 공격 반경을 늘리고, 궤적을 비틀고, 타점을 확장시킨 것에 그쳤다면.
천둥날은 흐르는 뇌기로 이루어진 수십 개의 ‘칼날’을 형성했다.
피지짓, 지이이익-!
허공을 가득 채운 푸른 칼날들이 바르톤을 향하고 있었다.
그 칼날들은 점등하고 있어 움직임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카아아악!”
악을 쓰며 장검을 휘두르는 바르톤.
망토는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찢어진 갑옷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천둥날과 전광을 동시에 쳐내느라, 그는 거의 새하얀 구체처럼 보였다. 장검이 그만큼 빠르게 사방을 쳐내고 있었다.
공격을 퍼붓는 진과 디푸스도 필사적이었다.
언뜻 바르톤은 방어 일변도로 보였으나 한 번만 틈을 보이면 반격이 날아들 터였다.
계속 허공에 피가 쏟아졌다.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고, 뒤섞이는 검 사이로 튄 피는 채 1초가 지나기 전에 증발해서 사라졌다.
충격파에 일그러진 공간 사이로 손가락 하나가 튀었다.
바르톤의 검지였다.
그러나 바르톤의 기세는 약해질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더 사납고 빨라진 검에 진과 디푸스가 일순 뒷걸음질을 쳤다.
아깝다.
디푸스의 뇌리에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필이면 이토록 대단한 무인이 룬칸델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지플이 무엇을 약속했기에 바르톤이 배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말이다. 처음엔 그저 죽이고 싶었으나 검을 맞대보니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면 진은 아깝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약한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추악한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10성이 아니라 더한 무력을 지녔을지라도, 바르톤 같은 인물은 룬칸델에 필요치 않았다.
프하악-!
디푸스의 대검이 바르톤의 가슴팍을 베었다. 깊고 큰 절상에 갈빗대가 부러져 내장을 찔렀고, 바르톤은 피를 토하면서도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움직임도 여전했다. 도저히 그만한 부상을 입은 인간이라곤 믿을 수 없었으나 진과 디푸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제 그의 목숨을 거둘 차례라고.
‘슬슬 끝내야겠어.’
진이 물러나자 디푸스도 거리를 벌렸다.
잠시 공방이 멈췄다.
방금까지 맹렬했던 저항이 전부 거짓말 같았다. 바르톤은 석상처럼 서서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
바르톤은 사실 아까 전부터 시야를 잃은 상태였다. 출혈 때문에 눈이 어두워진 와중에도 두 사람의 공격을 계속 쳐내고 있던 것이다.
시그문드가 한 번 더 뇌기를 방출했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천둥날들이 진에게로 집결했다. 뇌기로 이루어진 수십 자루의 검이 진의 등 뒤에 떠서 바르톤을 겨냥하고 있었다.
디푸스의 전광도 비슷한 모습을 취했다. 양쪽에서 겨눠진 칼날과 다발이 백여 자루에 근접했다.
파직거리는 소음 속에서 바르톤의 거친 숨소리가 도드라졌다.
“바르톤 비체나.”
바르톤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구멍으로 피가 역류해서 겨우 헐떡거리는 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었다.
눈이 멀고 발이 굳었어도 여전히 반경 20미터 정도는 바르톤의 공격권이었다. 바꿔 말하면, 20미터만 벗어나면 그에게 절대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지플은 네게 영생과 최강의 힘,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를 약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넌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와 근거를 두 눈을 직접 목도했겠지.”
천둥날과 전광의 기운이 점점 더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두 기운은 이제 깜빡이지 않고 활활 불타오르기만 했다.
“아마 마신석일 것 같군. 그 요상한 물건에 죽은 자가 부활하고, 엄청난 힘을 얻는 걸 나 역시 직접 본 적이 있거든. 누구라도 혹할 만한 불가사의한 힘이었지.”
그 말에 디푸스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그는 마신석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4기수 이상만 확인 가능한 기밀 문서에서도 발견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르톤, 그거 아나? 난 이미 마신석이 룬칸델의 검에 부서지는 것 또한 경험한 적이 있다.”
바르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 없다. 그것을 감히 인간이 부수는 건 불가능해.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입으로 나오는 것은 검은 피가 전부였다.
바르톤이 목도한 것과 진이 경험한 것은 ‘다른 마신석’이었으니 그로서는 파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도 그 물건의 존재를 알고 계시더군. 그러니 무엇도 꿈꾸지 마라. 오늘 네놈이 맞이하는 죽음은 완전한 것이다. 부활, 영생, 그런 허망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
시그문드를 내지르기 직전, 진이 무언가 생각난 듯 뒷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지옥이라는 곳 역시 실존하더군. 얼핏 엿본 그 풍경이 네놈에게 꽤 어울렸던 걸로 기억하니, 잘 지내길 빌어주지.”
쉬이이익-!
시그문드가 허공을 가르자 천둥날들이 일제히 앞으로 쏘아졌다.
디푸스의 전광도 바르톤을 향해 쇄도하며 잔상을 남기는 모습.
짧고 격렬한 마지막 저항이 시작되었다.
단 1초 사이에 쏟아진 백여 개의 칼날과 다발 중, 바르톤은 무려 절반을 쳐내는 괴력을 보였으나.
나머지 절반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피와 살점, 내장, 뼈가 튀는 건조한 소리가 기수와 기사들 사이를 떠돌았다.
이윽고 바르톤의 몸이 완전히 분해되자 진은 천천히 그가 서 있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몸과 갑옷, 모든 것이 다 파괴되었건만. 어째서인지 흑기사의 상징인 검은 투구는 거의 멀쩡한 모습으로 바닥에 놓여있는 모습.
진이 그 투구를 챙기며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임무 완료, 전원 복귀한다.”
“충!”
기사들이 검례를 올렸다. 디푸스는 기사들이 자신이 아니라 12기수인 막내에게 검례를 올린 사실이 못마땅했으나,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진이 아니었으면 성공할 수 없었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