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33)
제 333화
104화. 빚과 빚과 빚(1)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
그 말이 무색하게, 영기의 아공간 바깥으로 나온 순간.
진은 ‘살아있는 르엣 다미로 율’과 나눈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그녀의 생김새, 입고 있던 옷, 붉은 머리칼, 목소리, 그 밖의 모든 것을.
심지어 이미 아공간 안에서 이틀이 흘러버렸다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렸다. 그건 기록 속의 르엣이 아니라, 잊힌 르엣이 알려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깥은 여전히 해변, 신비롭고 쓸쓸한 보랏빛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진은 잠시간 멍하게 그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세 번째 무덤에 들어서서…… 누군가를 만나긴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그냥 옛 폭풍성의 모습만 확인했었나?’
묘한 괴리감에 기분이 석연찮았다.
‘그리고 전투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이 구토감은 대체 뭐지? 아니면 너무 큰 전투를 치러서 기억과 몸이 어떻게 된 건가?’
그럴 리가 없건만, 한계까지 몸을 쓰기라도 한 듯 속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있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이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해졌고 식은땀도 흘렀다.
후우.
진이 호흡을 고르며 아공간 안에서 겪은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아공간 속은 옛 폭풍성을 재현한 듯 보였고, 나는 언제나처럼 기록 장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 기록 장치를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누군가 손으로 건네준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이 어떤 작은 함을 열어 찾은 것 같기도 했고, 그냥 무덤에 들어서자 저절로 작동된 것 같기도 했다.
‘네루 님은 분명 안에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 지난 천 년 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해주라고 했는데.’
그가 누구였나. 그는 안에 없었나?
의문이 꼬리를 물어가는 와중, ‘기록 장치로 확인한’ 옛 룬칸델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테마르, 집사장 르엣 다미로 율, 십대기사들, 수척한 얼굴로 잊혀져가는 요정족의 역사를 기록하던 집사와 문사들…….
그중, 이상하게.
르엣 다미로 율이라는 요정족을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분명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임에도, 그립고 씁쓸한 감정이 일기도 했다.
진은 기록 속의 르엣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
기록 장치 속 옛 룬칸델을 떠올리다가, 잊고 있던 문제가 생각났다.
‘작은 수인들, 빨리 그들을 구해주러 가야 한다!’
어디선가.
불길한 재 냄새가 났다. 분명 이 아름다운 묘인족의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땐 맡지 못한 냄새였다.
결코 불을 피워 무언가를 조리하거나 몸을 데우는 냄새가 아니었다. 홱, 고개를 돌린 진이 헛숨을 삼켰다.
해변 뒤쪽의 숲이 불타고 있었다.
지금껏 진을 제외하면 인간은 단 한 번도 출입한 적 없는, 신비의 해변이 화마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공간을 빠져나왔음에도 묘인족 네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네루 님!”
소리치며 달리려는 찰나, 저 멀리 네루의 모습이 보였다.
“네루 님, 괜찮으십니까?”
[으…… 진, 룬칸델.]네루는 온몸의 털이 땀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설마 벌써 공격당한 겁니까?”
[……네가 테마르의 무덤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곳이 발각되었어.]진이 무덤으로 들어서고 채 다섯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비밀 거처는 그때부터 공격당하기 시작했고, 네루를 비롯한 묘인족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발각되었을 때, 미리 직감을 느끼고 도망쳤어야 했다. 실제로 묘인족들은 적들이 침공을 시작하기 세 시간 전부터 강렬한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묘인족들은 도망칠 수 없었다.
자신들이 도망치면 테마르의 무덤이 발각되는 건 물론이고.
솔더렛 천 년의 계약자마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진이 안에 있을 때 테마르의 무덤이 공격에 무너지기라도 하면, 진은 영영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묘인족들은 공격을 막기 위해 과거 고양이의 신이 하사한 자신들의 신물을 대부분 사용해버렸다.
시간을 벌기 위해 수천 년을 지켜온 신물로 결계를 펼쳤지만.
네루는 그 사실을 진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가 알아봤자 부채감만 생길 것이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대체 어떤 놈들입니까?”
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플.]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조슈아의 룬칸델이나 지플, 킨젤로. 셋 중 하나일 것이라 예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잘 들어, 진 룬칸델. 지금부터 저쪽 해변으로 쉬지 말고 달려. 루루라는 묘인족을 만날 때까지. 그럼 루루가 널 안전한 곳으로 보내줄 거야.]“저더러 혼자 도망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최선이야.]“네루 님과 묘인족들, 그리고 작은 수인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가 빠져나가고 나면, 도망칠 수 있습니까?”
대답하지 못하는 네루.
“차라리 제가 시간을 벌 테니, 묘인족들이 작은 수인들을 데리고 대피하십시오.”
[지플, 그자들에겐 너희들의 흑기사처럼. 망령대라는 최정예 마법사 부대가 있어. 그중 다섯이 우리들을 습격했고. 네가 강한 건 나도 알고 있지만, 그자들을 상대로 시간을 벌 수는 없어.]망령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진의 얼굴이 굳었다.
예비 기수 시절, 진은 그자들의 가공할 무위를 체험한 바 있었다.
‘묘인족과 작은 수인들을 잡고, 내 사업체를 공격하겠다고 그 비밀 최정예 부대를 보냈다는 말인가?’
네루의 유추에 의하면 지플이 작은 수인들을 치는 이유는 화장품 사업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대목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플에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화장품 사업이 앞으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룬칸델의 영향력을 얼마나 높일지를 꿰뚫어본 자가 있는 거다. 혹은…….’
이곳에 테마르의 세 번째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거나.
어느 쪽이든 망령대가 찾아왔다는 끔찍한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이제 우리의 결계도 한계야. 네가 무덤에 들어가고 벌써 이틀이 흘렀다.]“뭐, 이틀이라고요?”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시간이 그렇게 흘렀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세 번째 무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고, 시간은 이틀이나 흘러버렸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래, 앞으로 한 시간. 그 이상은 절대로 버틸 수 없어. 그러니, 어서 도망쳐.]까득!
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작은 수인들이 너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라면, 우리가 최대한 살려볼게. 아직은 그들도 결계 안에 있으니, 한 시간은 안전해.]“놈들의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우리의 비밀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가 그 동굴 말고 다른 곳에도 몇 개 있어. 놈들은 지금 입구마다 있는 결계를 깨는 중인데,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는 파악이 안 돼. 그러나 확실한 건, 동굴엔 모든 입구가 연결되어 있으니 결국 그곳으로 모인다는 거야.]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네루와 묘인족들은 자신들이 희생하는 대신, 작은 수인들을 지키려는 계획이라고.
정확했다.
실제로 묘인족들은 하나 남은 신물을 이용해 작은 수인들을 대피시키고, 자신들은 이 자리에서 죽을 각오를 끝마친 상태였다.
진이 무덤 안에 있는 동안엔 그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물로 만든 결계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적들이 이곳을 통해 동굴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았다.
동굴에 있는 작은 수인들도 자신들이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해변과 함께 동굴에 발동된 결계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다 구할 수는 있는 겁니까?”
[솔직히, 전부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애초에 망령대 다섯을 상대로 이틀을 버텼고, 작은 수인들까지 일부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진은 자신이 도망쳐도 모두가 다 살아남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물러날 수 없었다.
이런 순간에 누군가를 방패 삼아 도망치기 위해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물론, 공명심이나 어쭙잖은 정의감으로만 움직여서는 안 된다. 개죽음을 당할 생각도 없었다.
“전 이미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망령대를 상대로 시간을 끌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 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천 년의 약속을 지킨 것이 물거품이 돼.]“아무런 수도 없이, 그저 작은 수인들이 죽는 게 싫어서 싸우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놈들과 전투를 시작하면, 반드시 제 가문이나 킨젤로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네가 싸우고 있다는 걸 룬칸델과 킨젤로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이지?]“영기와 뇌기를 사용하는 마검사는 세상에 저 하나뿐이니까요. 그리고 전 룬칸델의 기수고, 쟌 왕국은 휴페스터의 영지입니다. 게다가 수인들의 땅은 킨젤로의 영역이니, 그들이 참전할 명분은 충분합니다.”
동굴 인근에서 진이 망령대와 전투를 벌인다면 룬칸델과 킨젤로가 가만히 있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진은 최대한 화려하게 망령대와 전투를 벌여서, 두 세력이 참전하도록 유도할 계획이었다.
‘관건은 내가 망령대 다섯을 상대로, 가문과 킨젤로에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다. 그것도 작은 수인들을 지키면서.’
하지만 버티기만 한다면 모두를 구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지플이라 할지라도, 다른 거대 세력들의 영토 한가운데서 활개를 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문의 기사들이 오면 벨롭을 변장시킨 건 의미를 잃게 된다. 근신 중 제대로 사고를 친 셈이니, 호민회장이 막아주고 있는 징계 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겠군.’
하지만 그게 작은 수인들 모두가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운이 잘 따른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만일 룬칸델과 킨젤로가 전장을 찾아오지 않는다면?]“어떻게든 도망쳐서 살아남겠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저를 위해 희생한 천 년이 헛될 일은 없을 겁니다.”
[작은 수인들에게 그렇게까지 의리를 지키려는 이유가 뭐야?]“예전에 팽이가 그런 말을 해주더군요. 작은 수인들 사이에서, 묘인족의 호감을 얻은 자는 이유와 종족을 불문하고 무조건 환대가 원칙이라고.”
[그건 그냥 작은 수인들이 자기들끼리 만든…….]“하지만 전 네루 님을 만나기 전부터 늘 작은 수인들에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목숨을 빚지기도 했고요. 그게 제가 의리를 지키려는 이유입니다. 이제 막 시작한 사업체가 망하는 꼴을 볼 수도 없고.”
네루가 진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듯이, 쟌 왕국은 룬칸델의 땅입니다. 그건 곧 나의 땅이라는 뜻이고, 이곳에서 도망치는 건. 제가 룬칸델의 기수일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