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34)
제 333화
104화. 빚과 빚과 빚(2)
네루가 고민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그라고 작은 수인들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보다도 더욱 구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네루와 묘인족들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이내 결심한 듯, 네루가 진과 눈을 맞췄다.
[……좋아. 하지만 네가 한 말은 지켜. 죽을 것 같으면,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옥을 꺼냈다.
[먀!]소환된 슈리가 경쾌한 울음소릴 내며 진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자 네루의 눈동자가 커졌다.
[맙소사 이 녀석은, 마녀 헬루람의 고양이잖아!?]“알아보시는군요.”
[인간 세계의 소식지에 네가 적옥묘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적혀있다는 것은 들어보았는데, 그게 설마 슈리였을 줄이야……!] [먀, 먀먀먀, 먀먕? 먀!]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슈리도 네루를 알아보는 기색이었다. 심지어 둘은 꽤 친근한 사이인 듯 서로의 코를 맞대기까지 했다.
냥냥, 먀, 먀, 냥…….
둘은 잠시간 진이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기색이었다. 일순 그 모습이 귀여워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무색해졌다.
네루는 슈리와 대화하는 동안 쉴 새 없이 표정이 변했다.
슈리가 헬루람에게 버려져 불사의 저주에 걸렸다는 이야길 들었을 땐 어두워졌고, 천 년이나 흑해의 숲에 홀로 방치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리고 진을 만나 그 숲을 떠나게 됐다는 대목에선 미소를 지었다.
네루의 표정만 그런 게 아니었다. 슈리도 커다란 눈망울이 물기로 반짝이다가 기분 좋은 듯 골골대는 소리를 냈다.
대화를 끝낸 네루가 한결 가벼운 얼굴로 진을 돌아보았다.
[슈리도 끔찍한 천 년을 보냈더군…… 진 룬칸델, 어쩌면 이 녀석이 너와 만난 것도 솔더렛의 안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이런 순간들을 위해서.] [먀아!]네루의 표정이 가벼워진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슈리가 있다면 망령대를 상대로도 진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작은 수인들을 돕는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군. 오랜만에 슈리와 이야길 더 나누고 싶지만, 일단 녀석들에게 가보는 게 좋겠어.]진이 슈리의 등으로 올랐다.
“네루 님은 여기 계실 겁니까?”
[난 결계를 유지해야 하니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어.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저쪽 해변으로 달려서 루루를 찾아가고, 안전한 곳이 아니라 동굴로 보내달라고 해.]“알겠습니다.”
진이 슈리를 이끌고 출발하려는 찰나, 네루가 슈리의 뒤꿈치를 앙증맞게 붙잡았다. 동시에 네루를 돌아보는 진과 슈리.
[고맙다, 진 룬칸델.]감사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별말씀을.”
슈리를 타고 달린 덕에 루루를 만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루루는 네루와 똑같이 생겨 자세히 살펴봐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쌍둥이였다. 네루, 루루, 미루, 그 세쌍둥이가 묘인족의 결계를 이루는 주축이었다.
[뭐, 슈리!? 이게 얼마만, 아니, 그보다 너 어떻게 살아있는…….]루루도 슈리를 보곤 네루처럼 무척 반가운 모양새였다.
하지만 진이 사정을 설명하고 동굴로 가겠다고 말하자 길게 대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슈리와 아주 짧게 인사한 후 진을 다시 묘인족의 동굴로 되돌려 보내주었다.
[네가 동굴에 도착한 다음이면, 우리가 결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 남짓일 거야. 이동 시간이 있거든. 결계가 깨지면 곧장 동굴로 놈들이 들이닥칠 테니 조심해.]* * *
망령대의 공격이 이어진 이틀 동안 동굴은 성한 곳이 단 한 곳도 남지 않았다.
이어져 있는 결계가 타격을 받을 때마다 동굴에도 지진이 일거나 내부가 진탕되고 있던 것이다.
순금을 도금한 바위들은 죄다 부서져버렸고, 물꼬리족들의 도구들도 전부 망가졌다.
작은 수인들은 천장에 급조한 그물을 치고 한데 모여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작은 수인들은 돌아온 진을 구세주처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진 룬칸델!”
“진이 왔다!”
“와, 왔. 다. 진.”
팽이와 순이, 그리고 어둠불꽃이 동시에 소리쳤다. 작은 수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진에게 닿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직 작은 수인 중엔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다. 물꼬리족이 설치한 그물 덕에 낙석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들 괜찮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묘인족을 따라가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부터 갑자기 난리가 났다고…… 동굴은 막혀버렸고!”
동굴이 막힌 건 공격 때문이 아니라 결계 때문이었다.
“지플이 묘인족의 결계를 공격하고 있어. 10분 뒤면 결계가 뚫릴 거야. 다들 도망쳐야 한다. 최대한 빨리, 반드시 필요한 것만 챙겨!”
진이 짧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플의 마법사들이 왜 이곳을 공격하는지, 묘인족이 그들을 어떻게 막고 있었는지.
자연스레 공격의 원인이 진 자신에게 있다는 내용도 전달했으나, 작은 수인들은 그를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
“괜찮, 다, 진. 우리, 치면, 돼. 도망…….”
“아유! 답답해, 야, 너네 물꼬리족은 안전해질 때까지 입 뻥긋하지 말고 도망칠 준비만 해! 거봐, 다들. 우리 화장품 사업이 엄청 터질 거라는 걸 깨달은 놈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지? 조만간 지플이나 비먼트, 킨젤로가 우리를 건들 줄 알았어!”
팽이가 주먹을 그러쥐며 말했다.
“다, 알았.”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가 너랑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율로 계약을 한 거거든. 혼자 도망치지 않고 이렇게 온 걸 보니 역시 잘한 계약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팽이는 일부러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었다.
다른 작은 수인들이 더 불안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팽이는 수인들 중 누구보다도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한 상태였다.
“결계가 무너지면 지플의 마법사들이 곧장 동굴로 들어서거나, 근처로 올 거야. 그사이 내가 시간을 벌 테니 너흰 도망쳐.”
현재 동굴 속에 있는 수인은 총 백오십여 명.
그 모두를 다 살리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망령대가 이곳을 공격한 이유, 목적 등, 아직 모든 것이 불명이기 때문이었다.
적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옳게 대응할 수 있었다.
‘테마르의 무덤에 대한 냄새를 맡았다기보다는 내 사업체를 망하게 하는 게 목적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게다가 난 작년까지 루테로 마법 연방의 1억 현상수배자였으니, 지플로서는 그런 내가 버젓이 화장품 광고를 자신들의 땅에 띄운 게 못마땅했겠지.’
못마땅한 정도가 아니었다. 광고가 시작된 이후, 지플의 원로들 대부분은 분노에 사로잡혀 아예 밤잠을 설치는 중이었다.
지플이 망령대라는 최정예 비밀 마법사부대를 파견한 배경이었다.
특히 최근 들어 지플의 원로들은 룬칸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루테로 마법 연방의 현상수배자였던 진을 기수로 만든 것도 모자라, 지플의 땅에 화장품 광고까지 하는 모양새에 부아가 치민 것이다.
따라서 동굴 습격은 충분히 명분이 있는 일이었다.
‘잘하면, 이 상황을 이용해먹을 수도 있겠어. 수인들만 무사히 구출하면…… 앞으로 가문을 내 사업체의 방패막이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즈즉! 크즉!
작은 수인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사이, 별안간 무언가 갈라지고 터지는 소음이 일었다.
묘인족의 보이지 않는 결계가 뚫리는 소리였다.
파열음이 시작된 후 허공에 난데없는 균열이 생기는 모습도 보였다. 그 균열에서부터 강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망령대의 마력이었다.
“이봐, 진. 우리 파트너! 우릴 구한 다음엔 너도 꼭 빠져나와야 해!”
스릉!
진이 시그문드를 뽑았다.
“누굴 걱정해? 결계가 깨지면 곧장 입구로 달려. 마력의 흐름을 보아하니, 결계를 깬 다음엔 놈들이 바로 동굴 내부로 떨어지는 것 같군. 가, 어서. 입구로 뛰어. 동굴을 벗어나면, 쟌 왕국을 통해 룬칸델의 보호를 요청해라. 12기수의 명이라고 하고.”
결계가 깨지면 봉쇄되어 있던 동굴 입구가 열릴 것이다.
“알겠어. 너도 살아서 돌아오기 약속이다, 알았지? 그리고 행여 너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본다는 생각은 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우리도 너와 함께 하는 일에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하기로 결정했던 거니까.”
“진, 다치지, 마, 다, 고맙!”
“다고맙이 아니라 고맙다겠지! 아이, 인사 그만하고 얼른 가자 이 물꼬리 녀석들아. 우린 있어봤자 어차피 파트너한테 방해밖에 안 된다고.”
“안미.”
“안미가 아니라 미안이거…… 됐다, 가자, 가자!”
금설족들이 물꼬리족들의 등을 떠밀었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진.
충분히 원망할 수 있음에도, 자신을 탓하지 않는 작은 수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구하러 오길 잘했다고.
작은 수인들은 진을 두고 도망치는 동안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마법에 전혀 문외한인 그들도 느낀 것이다.
결계가 깨지며 동굴 내부로 들어서는 마력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를.
‘결계 너머로 느껴지는 마력이 이 정도라…… 예상은 했지만, 정면승부로는 아예 승산이 없겠군.’
망령대 셋.
적은 룬칸델의 흑기사 셋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 터였다. 흑기사 셋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루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
지금의 진에겐 당연히 무리였다.
그럼에도 진은 기회가 한 번은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을 내렸다.
단지 시간을 끄는 것을 넘어, 망령대의 마법사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거나.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놈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망령대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동굴 내부에 진이 있다는 사실까지 예상할 수는 없었다.
물론 망령대라면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얼마든지 완벽한 대응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강한 부류라면, 얼마든지.
후우우웅……!
진의 몸에서 영기가 뻗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동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뻗어 나온 영기가 장막처럼 진을 감쌌다.
기척을 지우기 위해 펼친 영기였다. 영기에 덮인 진은 마치 동굴 벽면 곳곳에 번져있는 그림자 중 한 덩어리처럼 보였다.
중급반 시절, 마미트에서 달빛우물을 테러했던 날이 떠올랐다.
진이 지금 시도하려는 공격은 그때와 똑같은 방식이었다. 영기로 기척과 기운을 완전히 감추고, 상대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뜨리는 것.
그때는 여관방에 앉아 몇 시간이나 영기를 모았지만, 이제는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특히 이렇게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라면 더더욱.
크지직, 쩌적……!
결계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리고 영기의 장막 속에서 작은 불씨가 번졌다.
그 불씨가 바로 진이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 이유였다.
망령대라 할지라도 결계와 영기의 장막 너머에 있는 그 작은 불씨의 마력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게 룬칸델 마검비기 업화의 발화점이라는 사실도.
‘놈들이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끝낸다. 업화를 기습으로 직격당하면, 망령대라 해도 무사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