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35)
제 333화
104화. 빚과 빚과 빚(3)
이제 결계의 균열은 거의 다 벌어져서 건너편의 차원이 보이고 있었다. 그곳도 묘인족의 비밀 공간 중 하나였다.
아직 망령대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늦게 깨져라……!’
다급하게 펼친 탓에 아직 업화를 완성하지 못했다.
망령대가 업화가 완성되기 전 5초, 아니. 3초만 빠르게 동굴로 진입해도 먼저 공격당하는 쪽은 자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패배였다. 적이 9성 중, 후반에 이른 마법사 셋이라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그만한 실력자들에게 3초란 상대를 열 번도 더 죽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지금의 진처럼 결전기를 펼치느라 무방비한 상태로 놓였다면 더더욱.
집중해야 했다. 이런 순간에 평정심을 잃지 않는 건 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다.
영기의 장막 속에서 진의 두 눈동자가 화염에 물들어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두운 장막 속에서 진의 몸에서 뻗어진 불길이 일렁였다.
그 불길들은 꼭 헐렁한 족쇄에 묶인 사나운 짐승처럼 보였다. 언제든 진이 원하는 순간 장막을 걷어내기만 하면, 사방으로 뻗쳐서 적들을 불태울 것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스스로의 심장 박동이 거대하게 느껴지는 와중, 업화를 펼치기 위한 마력은 유연하고 강하게 진의 온몸에 새겨진 룬 문자를 타고 흘렀다.
망령대의 마력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다.
대체 결계를 깨는 일에 얼마나 많은 마력을 쏟고 있는 중인지, 장막 안쪽에서도 얼굴이 찌릿찌릿할 정도였다.
화르륵, 화륵, 크저적……!
진의 불이 번지는 소리와 결계가 깨지는 파열음이 마구잡이로 뒤섞여갔다.
쩌엉-!
결계의 균열이 깨지며 머릿속을 울리는 굉음이 일었다.
‘온다!’
이윽고 망령대가 드러났다. 영기의 장막과 결계가 일그러뜨린 공간에 가려 흐릿한 인영만이 보였다.
회색 로브를 입은 지플의 최정예 괴물, 진이 검을 쥔 손아귀를 꽉 그러쥐었다.
다행히도.
완성되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불은 우선 진의 몸을 뒤덮었다. 그리곤 스며들며 진을 불 그 자체로 만들어갔다. 불타고 있던 눈동자엔 한층 더 맹렬한 빛이 깃들었고, 머리카락마저 타오르는 불이 되었다.
‘그때의 빚을 갚아주마, 망령대.’
베라딘의 별장에서 미샤만 남기고 도망쳤던 그날을, 진은 기수가 된 이후에도 종종 생각하곤 했었다.
자신이 더 강했다면 미샤와 함께 싸울 수 있었으리라고.
망령대 15인을 상대로 룬칸델의 예비 기수가 도망친 건 절대로 굴욕적인 행위가 아니나, 진은 그날을 떠올리면 치욕스럽다는 기분이 되었다.
그 기분을 지울 때였다.
룬칸델 마검 비기
업화 – 사라 룬칸델
사라로부터 이 마검 비기를 전승받았을 때.
진은 ‘업화’라는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
지금껏 지플이 저질러온 악행을 돌아보면, 놈들을 불태우는 일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 같았다.
콰아아아……!
날카로운 불들이 장막을 찢고 바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망령대는 결계를 넘어오자마자 그 불을 마주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흡!”
망령대 하나가 기겁하며 보호막을 펼쳤다. 그그그그극! 불길에 휩싸인 보호막이 불안정하게 진동하는 모습.
망령대의 보호막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얼핏 보면 업화의 힘을 견디지 못하는 듯 보였으나, 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걸 영창도 제대로 끝내지 않은 보호막으로 버텨?’
세상에 그게 가능한 마법사는 정말로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망령대는 방금까지 결계를 뚫느라 대량의 마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물론, 업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카아아아-!
진이 괴성을 내지르며 오러와 마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직 남은 영기의 장막을 완전히 없애버리며 그 속에 묶여있던 불들을 해방시켰다.
문자 그대로 해일처럼 불이 번졌다. 동굴 속이 불타는 지옥의 마경으로 변한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고, 망령대의 보호막은 통째로 불길에 삼켜져 마력의 빛깔이 보이지도 않았다.
동굴 내부의 암석들이 녹아내렸다.
마검 비기 업화는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투신 반의 명왕군림검을 닮아있었다.
뇌기 대신 화기가 사방을 뒤덮어 불의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 속에선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은 숨조차 쉴 수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실제로 천 년 전, 사라의 마검이 완성된 것엔 테마르의 조언이 가장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테마르의 조언은 반의 명왕군림검을 참고해 비롯된 것이었다.
동굴을 가득 채운 그 모든 불이 망령대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망령대 마법사가 당혹에 젖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진으로서는 무척 감미롭게 들을 수밖에 없는 목소리였다.
비록 습격이라곤 하나, 망령대 셋을 상대로 업화가 통한다는 사실에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성장을 절감한다는 건 언제나 희열을 동반하는 법이다.
‘이것까지 보호막으로 어쩔 수는 없을 거다.’
화륵!
온통 시뻘건 불길이 가득한 가운데, 단 하나의 푸른 점이 번졌다.
업화는 본래 불사조의 힘을 더해 펼치는 무공.
두 번째 무덤에서의 사라는 수호자였던 만큼 불사조 마니에르를 사용하지 못했으나, 진에겐 테스가 있었다.
가아아악-!
한 점의 푸른 불꽃이 화염계의 차원을 열자,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포효와 함께 불사조들의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화와 중압, 테스를 상징하는 힘.
업화에 그 힘이 더해지자 망령대 마법사가 이번엔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신음이 들린 순간, 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죽일 수 있다고.
무인의 오러 보호막이나 검막도 그런 편이지만, 특히 마법사의 보호막은 한 번 뚫리면 ‘다음’이라는 걸 붙잡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들은 경지에 이른 무인들처럼 고강한 육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체에 직접적인 타격이 시작되면, 마법사의 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승기를 잡은 것이다.
‘이제 어떻게든 몸이 불타는 걸 막기 위해 무리하게 마력을 운용하다가, 역류에 빠질 터.’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절대적인 명제와 마찬가지로, 무리한 마력 운용은 반드시 역류로 이어졌다. 망령대라 할지라도 그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은 망령대가 마력 역류를 매우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리라 상정했다.
‘역류 제어 능력이 스승만큼은 아닐 테지만, 망령대 정도라면 역류 초기 증세 이후 5초 내에 마력을 안정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놈들이 역류를 붙잡기 전에 목을 벤다.
빠르게 결론을 내린 진이 불길 사이로 망령대 마법사들의 모습을 찾았다. 진은 그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인영만 보았을 뿐, 회색 로브조차 제대로 두 눈에 담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망령대에게서 뿜어지는 기운과 인영만으로 그들의 위치를 짐작하고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역류 때문에 놈들의 기운이 잦아드는 한 순간, 그때 파고들어서 끝을 내야겠군. 내게도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진도 아슬아슬하게 역류가 올 수도 있는 상태였다. 이토록 큰 기술을 갑자기, 그것도 영기의 장막과 더불어 펼쳤으니 사실 역류가 오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진의 편이었다.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망령대의 마력이 확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결계를 뚫고도 얼굴을 찌릿찌릿하게 만들던 망령대의 기운이, 일순 평범한 마법사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역류가 시작된 결과였다.
진이 불길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테스가 그의 앞으로 한 차례 숨결을 토해 중압의 불길을 토하자, 업화의 불길이 부드럽게 밀려나며 길이 형성되었다.
성큼성큼, 진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망령대가 불길 사이로 몸을 숨겼다.
“차라리 움직이지 말지 그랬나.”
씨이익-!
진이 인기척이 느껴진 쪽으로 검기를 쏘며 말했다.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써걱!
검기를 타고 살과 뼈가 베이는 확실한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망령대는 필사적으로 신음을 삼켰으나, 딱히 의미를 가질 순 없는 행동이었다.
이미 위치가 노출되었고, 싸움은 끝난 것이다.
휘익!
진이 화염에 물든 안광을 빛내며 검기를 쏜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승기는 확실하게 잡았지만, 세 놈이니 시간 끌지 말고 빠르게 끝내야 한다.’
망령대가 마력 역류를 억누르는 시간, 5초. 그 안에 반드시 셋을 전부 해치울 필요가 있었다.
푹!
시그문드의 칼날이 망령대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컥!”
단말마의 비명이 전부였다. 마법사는 그대로 시그문드에 둘러진 화기에 휩쓸려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지플 최정예 비밀 마법사의 최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죽음이었다.
그만큼 진이 대단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루나를 제외하면, 그 어떤 형제를 데려다 놓아도 똑같은 상황에서 이런 결과를 낼 수는 없었다.
기습엔 장사가 없다 할지라도, 상대는 망령대였으니까.
‘이제 나머지 두 놈.’
훅, 진이 짧게 호흡을 골랐다. 불에 물든 몸이 슬슬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는데, 곧 역류가 시작될 것 같았다.
남은 시간은 3초.
불길 속에서 역류에 빠진 대마법사 두 명을 찾아내고, 목을 떨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다시 이동을 시작하려는 순간. 진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한 명을 죽였을 뿐인데,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망령대의 마력이 모조리 다 사라졌다.’
빠르게 불길 속을 뒤져보았다.
어째서인지, 죽은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망령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지? 결계로 다시 들어갔을 리는 없고, 꼭 그 강대했던 마력이 죽은 망령대 한 사람의 것이었던 것 같…….’
우뚝, 걸음을 멈추는 진.
‘설마, 셋의 마력을 합친 것이 아니었다고……!?’
진이 죽인 것은, 세 명의 망령대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나머지 둘은 아직도 다른 묘인족 비밀 거처의 결계를 뚫고, 이제 막 동굴로 진입하고 있었다.
진은 자신이 업화로 기습해 죽인 망령대 한 사람의 마력을, 세 사람의 것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고오오오……!
별안간 깨진 결계 너머에서부터 또 한 번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에 고개를 돌리자, 나머지 두 명의 망령대가 깨진 결계를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미친…….’
그 두 사람은 방금 죽은 망령대와 달리, 이미 결계 너머에서부터 동굴 내부에 업화의 불길이 펼쳐져 있다는 걸 확인한 상태였다.
업화의 기운과 존재감이 영기의 장막으로 가려져 있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 로카이가 당한 모양인데. 여기, 녀석의 지팡이다.”
“불이 사그라지고 있다. 로카이를 죽인 놈 역시 멀쩡한 상태는 아닐 거다, 멀리 떠나지도 못했을 거고. 벌레 같은 수인들을 추적하기 전에, 그놈부터 쫓…….”
진과 망령대 마법사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을 필요는 없겠군, 진 룬칸델. 네놈이 로카이를 죽였구나.”
회색 후드 속, 망령대 마법사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