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63)
제 333화
111화. 흔적(4)
* * *
1799년 9월 19일, 키켄 제후국 남서부의 여관 두꺼비집.
발레리아는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채 로비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지팡이는 창인 것처럼 천으로 싸서 비스듬히 세워두었는데, 영락없이 수행 중인 풋내기 모험가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여관 벽면에 걸린 한 전단에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 있었다.
(진 룬칸델은 말했죠. 아름다움, 그것은 당신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금팽이 색조 화장의 놀라운 연출에 몸을 맡겨보세요.)
민망한 광고 문구는 제쳐두더라도(그러나 금팽이 상단의 광고는 매번 엄청난 흥행을 하고 있었다), 이런 작은 도시까지 전단이 붙어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낮에 혼자 맥주를 시켜놓고 그렇게 차가운 얼굴로 광고 전단이나 보는 용병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걸. 다음부터는 설정을 좀 바꾸는 걸 추천하지. 요리도 잔뜩 시키고, 용병들 보는 잡지도 하나 앞에 두면 딱 좋겠어.”
진이 그녀의 앞에 자리를 잡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거, 진짜로 네가 한 말인가?”
“당신의 또 다른 이름 어쩌고 하는 거? 설마.”
몇 장이나 연달아 붙어있는 광고 전단 앞에 진 본인이 있음에도,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진이 메뉴판을 펼치며 자연스레 주인장을 불렀다. 그리곤 이것저것 잔뜩 요리를 주문했다.
“고추랑 양파를 잔뜩 넣은 양고기 찜이랑, 소 내장 스튜. 이건 후추 좀 넉넉히.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진이 아차, 발레리아의 분위기를 살폈다.
‘나도 모르게 전생에 함께 다니던 시절 자주 먹던 메뉴들을 말했군. 스승에게 맞춰 먹다 보니 나도 입맛이 좀 바뀌었었지.’
다행히 발레리아는 달리 반응이 없었다.
‘하긴, 어느 여관을 가도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니.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겠지.’
하지만 발레리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추, 양파 듬뿍에 후추 많이. 뭔데 이렇게 정확해? 아주 특이한 건 아니니, 그렇게 먹는 사람들이 종종 있긴 하겠지만.’
발레리아가 그 입맛에 길들여진 것은 회색부엉이 용병단 시절이었다. 문득 그들을 떠올린 발레리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 가끔…… 진 룬칸델이 나를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발레리아는 그 메뉴들을 타인과 먹는 게 무척 오랜만이었는데, 그리 싫지 않은 기분이라 생각했다. 아주 좋지도 않지만 말이다.
실컷 배를 채웠다. 평범한 용병 2인조를 연출하기 위해 괜히 의뢰나 용병이라는 삶의 장래에 대해 떠들어대면서.
“고생 많았다, 아리아 아울하트. 대단하군, 묘인족을 3개월 만에 찾아내다니.”
여관을 나서서 말을 구하고, 완타라모로 향하는 한적한 길에 들어서자 진이 입을 열었다.
“아직 완전히 찾은 건 아니고, 편지에 적었듯 흔적만 발견한 거야. 완타라모 숲으로 이어지는.”
고개를 끄덕이는 진.
저기, 사실 나는 완타라모 숲이 평범한 숲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라. 지명조차 이번에 처음 들었어.
그렇게 말하려는 찰나 발레리아가 뒷말을 이었다.
“게다가 묘인족이 일부러 남기지 않았다면,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을 거다.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지.”
“묘인족이 일부러 흔적을 남겼다고?”
“그래.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한 달쯤 전에 눈치를 챈 모양인데, 그때부터 수수께끼를 하듯 은근히 메시지를 주더군.”
묘인족은 발레리아가 완타라모 숲으로 오기를 유도하고 있었다.
‘추적자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정도라면, 적어도 그때 다들 몰살당하지는 않았어…….’
세 번째 무덤을 찾았을 때, 그들에게 동굴 결계를 맡겨두고 혼자 떠나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쇳덩이가 얹힌 듯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묘인족의 결계가 꽤 재밌긴 하더군. 너나, 그것들이나. 생각보다 애를 먹이는 것들밖에 없구나.
당시 묘인족의 결계를 깨고 동굴 내부로 들어섰던 망령대가 했던 말.
진은 그 말을 듣고도 망령대에게 묘인족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었다.
행여 괜한 약점을 잡히거나, 놈들과 심리전을 할 만한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베락트가 등장하고, 숲을 벗어나며 조우한 또 다른 망령대들에게도 묘인족의 생사를 묻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남아있던 것이다.
“웬만하면 그들을 직접 만난 다음에 네게 연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완타라모 숲이라 그들이 호감을 갖고 있는 인물을 대동할 필요가 있었어. 그들이 날 제거하기로 판단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제거?”
진의 물음에 발레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완타라모 숲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거냐?”
“어. 모르는데.”
“그럼 왜 아는 척을 했어?”
“내가 언제……?”
“했잖아.”
“아니지, 난 아까 솔직하게 대답하려고 했다. 네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
피식.
발레리아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사실, 시험해본 거다. 룬칸델의 기수들의 정보력이 조금 궁금했거든. 완타라모 숲은 적어도 하위 기수에겐 허용되지 않는 정보인가 보군.”
큰 문제까진 아니지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괜찮아. 그 숲이 대체 뭔데?”
“완타라모 숲은 몰라도, 가왕주는 들어보았겠지?”
“마셔본 적도 있다. 아버지께서 주셨지.”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널 미움 받는 막내로 알고 있을 텐데, 사랑받는 자식이었군. 시론 룬칸델이 가왕주를 하사할 정도라니. 완타라모 숲은 그 가왕주를 빚는 땅이다.”
그때서야 진은 왜 카시미르가 어릴 적, 비먼트의 전대 황제와 대신들이 완타라모 숲과의 협상을 운운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가왕주.
특별한 날,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사람을 위해 빚는 술.
가왕주를 빚을 수 있는 건 세상에 오직 단 한 종족뿐이었다.
‘요정족의 후예들이 있는 숲이었군.’
완타라모 숲에 요정족의 후예들이 기거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열두 번째라곤 하지만, 룬칸델의 기수인 진은 물론이고 수천 년을 살아온 용들조차 대부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세상의 정점에 서 있는, 혹은 정점에 가까운 권력자와 측근들. 혹은 세상의 여러 비밀을 들춰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완타라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완타라모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는 했다.
완타라모 숲은 권력자들의 ‘공공재’이기 때문이었다. 행여 쓸데없는 자들에게 완타라모에 대한 이야기를 흘렸다가 숲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다 함께 손해를 보는 것이다.
“진 룬칸델.”
“응.”
“저번에 네 기록을 엿보면서, 난 요정족이 우리 가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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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 기록 장치를 복원시키기 위한 조사와 묘인족 수색과 더불어, 그 기록 속 문장들은 줄곧 발레리아의 큰 화두였다.
“또 너는 묘인족들의 은신처에서, 고대 요정족들이 히스터의 기록 마법과 비슷한 능력을 쓴다는 걸 보았다고도 했어.”
“그랬지.”
“그래서 묘인족을 찾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정족의 후예들이 빚는 가왕주 또한 기록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왜 그걸 이제야 깨달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요정족의 후예와 네 가문 사이에 뭔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말인가?”
“맞아.”
“그렇다면 묘인족이 네 정체를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군. 일부러 완타라모 숲으로 유도했다는 점에서.”
“그게 널 부른 이유다. 내가 알기로, 요정족의 후예라는 종족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상당히 벗어나 있거든.”
가왕주는 이야기를 전하는 특성을 가진 술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낭만적인 만큼, 수많은 음유 시인들이 요정족의 후예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왔다.
때문에 요정족의 후예, 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작고 앙증맞은 그들의 모습과, 왠지 모르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그들의 외형과 풍경은 일반적인 상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만.
실제 그들의 성격은 그렇지 않았다.
“요정족의 후예들은 극단적으로 배타적이고, 지독할 정도로 외인에게 가혹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완타라모 숲을 찾았다가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드시 살해당할 정도지.”
“그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
“심지어 고통 없이 죽이지도 않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지루해지면 끝을 낸다더군.”
발레리아는 진과 입장이 전혀 달랐다. 그녀는 묘인족에게 신뢰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묘인족이 일부러 흔적을 남기며 자신을 완타라모 숲으로 유도하고 있으니, 제거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마 묘인족이 내게 호감을 갖고 유도한 것이라면, 흔적을 남길 때. 완타라모가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렸겠지? 뭐, 나 같아도 갑자기 추적자가 붙으면 이렇게 할 테니 딱히 묘인족에게 악감정이 생긴 건 아니지만 말이야.”
“요정족의 후예가 그렇게 잔인한 족속들이라면, 묘인족이 어쩌면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군.”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
완타라모 숲의 초입에 다다른 것은 밤이었다.
싸늘하게 부는 바람 속에 먼 짐승의 울음소리가 스며있었고, 숲은 사람들의 출입이 적다는 걸 알리는 듯 초입에도 길이 전혀 나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화아앗……!
발레리아가 기록 마법을 펼치자, 바닥 곳곳에 푸르게 빛나는 표식들이 생겼다.
발레리아의 앞에 뜬 반투명한 창 위에 그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푸른 표식들은 모두 루루가 남긴 발자국이었다.
빛나는 발자국을 따라 삼십 분쯤 숲 안쪽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은 별안간 풍경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근처 가득 울창하게 솟아있던 나무들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숲은 거대한 한 덩어리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고, 나무들이 붙었다 떨어지며 우그적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
뒤틀리며 벌어진 나무의 속을 본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대번에 살의가 깃들었다.
나무 속에, 피투성이가 된 루루가 묶여있기 때문이었다.